멤버 하나가 사정이 생겨 한 달만에 글쓰기 모임을 했다. 일인당 두 개의 글을 합평해야 해서 평소보다 삼십 분 일찍 만남을 가졌다. 이주에 한 번씩 보다 한 달에 한 번이 되었다고, 모임이 어딘가 낯설게 느껴졌다. 고작 한 달인데, 한 달일 뿐인데, 그사이 쌓인 일들이 제법이다. 마침 글감도 '요즘'이었던지라, 요즘이라는 단어에 심취해 무엇이 요즘인지 요즘이란 단어가 품을 수 있는 범위에 대해 생각이 많아진다. 누군가는 쓸데없다고 여길 수도 있는 주제에 나는 이렇게 자주 풍덩 빠지고 만다.
연휴가 길었지만 나는 고작 하루를 쉬었다. 이럴 때마다 나는 내가 택한 업에 대해 골똘히 생각한다. 나와 비슷하게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오늘을 떠올린다. 고되지 않은 삶이 어디 있겠냐만은, 이럴 때면 내 삶만 우리의 삶만 더 고되게 느껴진다. 연민에 빠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쉬는 하루 동안 아이들과 갓 태어난 망아지를 만나고,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가는 바다에 다녀왔다. 왜 새끼들이 봄에 태어나는지 알아. 먹이가 많아서. 남반구에서는 가을에 태어나. 그때가 거기는 봄이니까. 이런 이야기들을 나누며.
육지는 비가 왔다는데 제주는 연휴 내내 화창했다. 틈만 나면 태풍의 경로를 확인했다. 중심기압이 905까지 떨어져 슈퍼태풍이 될까봐 전전긍긍했는데, 그래도 아직 오월이라 태풍은 위도가 높아질수록 기압은 올리고 세력은 줄여간다. 이만하길 다행이다, 싶다가도 양가적인 마음이 든다. '아직 오월이라.' '겨우 오월인데.' 시작도 안 한 여름이 길기만 하다. 엘리뇨로 바다는 여느 때보다 훨씬 뜨겁고, 태풍이 지난 괌은 초토화가 됐다. 고기라도 줄여야지. 누군가는 삶의 터전을 잃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고작 이것뿐이라니, 하다가도 ‘이거라도 해야지’로 이내 마음을 바꾼다.
연휴 동안 아이들을 재운 뒤 <워킹데드> 시즌11을 보았다. 마지막 시즌이다. 벼르고 벼르다 이제야 꺼내본다. 삼사년 전 아이들이 아직 많이 어리던 시절, 육퇴를 하고 나면 좀비처럼 누워 좀비물을 보았다. 좀비물에 관심이 전혀 없던 사람이 좀비물에 빠진 건 언론 때문이었다. 당시 김은희 작가의 <킹덤>이 큰 인기를 끌고 있었다. 얼마나 괜찮길래 하는 마음에 한 편 본다는 게 끝까지 보게 되었다. 좀비물이라는 게 단순히 공포물이 아니라는 걸 그때 알았다.
호기심은 좀비물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워킹데드>로 자연스럽게 옮겨갔다. 시즌1만 한 번 볼까 하고 시작한 드라마를 거의 다보았다. 시즌11이라니. 세월도 그만큼 많이 흘렀다. 그 사이 배우들은 나이가 제법 들었고, 그동안 나온 등장인물과 벌어진 사건도 셀 수 없이 많다. 내가 좀비물에 빠진 건, 단지 좀비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좀비는 그저 잠깐 위협이 될 뿐이다. 이후 모든 위험한 순간들은 사람이 만들어냈다. 배척하는 사람, 해하는 사람, 자신의 생존을 위해 타인의 목숨을 끊는 사람.
중간에 너무 늘어지고 주요 배우들이 대거 빠지면서 재미가 줄어들 때도 있었지만, 그런데도 끝까지 본 건 의리 때문이었다. 드라마에 대한 기호가 무척 까다로운 편이다. 조금이라도 대사가 거슬리거나 설정이 부자연스러우면 끝까지 보지 못한다. 대신 잘 맞으면 어떻게든 끝까지 본다. 그런 나라는 걸 알기에 드라마를 잘 시작하지 못한다. 끝이 날 때까지 끈질기게 보고 또 보는 게 나라는 걸 알기에. 시즌11도 봐야지 봐야지 하다 이제야 보고 있는 건, 너무 정신없이 몰아보게 될까봐 염려가 됐기 때문이었다.
십수 년 동안 하나의 드라마를 만들어낸다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워킹데드>에는 인간세상에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인간이 거쳐온 대부분의 세상이 녹아 있다. 정치 이야기이자 경제 이야기이며, 가족 이야기이자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다. 약자와 다양한 인종을 꼼꼼하게 배치하면서도 숨막히는 전개를 잊지 않는 제작진들의 노고를 보면서, 그 와중에 심어놓은 심지가 굵고 올곧은 대사들을 들으면서, 이야기라는 무한한 세상에 새삼 감탄한다. 결국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정리되지 않는 이야기를 써내려 간다. 하루하루만 보며 살아가다 갑자기 내 안의 꿈을 꺼내놓고는 허우적 댄다. 무언가를 시작했지만 시작하지 않았고, 글을 계속 쓰고 있지만 쓰는 것 같지가 않다. 너무 많이 쓴 것 같다가도 너무 쓰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앞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가도 뒷걸음질만 치는 것 같기도 하고. 수면 위는 잔잔하고 고요한데, 그 속에는 폭풍이 몰아친다. 내 마음 하나가 꿈틀거리니 온 세상이 요동친다.
두서 없는 글을 쓴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무엇을 쓰려고 하는지도 모른 채 그냥 손가락이 이끄는대로 따라간다. 이 글은 퇴고도 하지 않을 거야. 그냥 이대로 놔둘 거야. 무엇이 되려고 쓰는 게 아니니까. 그냥 이렇게 살고 있다는 인기척이 하고 싶어 쓰는 거니까. 게으름에 괜한 핑계를 대본다.
섬에는 어젯밤부터 비가 내린다. 너무 습해 제습기를 틀고 초를 켰다. 초는 늘 내 곁에 있었는데 오랜만에 켜고서야 알았다. 그게 거기에 있었음을. 타오르는 불꽃을 빤히 바라보다, 그 불꽃 속으로 사라지는 습기와 냄새를 천천히 가늠해 보았다. 사라져서 고맙다가도, 그 모든 게 어디로 가버린 걸까 싶어 어리둥절했다. 여름이 오는구나. 더 초를 자주 켜야지 싶었던 어젯밤. 연휴 마지막 날이었던 밤. 그러고 보니 다음 글감이 ‘밤’으로 정해졌는데. 밤에는 또 어떤 이야기가 담길까.
아이가 올 시간이 다 되어간다. 그 말은, 즉 오늘 하루도 저물어간다는 말. 합평을 했고, 손님을 꽤 치렀고, 비밀 글감의 초고를 썼고, 이 횡설수설하는 글도 썼다. 이만하면 열심히 보낸 하루인데도, 나는 자꾸 뒤를 돌아본다. 무엇을 두고 온 것만 같다. 무언가를 덜 한 것만 같다. 아무래도 이런 상태가 꽤 오래 지속될 것 같다. 나도 나를 모르는 상태.
어쩔 수 없지. 지나가보는 수밖에. 통과해보는 수밖에. 같은 일상인데 일상 같지가 않은 날들을 보낸다. 풍선이 된 것만 같다. 어디로 날아갈지, 언제 터져버릴지 모르는 둥실둥실 하늘로 떠가는 풍선. 이렇게 떠다니다 보면 언젠가 내려오는 때가 오겠지. 그때가 되면 다시 정리된 글을 쓸 수 있겠지. 그때가 되면 다시 두 발을 땅에 붙일 수 있겠지. 그렇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