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얼마나 오랫동안 써왔냐고 누가 물으면, 쥐구멍 같은 곳으로 숨어버리고 싶다. 단단히 마음을 먹고 흑역사를 공개해 보자면, 진짜 시작은 인터넷 고무신 카페에서였다. 이십대 초반 당시 절절히 사랑하던 남자친구를 군대에 보내고 시름시름 앓던 나는, 동병상련을 느끼기 위해 한 고무신 카페에 가입했다. 고무신은 남자친구를 군대에 보낸 여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의 동향만 파악했다. 그런데 보다보니 게시글 중 흥미로운 시도가 눈에 띄었다. 남자친구와의 연애 이야기를 시리즈로 연재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읽다보니 재미도 있었지만, 나도 써볼까 하는 마음이 샘솟았다. 글이라고는 중고등학교 방송부 활동을 하며 쓴 방송 멘트가 고작이었는데, 어디에서 그런 자신감이 싹 텄는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그렇게 뜬금없이 나의 연애사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익명이었고 등장인물 또한 가명이었으며, 늘 옆에 있다 사라진 남친 때문에 마음도 헛헛하던 터라 신나게 글을 써대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일필휘지였다. 퇴고가 뭔지 모르니 그저 쭉쭉 써나갔다. 나름 소설 형식이었고 재밌게 읽히기를 바라는 마음에, 원래 사연에 쫄깃한 양념도 좀 쳐가며 글을 썼다. 꽤 오래 연재를 했고, 인기도 좀 있었다. 댓글도 많이 달리고 조회수도 높은 편에 속했다. 내 생애 최초 연재 소설이었다. 이걸 공식적으로(?) 글에 언급하는 건 처음인데, 그게 이십 년 전 일이다.
이십 년이라면 대하소설 하나 정도는 써야할 것 같지만, 그곳에서 두 편 정도 연재소설을 쓴 뒤(이전 남친과의 연애 이야기도 썼다가 당시 남친이랑 대판 싸웠...) 더는 쓰지 않았다. 작가를 꿈꾸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이후 나는 의도치 않게 다른 글쓰기에 돌입한다. 언론 스터디를 하기 시작했고, 그곳에서 매주 현안에 대한 논술을 썼다. 영 나와 맞지 않는 글쓰기였다. 내가 알고 있는 세상은 너무나 파편이었고, 그 파편들을 붙잡고 생전 써보지도 않았던 종류의 글을 쓰려니 도무지 써지지가 않았다. 그 시절 처음 합평을 했는데, 내 글도 쓸 줄 모르고 남의 글도 볼 줄 모르면서, 아무말 대잔치를 벌이곤 했다.
당시 딱 한 번 내가 우러러보는 글을 쓰던 사람으로부터 좋은 평을 받은 적이 있는데, 내가 쓴 이 문구 때문이었다. "원칙을 지킨다는 원칙" 어떤 현안에 관한 글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 문구만 선명하게 남아있다. 아마 자신 없던 글쓰기 분야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들은 칭찬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당시 나는 아나운서 준비생이었다.(별 얘기가 다 나오는구나...) 기자 준비생이었다면 아마 더 열심히 글을 썼을 텐데, 당시 나는 '아나운서가 글은 이 정도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러니 열심히 쓰지 않았다.
아나운서라는 꿈을 포기한 건 이야기가 길어지니 나중을 기약하고, 그 꿈을 내려놓은 뒤 방에 처박혔다. 열두 살때부터 꾸던 꿈을 내려놨으니, 그 길말고 다른 길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으니, 온통 벽으로 꽉 막힌 세상에 갇힌 것만 같았다. 그때 싸이월드를 켜고 끼적끼적대기 시작했다. 답답하고 막막한 마음을 글로 썼다. 내가 에세이라는 형식의 글을 썼다면, 그 시절 썼던 글이 아마 최초일 것이다. 남아있지도 않고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우울함의 극치였고, 음악을 들어야만 써지는, 일종의 새벽감성 글 같은 것이었다. 그래도 그런 글이라도 쓰고나니 마음의 무게는 한결 가벼워졌다.
그 뒤로 또 몇 년이 흐른 뒤, 일반 회사에 들어갔다가 도저히 이건 아니다 싶은 마음에 뛰쳐나왔다. 당시 상사는 모든 책임을 말단인 내게 떠넘기는 사람이었고, 결혼할 때까지만 다니면 되는 게 아니냐며 성차별적 발언도 서슴지 않는 사람이었다. 나는 견디지 못하고 나오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너가 보는 신문에 내 이름 석 자를 새겨주겠어. 어디서 그런 자신감이 나왔을까. 보고 들은 세상이 언론뿐이었기 때문일까, 나는 갑자기 글이 쓰고 싶었고 기자가 떠올랐다. 회사를 박차고 나와 다시 스터디에 들어갔고 논술을 꾸역꾸역 썼다. 그러다 작은 지방언론사의 기자가 되었다.
일은 재미있었다. 발제도 취재도 글을 쓰는 것도 내 적성에 잘 맞았다. 딱 하나 안 맞는 게 있었다. 사람을 끊임없이 만나야 한다는 것. 기자는 사람을 만나는 직업이라는 걸 기자가 되고서야 알았다. 의도를 갖고 사람 만나는 걸 너무 싫어하는 내게 맞지 않는다는 걸 어느 순간 알았지만, 또 어떤 면에서는 나와 잘 맞았기에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텼다. 그 일도 결국 그만 두고 나와 여행을 떠났다. 목적지도 기한도 없는 여행을. 무슨 글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의 글을 쓰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품은 채. 여행지에서는 일기 같은 짤막한 글들을 썼다.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멋진 여행기라도 한 권 내놓고 싶었지만, 도무지 써지지 않았다. 한참 시간이 흘러서야, 그 여행이 내게 무엇인지 그때는 알지 못해 쓸 수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예상보다 이른 결혼을 하고, 한 언론사에서 진행하는 소설반에 들어갔다. '작가하면 소설이지'라는 생각이 어딘가 박혀 있었던 모양이다. 소설 수업을 다 들은 뒤에는, 소설가 선생님과 같은 반 사람들끼리 몇 개월 동안 소설 스터디를 했다. 그곳에서 어릴 적 얼렁뚱땅 쓰던 연애소설이 아닌, 진짜 소설이라는 걸 쓰기 시작했다. 물론 졸작들이지만, 정해진 시간 안에 글을 어떻게 해서라도 끝내야 한다는 의무감이 나를 계속 책상 앞에 앉게 했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섬으로 이주를 했다. 일에 찌들어가던 남편을 구제해주겠다는 생각으로 저지른 일이었다. 카페를 열고는 홍보차 블로그를 시작해, 일기같은 단상의 글을 연재했다. 아이가 생긴 뒤에는 그마저 그만 두었다.
이렇게 길게 적고보니 이십 년이라는 시간 동안 짧든 길든, 형식이 무엇이든, 매일은 아니어도 계속 글을 쓰긴 써왔다. 직업상 꾸준히 쓴 기간이 있긴 하지만, 그 외에는 지속성이 없는 글쓰기였다. 때문에 내게는 글에 대한 나의 역사가 조각나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꽤 오래 글을 써왔지만 퇴고라는 걸 하기 시작한 지는 일 년이 채 되지 않았다. 사실 이 말을 하기 위해 이 지난한 이야기를 장황하게 끌어왔다. 부끄럽게도 나는 저 오랜 세월 동안 퇴고를 하지 않았다. 연재소설은 쓰자마자 업로드했고, SNS에 끼적이는 글들도 마찬가지였으며, 기사는 그날그날 올려야 하기에 쓰고 바로 데스크한테 검사받기 바빴다.
제주에 와서는 필이 넘쳐 흐를 때만 장문의 글을 썼는데, 그 글들이 지역 사회와 브런치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부끄럽게도 모두 한 번에 쓴 글들이다. 필을 받으면 급한 성격 때문에 휘리릭 써내려 가는 편이었던 나는, 왜 퇴고를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글이 화제가 된 적도 있다보니 더 그랬다. 스스로 재능이 있다고 믿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 필 받으면 그래도 좀 쓴다는 자만이 있었던 것 같다. 일필휘지가 더 물 흐르는 글이라 생각하기도 했다. 글쓰기는 재능이 있어야 가능한 일인 줄로만 알았다.
아이들을 어느 정도 키워놓고 나니 못 이룬 꿈이 자꾸 밟혔다. ‘이 글 하나만 쓰고 절필해도 여한이 없겠다 ’싶은 이야기가 있었고, 이제 정말 꾸준히 쓰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러고도 글을 매일 쓴 지 몇 달이 지나서야 퇴고라는 걸 하기 시작했다. 왜 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지만, 모든 작가들이 퇴고를 한다기에, 할수록 글이 좋아진다기에, 그럼 한 번 믿어보자 했던 것이다.
처음 퇴고는 틀린 맞춤법 고치기, 비문 수정하기 등에 그쳤다. 그러다 본격적인 퇴고를 하기 시작한 건 장편 하나를 미친 듯이 쓰고 난 뒤였다. 장편을 퇴고한다는 건 웬만한 인내심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나무와 숲을 동시에 봐야 하는 일이었고, 이는 내 능력을 넘어서는 일이었다. 세 번쯤 퇴고에 들어갔을 때 나는 토할 것만 같았다. 이런 쓰레기를 내가 썼다니. 그 뒤로 한동안 글을 처박아놨다. 대신 매일 쓰는 짧은 글이라도 퇴고하는 습관을 들이자고 결심했다. 글쓰기 모임에서 합평을 하자니 더 긴장하고 퇴고를 하기도 했다. 글 하나하나가 작품이라는 생각으로. 내 글은 내가 소중히 다룬다는 마음으로.
그렇게 해온 지 10개월쯤 됐을까. 이제 나는 퇴고하지 않은 글을 세상에 내놓지 못한다. 물론 쓰자마자 퇴고까지 거쳐 바로 게시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써두고 시간이 좀 흐른 뒤 다시 읽어보며 퇴고를 하고, 글을 올린다. 처음에는 몰랐던 퇴고의 이유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맞춤법이나 비문도 그렇지만, 문장이나 문단을 통째로 빼버리거나 새로 집어넣고 순서를 바꾸는 경우도 많다. 반복 사용한 단어가 보이면 대체어를 찾아 넣고, 표현이 부적절해 보이면 사전을 뒤져 더 적확한 걸로 바꿔 넣는다. 이렇게 퇴고를 하고 올려도, 다시 읽어보면 또 부족한 부분이 보여 뒤늦게 수정을 하기도 한다. 몇 달 전에 쓴 글도 예외는 아니다.
이제는 왜 퇴고를 해야 하는지 안다. 초고를 그대로 내보이는 건 내게 부끄러운 일이 되었다. 일필휘지로 써내려간 글이 더 이상 자랑이 아니라는 것도 깨달았다. 쉽게 쓰일수록 더 멈추고 두드리며 가야 한다는 것도, 어렵게 쓰인다고 너무 주눅들 필요가 없다는 것도. 이 모든 건 퇴고를 하며 얻게 된 자산이다. 꾸준히 쓰는 삶은 필 받으면 쓰던 삶과는 차원이 다른 세계였다. 글도 감각이라 며칠 게을리하면 바로 쓰는 게 힘들어진다. 그러니 매일 쓰고 매번 고친다. 내 글이 좀 달라졌다는 평을 최근에 몇 번 들었는데, 근원을 찾자면 답은 퇴고에 있다.
이십 년을 썼어도, 퇴고한 10개월 만큼 값진 시간은 없었다. 어느새 나는 퇴고만이 좋은 글로 나아가는 지름길이라고 외치는 사람이 되었다. 퇴고하지 않은 글이 쓸모 없는 건 아니지만, 퇴고한 글은 분명 다르다. 잘라낸 걸 아까워 할 필요는 없다. 언젠가 또 써먹을 날이 올 것이니, 그건 따로 저장해두면 된다. 그러니 잘라내고 들어내고 이어붙이는 걸 두려워 말자. 작가들이 괜히 하는 말이 아니었다. 나처럼 늦게 깨닫지 말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