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가 되지 못한 이야기들
1.
[제주 이민 10년차들을 만나다]라는 제목의 연재를 하고 있다. 어느덧 두 번의 인터뷰가 게재됐고 세 번째 인터뷰이와의 약속을 잡아둔 상태다. 한 달에 한 번씩 인터뷰를 하고 있으니, 벌써 시작한 지 석달 가량이 지난 것이다.
첫 번째 인터뷰가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앞으로 쪽지 하나가 도착했다. <부산여행영화제> 관계자였고, 인터뷰이와의 연결을 바라고 있었다. 단지 연결해주는 입장임에도 두근두근 흥분이 됐다. 이건 무슨 일이지. 뭔가 재미난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데.
그렇게 연결된 끈은 결국 내 첫 인터뷰이를 <부산여행영화제>의 연사자로 서게 했다. 겁이 많아 새로운 도전을 주저했다는 인터뷰이는 낯선 섬에서 십 년의 시간을 지나며,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사람으로 변모하고 있었다. 뭐든 해보는 사람이 되어보려 한다며 크고 작은 새로운 시도들을 해왔는데, 그 중 하나가 내가 진행한 인터뷰였다. 그 인터뷰가 하나의 씨앗이 되어,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십 년 섬살이를 발표하는 뜻밖의 자리에까지 서게 된 것이다.
지금 내가 행하는 하나의 작은 시도가 미래에 어떤 점으로 남을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성과가 없더라도 뚜벅뚜벅 나의 길을 간다면, 언젠가 내가 거쳐온 점들이 하나로 연결돼 나만의 별자리가 되지 않을까.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되어 멋지게 도전하는 인터뷰이를 떠올리며 마음이 간질거린다. 인터뷰를 기획할 때만 해도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인생이 참 재밌다.
2.
어느덧 여덟 번째 글쓰기 연재글이 올라갔다. 매체는 자꾸 분량을 줄이라 하고, 출판사는 분량을 늘려야 한단다. 시간이 없는 건지, 여력이 없는 건지, 양쪽의 입맛을 맞추며 글쓰기가 버거워 결국 하나를 내려놓기로 했다. 연재글은 한두 번만 더 쓰고 그만 둘 생각이다. 그 뒤로는 책에 올인해야지.
문제는 자꾸 비장해진다는 것. 책을 내봤어야지. 내 이름을 건 첫 책이라는 생각이 나를 짓누른다. 매일매일 쓰던 글과는 전혀 다른 무게감이다. 하나하나 쓰다 보면 뭐라도 되겠지 싶은 마음이긴 한데, 문제는 매일 집중하지는 못한다는 점. 하나 쓸 때마다 영혼을 갈아넣는 기분인데, 꼭 이렇게 써야 하나 싶기도 하다.
독자 입장에서 높은 밀도가 계속 유지되는 글은 읽기에 버겁지 않을까. 한 번씩 쉬어갈 수 있는 글도 있어야 읽기가 낫지 않을까. 생각은 이렇게 하면서도 쓸 때마다 내 어깨와 내 손가락에는 무게가 잔뜩 실린다. 가벼워지고 싶다. 높낮이를 자유자재로 조절하며, 희로애락을 담은 글이 쓰고 싶다. 내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일까.
3.
반찬을 시켜먹고 있다. 일주일에 두 번. 한정식집을 하시던 분이고, 으른 입맛에 배달까지 해준다는 말에 솔깃했다. 반찬가게에서 작은 밑반찬 하나 집어올 줄 모르던 사람이 덜컥 시켜먹어보겠다 결정한 건, 글에 좀 더 집중하고 싶었던 속내 때문이었다. 남편도 흔쾌히 좋단다. 그럼 한 번 시켜먹어 볼까.
새로운 반찬들을 마주하고 나서야 알았다. 내가 꽤 음식을 잘하는 편이었다는 걸. 매일 거기서 거기인 반찬들에 큰 감흥이 없던 아이들이 말한다. 엄마가 해준 게 더 맛있어. 남편도 깨작거린다. 별론데. 아니 한정식집이라 했는데, 으른 입맛에 맞다 했는데. 가족들의 반응에 좋아해야 해, 싫어해야 해.
그제야 깨닫는다. 별로 까다롭지 않은 줄 알았는데 우리 식구들 제법 까다로운 입맛을 지녔구나. 밥맛이라는 게, 먹는 음식이라는 게, 별다르지 않은 것 같지만 사실 집집마다 미묘한 차이가 있구나. 나는 우리 가족들의 입맛을 누구보다 잘 아는, 식구들에게 최적화된 요리사였구나.
일련의 일들을 겪고 나니 할 때마다 번거롭고 지겹던 요리가 조금 할 만하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 이래서 어머니들이 음식을 놓지 못하고 한평생 주방에서 시간을 보내시는 걸까. 나는 이번 일을 계기로 요리하는 시간을 좀 더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이 약발은 대체 얼마나 갈까. 약발이 떨어질 때마다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을 사들이기라도 해야 하는 걸까. 인생은 길고 먹어야 하는 날들은 더 길다. 먹고 사는 게 뭔지.
4.
필력을 아끼고 있다 생각했는데, 아끼니 똥이 되는 것 같다. 이래저래 피폐한 날들이라 글을 쓰지 못한다 생각했는데, 안 쓰니 못 쓰겠다. 쓸데없는 말을 너무 많이 한 것 같아, 꼭 할 말만 쓰려고 했는데. 쓰지 않으니 내뱉지 않은 말들이 내 안에 저장되는 게 아니라 공기 중으로 휘발된다.
또 쓰겠다 마음을 먹는다. 아끼지 말고, 저장하지 말고. 나의 한계를 인정하자. 계속 쓰지 않으면 계속 쓸 수 없다. 글쓰기 근육이 감퇴되는 느낌을 견딜 수 없어, 좀 더 가벼워지기로 한다. 작품이 되지 않아도 괜찮다. 단상들이어도 상관없다. 그저 쓰자. 지금의 나를, 나의 일상을, 나의 생각을. 내가 흘러가는 이 모든 순간들을. 쓰는 게 남는 장사다. 평범함 속에 비범함이 있으니.
에세이가 되지 못한 이야기들을 단상들로 묶으려 한다. 아마도 연재. 아니면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