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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우 May 25. 2023

누가 보면 직장인인 줄 알겠지

정신이 없다. 써야할 글이 세 개나 있는데, 쓰지 않아도 되는 이 글을 먼저 쓴다. 딴 짓이 늘 더 끌리는 법이지.


학교 보호자 동아리에서 총무를 맡고 있다. 책 읽어주는 선생님 활동이 포함된 동아리다. 할 사람이 너무 없어서, 동아리 들어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덜컥 총무를 맡았다. 돈 계산과 몇 가지 정리하는 업무만 하면 된다기에, 뒤에서 묵묵히 도울 요량으로 한다고 했다. 그런데 하다보니 돈 업무보다는 쓰고 정리하는 일이 늘어간다. 


회의를 하면 회의록을 써야 하고, 평가회를 하면 나온 의견들을 취합해야 한다. 누가 쓰고 정리하는 게 부업(?) 아니랄까봐. 성격도 급한데다 빨리 해치우지 않으면 잊어버린다는 생각에, 일간신문에 기사 마감하듯 일을 처리하고 있다. 하다보니 알게 되었다. 세상에는 글을 쓴다는 행위 자체에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는 것. 주변에 온통 글 쓰는 사람들이라 한동안 잘 느끼지 못하고 있었는데, 새삼 절절히 느낀다. 그런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나의 일은 많아진다. 나에게 일을 시키는 사람도 많아지고. 


동아리 내에서 책을 함께 읽는 모임이 있는데 어쩌다 보니 진행도 맡게 되었다. 그 모임을 기획하고, 끌어가고, 함께 읽을 책을 추천받고 투표하고 결정해 학교에 알리는 일도 내가 해야 한다. 누군가는 아프고, 누군가는 바쁘다. 일정한 순간에만 바쁜 일이라 나라도 하겠다고 했다. 한동안 방치하다시피 한 달력 어플에 빼곡하게 일정이 적혀 있다. 아이들도 챙겨야지. 오늘은 첫째 학교에서 체력도전이 있고, 내일은 둘째 어린이집에서 숲학교를 가는 날이고. 오늘까지는 동아리 책을 선정해야 내일은 주문이 들어갈 수 있고... 


보호자 동아리는 학교 보호자 활동의 중심이 되는 모임이다. 오랜 시간 의지와 사랑으로만 끌어왔다. 체계화된 게 없었다. 어쩌다 보니 총무인지 서기인지가 된 나는, 쓰고 정리하는 게 특기이다 보니 이왕 하는 김에 열심히 문서화를 하고 있다. 도우려고 시작한 일인데, 하다보면 일이 많아 직장인 같기도 하다. 돈이 되는 일도 아니고, 명예가 주어지는 일도 아니다. 하지만 아이들을 위한 일이다. 보호자들이 성장하는 모임의 기틀을 다지는 일이기도 하고. 내가 작은 힘이라도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하고 있다. 


오늘 아침엔 한 플랫폼에서 그룹으로 글쓰기가 결정되어, 관련한 줌미팅을 했다. 첫 글을 어떤 주제로 쓸지 결정하고, 향후 일정과 방향을 논의했다. 예전에 썼던 글을 조금만 손 보면 될 줄 알았는데, 다시 읽어보니 많은 부분을 수정해야 한다. 반 정도 하다가 접어버렸다. 벌써 피곤하다. 얼에모(얼룩소 에세이 쓰기 모임) 합평도 아직 두 건이 남았는데. 어제 갑자기 필 받아 시리즈로 써야지 하고 시작한 것도 있고. 이 모든 건 가정을 유지하고 카페를 운영하며 하고 있는 것들이다. 어차피 매일 쓰는 글이니, 겸사겸사 하자는 마음에 시작한 일들이 쌓여간다. 차곡차곡...


누가 보면 제 앞가림이나 잘하지 무슨 오지랖이냐고 할 법도 하다. 누군가는 내가 하는 일을 봉사로 여기지 않고, 나대는 일이라 할지도 모르겠다. 이전 같으면 여기저기 눈치를 보며, 돕고 싶어도 돕겠다 말을 못하고, 손이 부족한 걸 뻔히 알면서도 외면했을 것이다. 제법 단단해진 나는 이제 눈치를 잘 보지 않는다. 돕고 싶으면 기꺼이 돕고, 손이 부족하면 내 손을 보탠다. 하지 않아도 될 일이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라면, 나서서 한다. 나의 시선은 아이들 그리고 함께 성장하고자 하는 보호자로만 향한다. 어떻게든 긁어 부스럼 만드는 손가락이 아니라.


급한 일 몇 가지가 마무리 되고 나면, 내게도 여유가 좀 생기겠지. 바빠지는 마음을 자꾸 붙잡는다. 서두르다가도 한 번씩 멈춰 서서 달력을 응시하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길을 잃지 말아야지. 바쁘고 정신 없고, 온갖 해야 할 것들로 가득차 있더라도, 너무 조급해하지 말아야지. 하나씩, 하나씩. 그게 무엇이든 결국 모두 한 걸음부터 시작하는 것이니. 너무 힘들면 손을 내밀고, 할만 하면 최선을 다 해야지.


이것저것 하다보니 어느덧 둘째가 하원하기 이십 분 전. 내가 뭘 해야 되더라... 오늘 저녁은 또 뭘 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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