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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우 Oct 16. 2023

카페, 흔하지만 예민한 공간

카페는 기호의 공간이다. 일터 근처, 카페인 충전을 위해 테이크아웃만 하는 공간이라면 많은 조건은 필요치 않다. 그때 가장 중요한 조건은 편리한 접근성과 가격 정도가 아닐까. 지인과 대화가 목적일 때도 큰 조건은 필요치 않다. 동행하는 인원이 모두 앉을 자리가 있는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게 불편하지 않은지 정도가 조건이 된다.


하지만 혼자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기 위해, 혹은 책 한 권을 들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 방문하는 곳이라면, 좀 더 많은 조건들이 필요하다. 커피맛, 인테리어, 자리의 편안함 정도, 서비스의 질, 접근성까지 다양한 면이 잘 맞아야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여러 번 방문하는 카페가 된다. 골목골목 수많은 카페가 들어차 있어도 정작 선뜻 가고싶은 카페는 없을 때가 많은데, 바로 이 때문이다. 카페는 흔하지만 참 예민한 공간인 것.


입장에 따라서 공간의 필요조건은 상당한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손님은 여러 면이 잘 맞아 머물기에 편안한 카페가 최고지만, 주인 입장에서는 너무 조건이 잘 맞아 손님이 오래 머물면 매출에 영향이 있다. 회전율이 낮으니 그만큼 받을 수 있는 손님의 수가 적어지는 것. 조건이 너무 좋지 않으면 드나드는 손님 자체가 적을 수도 있다. 때문에 적당한 편안함과 적절한 만족감을 주면서도, 너무 오래 머물지는 않는 카페를 만드는 게 주인장의 지상 최대 목표다. 


평일 낮에는 내가 운영하는 카페를 지켜야 하기에 다른 카페를 방문할 기회가 거의 없다. 주말에만 종종 아이들과 함께 각자 좋아하는 책 한 권씩을 들고 인근 카페를 찾아간다. 이때 가장 중요한 건 의외로 규모다. 규모가 너무 작은 카페는 아직 어린 아이들과 마음 편히 머물기가 힘들다. 너무 핫한 카페, 인스타그램용 카페도 피한다. 드나드는 사람이 많아 여러 모로 눈치가 보이기 때문이다.


어쩌다 평일에 중요한 볼일이 생겨 카페 문을 닫을 때가 있다. 볼일을 마치고 아이들이 하원, 하교하는 시간까지 약간의 여유가 있으면 다른 카페를 홀로 찾아간다. 글을 좀 쓰거나 책을 읽겠다는 목표로. 이럴 때 내가 꼽는 조건은 세 가지 정도다. 사람이 너무 많지 않을 것, 혼자 앉기에 좋은 자리가 있을 것, 노트북을 사용하기에 편할 것. 


그런 카페를 나름 고르고 골라 찾아간 적이 있다. 커피맛은 큰 특징은 없지만 나쁘지 않았고, 사람도 많지 않았다. 주인도 손님에게 눈치를 주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좋았다. 무엇보다 창 밖에 에메랄드빛 바다가 펼쳐져 있어 운치가 있었다. 들뜬 마음에 앉아서 노트북을 펼치고 글을 써내려 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딘가 불편한 느낌, 거슬리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무엇이 문제일까. 


수많은 카페가 있지만, 그 중에 햇살, 전망, 분위기, 접근성, 커피맛, 편안함이 모두 알맞은 공간을 찾는다는 건 참 어려운 일. ©unsplash


그건 다름 아닌 음악이었다. 공간을 채우는 건 단지 테이블이나 의자, 커피향 뿐만이 아니라 음악도 있었던 것. 음악은 의외로 공간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때가 많다. 축제를 시작할 때, 마침내 스피커가 쿵쿵 울려대면 가슴도 함께 뛰기 시작한다. 아이들과 놀이공원에 들어설 때도, 희망 가득한 애니메이션의 배경음악 같은 곡이 플레이 돼야 비로소 다른 세상에 도착했다는 감각이 차오른다. 모든 조건이 채워졌다 해도 공간과 적절히 어우러지는 음악이 있어야 비로소 화룡점정인 것.


이런 음악이 중요한 건 카페도 마찬가지다. 공간과 잘 어우러지는, 내 감성과도 잘 맞는, 볼륨이 적당한 음악이 쉴 새 없이 흘러야만 합이 맞는 공간이 된다. 하지만 내가 홀로 찾아간 카페의 음악은 너무 도드라졌다. 공간을 채우고 있는 게 음악이라는 사실을, 음악이 지금 여기에 흐르고 있다는 실재를 유난히 강조하는 플레이리스트였다. 음악은 자연히 동화되기보다 홀로 튀어오르며 몰입을 방해했다. 


카페에서는 어떤 음악이 흘러야 할까. 볼륨은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 


카페의 음악은 감상을 위한 것이기보다 백색소음이어야 한다. 누구에게나 열린 카페라면 더욱 그렇다. 음악을 위한, 음악을 듣기 위한 카페라면 음악이 주인공이니 감상의 중요성이 커지겠지만, 보통의 카페라면 존재의 목적은 공간을 내주기 위함이다. 이야기를 나누기에 적당한, 머물기에 알맞은, 풍경을 바라보며 잠시 사색에 빠지기 좋은 공간에 어울리는 음악이어야 한다. 볼륨도 옆 사람과 대화 나누기 어렵지 않은 정도가 적당하지만, 다른 조용한 테이블이 거슬려 이야기를 나눌 수 없을 정도로 작아서는 안 된다. 쉬운 듯하나 결코 쉽지 않은 게 곡 선정과 볼륨의 정도인 것.


그런 음악은 백색소음 같은 역할을 한다. 공간을 빈틈 없이 채우고 분위기를 유지하나, 소음으로 들리지는 않고, 내가 하는 행동에 방해가 되지도 않는다. 들어도 들은 것 같지 않되, 집중을 했을 때는 충분히 듣기 좋은 음악이 흘러야 하는 것. 이 묘한 경계선상에 있는 음악을 골라 플레이리스트에 넣는 건 주인장의 감각이다. 특별한 것 하나 없어 보이는 카페가 은근히 편안하고 집중이 잘 돼 다시 가고싶은 장소라면, 그 이유는 의외로 음악일 가능성이 크다. 카페는 이토록 예민한 공간인 것.


어떤 카페가 되어야 하나. 나는 어떤 공간을 여행자들에게 제공해야 할까. 십 년째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공간을 아예 바꾸기 위해 투자를 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 선 자리에서 큰 변화는 없지만 그럼에도 오가는 손님들이 편안함을 느끼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그때 내가 가장 손쉽게 선택할 수 있는 건 제공하는 적정한 서비스와 있는 듯 없는 듯한 음악이다. 마주하면 친절하나 자리에 앉으면 무얼 하든 간섭하지 않는 무관심의 서비스, 공간을 따뜻하게 채우나 있는 듯 없는 음악. 


읽고 쓰고 사색하다 꾸벅꾸벅 졸기에 퍽 알맞은 시월의 한복판이다. 비수기라 오가는 손님은 많이 줄었다. 손님이 오래 머물러도 신경이 쓰이지 않는 이 계절을 나는 꽤 사랑한다. 손님을 받으며 틈틈이 읽고 쓰기에도 더할 나위 없으니까. 한 테이블은 독서에 푹 빠져 추가주문을 하고, 한 테이블은 메뉴를 다 먹은 뒤 구석 자리로 옮겨 노트북을 꺼낸다. 손님이 편안해 하면 나도 편안하다. 타인과 한 공간에서 편안함을 느낀다는 것, 축복이 아닐까. 나른하게 울려 퍼지는 선율 사이로 가을이 흐른다. 짧디 짧은 가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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