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찾아온 생명들
어제는 일요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이들과 신나게 여기저기 쏘다니다 귀가했다. 아이들을 집안으로 들여보내고 나도 들어가려는데, 반대쪽 마당에 서있던 남편이 조용히 와보라며 손짓을 한다. 무슨 일인가 싶어 살금살금 다가가니 마당 한쪽 구석에 고양이 새끼 두 마리가 뒤엉켜 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자세히 살펴보니 탯줄과 태반이 그대로 붙어있다. 게다가 두 녀석이 서로 엉겨서 쉽게 떨어지지도 않을 것 같다. 바닥에 있던 풀과 나무줄기도 온몸에 들러붙거나 감겨 있다. 해질 무렵이어서 모기도 많은데다 태반 냄새를 맡은 파리도 잔뜩이다.
혹시나 싶어 이리저리 주위를 둘러보니 얼마 떨어지지 않은 지점에 움직임이 없는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더 눈에 띈다. 큰일이다. 이를 어쩌나. 죽은 건가,하고 있는데 근처에서 또 찡찡 대는 소리가 들린다. 소리가 나는곳을 보니 로즈마리 나무 아래에 갇힌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보인다. 살려달라고 아우성 치듯 콩알만한 녀석이 엄청 시끄럽게 울부짖는다. 얘는 너무 살아있는데 어떻게 구하지, 하고 있는데 죽은 줄 알았던 새끼도 조금씩 움직임을 보인다. 살아 있었구나.
자세히 보니 네 마리 모두 탯줄이 아직 끊어지지 않아 태반에 몸이 묶여있고, 축축한 몸과 태반 탯줄에 온갖 이물질이 엉겨붙어 있다. 영양분이 한가득일 태반을 따라 파리떼가 기승이다. 급하게 집으로 달려가 정원용 가위와 깨끗한 가위 하나를 꺼내왔다. 포트에는 물을 팔팔 끓였다. 남편은 작고 깨끗한 박스 하나를 구해왔다.
정원용 가위로 로즈마리 나무 아래에 갇힌 새끼의 몸을 감싼 줄기들을 다 잘라내 간신히 구출하고, 나머지 아이들의 몸을 감고 있는 풀들도 잘라냈다. 깨끗한 가위는 뜨거운 물에 담갔다 뺀 뒤 한 마리씩 탯줄을 끊어냈다. 새끼 고양이들은 계속 낑낑 대며 발버둥을 치고, 남편은 그런 아이들의 몸을 감싸는 줄기들을 추려내고, 나는 행여나 다칠세라 조심조심하며 가위질을 했다.
세 마리의 탯줄을 모두 자르고 마지막 한 마리의 탯줄을 자르려는 순간, 앞발가락 하나에 가위가 스치면서 피가 났다. 나는 너무 미안한 마음에 어쩔 줄을 몰라 하다가, 일단은 상처보다 목숨을 살리는 게 먼저인 것 같아 과감히 탯줄부터 끊어냈다. 태반과 온갖 이물질로부터 놓여난 새끼들은 깨끗한 박스 안에서 잠시 숨을 고르는 듯했다. 그렇게 했는데도 새끼들 몸에는 잘 떼지지 않는 누런 이물질이 잔뜩이었다.
새끼 고양이를 더는 들이지 않으려 했건만,
한시름 놓은 것도 잠시, 새끼 고양이를 먹여야 하는 일이 남았다. 탯줄도 안 끊고 도망간 걸 보면 어미는 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사실 작년에 길 잃은 아기 고양이가 마당에서 발견돼, 우유를 먹여가며 며칠 돌본 적이 있다. 태어난 지 2, 3주쯤 돼보이는 아기 고양이는 형제들에게 밀려 잘 먹지 못했는지 앙상했고, 젖병도 잘 물지 못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 먹였건만 결국 며칠 못 가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굳어버린 새끼를 내 손으로 거뒀던 그때 그 차가운 감각을 나는 아직 잊지 못했다.
그런 일을 겪고 나니 다시는 새끼 고양이를 들이고 싶지 않았다. 우리 동네에는 길고양이가 정말 많은데, 그만큼 어디선가 죽는 새끼 고양이도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마당에 한참 살던 반반이의 경우도 출산만 여덟 번쯤 했지만 제대로 새끼를 데리고 나타난 건 단 한 번이었다. 첫 번째 출산 뒤에는 새끼들이 있는 곳으로 가지 않고 종일 마당에서 쿨쿨 자는 모습만 보여, 아무래도 새끼가 죽은 모양이라고 짐작한 터였다. 얼마나 많은 고양이들이 태어나자마자 죽음의 길로 들어갈까. 안쓰럽지만 스러져가는 모든 고양이를 내가 다 거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나는 집사이기도 하다. 집에는 열 살 먹은 두 마리의 고양이가 있다. 문제는 출산을 하면서 내 체질이 바껴 고양이 알레르기가 생겼다는 것. 때문에 우리집 고양이들은 나와 한 공간에서 지내지 못하고 다락방에서 기거한다. 고양이들을 만나려면 마스크를 써야 한다. 마스크를 써도 만난 뒤에는 한참 콧물이 흐르고 기침이 심해 한동안 불편을 겪어야 한다.
데리고 있는 고양이도 함께 지내지 못해 늘 미안하고 속상한데, 길고양이까지 모두 거둘 수는 없다고 생각해왔다. 그저 마당이나 집 근처를 오가는 고양이들에게 밥이나 좀 주면 된다고. 그런데 갓 낳은 새끼 고양이를 졸지에 네 마리나 거두게 된 것이다. 앞이 캄캄했다. 이를 어쩌면 좋을까.
그래도 산 목숨은 살아야지
우선 이대로 놔두면 죽을 게 뻔하니 우유라도 먹여야겠다 싶었다. 일요일 저녁인데다 시골이라 당장 고양이 분유를 살 수 있는 곳이 없다. 급한 대로 남편이 마트로 달려가 신생아용 분유를 사왔다. 나는 물을 끓여 식히고, 아이들 약을 먹일 때 사용하는 작은 병을 꺼내 깨끗이 씻어 식힌 물에 분유를 탔다.
제일 작은, 앞발을 다친 녀석부터 우유를 먹이기 시작했다. 다행이 상처는 크지 않고 얼마 안 가 지혈도 됐다. 남편도 새끼 한 마리를 손에 올리고 수유를 했다. 태어나 처음 먹는 우유일 텐데, 젖병이 준비되지 않아 딱딱한 약병으로 먹이자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네 마리 모두 제법 잘 먹는 모습을 보니 마음을 한시름 놓았다. 생명이라는 게 쉽게 꺼져버리기도 하지만, 쇠심줄보다 질기게 이어질 때도 참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수유를 한 차례 하고 나니 한 마리가 검은 태변을 본다. 아 변을 받아야 하는 구나. 사실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들은 암수 한 쌍인데, 두 번 임신과 출산을 하는 걸 곁에서 지켜본 일이 있다. 어미는 배운 적도 없는데 밤새 앓아 새끼를 낳고 일일이 이빨로 탯줄을 끊었다. 그런 다음 새끼들의 온 몸을 핥아주고 젖을 먹였다. 새끼들이 홀로 배변활동을 할 때까지 항문을 핥아 배변을 유도하고 변을 깨끗하게 먹어치웠다. 처음에는 어미만 하더니 그걸 며칠 지켜보던 수컷도 따라서 새끼들을 같은 방법으로 돌보았다.
그때는 그저 지켜보기만 하면 됐는데 이제는 내가 해야하는구나. 부랴부랴 깨끗한 수건에 따뜻한 물을 적셔 꼭 짜고, 한 마리씩 손에 얹어 항문을 마사지 해주었다. 그러니 슬슬 검은 태변을 보고 노란 방울방울의 쉬를 하는 새끼들. 그렇게 네 마리의 변까지 모두 받아냈다.
이제는 체온 유지가 관건이다. 어미가 있다면 어미에게 붙어 체온을 유지하겠지만, 그럴 수가 없으니. 작은 전기방석을 꺼내 온도를 높이고, 양수와 태변으로 더러워진 박스도 좀 더 넓은 박스로 바꿔준 뒤 깨끗한 새 패드를 깔아주었다. 그리고 박스를 전기방석 위에 올려두었다. 아이들의 젖은 몸도 구석구석 보송하게 닦아냈다. 온몸에 누렇게 덕지덕지 붙은 이물질은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떼지지 않았다. 좀 크면 물로 씻겨야겠다 생각한 뒤 자도록 두었다.
점점 박스 안에 온기가 차는 듯하다. 그런데도 걱정이 되어 자꾸만 들여다보게 된다. 살 수 있을까. 급하게 인터넷으로 고양이 분유와 젖병을 주문하고, 그제야 내 아이들을 재웠다. 재우고 나니 둘째 감기약도 못 챙겨주고, 첫째 알레르기 약도 뿌려주지 못했다. 미안한 마음이 스쳐갔다. 아이들은 잠들었지만, 나는 잠들 수가 없다. 갓 태어난 새끼 고양이의 수유 간격은 사람과 비슷한 2, 3시간. 수유 시간은 너무 빨리 돌아오고 그때마다 네 마리 배변을 받아내고 우유를 먹였다.
수유를 마치고 잠시 쉬고 있는데 마당에 잠시 다녀온 남편이 낯선 고양이 한 마리가 자꾸 집 근처를 배회한다고 한다. 생김새도 네 마리 아기 고양이와 비슷하다. 어미인가보다.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다 박스째로 아기 고양이들을 마당에 내놓았다. 불을 다 끄고 창문도 다 닫고 조용히 어미가 오기를 기다렸다. 새끼들 중 한 마리가 빽빽 울며 소리를 낸다. 잠시 뒤 고양이가 마당으로 들어와 새끼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한참 킁킁 대며 새끼들의 동태를 파악하더니 박스와 주변 물건들에 자신의 체취를 묻힌다. 어미가 확실한 것 같다.
한참 체취를 묻히던 어미는 새끼들 근처에는 가지도 않고 다시 마당 밖으로 나가버렸다. 혹시나 싶어 남편이 다시 나가 고양이 사료와 물을 잔뜩 부어놓았다. 새끼 고양이에게 적절한 온도는 25-30도쯤인데, 한밤 중의 온도는 겨우 19-20도쯤. 추울텐데. 빨리 어미가 새끼들 곁으로 와서 젖을 먹이고 따뜻하게 지켜주면 좋을 텐데. 기다리고 또 기다려도 어미는 오지 않았다. 새끼들의 울부짖는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어느덧 다음 수유를 할 시간이었다.
씻고 또 씻어내고
추위와 배고픔에 떨고있는 새끼 고양이를 다시 집안으로 들였다. 아까와 달리 몸이 그새 제법 식어 있었다. 전기방석 위에 박스를 다시 올려두고 수유를 하려는데 좀 이상하다. 박스 안에 깔아둔 패드 위에 새끼들 몸에 덕지덕지 붙어있던 노란 이물질이 군데군데 떨어져 있었는데, 그 이물질이 꼬물거린다. 남편과 나는 너무 놀라 쳐다보다가 깨달았다. 이물질은 파리의 알이었구나. 꼬물거리는 건 구더기다. 살펴보니 새끼들 몸에도 2mm도 안 되는 작은 구더기들이 꾸물거리고 있다. 양수에 젖은 채 태반과 뒹구는 사이 꼬인 파리떼들이 그새 이렇게 많은 알을 낳고 간 것이다.
새끼들을 안고 재빨리 욕실로 갔다. 세면대에 따뜻한 물을 살짝 받고 새끼들을 넣어두었다. 질식하지 않도록 계속 살피며 한 마리 한 마리 물로 씻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잔뜩 굳어있어 잘 떼지지 않던 알들이 물에 불면서 조금씩 떼졌다. 호텔에서 받아온 일회용 빗을 하나 꺼내 털을 이리저리 빗어내니 털 안에 박혀 있던 숨은 알들이 튀어나온다. 씻어도 씻어도 또 나오는 알들. 완전히 깨끗하게 씻겨내는 게 가능한 일일까.
한 마리씩 절반쯤 씻어내고, 또 다른 녀석을 들어올려 씻어내고,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남편은 물에 코를 박는 녀석들을 구하고, 나는 계속 빗질을 하며 알과 구더기를 하수구로 흘려보냈다. 머릿 속이 어지럽다.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갔다. 이 녀석들은 왜 하필 우리 마당에 있었을까. 어미는 왜 돌보지 않는 걸까. 다시 밖으로 내놓는다 해도 어미가 오지 않을 수 있다. 그러면 밤새 추위에 떨다 새끼들은 죽을지도 모른다. 남편 말로는 어미도 어려보였다는데, 초산이라 당황한 걸까. 알과 구더기가 들끓는 몸이니 어미가 왔다 해도 살았을지 모를 일이다.
한 줌도 안 돼보이는 이 녀석들을 살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집 밖으로 한 발자국만 나가도 어렵지 않게 길고양이들을 마주치는데, 이 녀석들도 살려야 하는 걸까. 나쁜 생각들이 파도처럼 끊임없이 몰려왔다. 새끼들은 여전히 내 손안에서 숨을 쉬고 소리를 내고 어떻게든 살아보려 꼬물거린다. 죽을 때 죽더라도, 내 집으로 온 이상 살리는 데까지는 살리는 게 맞다. 산 목숨은 살아야 한다. 파리 알과 구더기를 한참동안 씻어내며 나는 내 머릿속의 상념들도 하나씩 하나씩 씻어냈다.
완전히 제거하는 건 불가능할 것만 같았는데, 씻기고 또 씻기다 보니 수천, 수만 마리는 족히 돼보였던 구더기와 알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한 마리씩 마무리 샤워를 시키고 깨끗한 타월을 꺼내든 남편 손에 들려보냈다. 남편은 새끼들 몸 구석구석을 닦고 드라이어를 꺼내 따뜻한 바람으로 털을 말려주었다. 내가 새끼들을 홀로 씻는 동안 남편은 박스 안에 구더기들이 들끓는 패드를 뭉쳐 버리고, 박스도 깨끗하게 소독티슈로 닦아냈다.
이름을 지어주었다
보송하게 마른 아이들을 새 패드 위로 하나씩 올려주었다. 배고프다고 징징 거리는 녀석들. 급히 우유를 타서 한 마리씩 수유를 했다. 일을 마치고 시계를 올려다 보니 어느덧 시간은 새벽 두시. 둘째가 자다가 깨서 징징거린다. 불을 끄고 마당을 내다본다. 어디에도 어미는 보이지 않는다. 곤히 잠든 새끼들을 두고 나는 내 아이들 곁으로 돌아갔다. 까무룩 잠이 든 뒤 눈을 떠보니 어느덧 날은 밝았고 시간은 고작 다섯시 삼십분. 새끼 고양이들의 합창 소리가 들려온다. 잠시 뒤척이다 몸을 일으켜 보온병에 넣어둔 따뜻한 물에 분유를 탔다.
가장 덩치가 작은 녀석부터 들어올려 항문을 자극해 배변을 유도한 뒤 우유를 먹였다. 나도 그새 제법 능숙해졌다.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조금씩 다른 특징을 지닌 녀석들. 제일 작은 녀석의 이름은 쪼꼬미, 내가 든 가위에 앞발을 다친 아이다. 다행이 상처는 잘 아물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우유를 너무 조금만 먹고 고개를 돌린다. 잘 먹어야 하는데. 가장 큰 녀석의 이름은 둘째가 지어줬다. 통통이. 우유도 안정적으로 제일 오랫동안 먹는다. 그래서인지 잠도 제일 잘 자는 듯하다.
몸부림이 많은 녀석은 꼬물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리저리 꼬물거리고 발버둥이 심한 녀석. 몸집은 중간이고, 먹는 것도 적당히 잘 먹는다. 마지막 한 마리는 코점이. 코 옆에 검은 점이 있어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다. 이름을 짓는 건 마음을 주는 일이라 두렵기도 했지만, 녀석들을 구분하며 수유를 해야 하기에 어쩔 수 없이 이름부터 아이들과 함께 지어주었다. 코점이는 나무줄기에 뒷다리 하나가 칭칭 감겨 있던 녀석이다. 다리 하나가 불편해 보인다. 아예 못 쓰는 건 아닌 듯하나, 다리가 많이 부어있고 움직임이 부자연스럽다.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이른 아침 벌써 세 번째 수유를 마치고, 나는 카페로 나왔다. 녀석들은 하루 사이 힘이 제법 세졌다. 이리저리 밀치는 힘이 대단하다. 살겠구나. 목청 높여 우유를 달라 소리를 치고, 힘껏 발버둥을 칠수록 희망은 짙어진다. 아직은 새끼들이 너무 작아서 그런지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내 알레르기 증상이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새끼들이 커갈수록, 행동이 활발해질수록, 알레르기 증상이 심해지면 어쩌지. 독립을 시킬 때까지 적어도 한달 반에서 두달은 데리고 있어야 할텐데. 어미는 보이지도 않고, 온다해도 돌볼 지 알 수가 없다.
카페에는 에어컨을 켜두어야 해서 새끼들을 들일 수가 없다. 손님이 있는 틈틈이 새끼들이 있는 집으로 달려가 수유를 하고 배변을 받아내야 한다. 할 일이 태산인데, 갑자기 셋째를 낳은 엄마가 된 기분이다. 수많은 생각들을 애써 밀어낸다. 우선은 저 녀석들을 살리자. 다가오지 않은 문제로 지금을 망치지 말자. 곧 다음 수유 시간이다.
덧. 6931자나 쓰다니... 구더기 안 무서워하는 사람을 만난 건 너희들에게 행운이야.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