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구속 사이 어딘가

by 박순우

'자유' 글감에 대한 글도 써야 하고, 인터뷰한 것도 글로 정리해야 하고, 글쓰기 글 연재 중인 것과 육아삼쩜영도 슬슬 다음 글을 계획해야 하는데... 머리만 복잡하고 어느 하나 손에 잡히지 않는다. 자유는 너무 거대담론이라 손에 잡힐 듯 잡히지가 않고, 인터뷰는 다 적자니 분량이 너무 많고 빼자니 주옥같은 이야기들이 아깝기만 하다. 글쓰기 글은 하나씩 쓸 때마다 영혼을 갈아 넣는 기분이 드는데, 이번엔 또 나의 무엇을 재료로 갈아 넣어야 하나, 싶은 생각에 벌써부터 두려움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자유롭게 쓰던 날들이 그립다.' 해야 할 일들에 갇혀 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유롭게 쓰던 날들.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불과 일 년 전쯤. 그때의 나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오늘은 무슨 글을 쓰지, 하는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꼭 써야 할 글도 없었고, 쓰라고 등 떠미는 사람도 없었다. 내가 지켜야 할 건 단 하나, 나와의 약속이었다. 매일 쓰겠다는 다짐. 글감은 온 세상이었고, 글의 분량도 형태도 정해진 게 없었다.


그래도 매일 썼다. 주로 지나온 나의 삶을 헐어 쓰는 글들이었다. 허물도 자랑도 아픔도 작은 일상도 모두 글감이 되었다. 내 인생을 갈아 넣는 데 주저함이 없었던 건, 본격적으로 쓰는 삶을 살기 전부터 해온 다짐 때문이었다. 쓰는 사람이 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 내게 쓴다는 건 기술적인 문제가 아닌, 내 삶이 광화문 네거리에 걸리는 일이었다. 그걸 두려워하지 않아야 오래 쓸 수 있다는 걸 깨달은 뒤로, 쓰지 않는 시간 속에서도 나는 스스로에게 자꾸 물었다. 그래도 쓸 수 있겠냐고. 그럼에도 왜 써야만 하느냐고.


몇 달이나 걸렸을까. 저 물음에 답하는 길은 순탄치 않았다. 우선 나의 삶이 전시될 만한 가치가 있느냐는 물음이 나를 따라다녔다. 전시됐을 때 따라올 잡음들에도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했다. 좋은 소리만 들을 리 없었다. 험난한 길임에도 왜 써야 하는가, 하는 물음은 가장 오래 내가 붙들고 있었던 질문이었다. 결국 글이었던 건, 글밖에 남지 않았다는 절실함 때문이었다. 내 인생도 전시될 만한 가치가 있다는 믿음도 있었고. 글을 쓰는 순간의 나를 사랑하기도 했다.


모든 질문에 대답이 내려진 상태였기에, 그럼에도 쓰겠다는 굳은 결심이 있었기에, 쓸 수 있었다. 거침없이. 매일 나를 갈아 넣으면서, 내 인생을 쏟아부으면서. 조금이라도 주저하게 될 때면 내 인생을 주목하는 사람은 사실 별로 없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모두들 자신의 삶이 먼저다. 타인의 삶에 공감하고 감응하는 것도 그 순간일 뿐. 결국 돌아서면 다시 자신의 삶으로 걸어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게 인간이다.


내게 크나큰 아픔이어도 활자화된 글을 보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그리 큰 아픔으로 여겨지지 않을 때도 많다. 비슷한 아픔을 가진 사람이 많다 보니, 내게는 살이 에이는 아픔이지만, 타인에게는 자신도 겪어본 남들도 다 겪는 그렇고 그런 아픔일 수도 있는 것. 전시될 가치가 있지만, 전시된다 해도 별 거 아니라는 모순된 지점은 나를 결국 쓰게 했다.


매일 하나의 글감을 떠올리고, 글로 풀어내고, 다듬어 올렸다. 글 하나를 완성하지 못하는 날에는 혼자 끼적이기라도 했다. 글감이 절로 샘솟는 날도 있었지만, 아무리 쥐어짜도 뭘 써야 할지 모르겠는 날도 많았다. 글이 잘 써지면 신이 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렇게 글이 쉬이 쓰여도 되나 싶어 불안했다. 잘 안 써지면 또 글태기가 왔나 보다 하며 꾸역꾸역 손바느질을 하듯 단어들을 기웠다.


그래도 자유로웠다. 타인이나 세상이 아닌, 나 자신이 만든 감옥 속이었으니까. 어디에서 청탁을 받는 글쟁이도 아니고, 내가 쓰는 행위에 왈가왈부하는 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싸워야 할 대상은 오로지 나 자신이었으니까. 두려워하고 주저하고 곁눈질하는 스스로만 다독이면 얼마든지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쓸 수 있었으니까.


써야 할 글들을 바라본다. 사실 그 글들도 내가 결정하고 내가 자처한 일들이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다. 간혹 해보겠냐고 권한 사람이 있을 뿐. 하겠다고 손을 든 건 나 자신이었다. 막상 하겠다고 손을 들어놓고는 힘에 부치면, 이런 걸 하고 있다는 사실을 대대적으로 알리는 글을 또 썼다. 독자와의 약속, 하겠다는 선언이 나를 이끌어주기를 바라며. 나는 자유와 구속을 형체 없이 버무려 버리곤 했다.


도무지 정리가 되지 않는 인터뷰 글에 드디어 마침표를 찍고 송고 버튼을 눌렀다. 지난 글쓰기 모임에서 나는 멤버들에게 물었다. 왜 여전히 글을 쓰느냐고. 한 멤버가 내게 말했다. 쓰기 힘들어서 버둥대다가도 막상 글 하나를 쓰고 마침표를 찍으면 기분이 너무 좋아요. 송고 버튼을 누르자 그 멤버의 말이 떠올랐다. 마침표를 찍었구나. 다시 피드백을 받고 고쳐야 하는 고된 여정이 남아 있지만, 어쨌든 지금의 마침표를 찍었구나.


멤버들에게 던졌던 질문을 내게 던진다. 왜 여전히 글을 쓰느냐고. 자유롭게 쓸 수도 있는데, 왜 스스로 감옥을 자꾸 만들면서까지 쓰고 또 쓰는 거냐고. 도약. 두 글자가 떠오른다. 나는 도약하고 싶었다. 멤버들에게 새로운 시도를 해보자고 제안하면서도 나는 도약이라는 글자를 꺼내 들었다. 함께 성장하자고. 함께 깊어지자고. 내가 계속 도전하는 건 성장하고 싶었기 때문이었구나. 그제야 나는 나의 감옥을 수긍한다.


편집기자한테 연락이 왔다. 역시 고쳐야 할 게 한두 군데가 아니구나. 인터뷰 글에서 나는 초짜 오브 초짜. 맨땅에 홀로 헤딩하는 기분이었는데, 지적해주고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든든하다. 갑자기 편집기자가 말한다. 내 글쓰기 글의 팬이라고. 그러니 잘 고쳐보라고. 아니, 이런 달콤쌉싸름한 피드백이라니. 눈물이 핑 돈다. 글 하나하나 얼마나 힘겹게 썼던가. 내 글을 읽으며 나는 나를 위로한다. 그리고 다시 노트북을 켠다. 어디부터 손을 봐야 하더라. 자유롭지만 결코 자유롭지 않은 글 세상으로 다시 기꺼이 걸어 들어간다.




*얼룩소 글쓰기 모임에서 작성한 글입니다. 글감은 '자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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