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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서 친구가 된 사람들

by 박순우

오랜만에 누군가를 만날 약속이 잡히면 양가적인 감정이 든다. 너무나 반가워 설레는 마음 하나와 우린 서로 얼마나 달라졌을까 걱정하는 마음 하나. 낯선 이국땅에서 우연에 우연이 겹쳐 알게 된 친구 넷이 만든 계모임이 있다. 코로나로 무기한 연장됐던 계모임이 삼 년 만에 열렸다. 낯선 땅에서는 한 도시에서 지냈지만, 한국에서 우리는 저마다 뚝 떨어진 곳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그러다 보니 모임 장소는 전국 방방곡곡이 될 때가 많다.


네 명이던 모임이 열 명이 되었다. 여자가 셋 남자가 하나인 모임이었는데, 이제 남자가 일곱 여자는 그대로 셋이다. 저마다 선택한 삶도 조금씩 다르다. 한 명은 아직 싱글이고, 한 명은 무자녀 부부, 한 명은 아이 하나, 나는 아이 둘이다. 그렇게 옹기종기 모인 우리들은 추억과 현실 사이를 오가며 오랜만에 이야기 꽃을 피웠다.


학교에서 만났다면 절대 친구가 되지 않았을 것 같은 사람과 친구가 되는 경우가 있다. 내게는 이들이 그렇다. 이들 중에는 나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도 있지만, 전혀 달라 절대 어울려 놀지 않을 것만 같은 친구도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제법 잘 어우러진다. 만나면 쿵짝이 잘 맞아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함께 만나온 기간이 길어지는 만큼 할 이야기도 늘어간다. 처음 만났던 시점부터 친해진 계기들, 흑역사, 함께 만든 추억들, 지금의 고민들까지. 모든 순간들이 대화 소재가 된다.


기질도 성격도 제각각인 우리가 왜 잘 어우러질 수 있는지를 곰곰 생각해 보니, 애초에 다르다는 걸 너무 잘 알아 서로 굳이 재거나 비교하지 않았다. '왜 그렇게 사냐'는 둥, '그렇게 살면 안 된다'는 둥의 말은 잘 오가지 않는다. '그렇게 살면 어떻냐' 혹은 '그렇게 살 수도 있지'라는 말로 각자의 다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 서로 구박을 하거나 놀리거나 의견 충돌이 있을 때도 있지만, 뒤돌면 또 잊어버리고 웃고 마는 사람들. 너무 달라 친구가 된 게 신기했는데, 생각해 보니 너무 다르기에 친구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특히 감사한 건 새롭게 합류한 배우자들도, 그리고 아이들도 서로 잘 지낸다는 점이다. 어떤 주제의 이야기도 서로 잘 받아주고, 어떤 종류의 게임(?)도 사활을 걸어 즐겁게 하는 사람들. 그러니 함께 만날 때마다 우리는 목이 쉬도록 수다를 떨고, 배가 아파 뒤집어질 정도로 깔깔 댄다. 이 모임에만 가면 나는 개그 본능이 튀어나와 자꾸 친구들을 웃기려 든다. 이번에는 꽃놀이 온 전형적인 설레발 중장년층 말투를 흉내 냈더니 친구들이 뒤집어졌다. 시골에 처박혀 산다고 개그 감각이 많이 죽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서로 너무 많이 달라졌을까 걱정하는 마음은 다행히 기우였다. 서른을 넘고 나니 친구들과 만나면 자주 테이블 위로 올라오는 대화의 주제가 돈, 주식, 집값, 자식 교육 문제 등이었다. 의미가 없는 대화는 아니나, 문제는 방향성이었다. 무조건 최대, 최고를 부르짖거나 다른 걸 틀린 것으로 매도하는 자리는 견디기가 어려웠다. 그런 친구들과의 만남은 언제부턴가 슬슬 피하게 됐다. 섬으로 이주하면서 친구들 모임이 많이 끊겼는데, 자처한 면도 없지 않았다.


모임을 앞두고 속으로 다짐한 세 가지. 입은 적게 벌리고 귀는 많이 열되, 되도록 판단은 하지 말자. 생각보다 말을 많이 한 것 같아 자책을 하다가도, 그럼에도 별 탈 없이 좋은 한 때를 또 함께 보냈음에 감사하다. 나이가 들수록 불편한 자리는 꺼리게 되고, 보고 싶은 사람들만 보게 된다. 이십 대 때는 어떻게든 남아도는 시간과 체력을 소모하려 애를 썼던 것 같은데, 이제는 시간과 체력의 낭비가 가장 꺼리는 일이 되었다. 여전히 편한 자리를 서로에게 내어주고, 더 보고 싶고 더 함께 하고 싶은 친구들이 있어 참 다행이다.


모임 끝자락이 감기 대잔치가 되어 서로 골골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코로나가 아니라 다행이고 이렇게 또 추억을 쌓을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 아이들은 모임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내게 많은 질문을 던졌다. 엄마는 OO삼촌을 어떻게 알게 됐어? ㅁㅁ이모랑은 언제 만났어? 이 모임은 왜 하는 거야? 언제 또 만나? 다음엔 누가 회장이야? 다음엔 어디서 만나? 아이들도 모임이 꽤 즐거웠는지 벌써부터 다음 모임 계획을 짜고 있다.


더 나이가 들더라도 지금처럼 서로의 다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사이이길 바란다. 얼굴만 봐도 반갑고 웃음이 터져 나오는 유쾌한 만남이 오래도록 지속되길. 각자의 자리에서 늘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지내길. 그리고 언젠가 우리가 만났던 낯선 이국땅을 함께 밟는 꿈같은 순간을 맞이하길. 내년이면 우리가 만난 지도 어느덧 이십 년이다. 더해 온 세월만큼이나 우리의 주름살과 흰머리도 함께 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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