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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우 Feb 19. 2023

꿈을 품고, 적당한 거리를 지키며

“여행 가고 싶지 않아요?”


한때 내가 여행을 홀린 듯 다녔다는 걸 아는 지인들은 가끔 묻는다. 역마살을 잠재우고 어찌 사느냐고.  그럴 때면 이렇게 말하곤 했다.


“이제는 그렇게 여행 가고 싶은 생각이 많이 들진 않아요.”


결혼을 하고 섬으로 이주를 하고 아이들을 키우고 코로나를 맞이하고, 자의든 타의든 한동안 붙박이처럼 살아왔다. 섬으로 온 뒤에는 크게 여행을 다니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내 자리를 드디어 찾았기 때문일까. 느리게 흘러가는 시골의 삶이 좋았다.


여행을 하는 여러 이유 중 하나는 도망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으로부터의 도피. 집과 나고 자란 도시가 불편했던 나는, 어딘가 있을지도 모를 내 자리를 찾아 다닌다는 생각으로 여행을 했다. 이 도시는 살 만할까, 저 도시는 어떨까. 여기서 산다면 무슨 일을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러다 만난 게 섬이었다. 한국이지만 바다 건너인 이곳이라면 짐을 한 번 풀어보고 싶었다. 그렇게 마음 붙일 곳 없던 이방인이 자리를 잡았다.


초창기에는 이리저리 사람에 치이고, 겨울이면 갈 곳 없이 스산해지는 분위기에 적응을 잘 하지 못했다. 여기도 내가 살 곳이 아닌가. 아이를 낳고부터는 육아와 살림과 일에 치어 오르락내리락하는 감정에 휘둘릴 겨를조차 없었다. 그렇게 정신 없이 몇 년을 살고보니 어느덧 십 년차 이주민이 되어 있었다. 이제 나는 이방인도 정주인도 아닌 그 중간 어디쯤의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였을까. 한동안 여행을 가고 싶다는 마음이 크게 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마음 한 구석에는 작은 꿈 하나를 키우고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떠나는 세계여행. 섬 시골마을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에게 어디어디 출신이라는 꼬리표는 자랑이 될 수도 있지만, 족쇄가 될 수도 있을 터였다. 나는 왜 이렇게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을까. 나는 왜 수도권에 살지 않을까. 내 부모는 왜 이 외딴 섬에 짐을 풀었을까. 내게는 이 섬이 숨통이지만, 아이들에게는 답답한 곳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아이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무엇일까. 내가 떠올린 건 더 큰 세상을 만나게 해주는 것이었다. 지구 상에는 한국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한국 사회의 법칙만 옳은 게 아니라는 것을, 타고 태어난 곳에서만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여행을 통해 알려주고 싶었다.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얼마나 다양한 삶이 존재하는지, 얼마나 다채로운 세상이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나는 그런 세상이 있다는 걸 여행을 다니기 시작한 이십대가 되어서야 깨달았지만, 아이들은 더 빨리 알아가길 바랐다. 그래야 섬 시골이라는 아주 작은 사회에 살면서도 생각만은 더 넓게 뻗어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정해진 길만을 옳은 삶이라 말하는 사회를 벗어나, 더 다양한 삶의 가치를 알고 꿈꾸며 자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 된다면 어떤 사람과 사회를 만나더라도 휘둘리지 않고, 더 자유롭게 사고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아이가 언제든 내 품을 떠나 멀리멀리 자신만의 삶을 찾아 날아가기를 원했다. 그 가능성으로 지금의 삶을 족쇄로 여기지 않기를 바랐다.


아이들에게 더 넓은 세상이 있다는 걸 알려주는 건  처음에는 내 몫이었다. 수시로 여행 다니던 이야기를 해주고, 지구 안 다른 세상뿐 아니라 지구 밖 우주를 상상할 수 있도록 자주 말을 꺼냈다. 언제부턴가는 내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아이들이 먼저 다른 나라에 대한 책을 읽고, 이야기를 하고, 가보겠다는 꿈을 꾸었다. 한쪽에 붙여둔 세계지도를 수시로 살피고, 다양한 나라의 위치와 랜드마크, 음식들을 이야기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랐고 코로나도 잠잠해지니 마음이 슬슬 들뜨기 시작했다. 이제 나가봐도 되지 않을까. 여행을 위해 조금씩 모으고 있던 돈도 어느 정도 모인 상태였다. 어디를 가고 싶냐고 물으니 첫째가 ‘도시’를 우선으로 꼽았다. 우리가 시골에 사니 도시 여행을 하고 싶다는 것. 자연이 가까워 좋다고 하면서도, 아이들은 벌써 도시가 가진 다이내믹함을 알고 있다.


도시 여행을 한다면 어디가 좋을까. 여러 인종이 어우러져 살아가고, 다종다양한 생활양식이 공존하는 곳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다. 전세계에는 그런 도시가 드물지만 몇 군데 있다. 미국의 뉴욕이나, 홍콩, 두바이 등. 그러다 찾은 게 싱가포르였다. 비행 시간이 여섯 시간 정도로 아직 어린 아이들과 버텨볼 만하고, 섬에서 출발하는 직항이 있으며, 안전한 편인데다, 다채로운 매력이 있는 곳.


나는 그저 싱가포르가 어떨까 운을 띄웠을 뿐인데, 아이들은 그 순간부터 자신의 마음 속에서 싹을 틔우고 물을 주기 시작했다. 지도에서 싱가포르 위치를 찾아보고, 관련 책을 들여다보며 스스로 의견을 내기에 이르렀다. 굳이 시키지 않아도 종이에 가고 싶은 곳을 쭉 나열하기도 하고, 첫날 스케줄을 직접 짜보기도 하는 아이들. 언제 이만큼 자랐을까.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이번엔 어디를 갈까 함께 이야기 나누고 떠나는 순간을 늘 고대해왔는데, 그 순간은 이미 코앞으로 바짝 다가와 있었다.


팔 년만에 떠나온 타국이다. 늦은 밤 공항에 내려서야, 내가 여행의 감각을 한동안 잊고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낯선 곳에 갑자기 떨어져 어색한 향기를 맡고 더듬더듬 온전치 못한 언어로 대화하며,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이 감각이 나 역시 무척 그리웠음을. 이곳은 전세계인들이 살아가는 곳이자, 전세계인들이 여행하는 곳이다 보니, 고개를 돌릴 때마다 다른 나라가 자리한 듯하다. 이쪽을 보면 중국 같고, 저쪽을 보면 아랍 같다. 동남아 같다가 인도 같다가 유럽 같다가 일본 같기도 하고 호주나 뉴질랜드 같기도 한 곳.


타국이 처음인 아이들은 낯선 향기와 이색적인 풍경에 흠뻑 빠져 버렸다. 이곳의 삶의 방식을 조금씩 익혀가며 더 넓은 세상에 대해 알아가고 있다. 아이들이 내 품에 있는 시간은 짧다. 자신의 길을 찾아 떠나기 전까지 몇 년에 한 번이라도 아이들과 이런 여행을 하고 싶다. 새삼 더 열심히 살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일상으로 돌아가면 또 함께 거닐 언젠가를 떠올리며, 반복되는 일과 고된 일상을 살아내야지.


언제부턴가 일은 내게 전부라기보다 삶을 지탱하기 위한 최소한의 수단이 되었다. 모든 걸 쏟아붓지도 않고 그렇다고 아예 등한시하지도 않는다. 그 중간 어디쯤을 걸으며 하루하루 밥벌이를 한다. 이십대의 나는 일로 모든 걸 이루려고 했다. 내 꿈도 자아실현도 삶의 기쁨도 일을 통해 찾으려 했다. 미련한 꿈인 걸 모르고 좇다보니 얼마 못 가 벽에 부딪히는 일이 잦았다. 지금 하고 있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사활을 걸고 임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이룰 수 없는 지점이 있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 뒤로는 지금 있는 자리에서의 최선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꾸준히 무언가를 한다는 건 매 순간 열심히 임한다는 게 아니라, 어쩌면 일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법을 알고 있다는 말인지도 모른다. 그 선을 지키며, 잉여의 삶을 충족시키는 찰나의 순간들을 기다리며, 그렇게 하루하루 버텨내고 또 지켜내는 게 삶인지도.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걸 만족하는 일이 아닐지라도 무의미한 게 아님을 이제는 알기에. 또 함께 떠날 언젠가를 상상하며 나는 다시 제자리로 향한다. 다음엔 어디로 향하면 좋을까. 그때 아이들은 또 얼마나 더 자라있을까. 우리는 또 어떤 잊지 못할 순간들을 함께 보내게 될까. 아이들과 함께 한 첫 여행을 끝내며, 또다른 꿈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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