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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우 Sep 05. 2023

그저 그런 단상들 2

인터뷰와 버섯밭

1.

어느덧 세 번째 인터뷰다. 제주로 이주해 혼자 살아가는 분들을 취재하다, 이번에는 홀로 왔다 가정을 이룬 분을 만나보았다. 인터뷰라는 세계가 참 신기하다. 인터뷰가 내 일이 될 거라 예상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건만, 점점 인터뷰의 매력에 빠지고 있는 나를 마주한다. 실제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듣는 시간은 두 시간 정도. 사전조사를 위해 며칠을 할애하고, 인터뷰 정리를 위해 또 며칠을 보낸다. 마치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한 사람에 대해 종일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한 사람을 만난다는 건 한 세계를 마주하는 것. 기질, 배경, 기호, 성향, 지향점 등. 최대한 많은 열쇠들을 찾아내 한 사람을 알아보려 안간힘을 쓴다. 다르면 달라서, 비슷하면 비슷해서, 내 생각은 자꾸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 꼬리는 꿈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그야말로 흠뻑 사람에 빠지는 시간인 것. 이렇게 한다 해도 내가 한 사람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이라는 걸 안다. 그럼에도 한 사람을 제대로 이해해 보려 노력하는 과정을 밟으며, '사람이 공부'라는 말의 진의를 체득한다.


종일 틈틈이 녹음된 말들을 문장으로 옮기며, 무엇을 더하고 무엇을 뺄지 깊은 고민을 거듭한다. 매체가 원하는 글의 길이는 인터뷰의 경우 삼사천자 정도. 인터뷰 내용이 심플하면 오히려 정리하기가 좋은데, 주옥같은 내용이 많으면 더 쓰기가 어렵다. 한정된 분량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덜어내야 한다. 한 사람을 인터뷰하기 위해 준비하고 만나고 정리하는 과정에 비해, 글의 길이가 너무나 짧게만 느껴진다.


분량 제한이 없으면 좋겠다 싶다가도, 정해진 분량 때문에 더 다듬고 집중하는 스스로를 보면서 ‘틀’을 생각한다. 너무 얽매여도 안 되지만 너무 외면해도 흐트러지고 마는 틀이라는 신비로운 세계. 툴툴 대던 마음을 접으며 생각한다. 혹시라도 인터뷰집을 낸다면 그때는 마음껏 옮겨야지. 그때도 어느 정도 틀은 필요하겠지만. 한 인생을 오롯이 이해하려면 책 한 권 정도는 필요하지 않을까. 책이라는 느슨하지만 단단한 물건에 대해 곱씹는 날들이다.


2.

버섯밭이다. 엉뚱하게도 카페 마당이 버섯밭이 되었다. 대충 어림짐작으로 세어봐도 수십 개는 넘는 버섯이 앞마당을 뒤덮고 있다. 햇살이 온종일 내리쬐는 마당에 이게 웬일일까.


사건이 벌어진 건 종일 비가 내리다 개다 변덕스럽던, 호랑이 장가갈 만한 어느 날이었다. 어디선가 날아온 포자가 싹을 틔웠다. 생긴 게 양송이 같기도 하고 송이 같기도 하다. 구글 사진검색 찬스를 쓰니 온갖 비슷한 버섯이 잔뜩 나온다. 따서 볶아 먹고 싶은 마음이 샘솟지만 꾹 참는다. 무슨 일을 치르려고.


쌍무지개가 뜨던 이날이 바로 사건이 벌어진 그날!


하나에 불과했던 버섯이 수십 개로 번진 건 일주일쯤 지난 뒤였다. 봉긋 하나둘 올라오던 버섯은 반나절만에 두 배가 되고, 하루 만에 오므리고 있던 머리를 우산처럼 활짝 펼친다. 버섯이 한두 개 있을 때는 지나가던 동네 초등학생들이 죄다 밟고 짓이겨 놓기 일쑤였는데, 웬일인지 아이들도 버섯을 구경만 하고 더 이상 건드리지 않는다.


비 오면 하나 꺾어서 머리에 쓰고 싶은 비주얼.


버섯밭이 되다 보니 지나가던 동네사람들이 한 마디씩 보탠다. 기르는 거야? 설마요. 무슨 버섯이야? 저도 몰라요. 직접 심었어? 양지바른 곳에 그럴 리가요. 먹어봐! 헉. 말똥버섯 같은데! 말똥버섯?!!! 나 어릴 때 많이 먹었어. 헐 정말요?!! 양파 넣고 기름 둘러서 볶으면 아주 맛나. 아 저도 먹고 싶지만...


카페에 온 손님들도 사진을 찍고 난리다. 제주는 마당에 버섯도 나네요, 하며. 하하. 제가 심은 건 아니지만. 구경 잘하고 가세요. 괜한 선심을 쓴다. 아 먹고 싶다. 버섯을 엄청 좋아하는 나에게, 신선하고 말랑하고 보송한 수십 개의 버섯은 그림의 떡. 행여나 독이라도 있을까 봐 차마 먹지는 못하고 시들어가는 모습을 구경만 하고 있다. 버섯 전문가가 와서 한마디 해주면 좋겠다. 100% 안전합니다. 드세요! 그럼 당장 따먹을 텐데!! 입맛만 다시고 있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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