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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우 May 07. 2023

시골 학교의 책축제, 기적을 만나다

한 달 동안 롤러코스터에 올라탔다 내린 듯하다. 멍하고 졸리고 피곤하고 여기저기가 쑤신다. 그 와중에 마음만은 온기로 가득차 있다. 그 시간 동안 길어올린 생각들을 휘발되기 전에 적어본다.



시골 작은 학교의 책축제


아이 학교는 제주형 혁신학교인 다혼디 배움학교다.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혁신학교이고, 보호자가 주도하는 책축제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올해가 일곱 번째였다. 보호자 동아리와 자발적으로 참여를 희망한 사람들이 TF팀을 구성해, 축제 주제와 활동 내용을 정하고 실행에 옮긴다.


내 경우 제대로 축제를 본 것도 참여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선배 보호자들은 이전 축제의 경험담을 나눠주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제시한 뒤 그 중에서 괜찮은 것들을 묶어, 유인 부스와 무인 부스로 나누었다. 각 부스별 담당자를 정한 뒤에는 개별 활동이 이어졌다. 생각을 발전해 구체화하고, 필요한 물품을 신청했다. 활동할 자료나 도구 등을 직접 만들고 동선과 순서를 짰다. 이런 개별 활동은 한달 내내 이어졌다.


행사 주최는 보호자지만, 예산을 따오고 각종 물품을 구입하고 준비하는 데는 모든 선생님과 행정실 직원분들이 함께 했다. 야근도 마다하지 않고, 어떤 요청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내 경우 상담소를 진행했는데, 나를 포함한 두 명의 보호자가 함께 계획을 세우고 세부적인 일들을 진행했다. 유치원부터 6학년까지 모든 아이들에게 고민과 소원을 적게 하고, 이를 전부 엑셀파일로 정리했다. 고민 해결에 도움이 될만한 책을 도서관과 서점을 이용해 몇 날 며칠 동안 찾고, 고민에 대한 답장도 일일이 적었다. 책을 구입한 뒤에는 개별 포장을 했고, 답장도 모두 출력해 편지지에 붙여 봉투에 넣는 작업을 했다.


상담 부스를 직접 꾸미고, 함께 진행할 활동도 계획해 관련 자료를 만들고 쓰고 그렸다. 이 모든 일들을 함께 하는 보호자와 역할을 분담해 진행했다. 서로 잘 하는 게 달라 어렵지 않게 일을 나눌 수 있었다. 행사를 앞두고는 필요한 물건들을 다시 챙기고 검토하고, 아이들을 어떻게 이끌어갈지 생각하고 시뮬레이션을 돌려보았다. 생각이 많아 잠 못드는 밤이 이어졌다.


내가 맡은 부스는 그래도 상담이라는 큰 틀이 정해져 있어 아이디어를 더할 게 많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부스들은 주제와 연관된 활동을 하나부터 열까지 완전히 새롭게 생각해내고 창조해야 했다. 세상에 없던 책과 연계된 활동들이 하나씩 만들어지는 걸 보면서, 내 아이뿐만 아니라 모든 아이들을 향한 보호자들의 애정을 크게 느낄 수 있었다. 경력단절된 엄마들도 많았는데, 이들에게 숨겨진 재능과 잠재력이 얼마나  큰지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비바람 속에서 열린 책축제


행사는 어린이날 바로 전날이었는데, 비가 예보돼 있었다. 늘 초록 잔디가 펼쳐진 운동장 위에서 행사를 치러왔는데 비 소식은 날벼락 같았다. 행사날을 옮기는 것도 간단치 않아, 결국 막 공사를 마친 강당 안에서 진행하기로 했다. 장소 변경으로 달라지는 물품을 다시 체크하고, 비가 쏟아지기 전에 물건들을 모두 강당으로 옮겼다.


그렇게 정신 없는 날들을 보내고 나니 어느덧 책축제 당일이었다. 비바람이 종일 몰아치는 스산한 날이었지만, 강당 안은 잔뜩 긴장한 보호자들과 기대에 부푼 아이들의 열기로 뜨겁기만 했다. 아이들은 조별로 부스 방문 순서가 정해져 있었다. 보호자들은 아이들이 시간 안에 모든 부스 체험을 마칠 수 있도록 타임 테이블에 맡게 착착 일을 진행시켰다.


상담이 담당인 나는 축제 시간 내내 한 명 한 명 아이들을 불러, 고민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답장과 책을 건넸다. 아이들은 짧은 시간 동안의 대화였음에도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 보인 게 만족스러웠는지, 미소를 띠며 좋아했다. 선물한 책도 받자마자 꺼내어 읽기도 하고 너무 재밌겠다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그동안 정신 없이 달려온 시간들이 무척 보람되게 여겨졌다.  



아이들을 위한 마음 하나로 함께 달렸던 한 달. 작은 기적을 만난 것 같다. ©️pixabay



전체 책축제 진행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아이들은 저마다 책축제가 정말 재밌었다고 입을 모았다. 모든 부스가 너무 지연되거나 문제되는 일 없이, 시간 안에 아이들 모두가 정해진 활동을 빠짐없이 할 수 있도록 진행했다. 경험이 있는 보호자들은 이번 책축제가 역대급이었다며 입을 모았다. 모든 부스의 퀄리티가 좋았고, 각 부스가 알아서 책임 있게 이끌어가면서 걱정도 전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믿고 함께 한다는 건 무척 대단한 시너지를 냈다.


평가회 자리에서 교장선생님은 TF팀 보호자들에게 정말 존경하고 감사하다는 말을 여러 번 거듭해 하셨다. 학교 밖에서 우리 학교 책축제가 얼마나 대외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지도 알려주셨다. 보호자들은 저마다 좋았던 점과 개선돼야 할 점들을 언급하며, 아쉬움과 기쁨이 교차하는 시간을 보냈다. 나는 평가회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글로 정리해 공유함으로써, 나의 마지막 임무를 모두 마쳤다.



아이들만 바라보며 달리는 사람들


한 달 동안 매달렸던 일에서 놓여난 뒤 후유증을 앓고 있다. 내가 만난 건 단순히 작은 학교에서 치러지는 축제 하나가 아니었다. 한마음으로 각자 맡은 바에 최선을 다하며, 날짜와 시간에 맞춰 부산하게 움직이는 한 명 한 명의 얼굴들은 무척 빛이 났다. 대가가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보호자들에게 우리의 노력을 알아달라고 생색 내지도 않는다. 그야말로 아이들만 바라보고 달리는 축제였다. 그런 보호자들의 활동을 뒤에서 묵묵히 지원하는 선생님들의 노력도 남달랐다.


이번 일을 치르며 나는 개인적으로 학교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다. 아이 학교 교무실에는 상징적인 커다란 원탁이 놓여져 있다. 혁신학교로 지정된 뒤 처음으로 부임한 교장선생님이 특별히 마련하신 거라고 한다. 그 원탁에 앉으면 교장, 교감, 부장 등의 명패는 사라진다. 모든 선생님들은 거침없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며 회의를 한다.


그런 선생님들을 옆에서 보호자들이 지켜봐도 아무도 말리지 않고 눈치를 보지도 않는다. 보호자들은 갑질을 하지도 않고 내 자식만 봐달라는 부탁을 하지도 않는다. 그저 아이들을 위해 자신이 맡은 일을 묵묵히 할 뿐이다. 선생님들의 박봉도, 보호자들의 대가 없는 봉사도, 여기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원탁은 단순한 상징이 아니었다. 교육 주체들이 민주적인 관계와 과정 속에 함께함을 뜻했다. ©️pixabay



행사를 모두 마치고 한 보호자가 TF팀 단톡방에 글을 올렸다. 학생 수 일흔 명이 조금 안 되는 이 작은 학교에서, 이렇게 열정적으로 책임을 지고 행사를 이끌어가는 선생님들과 보호자들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준비를 하면서 이렇게까지 열심히 할 일인가 싶어 순간순간 피식 웃음이 나기도 했다고 한다. 진심으로 모두에게 존경한다는 말도 더했다.



시골 작은 학교는 교육의 미래


나 역시 그 글을 보며 눈물이 핑 돌았다. 교육의 미래는 시골의 작은 학교에 있다던 이전 교육감의 말이 떠오르기도 했다. 다른 학교를 경험한 많은 보호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나가보면 안다고. 이 학교가 얼마나 따뜻하고 열정적인 곳인지. 종종 전학을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아이들이 있다. 잠시라도 우리 학교에서의 경험을 쌓으려 아이를 전학시키는 사람들도 제법 있다.


누구라도 어떤 의견이라도 서슴없이 말할 수 있는 분위기, 책임감을 갖고 끝까지 노력하는 사람들, 단 한 명의 아이도 소외되지 않도록 애쓰는 손길들, 서로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존중하는 마음들, 그걸 두 눈으로 보고 자라며 자신을 표현하는데 주저하지 않는 아이들까지. 아이가 이런 학교에 다니고 있음이, 이렇게 좋은 분들이 주변에 많다는 사실이 참 감사하다. 힘이 닿는 한 하나라도 더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나는 한때 학교 일에 관여하는 보호자를 모두 치맛바람으로 여기던 사람이었다. 공교육을 너무나 불신하던 사람이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보니 세상은 이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이 하나하나를 소중히 여기며, 묵묵히 최선을 다 하는 선생님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작은 시도지만 누구보다 멀리 내다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기적은 내가 선 자리에서부터,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하는지도 모른다. 내가 한 달 동안 마주한 건 그 기적이었다. 차마 기적인지도 모르고,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최선을 다 하는 한 명 한 명의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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