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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우 Apr 29. 2023

생각을 키워가는 시간

책은 많이 읽기만 하면 좋을까


  올해 아이 학교 '책 읽어주는 선생님'에서 내가 맡은 학년은 4학년. 시골 작은 학교라 반 아이들은 여덟 명에 그친다. 전 학년 중에서 가장 책을 많이 읽기로 소문난 아이들. 긴장을 했다. 내가 선정한 책이 아이들이 너무 많이 읽은 책이면 어쩌지? 아이들이 내가 선정한 책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면 어쩌지? 어떤 특별한 책을 골라, 어떻게 하면 집중해서 함께 읽을 수 있을까?


  고민이 깊어지면서, 책을 이용해 아이들과 놀이나 수업을 하는 사람들의 글이나 인터뷰 자료들을 찾아보았다. 그림책을 읽고 내용에 대해 토론을 하거나, 이어지는 자신의 생각을 글로 옮기는 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거다! 아이들이 책을 많이 읽는다고는 하나, 그 책을 바탕으로 자신의 생각을 키워본 경험은 적을 수 있다. 그렇다면 생각을 키우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아이들이 독서량이 많다 해서 내가 긴장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들 중에도 책은 많이 읽지만, 자신의 사유는 부족한 이들이 많다. 읽는 데에만 치중했기 때문이다. 수용만 하고 비판하거나 생각을 더 발전시키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책을 읽는다 해도 남는 게 없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책을 많이 읽으라고 권유는 하지만, 그 책을 통해 자신의 느낌이나 생각을 펼쳐 나가라는 코치는 많이 하지 않는 것 같다. 진짜 중요한 건 열 권의 책을 읽는 것보다, 한 권을 읽더라도 그 안에서 자신만의 의미를 찾아내는 게 아닐까.



너의 생각을 펼쳐봐


  '생각'을 키우기 위해 처음 선정한 책은, 코비 야마다의 <'생각'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이다.


<'생각'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코비 야마다 글, 매 베솜 그림, 주니어 예벗 출판



  어느 날 내게 '생각'이 다가온다. 생각으로 무얼 하면 좋을지 모르는 나는 생각을 모른 척 한다. 하지만 함께 할수록 점점 행복을 느껴 친구가 된다. 타인에게 내 생각을 보여줄까 말까 고민하는 나. 용기를 내어 보여주지만 타인은 비웃기만 한다. 의기소침해진 나는 생각을 버리려고 한다. 하지만 문득 깨닫는다. 내 생각에 대해 나만큼 잘 아는 사람은 없다는 것. 나는 내 생각을 보호하고 보살피기 시작한다. 생각은 점점 자라 날개를 달고 하늘로 날아오른다. 이제 내 생각은 내 것만이 아니다. 그리고 나는 생각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책을 읽고 아이들과 이해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 먼저 이야기를 나누었다. 생각이 내 것만이 아니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발표나 글, 동영상 등으로 자신의 생각을 공유할 수 있다는 예를 아이들이 직접 찾아내기도 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부분에서는 빛의 속도에 대해 십 년 간 생각한 아인슈타인의 예를 소개했다. 다음은 아이들의 차례였다. 미리 준비해간 프린트물을 나눠주었다. 그곳에는 빈칸이 있다. 빈칸에는 '생각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적어보기로 했다.


  아이들은 눈을 반짝이며 한참 골똘히 생각하다 자신의 생각을 하나둘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생각이 뭐라고 생각했을까. 가장 많은 의견은 상자였다. 생각은 마법상자 같다, 랜덤상자 같다. 보물 같다, 바다 같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것 같다, 생각은 생각이다, 등의 의견이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몇 개의 의견만 함께 읽어보려고 했는데, 왜 자신의 것은 읽지 않느냐는 이야기가 나오는 걸 보고 놀랐다. 아이들은 누구보다 자신의 생각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결국 나는 여덟 명 모두가 적어낸 것을 차례대로 읽어주었다. 자신의 글이 나오면 킥킥 대며 옆자리 친구에게 자신이 쓴 거라고 말하는 아이들. 그 모습이 무척 귀여웠다.



너가 가장 궁금한 건 뭐야

 

  '생각' 다음에는 어떤 이야기를 함께 해보면 좋을까. 고민 끝에 선정한 책은 호기심이 엄청 많은 아이가 등장하는 <과학자 에이다의 대단한 말썽>이다.


<과학자 에이다의 대단한 말썽> 안드레아 비티 글, 데이비드 로버츠 그림, 천개의 바람 출판


  에이다는 호기심이 무척 많은 아이다. 왜? 어떻게? 언제? 끊이지 않는 질문을 던지는 에이다. 어느 날 이상한 냄새를 맡고 출처를 밝히려 갖가지 실험을 벌인다. 그러다 급기야 고양이를 세탁기에 넣으려 하고, 이를 본 부모는 너무 놀라 소리를 지르고 만다. 결국 에이다는 생각의 의자에 앉는 벌을 받는다. 에이다는 벌을 받는 중에도 온 벽에 빈틈 없이 자신의 생각을 그림으로 그려넣고, 이를 본 부모는 결국 에이다와 함께 질문의 답을 찾아간다.


  책을 읽고 생각을 키워주는 건 다름 아닌 '질문'이란 이야기를 함께 나누었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찬 아이들. 하지만 바쁘고 지친 어른들에 둘러싸여 제대로 자신의 호기심을 분출하지 못하는 아이들. 책 읽어주는 시간을 할애해, 자신이 가장 궁금한 것들을 한 번 적어보기로 했다. 어떤 질문이라도 좋다. 엉뚱해도 괜찮다. 여러 개도 상관 없다. 아이들이 참 반짝이는 건 매순간 진심이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열심히 고민하고 적어내려 가는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지난 시간의 경험이 있으니, 이번에는 빠짐없이 모두의 글을 읽어내려 갔다. 재미난 질문들이 한가득이었다. 지구가 어떻게 멸망하는지 궁금하다는 의견부터, 어떻게 지구에 생명체가 생겨났는지, 사람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나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지, 외계인이 있을지,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천국은 어떻게 생겼는지, 하늘은 왜 맑고 흐린지, 우주 밖에는 무엇이 있는지, 자고 일어날 때는 왜 일어나기가 싫은 건지, 플라스틱이 없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이들의 질문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아직도 과학자들이 열심히 연구 중인 분야에서부터, 학년이 올라가면 배우게 될 부분, 자신에게 집중한 질문, 사소한 궁금증, 나아가 환경에 대한 질문까지. 놀라운 질문, 쏟아지는 호기심들을 보며, 내가 마주한 건 다름 아닌 '희망'이었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은 살아 움직이는, 무궁무진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지닌, 소중한 미래의 사람이다. 그 아이들을 내 손으로 직접 키우고, 매주 만날 수도 있다는 건 얼마나 축복 같은 일인가.


 

아이들은 존재만으로도 '희망'


  집에 돌아와 내 아이들에게도 같은 책을 읽어주었다. 그리고 4학년 형아 누나들에게 이런 걸 써보라고 했다고 말해주니, 눈이 똘망똘망해진다. 엄마 그 종이 남았어? 응 남았지. 나도 써볼래. 첫째가 먼저 나서서 연필을 들고 종이에 자신의 질문들을 적어내려 간다. 그 모습을 멀뚱히 바라보던 둘째도 연필을 가져와 자신도 적어보겠다고 나섰다.


  다 적은 종이를 들고 쪼르르 내게 달려오는 아이들. 첫째는 우주 끝은 어떻게 생겼을까, 빅뱅의 충격은 우주복 몇 개를 입어야 이겨낼 수 있을까, 왜 똥을 먹을 수 없을까, 숫자의 끝은 몇일까 등의 질문을 적어냈다. 둘째는 맞춤법이 다 틀린 채로 냈는데, 그 글자와 생각이 너무나 귀엽기만 했다.


"우리는 만화책가튼 데는 왜 못 들어 가는 거야?" "내가 구굼한 건 만아!"


  맞춤법은 고쳐주지 않는다. 지적하지 않는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빛나는 너희들의 생각이니까.


  세상이 궁금한 사람은 절대 삶을 놓지 않는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찬 사람에게는 공부가 즐겁기만 하다. 공부는 '잘' 하는 게 아니라, 그저 '하는 것'. 아이들이 세상을 더 즐겁게 알아갔으면 좋겠다. 그 길에 아주 작은 도움이라도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 다음에는 또 어떤 책을 함께 읽고, 어떤 생각들을 키워볼까. 마음이 동동 하늘로 떠오른다. 너희 덕분에 나도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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