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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우 Jun 26. 2023

나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찾아서

[생애 첫 글쓰기] 연재를 하면서(번외편)

글쓰기 관련 글을 쓰고 있다. 저지르고 보는 성격을 남 못 주고 또 덜컥 시작했는데, 어쩌다 보니 세 번째 글까지 썼다. 시작은 호기로웠다. 글 잘 쓰는 법에 대한 책은 많고 많지만, 글을 시작하는 데 용기를 주는 책은 별로 없어 보인다. 그렇게 [생애 첫 글쓰기]라는 제목의 글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계산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연재한 글을 어떻게든 엮어서 전자책으로라도 내면 이력으로 쓸 수 있을 터였다. 그런 이력이 쌓이면 글 쓰는 사람들을 돕는 꿈에 더 바짝 다가갈 수 있으리라 막연히 예상했다. 예전에 얼룩소에서 썼던 [글쓰기 껌이지]에 살이나 좀 붙이면 되겠지. 안이한 생각으로 시작했다.


예상과 달리 글 하나를 올리자마자 바로 한계에 봉착했다. 첫 글은 어렵지 않게 썼다. 추진력으로 썼으니까. 문제는 뒷심이었다. 그 뒷심의 걸림돌은 나 자신이었다. 두 번째 글을 쓰는데 도무지 흥이 나지 않았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내 글을 쓰면서 이러기는 처음이었다. 원인을 파헤쳐 보니 남들도 다 하는 이야기를 반복하며 기계적으로 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글 잘 쓰는 법으로 통하는 몇몇 공통 사항들을 버무려 적당히 그렇고 그런 글을 적었던 것.


나는 손가락을 멈추고 노트북을 닫았다. 이 따위 글을 뭐 하러 쓴단 말인가. 스스로를 향한 실망감이 몰려왔다. 이대로는 안 된다. 쓰는 나도 신이 나지 않는 글을 누가 흥미롭게 읽을까. 온라인 서점에 들어가 검색창에 '글쓰기' 키워드를 적고 버튼을 눌렀다. 수백 개 정도는 뜨겠지. 화면에 적힌 숫자를 보고 절로 입이 벌어졌다. 수백도 아니고 수천이라니. 세상에 글쓰기에 대한 글이 이렇게나 많다니.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이 시리즈를 왜 시작한 거지. 이력으로 쓰겠다는 그 하나의 계산이 내 발목을 잡을 줄이야. 여기서 그만두자니 연재 페이지를 열어준 매체에 면목이 없다. 그렇다면 나는 여기에서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까. 내가 할 수 있는 게 과연 무엇일까. 나만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대체 뭐란 말인가.


며칠 연재는 때려치우고 다른 일에만 몰두했다. 다른 사람이 쓴 글쓰기 책은 들여다보지도 않았다. 행여나 영향을 받아, 짜깁기 신공이라도 발휘하는 스스로를 마주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연재를 그만두더라도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짓은 하지 말자. 보잘것없더라도 내가 느끼고 내가 깨달은 것들을 내 글에 싣자. 


그런 다짐으로 나는 나의 과거를 뒤졌다.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연유, 글을 쓴 과정, 글을 쓰는 사람들이 왜 돕고 싶었는지, 왜 글인지. 그제야 나는 남의 이유가 아닌 나의 이유로서의 글쓰기가 떠올랐다. 그리고 어느덧 세 번째 글까지 써냈다. 끝이 어디일지는 모르지만, 가볼 수 있는 데까지는 가볼 생각이다. 


인터뷰를 준비하고 있다. 아주 작은 호기심에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사명감을 갖게 됐다. 섭외할 사람들을 추리고, 질문지를 작성하고, 그 사람과 함께 나누면 의미가 있을 이야기들을 생각한다. 내가 하게 될 거라 여겨본 적 없는 일에 뛰어들고 있는 스스로를 바라보는 심정이 묘하다. 인터뷰란 무엇인가. 인터뷰어의 역할은 무엇인가. 팔자에 없던 공부 중이다.


인터뷰 선배들의 글을 찾아보다 은유 작가를 만났다. 이름은 참 많이 들었는데, 제대로 책을 찾아 읽기는 처음이었다. 인터뷰 관련 글만 보고 덮어야지, 하다 결국 통째로 다 읽어버렸다. 내가 처음 접한 책은 <글쓰기의 최전선>. 은유 작가의 발자취를 좇다 보니 기시감이 든다. 이 작가 나와 비슷한 점이 참 많다. 두 아이의 엄마인 것도, 살림에 취미가 없는 것도, 글을 쓰는 방법도, 작가라는 호칭보다 '글 쓰는 사람'이라는 표현을 더 선호하는 것도. 심지어 더 많은 갑남을녀가 글 쓰기를 바라는 꿈까지 흡사하다. 


글쓰기 책이라 처음에는 들여다 보기가 꺼려졌다. 쓰고 있는 연재에 영향을 받을까 봐. 그런데 읽다 보니 웬만한 이름난 소설가나 학자 등이 쓴 글쓰기 책보다도 실제 쓰는 데 훨씬 도움이 될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은 말뿐만 아니라, 더 넘치는 이야기가 이 책에 들어있다. 현장에서 오랫동안 직접 글쓰기 수업을 진행한 사람의 목소리는 더할 나위 없이 글 쓰는 사람들에게 최적화되어 있었다. 연재할 필요가 없겠는데? 아 결론이 이게 아닌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이미 한 사람이 있다는 게 속상한 게 아니라, 오히려 반가웠다. 당장 피가 되고 살이 될 부분들을 추려 글쓰기 모임 단톡방에 뿌렸다. 구구절절 공감하며 책을 다 읽고 나니 그럼 나는 연재에서 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하지, 하는 고민에 이르렀다. 생각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나만 할 수 있는 이야기'에 꽂힌다.


글을 쓸 때 늘 부딪히는 건 '의미'다. 인간의 뇌는 의미를 좋아한다고 한다. 의미가 있는 걸 더 잘 기억한단다. 글을 쓰는 것도 결국 읽는 사람의 마음에 돌 하나를 던지기 위함인 것. 그 돌은 장난스러운 돌일 수도 있고, 물음표가 가득한 돌일 수도 있으며, 끝없는 파문을 일으키는 돌일 수도 있다. 의미에 너무 집착하면 안 되겠지만, 아무 의미도 없는 글이라면 쓰지 않음만 못 할 수도 있다. 


수 천 권에 이르는 글쓰기 책 가운데 내 글이 의미가 있으려면 나는 무엇을 담아야 할까. 결국은 생생한 이야기밖에 없겠구나. 내가 쓰고 또 쓰면서 부딪히고 경험한 나만의 이야기. 특별한 재능 없이, 대단한 이력 없이, 글을 쓰게 된 갑남을녀 나의 이야기. 할 줄 아는 거라곤 쉽게 읽히는 글을 쓰는 일이니, 이왕이면 쉬운 언어로 전달해야지. 


남들이 이미 간 길을 나도 간다. 좀 늦은 것도 같지만, 그럼에도 내 길인 것 같아 뚜벅뚜벅 걸어간다. 특별해 보이지 않아도 괜찮고, 특출 나 보이지 않아도 상관없다. 분명 어딘가에는 나의 이야기가 필요한 누군가가 있을 테니까. 이제 네 번째 글을 써야 한다. 이전에는 연재를 시작하면 생각이 휘발될까 봐 휘리릭 써내기 바빴는데, 지금의 나는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쓰며 아주 천천히 간다. 서두를 필요는 없다. 목표는 단 하나, 먼 훗날 다시 읽어도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을 글을 쓰는 것. 그거면 충분하다. 그게 제일 어렵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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