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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우 Jun 14. 2023

10이 뭐라고

며칠 마음이 영 불편했다.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입맛도 없고, 소화도 안 되고, 어느 것에도 마음을 붙이지 못하는 상태랄까. 원인은 잘 알고 있었다. 카페를 그만 두고 글로 어떻게든 먹고살아 보겠다 마음을 먹었으니 불편한 게 당연하지.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까지 불편할 일인가, 싶을 만큼 온종일 롤러코스터에 앉아있는 것처럼 안절부절이었다.


단지 그것 때문일까. 내 마음은 왜이렇게 괴로운 걸까. 아이들과 잠자리에 누워 곰곰 생각해보다 갑자기 10이라는 숫자가 떠올랐다. 10, 10때문이었구나! 유레카를 외치듯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내년 1월이면 카페 문을 연 지 정확히 10년이다. 올해 초 9주년을 넘기면서 나는 내내 10이라는 숫자를 떠올렸다. 드디어 내년이 10년이구나. 숫자에는 사실 의미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해왔으면서도, 정작 나는 10주년을 앞두고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오래 전 보았던 한 예능 프로그램 때문이었다.


너무 오래 전이라 누군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프로그램에 나온 한 연예인은 자신의 부모님이 십 년째 같은 곳에서 중국집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한 패널이 이렇게 답했다. 어떤 일이든, 돈을 모았든 모으지 않았든, 한 자리에서 10년을 버텼다는 것만으로도 성공이라고. 나는 그 말에 구구절절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평생 장사를 하신 부모님 밑에서 자라 누구보다 그 말의 의미를 잘 알고 있던 터였다.


낯선 섬에 내려와 카페 문을 열면서 내 마음 속에 10이라는 숫자가 자리를 잡은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카페를 시작하기 전까지 육지에서 내가 해온 일 중 가장 오래 버틴 게 고작 3년이었다. 남들은 5년, 10년 경력을 쭉쭉 쌓아가는데, 나한테는 그게 세계여행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다. 마음에서 진심이 우러나지 않으면 일을 잘 하지 못하는 천성은 어딜 가나 골치였다. 마음이 떠나면 곧 몸도 떠나고 말았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내 의지로 굴러가는 카페는 좀 다르겠지. 이번 일은 오래 할 수 있지 않을까. 막연한 기대감을 갖고 장사를 시작했다. 시작은 호방했지만,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이주민이 밀려오면서 인근에 우후죽순 카페가 들어섰고, 섬을 드나드는 관광객수는 들쭉날쭉이었다. 10년은커녕 3년도 버티지 못하고 문 닫는 카페가 허다했다. 그럴수록 내 마음 속의 10이란 숫자는 커져만 갔다. 어떻게든 버텨보리라. 그나저나 버틸 수 있을까.


그렇게 고대해왔던 10주년인데, 이제 몇 달만 지나면 목표했던 시점에 다다르는데, 기대와 달리 생각을 하면 할수록 온몸에 피가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축하는 둘째치고 당장 아무도 없는 곳으로 도망가 버리고만 싶었다. 10이란 그런 숫자였다. 버틴 것만으로도 대단하지만, 버티기만 한 것으로는 좀 부족해 보이는 숫자.


대단한 무엇을 이루지 않아도 괜찮다고, 어디에 손 벌리지 않고 네 식구 그래도 먹고살았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스스로를 자위했다. 하지만 10이라는 숫자 앞에 순간순간 움츠러드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그럴수록 나는 자꾸 머릿속으로 10주년 기념일에 SNS에 남길 글을 적고 있었다. 온갖 변명과 10년이라는 세월에 담을 이야기와 지금의 나와 앞으로의 나까지. 어떤 문장과 어떤 표현을 써야 지난 10년이 좀 그럴싸해 보일까.


유레카를 외치듯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건 바로 이 때문이었다. 10이 나를 붙잡고 있었구나. 시그니처 메뉴가 여름에 많이 찾는 메뉴이니 어떻게든 올 여름을 넘겨야 하고, 나아가 10주년이 되는 내년 초반까지는 무조건 카페를 지켜야 한다는 마음. 어떻게든 10년을 채운 뒤에 카페를 벗어나 다른 일을 도모해야 한다는 생각. 나는 스스로를 10이라는 숫자에 옭아매고 있었다. 10이 뭐라고. 그깟 숫자가 뭐라고.


하고 싶은 일이 많다. 당장 오마이뉴스에서 시작한 연재도 잘 마무리하고 싶고, 글쓰기 모임도 더 늘려보고 싶다. 기획하고 있는 시리즈도 하루빨리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활자화하고 싶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은 늘어나고 있는데, 카페에 몸이 묶인 나는 어느 하나 집중하지 못하고 갈팡질팡이다. 손님이 없으면 그런데도 도둑밥을 먹고 몰래 글을 쓰는 신세를 한탄하고, 손님이 많으면 계획한 일을 제때 하지 못한 걸 속상해 한다.


친구에게 했던 말을 내게 돌린다. ©️unsplash


문득 몇 년 전 한 친구와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당시 친구는 한 기관에서 사회복지사 일을 하면서, 틈틈이 캘리그라피 일을 하고 있었다. 상사로 인해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데다 캘리그라피 일에 전념하고 싶은데도 하지 못해 심한 내적 갈등을 하고 있었다. 친구는 당장 그만 두고 싶지만, 내년이나 후년에 일을 관두고 캘리그라피 일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어두운 낯빛의 친구를 한참 바라보다 내가 물었다. 왜 지금이 아니냐고. 이렇게 괴로운데 굳이 미루는 이유가 대체 무엇이냐고.


내 말에 놀란 친구는 동그란 눈으로 한참동안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주위의 모두가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을 한심하게 바라봤는데, 나만 당장 그 길로 가지 않고 뭐하는 거냐며 다그쳤다는 것. 친구는 그 길로 일을 그만 두고, 캘리그라피 일에 뛰어들었다. 커리어를 하나둘 쌓고 인지도를 넓히며 자신의 온라인샵도 오픈했다. 시간이 흐른 뒤 친구는 내게 덕분에 더 빨리 자신이 원하는 길로 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친구의 얼굴을 본 지가 오래 되었다. 연락을 해봐야지.)


그 일을 떠올리며 나는 나를 바라본다. 10이라는 숫자에 갇혀 무얼 하고 있는 거냐고. 그깟 숫자가 뭐길래 힘에 부치면서도 꾸역꾸역 살아내고 있느냐고. 꼭 10을 채우지 않아도 지금까지 버텨온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꿈꾸는 미래가 비록 안갯속이지만, 그럼에도 뚜벅뚜벅 걸어가지 않으면 결코 길은 열리지 않을 거라고. 조금 시기를 앞당겨도 된다고. 진짜 원하는 나의 삶으로 저벅저벅 걸어가자고.


10이라는 숫자를 내려놨을 뿐인데, 머리가 한결 가볍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들로 여전히 머릿속은 복잡하지만, 이전보다는 훨씬 질서정연해진 느낌이다. 이제야 내 앞의 자욱했던 안개가 서서히 걷히는 것만 같다. 천천히 가보자. 어떻게든 되겠지. 안 되면 또 다른 길을 찾으면 되고. 나는 숫자 10을 발밑에 고이 내려두고 정면을 응시한다. 덕분에 오랜만에 에세이 한 편을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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