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순우 Jan 12. 2023

시인이 된 장기 복역수

감옥에 살고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장기 복역수가 시인이 되었다. 장기 복역수라는 말에서 짐작할 수 있듯 죄가 가볍지 않으리라. 등단은 누군가에게는 낡은 통과의례이고, 누군가에게는 통과할 수 있는 유일한 문일 것이다. 타 신문사 신춘문예에서도 최종 당선이 된 적이 있지만 복역수라는 이유로 취소됐다. 영남일보는 좀 다른 결정을 내렸다. 당선자가 복역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뒤 긴 고심의 과정을 거쳤다.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가. 신춘문예 취지에 부합하는가. 결국 외부 요인을 모두 배제하고 결정을 내렸다. 그렇게 한이로(필명)씨는 시인이 되었다.


  한씨는 오래 전 함께 복역한 한 시인을 만나면서 시를 접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시 작법서로 혼자 독학을 하다 방송통신대 국문학과에 입학했고 문학동아리에 들어갔다. 이용헌 시인과 수 년간 서신을 통해 지도를 받았다고 한다. 3, 4학년 때는 연속으로 방송대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용헌 시인은 처음에는 아마추어 수준이었지만, 4-5년 전부터 완성도가 높아지고 자기 세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당선 인터뷰에서 한씨는 이렇게 전한다.


▶시는 당선자에게 어떤 의미인가.
"유폐된 시간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기 위해 '창작'을 택했고, 상대적으로 가장 자유로운 것이 문학(글쓰기)이었다. 시인이라는 새로운 꿈이 생겨 나 자신을 놓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과정을 통해 조금이나마 성장한 듯하고 망가진 인생이지만 이곳에서 무언가 이뤄낼 수 있다는 성취감과 자존감을 얻기도 한다."


  한씨는 그림도 그린다. 시를 쓰기 위해 모티브를 찾던 중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됐고, 전시회는 가지 못하더라도 도록이라도 보고 싶어 한 미술관에 도움을 요청했다고 한다. 마침 시를 쓰는 큐레이터와 연락이 닿아 뒤늦게 그림도 시작하게 되었다. 그 분의 도움으로 단체전과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한씨는 앞으로의 계획을 말하며 시와 그림을 언급한다.


"시와 그림이라는 두 가지 소통방식을 통해 나의 메시지를 전할 생각이다. 주변 여건상 쉼이 있을지언정 중단은 없을 것이다. 예술의 근본은 진·선·미라고 생각한다. 그것에 대한 추구를 통해 나 자신에 긍정적 변화가 이뤄진다고 본다. 무엇보다 형기를 마쳐도 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작품활동을 하면서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보속하며 살아가는 게 최선의 삶이라고 생각한다."

   

  등단 역사 100년 동안 유례가 없는 사건에, 정치권이 논평을 내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 대구시당은  "성경에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는 경구는 말로는 쉽지만 실천이 어렵다"면서 대구지역 유력 언론사로서 어려운 결정을 내린 것에 찬사를 보냈다. 한씨는 당선 소감에서 이렇게 말한다.


거기서부터 여기까지,

아득하기엔 아린 나날이어서 먼 듯하지만 가깝고 가까운 듯하지만 먼 거리였다.

움켜쥐어도 끝내 잡히지 않는 햇살, 그럼에도 햇볕이 드는 곳을 자주 바라보았다. 열리지 않는 문을 끊임없이 두드리듯.

빛살을 엮어 만든 밧줄과 같은 인연의 힘으로 여기에 서 있다.

고마움과 미안함은 이따금 동의어로 쓰인다.

시를 쓰면서 그림을 생각하곤 했다. 그림을 그리며 시 쓰는 일을 떠올렸다.

그렇게 저 너머의 시간을 바라보며 걸었다.

걷는 것은 견디는 것과 닮았다.

작품은 삶과 같아서 언제나 미완일 뿐, 오늘의 뿌듯함이 내일의 부끄럼이 되곤 한다.

하지만 등 뒤에 있는 시간처럼 이 또한 성근 나의 일부이기도 하다.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빛나는 밧줄을 길잡이 삼아 환한 저 너머로 다시 걷는다. 



  '빛살을 엮어 만든 밧줄과 같은 인연의 힘'이란 말에 시선이 멈췄다. 한씨가 등단에 이르기까지 힘을 더한 건 한씨만이 아니었다. 복역수라는 이유로 외면 당했다면 이런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까. 사람은 미워하되 죄는 미워하지 말라지만, 결국 죄는 사람이 저지르기에 결코 완전히 불리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징역이라는 처벌의 목적이 죗값을 받는 것에만 있지 않고 교정에도 있음을 상기한다면, 이번 성과 만큼 값진 게 있을까.


  몸이 감옥에 갇혀있다 해서 영혼마저 갇히는 건 아닐 것이다. 복역수 뿐만 아니라 우리도 사실 각자의 감옥에서 살아간다. 버텨낸다. 햇볕이 드는 곳을 자주 바라봤다는 한씨의 소감을 한 자 한 자 읽으며, 나의 창으로 쏟아지는 햇살의 감촉도 떠올려 보았다. 그 한줌의 햇살이 있어 얼마나 다행이었던가. 저 너머의 시간을 바라보며 걷는 사람은 비단 한씨만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걷고 견디는 많은 사람을 떠올리며, 감사히 시와 소감을 읽어내려갔다. 또다른 햇살이었다. 당선작의 제목은 '데칼코마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왜 시민단체냐고 묻는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