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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우 Mar 10. 2023

쉼을 내주고 사랑을 얻다

  '복근을 만들고 임신을 해야지'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과거형이고 여전히 마음뿐인 희망사항이지만 한때는 그랬다. 임신 뒤 바람 빠진 풍선처럼 늘어지고 축 처진 뱃살을 갖지 않기 위해서는 복근이 필수라고 생각했다. 로션 바르기도 귀찮아하는 아줌마에게도 나름 거울을 자주 보던 한때가 있었던 것이다. 막상 아이를 낳고 길러 보니 내가 길러야 했던 건 복근만이 아니었다. 인내심, 이해력 등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필수인 건 체력이었다. 둘째를 낳고난 뒤 내 몸은 내 몸이 아니었다. 질질 끌려다니는 몸뚱이었다.


  첫째를 2015년에 낳았으니 어느덧 8년이 흘렀다. 8년이란 시간은 육아에 전념한 시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내게 8년은 단 한 번도 편히 잠을 자보지 못한 시간을 의미한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수유한다고 잠을 자지 못했고, 어느 정도 크고 나서는 잠결에도 엄마 품을 찾거나 발차기를 해대는 아이들 덕에 새벽에도 수시로 눈을 떠야 했다. 팔베개를 너무 많이 해줘서 어깨가 나간 적도 있고, 수면이 부족해 아침이면 심장 통증이 느껴진 적도 있다. 그런데도 아이들과 여전히 같이 자는 이유는, 둘째가 엄마와 따로 자는 걸 극구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가 초등학생이 될 때 잠자리 분리를 시도했다가 실패하고, 둘째 초등학교 입학 때로 시기를 미뤄두었다.


  서양 부모들처럼 더 어린 나이에 잠자리 분리를 했다면 좋았을 텐데. 육아가 처음인 나는 그저 엄마인 내가 아이의 마음이 안정을 찾을 때까지 옆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직 세상이 낯설고 모든 게 두려울 나이에 언제든 엄마가 옆에서 손을 잡아줘야 한다고 믿었다. 그 책임감으로 버티다 보니 어느덧 8년이 흘렀다. 내 간절한 소원 하나는 밤에 잠이 들어 아침까지 쭉 깨지 않고 자는 것이다. 아이들과 잠자리 분리를 하면 그 소원이 이뤄질까.


  둘째는 예정일보다 한 달이나 일찍 세상에 나왔다. 당시 21개월이었던 첫째는 어리둥절한 채 외할머니 손을 잡고 가고, 나는 양수가 터진 채 병원으로 향해 긴급 수술을 받았다. 수술로 일주일은 병원에서, 일주일은 조리원에서 보낸 뒤 집에 오자마자 전쟁이 시작됐다. 엄마와 갑자기 떨어져 지냈던 첫째는 내가 현관문 쪽으로 가기만 해도 울고불고 난리를 쳤다. 예민함을 기본 사양으로 장착하고 태어난 둘째는 우유만 먹이면 토하고 오래도록 통잠을 자지 못했다.


  기관에 보내지도 않고 두 아이를 오로지 내 손으로 키우던 시간은 1년 정도. 그 시간 동안 내게는 찰나의 쉼도 허락되지 않았다. 1년 동안 두 아이가 동시에 낮잠이 든 적은 한두 번에 불과했다. 모든 날, 모든 순간이 전쟁이었다. 둘째 우유를 먹이며 첫째 책을 읽어주고, 첫째가 빽빽 우는데 둘째 기저귀를 갈았다. 이유식을 만들며 막 말문이 트인 첫째의 질문에 답을 하고, 잠시라도 엄마가 없으면 울어대는 둘째 때문에 화장실도 제대로 가지 못하던 날들. 첫째가 어린이집을 가기 전까지만 악착같이 버티자. 입술을 꽉 깨물고 없는 체력을 긁어 모아 악으로 깡으로 버틴 시간이었다.


  그 후로 1년 뒤 첫째가 어린이집을 가고, 2년 뒤 둘째도 어린이집을 가기 시작했다. 둘째의 어린이집 적응기간이 끝나고 처음으로 아이가 버스를 타고 등원한 날, 아이를 보내고 홀로 거실에 앉아 있었다. 엄마가 된 뒤로 처음 맞이한 혼자만의 시간이었다. 달콤할 줄로만 알았는데, 달콤은커녕 너무나 낯설었다. 한때 혼자 밥도 잘 먹고, 영화도 잘 보고, 여행도 잘 가던 사람이 혼자가 어색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갑자기 뇌가 텅 빈 느낌이었다. 무얼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고,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는지도 잊어버린 상태였다. 그 시간 속에는 엄마만 있고 박현안은 없었다.


  그 후로 지난 4년 동안 내가 가장 애쓴 건 좋은 엄마가 되는 것도 있었지만, 가장 나다운 순간을 찾는 일이었다. 다시 카페로 나와 일을 하고, 다시 책을 읽고 글을 썼다. 나다운 시간은 내게 허락된 유일한 쉼이었다. 아이들은 각자의 삶이 생겼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내 손이 많이 필요하기에, 분주히 돌아가는 일상 속에 제대로 쉬는 시간을 갖기는 쉽지 않다. 귀가한 아이들은 쉴 새 없이 엄마를 부르고, 질문을 던지며, 자기들끼리 다툼을 한다. 부름에 응답하고, 질문의 근원과 답을 함께 찾고, 다툼을 말리고 중재하다보면 하루는 금세 지나간다. 


  전문가들은 부모들의 체력이 가장 부족할 때가 아이를 출산하고 십 년 동안이라고 한다. 어린 자녀를 돌보느라 잠이 부족한 데다, 몸과 마음의 에너지가 수시로 고갈되기 때문이다. 사촌동생들 뿐만 아니라 조카까지 꽤 많이 돌본 경험이 있어 내게 육아는 쉬울 줄 알았건만, 실전은 달랐다. 남을 도울 때와 내 일이 될 때는 천지 차이가 났다. 이럴 줄 알았으면 출산 전에 복근 단련이 아니라 철인삼종경기라도 도전할 걸. 그렇다고 복근을 단련한 건 아니지만.


  이따금 깨끗하고 전망 좋은 호텔방에서 나 홀로 뒹굴거리는 상상을 한다. 때 되면 룸서비스로 음식이 배달되고, 나는 그저 주는대로 먹고 자며 마음껏 시간을 탕진하는 상상. 아무데도 가지 않아도 괜찮을 것만 같다. 몇 시간 정도는 그저 창밖만 바라봐도 충만할 것 같다. 따뜻한 차나 커피가 많이 구비돼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을 테고. 정신이 맑기보다는 몽롱한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온전한 쉼의 시간. 언젠가는 그런 기회를 한 번쯤 누릴 수 있을까.


  이제는 잠이라도 좀 따로 자고 싶다가도, 여전히 엄마 품을 찾고 부비대는 아이들을 바라보면 마음이 약해진다. 이 아이들이 내 품을 찾고, 내 품이 최고라고 여기는 시절이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그러면 다시 아이들을 끌어안고 지칠 때까지 뽀뽀를 해주고 사랑한다고 수십 번도 넘게 말해준다. 엄마의 사랑이 아이들 가슴 깊은 곳에 박혀, 어느 누가 파헤친다 해도 절대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그러면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내게 속삭인다.


"엄마 나는 엄마를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무한의 무한의 무한의 무한의 무한 만큼 사랑해. 어떻게 이렇게 사랑할 수 있지?"


  아이들은 훌쩍 커버린 어느 날, 이렇게 우리가 서로에게 한껏 사랑을 내뿜었던 순간을 떠올릴 수 있을까. 언제든 엄마에게 안기고 싶지만 너무 커버렸다는 이유로 주저하게 되지는 않을까. 나는 언젠가 지금의 날들이 사무치게 그리워지진 않을까.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면서도 아이들과 부대끼며 잠들고 깨어나던 나를, 언제든 달려와 품에 쏙 안기며 사랑의 말들을 분수처럼 쏟아내는 아이들을, 간절히 그리워하게 되지 않을까. 


  후회가 적은 삶을 살고 싶다. 더 사랑해주지 못함을, 더 안아주지 못함을 후회하고 싶지 않다. 아이들을 사랑함에 있어 충분함이 느껴지는 한계가 과연 있을까 싶지만. 아무리 사랑하고 안아줘도 나는 결국 후회하고 말 테지만. 그럼에도 조금이라도 덜 후회하고 싶은 마음에, 오늘도 나는 아이들을 끌어안고 사랑을 말하며 잠이 든다. 나의 쉼을 기꺼이 반납한 채. 그러고보니 내가 지난 8년 동안 휴식과 맞바꾼 건, 다름 아닌 사랑이었구나. 이런 날은 내게 얼마나 더 남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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