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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우 Apr 17. 2024

독서의 이유를 곱씹는다

어린이도서연구회 강연을 듣고

솔직히 말하자면 좀 자만했던 것 같다. 학교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준 지 이제 겨우 일 년 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면서, 아이들 책 세상에 대한 이해도 깊지 않으면서. 자만의 이유는 아이들을 만나는 것에, 아이들이 질문을 던지는 것에, 두려움이 없는 내 기질 때문이기도 했다. 작년의 경우 책을 읽고 난 뒤 쓰기 활동도 함께 했는데, 그 과정이 퍽 괜찮았다고 스스로가 좀 우쭐했던 것.     


그런 나의 생각은 두 시간만에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타인도 아니고 바로 내가 주최한 강연에서 말이다. 나와 달리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 자체에 부담을 느끼는 보호자들이 많았다. 아이들과 어떻게 대화를 나눠야 할지 모르겠다, 어떤 후속 활동을 하면 좋을까, 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 그들의 부담을 덜고자 진행한 어린이도서연구회(어도연) 강연이었다.     


내가 강연을 의뢰하면서 질문한 건 크게 네 가지였다. ‘어떤 책을 고를 것인가’, ‘책을 읽은 뒤 아이들과 어떻게 대화를 나눌 것인가’, ‘어떤 후속 활동을 함께 하면 좋을까’, ‘그림책에서 줄글책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동안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면서, 또 가정에서 내 아이들의 독서습관을 지켜보면서, 갖고 있었던 의문들을 녹인 질문이었다.    

  

어도연 강사는 그림책, 동시, 동화 등의 가치를 짚으면서 아이들의 시선에서 재미있는 책을 강조했다. 어른들이 보기에 별 내용 없어 보이는 책이라 해도, 아이들에게는 의미가 있고 재미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어린이 도서를 바라보는 시선은 어른 책을 바라보는 시선과는 달라야 했다. 올바른 시선을 가지려면 더 많이 읽어야 하고, 어린이 도서를 하나의 작품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었다.    

 

책을 읽은 뒤 어떤 대화와 후속 활동을 하면 좋을지에 대한 질문에는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를 강조했다. 읽고 나서 아무 말 하지 않는 것도 독자가 가진 하나의 권리라는 것. 뭔가를 말하고 쓰고 만들며 아이들의 감상을 어떻게든 결과물로 남기려는 건 어른들의 욕심이라고 강조했다. 판단하고 평가하기 위해 책을 읽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도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충분히 줘야 한다,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좋은 책을 골라야 한다는 압박감, 아이들의 반응을 어떻게든 이끌어 내야 한다는 조바심, 책을 읽어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편견에 스스로가 사로잡혀 있었다는 사실을 차마 부정할 수가 없었다.    

  

그림책에서 줄글책으로 넘어가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읽어주는 것. 잠자리에 들기 전에 책을 읽는 게 당연한 시기가 있었다. 몇 달 전부터는 게을러져 매일 읽어주지는 않고 있다. 우리집 거실에는 늘 학습만화가 뒹구는데 아이들이 아무 때나 책을 보기에 내가 꼭 읽어줘야 하는 시기는 넘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학습만화를 편애하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줄글책의 재미를 알려줄까 고민이었는데, 답은 하나였다. 읽어주는 것, 함께 읽고 서로의 느낌을 공유하는 것.      


작년에 앤드루 클레먼츠의 <프린들 주세요>를 읽어주고 나서, 한동안 아이는 줄글책을 스스로 찾아 읽었다. 첫째는 <프린들 주세요>에 흠뻑 빠져들어 혼자 다시 여러 번 읽기도 했다. 그걸 지켜봤으면서도 나는 읽어주지는 않고 아이가 스스로 읽기만을 바라고 있었던 것. 아이가 글자를 알더라도, 조금 귀찮더라도, 아이와 함께 호흡하며 하나의 이야기에 빨려 들어가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순간인지를 돌아본다.    

  

책이 무엇인지, 책을 왜 읽어야 하는지, 나는 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려 하는지를 곱씹는다. 그러고 보면 나 자신조차 책을 읽는 게 한동안 일로 여겨졌다. 학교에서 진행하는 독서모임에서 읽어야 하는 책에, 내가 읽고 싶어 들이거나 빌린 책, 마음 속에 부채처럼 떠안고 있는 책까지. 쓰는 사람으로 살자니 남들보다 더 많이 잘 읽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나도 모르게 짓눌려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요즘 통 책이 읽히지 않았던 이유가. 책이 언제부터 내게 쓰기 위해 읽는 것이 되었나. 책은 내 마음이 쉴 곳이자 궁극의 재미가 담긴 매체가 아니었나. 그런 본연의 의미를 저버리고 나는 무엇을 어떻게 읽으려 했던 걸까. 아이들에게 잘 읽어주기 위해 신청한 강연을 들여다 보며 나는 나의 독서를 점검한다. 어디가 꼬이고 어디가 막힌 걸까. 한동안 공사로 정신이 없어 책이 읽히지 않는다고만 생각해왔는데, 결국 답은 근원에 있었다. 난독은 독서 본연의 의미를 저버린 결과였다.      


내일은 아이들에게 올해 처음으로 책을 읽어주는 날이다. 이번에 내가 맡은 학년은 4학년. 학교에 있는 학년들 중에 가장 거리감이 느껴지는 학년이다. 아는 아이가 적고, 아이들 수는 많다. 더 많이 읽어주기보다 더 다양한 활동을 하기보다, 아이들 한 명 한 명과 더 눈을 맞추는 시간으로 만들어 가야겠다고 다짐한다. 아이들에게 읽는 기쁨을 전하는 동시에, 나 자신도 잃어버린 기쁨을 찾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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