햇살의 향이 나기를

by 박순우

오랜만에 옥상에 빨래를 널었다. 주택에 살면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순간 중 하나가 바로 옥상에 빨래를 너는 시간이다. 요즘은 집집마다 건조기가 많아 빨래를 너는 일이 수고롭게 느껴지지만, 건조기에 관심이 없는 나는 빨래를 외부에 널 수 있는 날이 되면 잔뜩 신이 난다. 아무 때나 밖에 널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햇살과 기온, 바람이 모두 적당한 날이라야 빨래를 밖에 널 수 있다. 잔뜩 쌓인 빨래를 세탁기에 넣으며 날씨를 가늠한다. 오늘은 널 수 있을까 없을까. 햇살이 조금 부족해도 바람이 적당하면 빨래는 제법 잘 마른다. 바람이 없이 햇살만 내리쬐는 날에도 빨래는 꽤 보송해진다. 온화한 햇살과 적당한 바람이 함께 있는 날이면, 널어둔 지 두 시간만 지나도 포근한 빨래를 품에 안을 수 있다. 그렇게 걷은 빨래에서는 햇살의 향이 난다. 바삭하고 달큼하고 보드라운 햇살의 냄새. 일부러 빨래를 개면서 코를 바짝 갖다 대고 강아지처럼 킁킁 댄다. 햇살의 냄새가 코를 지나 미세혈관을 타고 온몸에 퍼지면, 내 몸 구석구석에 햇살이 닿은 듯 안온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처음 내 이야기를 글로 옮길 때부터 공개적인 글을 썼다. 독자는 지인에 한정된 경우도 있었고 불특정 다수가 될 때도 있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글이라는 생각이 들면 이상하게 글이 되지 않았다. 시작은 해도 끝을 내지 못했다. 글을 세상에 내놓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그저 쓰는 게 좋아서 글을 쓰고 세상에 내놓았다. 영화 <마더>에서 주인공 도준은 죽은 아이의 시신을 옥상 난간에 마치 빨래를 널듯 널어놓는다. 도준은 영화 말미에 이렇게 말한다. 아픈 아이가 여기 있다고 세상에 알리기 위해 그런 게 아니겠냐고. 본 지 오래돼 정확한 대사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 장면은 유독 오랫동안 뇌리에 남아있었다. 퇴근길에 홀로 본 영화인데, 내내 무서운데도 꼼짝없이 집중해서 보았던 기억이 선명하다. 나는 이따금 글을 세상에 내놓으면서 이 장면을 떠올린다. 아픈 나를 좀 봐달라고 세상에 손짓하고 있는 건 아닐까.


어리광을 부려본 적이 없다. 기억나지 않는 아주 작은 아기였을 때는 나도 사랑을 받아보겠노라 생존 본능을 발휘했겠지만, 기억이 있는 시점부터는 마음 놓고 어리광을 부린 적이 없다. 머리가 크고 연애라는 걸 하기 시작하면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리광을 조금씩 부리기 시작했다. 나를 안아달라고 나를 사랑해 달라고 나를 봐달라고,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사랑이 커질수록 마치 본능이었다는 듯 조금씩 익숙해졌다. 사랑은 서로에게 아이가 되는 것일까. 사랑하는 사이라 해도 서로의 모든 모습을 받아줄 수는 없었다. 너무 어리광을 부리다 상대가 떠날 수도 있고, 사랑이 식어 이별의 순간을 맞이할 수도 있으니, 아무런 제약 없이 그저 나를 받아달라 요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부모가 있지만 제대로 기대보지 못한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간혹 다급하게 젖을 찾는 갓난아기처럼 굴었다. 그러다 찾게 된 게 글이었을까.


글을 쓰면서 스스로가 어리광을 부리고 있구나 싶을 때가 있다. 제일 처음 인터넷 카페에 연재했던 연애소설은 '내가 이렇게 사랑하는 이가 군대를 가버려서 허전해요'라고 외치는 어리광이었고, 오랜 꿈을 잃고 방에만 처박혀 있던 삼 개월 동안 끼적인 글들은 '꿈을 잃은 뒤 살아갈 방법을 모르겠어요. 갑자기 어른이 되어버렸는데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라고 묻는 어리광이었다. 타인에게 마음 놓고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은 늘 내 안에 존재했고, 생각이 넘쳐나 주체할 수 없는 순간이 오면 하얀 종이를 다급하게 찾았다. 무언가에 홀린 듯이 적어 내려가고 나면 속이 후련해졌다. 적든 많든 내 글을 읽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적잖은 위로가 됐다.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든 건, 어느 비 오는 날 버스 안에서였다. 첫 직장을 그만 두기로 결심하며 떠오른 생각이었다. 구체적인 계획이나 그림은 없었다. 그저 간절히 쓰고 싶었을 뿐이었다.


대단한 작가들이 많아 보일수록 글을 쓰겠다는 마음은 더 깊숙한 곳으로 숨어들었다. 써야만 살 수 있을 것 같았고 쓰는 게 마냥 좋았는데, 쓰는 사람으로 서자니 내가 가진 게 너무 초라했다. 내가 그동안 한 거라곤 드문드문 써온 글과 사회 부적응자라는 낙인이 찍힌 이력서뿐이었으니. 화려한 지식을 갖고 있지도 않고 성인군자처럼 마음이 넓지도 않은 내가 쓰는 사람으로 살 수 있을까. 열심히 쓰지도 않으면서 나는 스스로에게 자꾸 자격만을 물었다. 그저 쓰면 되는데 자격을 운운하고 이리저리 핑계를 갖다 붙이느라 시간만 죽였다. 어느 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나이 마흔이었다. 인생의 절반에 해당하는 기간 동안 나는 대체 무얼 한 걸까. 내 모든 걸 던졌다 싶을 만큼 사랑한 사람은 있었어도, 내 모든 걸 쏟아냈다 싶은 만큼 해본 일은 없었다. 이러다가는 언젠가 정말 크게 후회하겠구나, 덜컥 겁이 났다.


후회는 늘 내게 중요한 선택을 내리는 잣대가 된다. 삶의 갈림길에 설 때마다 나는 후회라고 적힌 카드를 높이 치켜들고 양쪽을 번갈아가며 바라본다. 어느 게 더 후회가 클까. 어느 길로 가야 후회가 더 적을까. 후회를 내세우면 답은 쉽게 드러났다. 어느 쪽으로 가도 후회가 있을 것 같을 때는, 시선을 저 멀리 미래로 보내 다시 지금 여기를 바라보았다. 인생의 끝자락에서 나는 어느 길로 가지 않은 걸 더 후회하게 될까. 그러면 내 앞에 답이 떨어졌다. 그 후에는 뒤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후회의 카드는 내려놓고, 책임의 카드를 가슴에 품은 채. 내가 내린 결정이 옳은 선택이 되려면 뒤를 돌아볼 수는 없었다. 책임을 지고 내 삶을 이끌어 가야만 했다. 내 노력에 따라 선택은 옳은 게 될 수도, 그른 게 될 수도 있기에. 그렇게 앞만 보고 걸었다. 글을 쓰는 삶도 마찬가지였다.


글을 매일 쓴 지 16개월이다. 이제 글을 빼놓고는 나를 설명할 수 없다. 매너리즘에 빨리 빠지는 편이라 이만 하면 질릴 때가 된 것 같은데, 이상하게 글은 아무리 써도 질리지 않는다. 늘 첫 글을 쓰는 마음으로 백지 앞에 앉는다. 나만의 작품을 완성한다는 생각으로 그날그날의 글을 적는다. 그 사이 작가가 되고 싶다는 욕심도, 책을 내고 싶다는 욕망도 흘려보냈다. 거르고 걸러 순수한 쓰기의 즐거움만을 내 안에 남겨둔다. 여전히 몸과 마음이 저릿한 날이면 다급하게 젖줄을 찾듯 백지를 찾는다. 평온한, 행복한, 무탈한 날에는 짐짓 여유로운 척하며 종이를 펼친다. 빨래를 햇볕에 말리듯 내 마음을 열린 공간에 펼쳐 보이곤 손짓을 한다. 여기 나라는 작은 인간이 이렇게 좌충우돌하며 삶을 살아내고 있다고. 이렇게 햇살 아래 나를 자꾸 내보이면 내게도 언젠가 햇살의 향이 날지도 모른다고. 바삭하고 달큼하고 보드라운 햇살의 냄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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