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를 처음으로 종일 쓰고 있던 날을 기억한다. 장례식장에서였다. 코로나가 막 한국에 상륙해 한창 뒤숭숭한 시기에 시할머님이 돌아가셨다. 아이들을 친정에 맡기고 남편과 비행기에 올랐다. 당시만 해도 마스크는 기본값이 아니었다. 마스크를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우왕좌왕할 때였다. 그렇지만 장례식장에서는 써야만 했다. 여러 사람이 오가는 곳인데다, 장례를 치르는 사람이 전파자가 될 수는 없었기에. 마스크를 쓴 사람보다 안 쓴 사람이 더 많을 때라, 장례식장 입구에서 마스크를 손님들께 일일이 나눠주었다. 그때 처음으로 상복을 입고 종일 마스크를 낀 채 있었다.
불편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우선 상대의 입 모양이 보이지 않으니 대화를 하면서 서로 의미 전달이 잘 되지 않았다. 온통 시댁 식구들인지라 한번만 더 말해달라 거듭 부탁하기가 좀 꺼려졌다. 반은 듣고 반은 못 알아들은 채 사흘을 보냈다. 마스크 줄이 당기는 힘 때문에 시간이 좀 흐르니 귀도 아파왔다. 당시만 해도 코로나로 인한 여파는 몇 달이면 끝날 줄 알았다. 여러모로 불편하기 짝이 없는 이 마스크를 몇 달만 쓰면 될 줄 알았다. 코로나가 대체 뭔지 몰라 전 인류가 이 바이러스의 정체를 궁금해하고, 아주 작은 특성도 낱낱이 보도가 되던, 모든 게 불명확한 시기였다.
그로부터 삼 년이 흘렀다. 시할머님의 세 번째 기일이 코앞이다. 습관이라는 게 무서워서 이제는 마스크를 놓고 집밖을 나서지 않는다. 가방이나 차 안에는 여분의 마스크가 늘 비치돼 있다.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나는 마스크 덕분에 손님들 앞에서 감정을 숨길 수 있게 되었다. 이전보다 덜 웃어도 되고, 더 찡그려도 되었다. 아무리 마스크 착용이 해제된다 해도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한, 일을 하는 동안에는 마스크를 벗지 않을 것 같다. 실보다 득이 많기 때문이다.
유럽 사람들은 진즉에 마스크를 던져버린 듯하다. 상대적으로 아시아는 이제야 조금씩 마스크를 벗자는 분위기다. 그럼에도 나처럼 벗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많다. 마스크를 벗어도 된다면 벗을 것이냐는 질문의 글을 쓴 적이 있는데, 놀랍게도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벗지 않겠다는 답글을 달았다. 타인을 위한 배려일까, 아니면 타인의 간섭이나 평가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욕구의 산물일까. 마스크는 우리에게 계속 기본값으로 남을까, 아니면 결국 벗어던지고마는 유물이 될까.
화장을 잘 하지 않는 편인데, 그로 인해 지난 날 다양한 타인의 간섭을 받아왔다. 늙어서 후회하기 전에 썬크림이라도 바르라는 요구부터, 화장을 하지 않는 건 예의에 어긋난다는 말까지. 지금이야 시골에 사니 그런 간섭이 거의 없지만, 대도시에 살 때는 훨씬 심한 말들에 부딪혔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꾸밈은 당연히 감내해야 하는 노동이었다. 화장품값을 대줄 것도 아니고, 화장하는 시간을 여성에게만 추가로 보장해줄 것도 아니면서 사람들은 수시로 선을 넘으며 타인의 삶에 개입했다.
생긴 것에 대한 비평도 참 많이 받아왔다. 이목구비부터 몸매, 차림새에 이르기까지. 나는 한 번도 내 생김을 마음껏 비평해도 된다 허락한 적이 없었건만, 경계가 없는 사람들은 마치 자신은 비평에서 자유롭다는 듯 함부로 입을 놀려댔다. 아무리 마음을 굳건히 먹는다 해도,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여행지에서의 삶을 사랑했던 이유 중 하나는, 이런 시선으로부터 놓여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어떤 생김이든, 무얼 입든, 아무도 간섭하지 않았다. 똑같은 복장으로 국내 여행지를 다니면 꼭 첨언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n번방 같은 사건에서 가장 분노가 치미는 것 중 하나는, 그 세계에서는 여성에 대한 품평회가 지극히 당연하게 벌어진다는 점이었다. 마치 자신들이 신이라도 된다는 듯 한 인간을 무대 위에 강제로 올려두고 마구 칼을 꽂는 사람들. 비단 숨은 공간에서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게 아니다. 유독 얼굴이 알려진 여성은 직업이 무엇이든 나이가 얼마든 상관없이, 일단 얼굴의 생김부터 타인에게 평가를 당하고 만다.
이런 세상에서 마스크를 쓰는 문화는 뜻밖에도 자유를 가져왔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이 마땅한 권리는 마스크라는 가면 안에 숨어서야 비로소 우리에게 주어졌다. 마스크를 쓰는 게 마냥 편할 리 없다. 숨 쉬기가 불편하고, 자신의 입냄새에 취해야 하며, 의사소통이 힘들어진다. 기온이 높고 습한 날에는 더 견디기가 버겁다. 그럼에도 최후의 순간에도 마스크를 벗지 않는 사람들이 어딘가에는 남아있을 거라 추측한다. 그건 단지 전염의 위험에서 벗어나는 게 아니라, 그저 나다울 권리를 지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