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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우 Nov 06. 2023

삶은 그리고 세상은 모두 혼돈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책 리뷰입니다. 직접 책을 읽고 난 뒤에 읽으시길 추천합니다. 이 책은 아무 정보 없이 끝까지 읽어야만, 그 진가를 오롯이 마주할 수 있는 책입니다.




베스트셀러를 등한시해왔다. 슬쩍 보기는 하지만, 그 자리에 놓여 있다 해서 내 선택의 기준이 되지는 못한다는 철저한 벽이 내 안에 존재했다. 베스트셀러가 베스트셀러인 이유는 베스트셀러이기 때문이니까.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책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던 건 보기 드문 과학 베스트셀러였기 때문이었다. 과학책이라면 일단 펼쳐보는 관성은 이상하게 이 책에만은 작용하지 않았다.


대체 무슨 책인지 알 수가 없다는 점도 이 책을 선뜻 열지 못한 이유였다. 에세이이자 평전이자 과학교양서라는데, 한 책에서 이 모든 걸 구현하는 게 가능한가. 이도저도 아닌 건 아닐까. 그렇게 나는 점점 이 책과 멀어져갔다. 궁금하면 미리 내용을 알아보고 리뷰도 찾아보는 편인데, 이 책은 찾아볼 정도로 궁금증이 일지 않았다. 이런 무관심이 신의 한 수가 될 줄은, 그 때는 차마 몰랐지만.   


그렇게 거리를 두다 이 책을 마주하게 된 건, 아이러니하게도 <자연에 이름 붙이기> 책을 읽고 싶은 욕구 때문이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책을 존재하게 한 책이라 불리는 <자연에 이름 붙이기>. 원작의 출판 순서와는 반대 순서로 우리나라에 출판됐으니, <자연에 이름 붙이기>를 먼저 읽어야 할 터였다. 두 권을 나란히 빌려와 무엇을 먼저 읽을까 고민을 하다, 서문을 먼저 읽었다. 서문을 읽자마자 예상치 못하게 곧바로 본문으로 직행한 책은 다름 아닌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였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지음, 곰출판


완전한 백지 상태로 책을 읽기는 처음이었다. 책 제목과 과학 관련한 논픽션이라는 것 정도가 내가 아는 전부였다. 이 책은 왜 그리 많이 팔렸을까. 책을 산 사람들이 모두 끝까지 읽었을까. 베스트셀러가 될 만큼 정말 괜찮은 책일까. 책 앞쪽에는 왜이리 많은 찬사가 담긴 것일까. 이런 찬사가 나올 만큼 좋은 책일까. 의구심 가득한 마음으로 첫 장을 펼친 나는 마치 무언가에 홀린듯 집중해 책을 읽어내려갔다.


책을 관통하는 한 명의 과학자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다. 어류학자이자 우생학자다. 저자는 이 사람의 어린 시절부터 차근차근 이야기를 해나간다. 과학자지만 우생학자라는 부분이 마음에 걸렸다.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을 잘못 해석하고 받아들인, 과학계 최악의 학문이 바로 우생학 아닌가.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역사적 과오를 저질렀나. 그런 학자의 삶을 좇는다고? 대체 왜? 그런 책이 베스트셀러라고? 대체 왜? 시작부터 혼돈 속으로 빠져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책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마치 추리소설처럼 저자가 바라보는 조던의 모습도 변해간다. 모든 별의 이름을 외우려 노력하고, 길가의 풀들에 관심을 기울이던 한 소년이 어떻게 우생학을 맹신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저자는 삶의 모든 걸 잃은 순간에도 결코 절망하지 않고 다시 앞으로 달려가는 조던의 모습에서 무언가를 배우려 하지만, 결국 자신에 대한 너무나 곧은 신념으로 인해 그릇된 판단을 내리는 비참한 모습까지 마주하고 만다.


너무 어린 나이에 삶에는 사실 의미가 없다는 아빠의 말을 전해듣고, 그럼에도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으며 방황하고 망설였던 저자의 삶까지 겹치면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장르를 허물고 연결하는 보기 드문 수작으로 완성되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눈에 눈물이 고이면서 감정이 북받쳤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 개인의 이야기이자 모두의 이야기이며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자 모든 생물에 대한 이야기, 에세이이자 과학책이자 평전이면서 동시에 철학을 담은 책.


책을 하나로 꿰뚫는 단어는 혼돈이었고, 이 책은 구성과 내용이 혼돈이라는 단어 아래 하나로 조응하는 놀라운 방식으로 쓰여 있었다. 혼란 속에서도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유려한 문장에 실어 내달리는 작가의 뚝심이 빛났다. 흔들리는 인간의 나약함, 그럼에도 그 속에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찾아내고 결국 자신의 삶이 무엇인지를 발견해내는 인간의 위대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의미가 없지만 의미가 있고, 물고기는 없지만 물고기는 있는 이 모순된 삶과 세상 속에서 우리가 버티는 방법은 어쩌면 단 하나, 너무 단단하지 말 것. 어떤 조류에도 유유히 헤엄쳐 앞으로 나아가는, 물고기의 탈을 쓰고 있지만 그 속에 무엇이 자리하고 있을지 결코 알 수 없는, 물고기의 존재처럼. 사실을 가리는 횃불이지만, 오독으로 인해 무자비한 파괴를 일으킬 수도 있는 도구가 과학인 것처럼.


책을 덮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말랑하고 정돈되지 않은 혼돈의 상태로 이 글을 쓴다. 꽉 막혀 버린 책 작업을 뚫어줄 책일까 싶어 이것저것 들춰보다 마주한 책 한 권에서, 나는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만난다. 이런 책들이 이미 있는데, 나는 왜 굳이 나의 책을 쓰는가. 그럼에도 나는 또 내가 추구하는 나만의 의미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마주한다. 감동을 내려두고 혼돈의 숲으로 다시 걸어 들어간다. 이전의 혼돈과는 조금 다른 질감의 혼돈이길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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