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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우 Feb 08. 2023

경계가 흐려진다(쓰는 사람vs읽는 사람)

*떠오르는대로 생각을 나열한 글입니다. 글이 긴 데다 다 읽고 나면 남는 게 없을 수도 있으니 이 점 유의 바랍니다.



0.

글 시장이 심상치 않다. 폭풍같은 거대 물살에 휘말리고 있는 느낌이다.(나만 그런가...) 머릿속에 생각은 많은데 글로 잘 풀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어려운 글은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사람이니, 천천히 쉽게 한 번 풀어보자.(숫자로 글을 이어가는 게 있어 보여서 나도 한 번...)


1.

TV의 시대는 저물었다. 한 손가락에 꼽을 정도의 채널만 존재하던 TV가 어느 날 갑자기 수십, 수백 개의 채널로 늘어나더니, 언제 어디서든 볼 수 있는 구독 모델의 OTT 플랫폼이 여기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스마트폰의 유행을 타고 유튜브의 시대가 열렸고 틱톡에 각종 SNS도 영상 시장에 가세했다. 이제 더이상 영상은 특정 기술을 갖거나 시설을 보유한 사람들만 제작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영상을 보기만 하던 사람들은 이제 영상을 스스로 만들기 시작했고 이익을 창출하기에 이르렀다.


2.

글 시장도 영상 시장을 따라가려는 듯한 분위기다. 책과 신문으로 양분화되어 있던 시장이 들썩인다. 지면낭비라는 말은 신문이 한 장으로 발행되던 시절의 이야기다. 당시는 정말 읽을 거리가 귀했고, 한 장 짜리 신문에 누군가의 글이 담긴다는 건 대단한 한 자리를 꿰찼다는 의미와 같았다. 신문 지면은 점점 늘어나 하루에도 수십 장을 발행하기에 이르렀으나, 인터넷 시대의 개막으로 갑자기 모든 기사를 공짜로 볼 수 있는 시장이 열렸다.


신문에는 기사만 실리지 않는다. 각종 칼럼과 연재소설, 짧은 만화, 투고한 독자들의 소소한 이야기들도 이 공간에 담긴다. 인터넷 세상이 열리면서 이런 이야기들도 모조리 온라인으로 자리를 옮겼다. 가장 먼저 뜬 건 웹툰과 웹소설 시장이다. 종이책 시장을 진즉에 뛰어넘고 매년 성장을 이루고 있다. 여기에 논픽션 시장도 열리기 시작했다. 얼룩소를 비롯해 다양한 매체가 읽을만한 글을 제공하기 시작했고 그에 대한 보상을 하겠다고 나섰다.


그동안 논픽션은 돈과 관련 없이 그저 놀 수 있는 마당만 형성되어 있었다. 한국에서는 각종 언론과 SNS, 블로그, 브런치 등에서 주로 글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점점 논픽션도 돈이 걸린 시장으로 옮겨가고 있다. 새로 생긴 보상을 주는 글쓰기 플랫폼에 가보니, 그곳에는 픽션과 논픽션이 혼재돼 있었다. 간단하게는 음식 레시피부터 각종 에세이, 짧은 만화와 긴 연재 소설에 이르기까지 글 종류가 정말 다채로웠다. 마치 글로 이루어진 유튜브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곳에는 유튜브나 틱톡의 세상처럼 생산자와 소비자의 구분이 없었다. 누구든 생산자가 될 수 있고, 소비자도 될 수 있으며, 둘다가 되는 것 또한 가능했다. 한 사람의 계정도 생산자와 소비자로 나누어 관리가 가능하고, 생산자도 글의 형식에 따라 이름을 바꿀 수 있었다. 그곳을 둘러보다 보니 정신이 혼미해졌다.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3.

글값 논쟁을 따라가자니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글 시장과 오버랩된다. 몬스님과 스테파노님이 올려주신 글도 차례로 보고나니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단순히 얼룩소에서 몇 푼 더 받는 문제를 넘어, 페이스북 인사들이 글값 받으러 넘어왔다가 이 곳의 생태계와 맞부딪히는 문제를 넘어, 더 큰 그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4.

얼룩소는 논픽션이 주가 되는 공간이고, 이곳에 원래 머물고 있는 사람들은 대개 네임드가 아니라 일반인이다. 얼룩소는 그동안 일반인들에게 글에 대한 보상을 해왔다. 글쟁이들이 아닌 이들이 글로 돈맛을 본 것이다.(표현이 저렴한 걸 이해 바랍니다..) 이는 마치 돈을 내고 공연을 보기만 하던 사람이, 돈을 받고 공연을 직접 하게 된 것과 같다. 돈맛이라는 게 한 번 보면 끊기가 어렵다. 그게 과자값이든 고급한정식값이든, 글로 돈을 벌 수 있는 세상을 한 번 맛본 사람은 이걸 놓기가 어렵다.


게다가 글이라는 게 돈 뿐만 아니라, 글쓴이와 독자와의 상호작용을 불러 일으킨다. 내 글에 대한 독자의 좋아요나 답글이 큰 힘이 되는 것. 이걸 맛본 사람은 끊기가 힘들다. 돈보다 이게 진짜 더 무서운 건지도 모른다. 마치 무대 위에 서본 사람이 그 짜릿함을 잊지 못해 계속 가수를 꿈꾸는 것처럼.


그런데 이 바닥에 진짜 글쟁이들이 오기 시작했다. 원래 글로 돈을 벌어온 글쟁이들도 사실 배불리 먹지는 못하고 있었는데, 몇몇 글쟁이들이 여기에서 배불리 먹었다 증언을 하기 시작하자 판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너도나도 저기 가보자고 나서기 시작한 것.(페북 논쟁은 뒤로 하고...) 유튜브에 셀럽들이 와서 방송을 만들면 쉽게 구독자를 늘리고 돈을 버는 것처럼, 얼룩소도 점점 셀럽들에게 큰 보상을 하는 구조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돈맛과 무대맛(?)을 본 사람들에게 돈 벌 생각은 말고, 원래대로 관객석으로 가서 공연이나 구경하라고 한다.


여기저기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나온다. 그렇지 않아도 보상 체계가 명확하지 않아 말이 많았는데,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하자 더 볼멘소리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완전 경쟁체제라면 오히려 납득을 할지도 모르지만, 처음부터 플랫폼이 보상에 깊숙이 개입한 데다, 유튜브처럼 어느 정도 객관적인 지표를 모두가 확인할 수 있는 구조도 아니다 보니 사람들의 불만은 커져갔다. 미디어인지, SNS인지, 공론장인지, 콘텐츠 경연장인지, 대체 플랫폼 정체가 뭔지도 모르겠는데, 활동하는 사람들도 점점 자신이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 여기저기서 글을 쓰면 돈을 준다는 플랫폼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내부적인 문제도 복잡한데, 전체 시장 자체도 혼란스럽다. 플랫폼의 성격도 확실치 않은데다, 타깃층이 한정돼 있어 유료화로 인한 성공을 보장할 수 없다. 현안글만 두자니 보는 사람이 적고, 소소한 일상글을 받자니 모양이 빠져 보인다.(전지적 얼룩소 시점이라 해두자.) 둘다 가져가자니 보상이 양극화되고 이에 대한 불만이 계속 터져나온다.


5.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손에 쥐게 된 이후로 좀처럼 손을 가만히 두지 않는다. 자꾸 뭘 위로 올리면서 읽는다. 종이책은 일 년에 한 권을 안 읽지만, 아마 스마트폰으로 읽는 텍스트는 하루에 종이책 한 권일지도 모른다. 책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읽을 거리는 넘쳐난다. 사람들은 더 빨리 더 많은 걸 흡수하고 싶어 한다. 잠깐이라도 뭔가를 보거나 듣거나 읽지 않으면 불안해 한다. 이제 사람들은 하늘을 보며 멍을 때리는 게 아니라, 스마트폰을 보면서 멍을 때린다.


스마트폰을 이용해 자꾸 무언가를 읽거나 보는 현대인의 습관이 웹툰과 웹소설로 향했다고 보면 지나친 일반화일까. 인간은 이야기로 종교를 만들고, 문명을 세웠다. 신화와 설화가 그것이다. 이야기는 여전히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가장 큰 힘을 가진 존재다. 구전에서 종이로, 책과 신문에서 웹에 박힌 활자로, 매체가 바뀌었을 뿐 인간은 이야기를 계속 듣거나 읽으며 살아왔다.


예전에는 이야기를 생산하는 사람이 극소수고, 이야기를 소비하는 사람이 다수였다면, 이제 점점 경계가 흐려져 읽기만 했던 사람들이 쓰기 시작했다. 쓰기 열풍이라 불릴 만큼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 작가들은 너도나도 글쓰기 강연을 열어 또 다른 수익창출에 나서고 있다. 더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구전이야말로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가 없는 장르다. 오래된 이야기일수록 최초의 시작이 누군지 모르고, 누가 중간에 이야기를 덧붙였는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지만, 스스로 할 수도 있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6.

생산자와 소비자가 허물어진 글 시장에서 가장 이득을 보는 건, 단연 원래부터 글로 밥을 먹고 살았던 사람들이다. 쓰던 가락이 있으니 더 쉽고 빠르게 이 시장에 적응해갈 수 있다. 그런데 여기 영상 시장과는 좀 다른 점이 있다. 이들이 소위 말하는 식자층이라는 점이다. 오랜 세월 글을 쓰는 사람은 학식과 견문이 어느 정도 있는 계층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이들이 쓰는 글 시장은 좁고 성장 가능성이 크지 않다. 그들이 만들어 내는 글을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 중간에 껴있는 사람들이 사실 소설가다. 이들은 글을 쓰는 사람들 중에서도 거의 유일하게 식자층과 대중을 함께 끌어들이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들도 굳이 분류를 하자면 식자층에 속한다. 때문에 이들이 새로운 글 시장에서 돈을 벌려 하면 어딘가 면이 서지 않는다. 기성 작가들이 웹소설 시장에 들어와서 예명으로 활동한다는 소문은 오래 전부터 나돌았다. 종이책으로는 벌 수 없는 돈을 이곳에서는 벌 수 있으니 얼마나 달콤한 유혹인가.


그렇다면 이제 막 열리기 시작한 논픽션 시장에서는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까. 원래 글을 쓰던 사람들은 돈이 있는 식자층을 대상으로 한 유료 플랫폼으로 몰릴까. 아니면 대중을 상대로 하는 글을 생산하며 기꺼이 새로운 글 시장에 뛰어들까. 이 둘을 연결하는 글쟁이도 필요해 보이는데, 누가 이런 역할을 할 수 있을까.


7.

글을 쓰면 돈을 준다는 플랫폼이 늘어가고 있다. 그동안 플랫폼이 이용자들을 착취해왔다며, 이용자들도 수익을 나눠가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는 빠르게 허물어간다. 얼룩소에서처럼 이미 돈맛과 무대맛을 본 일반인들도 있다. 잠재된 글쟁이들은 차고 넘치고 누구든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관객으로만 남으려는 사람이 줄고 있다.


사람들은 점점 긴 글을 읽지 않는다. 읽을 거리는 넘쳐나고, 스크롤을 내리다가도 금세 화면을 바꿔 다른 글로 갈아탄다. 흡인력 있는 이야기가 아닌 이상,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아닌 이상, 독자를 글 안에 묶어두지 못한다. 논픽션은 그릇이 워낙 커 온갖 종류의 글이 담길 수 있다. 에세이만 해도 여행, 육아, 일상, 직장 등 다양한 변주가 가능하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종 현안을 다루는 글이 될 수도 있고, 책이나 영화에 대한 리뷰가 될 수도 있다.


어떤 글이 독자의 선택을 받고, 어떤 글이 소위 말하는 팔리는 글이 될까. 이 바닥은 얼마나 성장할 수 있을까. 이곳에서 주목을 받으려면 어떤 글을 써야하고,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자리를 넓혀가야 할까. 어떤 사람이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거듭나고, 어떤 사람이 소비자로만 남을까. 지면이 무한대인 이 세상을 우리는 어떤 이야기로 채워가고, 어떤 시장을 만들어가게 될까. 왜 하필 우리가 글을 쓰려고 할 때 이런 급변하는 시대가 도래했을까. 나의 자리는 어디이고, 당신의 자리는 어디일까. 우리는 무엇을 읽게 되고, 무엇을 쓰게 될까.   



"세계는 한 권의 책이 될 것이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아르헨티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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