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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우 Apr 06. 2024

조금 늦은 북토크 후기

아직도 글쓰기를 망설이는 분들을 만났다

삶이 바빠 삶이 묻힌다. 글이 너무 쓰고 싶어 대체 뭘 쓰지 궁리를 하다 보니 북토크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북토크 후기도 제대로 쓰지 않았네. 예전 같으면 절대 놓치지 않았을 글을 놓칠 뻔 하다니. 비상상황을 살아내고 있는 게 맞구나 싶어 헛웃음이 나온다.


북토크를 했다. 우리 마을은 작은 시골이지만 책방도 여럿 있고 책방을 겸한 카페도 있는데, 그 중 한 곳에서 감사하게도 북토크를 제안해주셨다. 무명의 작가인데다 이제 막 첫 책을 냈기에, 북토크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않았는데. 제안을 받고 가슴이 콩닥였다. 마치 첫 책 출간 제의를 받은 것처럼.


기쁘기만 한 건 아니었다. 두려움도 함께 몰려왔다. 책을 낼 때는 대체 누가 내 책을 사나 싶었다면, 이번엔 대체 누가 내 북토크에 오나 싶었다. 사실 나는 겁이 많아 좋아하는 작가의 북토크에도 잘 가지 못한다. 책으로 쌓아 올린 작가의 이미지가 실제와 너무 다르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그렇게 놓친 북토크가 많았건만, 내 북토크라니.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사람들을 만나야 할까.


공사다망한 시기에 열리는 것도 적잖은 부담이 되었다. 카페 공간을 다 뜯어내고 글방 겸 작업실로 개조하고 있는데, 매일 신경 쓰고 선택하고 처리해야 할 일이 발생한다. 공사는 공사를 부른다고 일이 커져 돈은 돈대로 나가고, 신경은 신경대로 쓰고 있다. 이 상황에 내가 제대로 북토크를 준비할 수 있을까. 괜히 이상한 말만 지껄이는 건 아닐까.


오만 가지 걱정이 밀려오는 데도 결국 하겠다고 손을 든 건 너무나 귀한 기회였기 때문이다. 책에 다 쓰지 못한 말이 내 안에 고여 있었고, 노트북 화면에 토해내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직접 눈과 눈을 마주치며 감정을 나누는 것도 분명 색다른 경험일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누가 올지, 몇 명이나 올지, 대체 무슨 이야기를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꺼내야 할지도 모르면서, 나는 덜컥 북토크 제안을 수락했다.


날짜가 다가올수록 불안감이 짙어졌다. 드릴과 해머소리를 들으며 오랜만에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열심히 만들었다. 만든 자료를 보며 목소리를 녹음하고 다시 들으며 말의 논리정연함을 따져보았다. 총 두 가지 버전의 북토크를 준비했다. 하나는 글을 관통한 내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버전, 다른 하나는 글 자체에 집중한 버전이었다. 결국 후자를 택한 건, 나를 궁금해 하는 사람보다는 글쓰기에 관심있는 분들이 더 많이 올 것 같다는 예감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이제 막 첫 책을 냈다 보니 나를 알고 내 글을 읽어온 사람은 극소수일 터였다.


원래 긴장을 잘 하지 않는 편인데, 큰 일일수록 오히려 침착해지는 편인데, 북토크를 앞두고는 잔잔한 긴장감이 지속됐다. 긴장을 하더라도, 말을 더듬더라도, 꼭 전하고 싶은 말은 놓치면 안 될 것 같아 따로 정리해 읽어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북토크가 열리는 북카페로 향했다. 말끔히 세팅된 실내와 미소로 반겨주는 주인 부부를 보니, 내 자리가 아닌 곳에 있는 것 같아 멋쩍었다. 내가 주인공인 자리는 결혼식 이후로 처음인 것 같은데.


한 명 두 명 들어오는 분들과 눈을 마주치며 인사를 나눴다. 책을 준비해온 분들도 있지만 현장에서 바로 구매하는 분들도 많았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다. 글쓰기 자체에 관심있는 분들이 주로 신청한 것. 글쓰기를 좋아하는 몇 분의 이웃도 북토크를 찾아왔다. 사실 모르는 사람보다 지인 앞에 서는 게 더 긴장되는 일이었다. 평소에 보여주지 않았던 나의 모습을 보여야 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글쓰기를 망설이는 분들을 만났다. ©️책자국


잠시 카페를 나와 초록초록한 카페 마당을 바라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지인이지만 오늘만은 지인이 아니라고 여기자. 한 명의 청자라고 생각하자. 나는 그저 진심을 담아 나의 이야기를, 나의 메시지를 전하자. 한숨을 돌리고 자리에 앉아 마이크를 들고, 준비한 자료를 함께 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 시간 남짓 나는 무슨 말을 어떻게 시작하고 끝맺었을까. 연습을 한 덕분인지 다행히 막힘 없이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반짝이는 눈망울로 바라보며 경청해주는 분들 덕분에 긴장을 덜고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었다.


가장 긴장되는 순간은 질의응답 시간이었다. 어떤 질문이 나올지 모르는 데다 내가 대답을 잘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다행히 글쓰기에 집중된 질문이 오갔고, 아는 만큼 생각한 만큼 최선을 다해 정성껏 답을 했다. 그렇게 순식간에 두 시간이 흘러갔다. 북토크를 마치고 사인을 해달라며 내 책을 들고 선 사람들을 보면서 손이 덜덜 떨려왔다. 질의응답 시간 못지않게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내가 뭐라고 사인을 한단 말인가.


캘리그라피를 하는 지인 하나가 사인할 때 쓰면 좋을 것 같다며 고운 만년필 하나를 선물해주었다. 민망하지만 그 만년필을 쥐고 사인을 하나씩 해나갔다. 사인이라기보다 이름 석자에 가까웠지만, 이름보다 편지를 쓰는 마음이었지만. 지인의 온기가 담긴 만년필 덕분이었을까, 글쓰기에 대한 애정을 듬뿍 보여주는 사람들 때문이었을까. 바들바들 떨리던 손은 점차 안정을 찾아갔다.


모든 순간들을 통과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싶은 생각에 정신이 아득했다.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멍한 상태는 지속됐다. 아침에 눈을 떠서야 비로소 지난 저녁에 치른 북토크를 조금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적어둔 건 제대로 보지도 않고 내내 떠들었구나. 차마 볼 새가 없었구나.


글쓰기로 삐걱댈 때면, ‘쓴 시간은 배신을 하지 않는다’는 말을 떠올린다. 눈으로 보이지 않지만 내 손가락에, 내 뇌 어딘가에, 쓰는 근육과 감각이 남아있다고 믿으면 마음이 한결 누그러든다. 시간의 법칙은 단지 글쓰기에만 적용되는 건 아니다. 연기든 운동이든 예술이든, 대중 앞에서 무언가를 능숙하게 보여주는 사람들은 그렇게 해내기 위해 반복했던 시간을 지니고 있다.


말하기 역시 다르지 않았다. 쓰고 말하고 생각하고 연습해 보는 것만이 답이다. 연습은 능숙한 화자를 키워내고, 진심은 청자에게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통로를 연다. 쓰는 사람을 돕는 사람으로 살기 위해서는 쓰기만 해서는 안 되고 말도 해야 하기에, 더 피하고 싶지 않았던 북토크였다. 그 결과가 어떻든 현장에서 부딪혀야만 익히고 성장할 수 있는 지점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걸 배운 너무나 값진 시간이었다.


부족한 것 투성인 사람에게 귀한 자리를 내어준 분께도, 낯선 작가를 만나러 기꺼이 와준 분들께도, 마냥 고개 숙여 감사한 시간이 지나갔다. 돌아볼수록 마음이 분주해진다. 그 반짝이던 눈들을, 그 팔딱이던 글에 대한 열망을, 다시 만나고 싶어서. 제자리로 돌아온 나는 사부작 사부작 일을 꾸민다. 이제 본격적으로 글방으로 걸어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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