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하루를 보내고

희와 비, 삶과 죽음이 교차하던 하루

by 박순우

어제는 반 년만에 병원에 갔다. 2년 전쯤 건강검진에서 이상한 수치가 하나가 나온 뒤, 지난하게 이어져 오던 추적 검사의 일환이었다. 이른 아홉시까지 시내에 위치한 제주대학병원에 가려면, 아침부터 전쟁을 치러야 한다. 눈은 자동으로 일찍 떠졌다. 고양이 때문이었다.


네 마리의 아기 고양이는 처음에는 힘도 꽤 좋고 시도 때도 없이 앵앵 소리도 잘만 내더니, 어느 순간부터 한 마리씩 한 마리씩 힘없이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배변을 유도하고 시간에 맞춰 수유를 하는 것뿐. 시골이라 동물병원도 워낙 먼 데다 생업을 하고 있고 고양이들이 너무 어리니, 왕복 서너 시간을 모험하며 몸을 움직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앓던 녀석들은 하나하나 싸늘하게 식어갔다. 아직 어린 내 아이들에게 주검을 보이는 일이 마뜩잖아, 나는 슬퍼할 새도 없이 땅부터 파야 했다. 삽을 들고 마당 구석에 땅을 파 한 마리를 묻었다. 몇 시간이 지나 또 한 마리가 무지개 다리를 건너면 나는 또 땅을 파야 했다. 한줌도 안 되는 아기 고양이들을 땅에 묻으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지나가는 동물들에 의해 파헤쳐지지 않고 빨리 흙이 되기를 바라는 것뿐.


그제 밤까지 세 마리가 차례차례 떠나고, 가장 밥도 잘 먹고 잘 자던 녀석 한 마리만이 남아 있었다. 무슨 전염병에라도 걸린 건지, 마지막 한 녀석마저 어느 순간 우유를 잘 빨지 않고 시름시름 앓았다. 대체 이유가 뭘까. 지금이라도 시내 병원에 데리고 가야 할까. 캥거루 케어가 필요한 걸까 싶어 손바닥에 올리고 따뜻하게 감싸보지만, 힘을 낼 것 같지가 않았다.


불안한 마음을 안고 잠이 들어 이른 아침 눈을 떠보니, 아니나 다를까 마지막 한 마리마저 무지개 다리를 건너고 말았다. 나는 또 찬바람이 부는 아침부터 땅을 파야 했다. 누군가 몰래 나를 지켜본다면, 이게 웬 공포영화의 한 장면인가 싶을 만큼, 나는 땅을 파고 주검을 묻고 흙을 덮었다. 아이들이 깨기 전에 해야 했다. 날도 많이 더워져 부패가 진행되기 전에.


마당에서 돌아온 나를 일찍 자리에서 일어난 둘째가 맞이한다. 아이는 눈을 비비며 내게 묻는다. 고양이가 살던 박스를 이미 열어본 모양이다. 엄마 통통이는. 순간 표정이 일그러졌다. 연이은 죽음을 감당하면서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려고 노력해왔다.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되 감정을 너무 싣지는 말자. 일상이 무너지면 안 되니. 나는 분초를 다투며 해야 할 일이 쌓여있는 사람이니. 무너져서는 안 된다.


그렇게 다짐해왔건만 아이의 질문 하나에 갑자기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아이가 나를 위로한다. 죽음을 아직 잘 실감하지 못하는 아이가, 너무나 많은 죽음을 갑작스럽게 경험하고 눈물 짓는 엄마를 토닥여준다. 살 가망이 별로 없는 고양이들을 뭐하러 거뒀냐고, 별 생각 없이 말을 얹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그저 귓등으로 들어왔는데. 죽을 때 죽더라도 살릴 수 있을 때까지는 최선을 다하는 게 맞다고 스스로를 설득해왔는데. 나는 아이 앞에 눈물을 보이며, 지난 닷새 동안 내가 분투해온 일이 옳았는지를 곱씹을 수밖에 없었다.


눈물도 잠시 전쟁을 치르듯 아침을 보내고, 혼자 차를 끌고 병원으로 향했다. 흘러나오는 음악에 감정을 실으니 자꾸 눈물이 솟구쳤다. 내가 잘못한 건 무엇이었을까. 냥이들은 왜 갑자기 그렇게 죽어갔을까. 무엇이 부족했을까. 다시 시간을 거꾸로 돌린다면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차오르는 생각을 애써 누르며 나는 그저 흘러가고 싶었다. 그저 그런 일이 있었던 것뿐이라고. 고양이들이 어쩌다 마당에 왔고, 살리기 위해 나는 최선을 다했고, 그럼에도 떠날 수밖에 없을 만큼 연약한 존재였을 뿐이라고.


피검사를 하고 진료를 보기까지 남는 시간 동안, 병원에 있는 카페에 앉아 노트북을 켜고 일을 했다. 진행하고 있는 인터뷰 약속을 잡고, 송고해야 하는 글을 퇴고하고, 검토해야 하는 글을 읽어보고. 시간은 유수처럼 흘러 반 년만에 의사와 마주 앉았다. 모니터를 보니 약간 내려가긴 했지만, 수치는 여전히 비정상적으로 높다. 의사는 모니터를 응시하며 내게 말했다. 이제 검사 그만 하겠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되묻는 내게 의사가 말한다. 백 명 중에 한 명은 이상 수치가 나오기도 하니, 이제 추적검사는 그만 할게요. 그냥 건강검진만 정기적으로 받으세요. 그래도 될까요. 수치가 약간이긴 하지만 떨어지고 있으니, 그러셔도 될 것 같습니다.


처음으로 다음 진료 예약을 하지 않고 병원을 빠져나왔다. 시원해야 할 순간인데, 드디어 2년의 긴긴 시간이 종료된 시점인데, 무언가를 놔두고 온 것처럼 개운하지가 않았다. 고양이들은 그렇게 힘없이 스러져 갔는데, 나는 이제 오지 않아도 된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구나. 희비가 교차하는 날이었다. 하늘은 유난히 맑고 푸르렀다. 그 푸르름이 처연하게 느껴졌다. 삶과 죽음이 참 가깝기만 하다.


남편을 잠시 만나 같이 식사를 하고, 곧바로 집으로 향했다. 밀린 일이 산더미다. 오는 길에 필요한 것 몇 가지를 사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침에 하지 못한 빨래를 돌리고, 시어머님이 보낸 택배를 정리했다. 비데 점검을 받고 또 고장이 난 제빙기 수리를 하고, 그 사이 빨래를 널고 걷고, 학교에 볼일을 보러 잠시 다녀오고. 저녁에 있을 학교 독서모임 준비를 하고, 가족들 저녁 식사를 챙겼다.


약속한 시간이 되고 하나둘 독서모임을 하러 카페로 들어서는 사람들. 모두가 이 자리에 모이기까지 전쟁을 치렀구나. 얼굴만 봐도, 구구절절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그렇게 전쟁을 치르면서도, 이 순간을 공유하기 위해 틈틈이 책을 읽고 감상을 준비하고, 이 자리로 달려왔을 사람들. 참 바쁘게 산다. 참 부지런하게도 산다 우리들. 이 순간이 소중하면서도, 집에 놔두고 온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한가득인 엄마들. 그럼에도 나로 서고 싶어, 나로 사는 단 한 순간을 만들고 싶어 분투하는 사람들. 그들의 눈이 유난히 반짝이는 밤이었다. 그 눈은 때로 초승달처럼 웃기도 하고, 때로 호수처럼 일렁이기도 했다.


독서모임까지 마치고 집에 돌아와 남은 집안일을 하고 아이들을 재우고, 잠시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도 잠자리에 누웠다. 미친 하루였구나. 그런 하루를 보냈구나. 살포시 이불 위에 내려놓은 손바닥에 감촉이 느껴진다. 내 손 안에서 쌔근쌔근 숨을 내쉬며 쪽쪽 우유를 빨던 아기 냥이들의 몸부림. 너무 꽉 잡아도 안 되고, 너무 약하게 잡아도 안 된다. 너무 꽉 잡으면 숨을 쉬기 어렵고, 너무 약하게 잡으면 몸부림에 떨어질 수 있다. 그 감각이 아직 손끝에서 선명하게 느껴진다. 그런 닷새가 지나갔다. 이 감각도 시간이 흐르면 또 흐려지겠지. 잊혀져 가겠지. 안녕 냥이들. 더 오래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정말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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