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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우 Oct 18. 2023

인터뷰를 정리하다가

[제주 이민 10년차들을 만나다] 어느덧 네 번째 인터뷰다. 한 달에 하나씩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으니, 인터뷰라는 낯선 세계에 들어선 지 넉달이 지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원고 마감일이 다가오면서 부쩍 심적 부담에 시달리고 있는지라, 원고와 관련 없는 인터뷰를 진행하는 게 녹록지 않았다. 


아무도 내게 강요한 적 없는 일이었다. 그저 단순한 호기심에 이끌려 시작한 일이었다. 스스로 정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뚜벅뚜벅 길을 걷는다. 최종 열 명을 생각 중이고, 아직 절반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벌써 휘청대다니. 마감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스스로를 달래며 간신히 일을 진행했다.


섭외는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절절히 체감하고 있다. 내가 섭외하는 인터뷰이는 유명인이 아니다.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사람들이 아닌, 평범하고 평범한 사람들이다. 단 하나 특별함이 있다면, 낯선 섬에 와서 십 년을 살았다는 것. 


일반인이라 해서 삶도 평범한 건 아니다. 그러고 보면 평범이라는 단어보다 더 평범한 게 이 세상에 과연 있을까 싶다. 굴곡 없는 삶은 없으니. 평범함 속에 비범함이 있으니. 일반인이라 해서 삶의 철학이 없는 것도 아니다. 내가 하는 섭외란 결국 자신만의 철학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매의 눈으로 찾아내는 것. 직감이 무척 중요한 이유다.


네 번째 인터뷰이는 1인 여행사를 9년째 운영하는 분이다. 제주 관광이 위기라는 말이 계속 나오는 상황에, 누구보다 이 부분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면 의미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휘청이는 스스로를 달래고 달래 사전조사를 하고, 인터뷰의 방향을 잡아 질문들을 뽑고, 작은 선물을 준비했다. 온화한 바람이 살랑이는 가을 아침, 인터뷰이와 마주 앉았다. 


인터뷰를 해보면 무척 신기한 광경을 마주한다. 인터뷰이는 생경한 인터뷰어 앞에서 자신의 인생을 가감없이 털어놓는다. 부끄러운 과거도, 흔들렸던 시간들도 거침없이 말하는 사람들. 무조건 당신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라는 인터뷰의 정의는 마법이 되어, 사람의 마음을 단시간 내에 활짝 열리게 한다.


내가 준비하는 건 단 하나, 경청하는 자세다. 어떤 삶을 살아왔든 평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마음. 준비한 질문지를 따라가는 것보다, 기사의 방향을 잡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여기에 있다고 믿는다. 상대가 이야기를 온 마음으로 듣고 있다는 믿음, 편견이나 선입견이 없는 사람이라는 짐작은 굳게 닫힌 사람의 마음을 여는 열쇠가 된다. 인터뷰이는 결국 마음을 놓고, 나는 더 깊은 삶으로 빠져 든다.


인터뷰를 할 때마다 한 인생이 거친 파도처럼 내게 밀려오는 걸 온몸으로 느낀다. 격정의 시간들이, 혼란의 날들이, 그 안에서 차곡차곡 쌓아온 자신만의 철학이, 인터뷰를 통해 모습을 드러낸다. 나는 그저 귀를 열고 눈을 반짝이며 듣고 또 듣는다. 많이 묻지 않아도 인터뷰이는 술술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낸다. 경청의 놀라운 힘을 마주하는 순간이 내게는 인터뷰다.


인터뷰를 끝내고 나면 한동안 멍하다. 바로 정리를 하지 못하고 인터뷰 내용을 종일 곱씹는다. 한 사람이 걸어온 삶에 온 마음이 동화되어 머문다. 어떤 부분을 살리고 어떤 부분을 잘라내야 할지 머릿속으로 대강 정리를 마친 뒤에야, 자리에 앉아 말을 글로 풀어낸다. 인터뷰에 제대로 집중을 하면 녹음파일을 들여다 보지 않아도 줄줄 글을 쓰게 된다. 


쓰다 막히면 다시 녹음파일을 훑어본다. 나의 언어를 그의 언어로 바꾸고, 이야기의 순서를 조정하고, 방향을 설정한다. 인터뷰는 사전조사부터 인터뷰 자체, 정리 과정까지 한 사람에게만 오롯이 집중하는 행위이다. 마치 덕질을 하듯 한 사람을, 한 인생을, 이야기로 엮어 주무르는 게 인터뷰인 것. 그 과정에서 중요한 또 하나는 내가 가진 프레임이다. 한 사람의 이야기가 나라는 사람을 통과하면서 비로소 글로 형상화하는 것.


주옥 같은 이야기가 많이 나온 인터뷰일수록 정리하기가 힘들다. 기사 분량은 최대 4천자 정도로 정해져 있으니. 담고 싶은 이야기가 흘러 넘치면 일단 모조리 적은 다음, 자르고 또 자른다. 무엇을 담고 무엇을 내칠 것인가. 이럴 땐 책으로 묶고 싶어진다. 책이라면 자르지 않아도 될 텐데, 더 많은 이야기를 담을 수 있을 텐데. 자르기에 더 나아지는 점도 분명 있다. 장황한 이야기가 정리되고, 독자가 더 관심을 가질 이야기에 집중하게 된다. 그럴 땐 글자를 주무르는 일이 참으로 마법같이 느껴진다. 


초고를 쓰고 이 글을 쓴다. 쏟아냈으니 이제 덜어낼 시간이다. 민감한 이야기는 과감하게 삭제하거나 변경하고, 의미 있는 이야기는 생명을 불어넣어 살리고, 흐름과 방향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단단히 중심을 잡아야 한다. 내가 아무리 애를 쓴다 해도 인터뷰 역시 한 사람에 대한, 한 인생에 대한 파편일 뿐 전체는 아니다. 그럼에도 그 파편을 통해 독자들로 하여금 마음 속에 하나의 물음 혹은 의미를 던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으리라. 


결국 모든 글의 존재 의미는 감동이라는 이오덕 선생님의 말을 곱씹는다. 나는 이번 글에서 독자들에게 어떤 감동을 줄 수 있을까.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고민이 깊을수록 진심을 담을수록 글은 다듬어지고 길은 명료해진다. 좋은 인터뷰는 인터뷰어뿐만 아니라 인터뷰이도 성장시킨다는 은유 작가의 말을 되뇐다. 다시 글을 매만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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