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모임을 하면서 내가 가장 행복했던 시간은 멤버들을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어쩌다 보니 글쓰기 모임 멤버들은 모두 돌봄노동자였고, 아침부터 부랴부랴 아이들을 기관에 보내고 집안 정리를 하고 간신히 자신도 챙긴 뒤 한 자리에 모이곤 했다.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분주히 아침 시간을 보내면서도 모임 날마다 나는 줄곧 설렘에 흠뻑 젖어 있었다. 우리가 함께 할 농도 짙은 만남에 대한 설렘.
멤버들은 약속 시간보다 10~20분은 예사로 일찍 찾아오곤 했는데, 나도 덩달아 부지런히 모임을 준비해야 했다. 공간을 환기하고, 날에 따라 따뜻하게 혹은 시원하게 공기를 바꾸고, 각자가 쓴 글을 인쇄해 가지런히 테이블에 올려두고, 오늘의 커피를 골라 정성스레 내리기까지. 잔잔한 음악을 틀어두고 커피를 내리며,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곰곰 다시 떠올려 보기도 했다.
그 시간이 참 좋았다. 그 기다림이, 그 기대가, 그 설렘이, 온전히 내가 되는 순간이, 당신 역시 온전히 당신으로만 있어도 되는 그 시간이, 나는 그저 좋았다. 종종 그 기다림의 순간이 좋아 결국 내가 카페를 때려치고 글방을 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는 그 시간을 사랑했다.
어디에서도 차마 꺼내지 못했던 굵직하고 묵직한 이야기들이 흘러 나올 때면, 이런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는 자리가 있어 참 다행이다 싶었다. 질문과 대답이 오가며 서로가 서로를 더 깊게 알아갈 때면 모든 수식어를 제외하고 그저 한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음에 감사했고. 우리는 서로의 글만 만난 게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을, 한 사회의 민낯을, 한 시대의 한계를 함께 만났다.
아슬아슬할 때도 많았다. 평가하는 자리가 즐겁기만 할 리 없다. 물음이 지적처럼 들리거나, 글에 대한 의견이 삶에 대한 평가로 들릴 수도 있는 것. 나는 설렜지만 내내 조마조마했다. 물에 물을 탄 듯 그렇고 그런 이야기만으로 채울 수는 없기에 할 말은 해야 했지만, 태도를 점검하고 단어를 손보는 일이 뒤따랐다. 아무리 준비해도 미숙한 나는 이따금 삐걱댔다. 진심을 다 한다 해도 가닿을 수 없는 진심은 늘 존재했고.
글에 대한 접근 자세가 다르거나, 글을 쓰는 이유가 불분명할 때도 모임은 삐걱댔다. 나에 대한 신뢰가 얕은 경우에는 더 쉽게 관계가 무너지기도 했다. 지난 2년을 돌아 보면, 설렘과 아찔함이 동시에 떠오른다. 그런데도 글방을 하겠다고 나섰으니 설렘이 아찔함을 이겼다고 해야 할까.
글쓰기는 예민한 작업이다. 합평은 더 섬세해야만 하는 일이고. 에세이는 삶을 담기에 자칫 합평을 잘못하면 삶에 대한 지적이 될 수도 있다. 모임은 늘 설레고 기다림은 늘 들떴지만, 합평은 늘 두렵고도 고귀한 시간이었다. 아주 작고 작은 아기고양이를 손바닥 위에 올려두고 젖을 물리는 일처럼, 글쓰기 모임은 너무 세게 쥐어도 다치고 너무 약하게 잡아도 놓치고 마는 예민한 만남이었다.
글방을 열면서 가장 고심한 건 그 적정한 섬세함을 유지하는 일. 글은 다듬고 고치고 또 다듬는 혼자만의 일이라, 언제든 실수를 해도 돌이킬 수가 있는데 말은 달랐다. 한 번 입밖으로 토해낸 말은 사과나 이해가 오가더라도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있을 터였다. 나 역시 다칠 수 있고. 자칫 잘못하면 적을 만들 수도 있다. 배움이 아니라 싸움이 일어날 수도 있는 것.
내가 하려는 일은 마음을 어루만지는 일이기도 하지만, 마음을 다치게도 할 수 있는 일인 것. 그런 일을 감히 내가 하겠다고 자처했으니, 나는 대체 무슨 일을 저지른 걸까. 그럼에도 글방을 내고 왜 함께 쓰자고 하는 걸까. 나를 구원한 글이, 당신을 구원하고, 나아가 세상을 구원할 거라는 나의 믿음은 여전히 유효한가.
섬세한 사람들은 많지만, 섬세한 세상은 아니기에, 나는 어쩌면 이 사회에 조금이라도 더 섬세한 공간을 만들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 역시 글 뿐만 아니라 말도 섬세하게 다듬을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수많은 선입견과 편견을 지닌 말과 글을 함께 인식하고 걸러내고 싶었는지도. 말과 글을 다듬는 동시에 쏟아내면, 언젠가 우리 곁의 세상이 조금은 더 섬세해질 거라는 푸른 꿈을 꾸며.
아직 나는 이 꿈이 실현 가능한 것인지 모른다. 가보지 않은 길이니 눈앞은 온통 희뿌옇기만 하다. 누가 찾아올지도 모르고, 어떤 이야기를 함께 나누게 될지도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글이라는 지푸라기를 동반자를 버팀목을 당신도 만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손을 내민다. 누가 내 손을 기꺼이 잡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