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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컷 길냥이의 삶

by 박순우

삼 년 전부터 마당에 찾아오는 길냥이가 있다. 아기 때부터였는데, 엄마와 나란히 찾아와 주는 밥을 먹고 낮잠을 자다 가곤 했다. 독립을 하고부터는 엄마는 잘 오지 않고 아기 냥이만 찾아온다. 아기라 하기에 이미 몸이 다 커버린 삼색이 고양이. 수줍음이 많지만 밥 때가 되면 무심한듯 마당으로 찾아오는 녀석. 녀석의 이름을 붙여주었다. 반반이. 이마 위로 선명하게 반으로 나뉘어진 색깔 때문에 그렇게 이름을 지어주었다. 반반이는 날이 갈수록 이름처럼 반반해져갔다.


반반이는 지난 삼 년동안 여섯 차례쯤 임신과 출산을 반복했다. 수컷들과 어울려 다닌다 싶다가도 다시 혼자가 되면 어김없이 마당으로 돌아왔다. 평소 없던 식탐을 보이기 시작하면 곧 배가 불러왔다. 제법 불렀다 싶으면 며칠간 보이지 않았다. 어딘가에서 출산을 하나, 기다리다 보면 잔뜩 헬쓱해진 모습으로 찾아왔다. 밥을 건네면 조금 먹다가도 이내 지친다는 듯 잠을 자기 일쑤였다. 출산과 육아에 잔뜩 지쳐 있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쉬다가 다시 새끼들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어딘가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그렇게 한 달 남짓 시간이 흐르면 반반이는 다시 마당에서 살다시피 한다. 아마 아기들을 독립시켰겠지. 우리 동네에는 반반이의 새끼로 추정되는 몇몇 길냥이들이 있다. 그렇게 다시 혼자가 된 반반이는 출산 후 초췌한 모습에서 말끔한 모습으로 서서히 변모한다. 그러다 또 발정기가 오면 다시 수컷들과 어울려 다닌다. 한동안 그러더니 요즘은 다시 식탐이 많아졌다. 또 임신인가보다 짐작을 한다.


암컷 길냥이의 삶은 이렇게 끝없는 임신과 출산의 반복이다. 유전자를 퍼뜨리는 것이 생물의 본능이라고는 하나 삼 년새 일곱번쯤 임신한 반반이를 보면서 마음이 편치 않다. 쉼없이 일생을 번식을 위해서만 작동되는 유전자가 너무 잔인하게 느껴진다. 고양이는 인간과 달리 폐경이 없다고 한다. 동물 중에 폐경이 있는 동물은 모계사회인 코끼리나 우리 인간 정도에 그친다. 길냥이의 평균 수명은 오 년쯤. 반반이는 어쩌면 죽을 때까지 임신과 출산만 반복하게 될지도 모른다.


삼 년이라는 시간 동안 반반이는 많이 달라졌다. 털에 흐르던 윤기가 사라졌고 반짝이던 눈빛이 흐려졌다. 첫 출산과는 달리 점점 회복되는 속도도 더뎌진다. 야생에서의 생활로 자주 여기저기 상처를 입는다. 힘든 출산을 마친 뒤에는 항문 주변이 엉망이 되어 돌아온다. 요즘은 마당에 새로 터를 잡은 덩치 큰 수컷 녀석에 밀려 한쪽 구석만 조용히 오간다.


나른한 봄날의 오후, 내 곁에서 잠이 든 반반이를 바라보면서 고양이에게도 암컷의 삶은 녹록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할 수만 있다면 녀석에게 피임을 가르쳐주고 싶다. 수컷들과 신나게 놀기만 하며 인생을 탕진하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이제 그만큼 했으면 됐으니 이제 너의 인생을 살라고 말해주고 싶다.


반반이를 바라보며 여자로 태어나 피임도구가 개발되고, 그나마 여성의 인권이 신장되어 가는 시대에 태어났음에 안도한다. 피임도구가 여성을 해방시켰다는 말은 과언이 아니다. 피임도구가 없던 시절 우리 엄마들의 삶은 반반이의 삶과 얼마나 달랐을까.


그럼에도 여전히 출산 후 여성들이 설 자리는 좁기만 하다. 주변의 친구들은 아이가 어느 정도 크고 난 뒤 하나 둘 자신의 일을 찾아나선다. 한 친구는 재취업에 실패한 뒤 결국 온라인에 작은 스토어를 오픈했다. 아직 판매가 저조하지만 친구는 말한다. 살아있는 것 같아. 내가 쓸모있는 인간이 된 것 같아. 친구의 말에 눈물이 핑 돌았다.


엄마로만 살아가기에 우리는 분명 아직 할 수 있는 게 많이 남아있다. 분명 엄마로만 사는 것도 가치있는 일이지만, 그럼에도 거기에 더해 홀로 곧게 서서 오롯이 나 자신으로 세상을 맞이하는 보람도 느끼고 싶다. 존재의 이유를 엄마가 아닌 나 자신에게서 찾아내고 싶다. 그렇게 조금씩 육아를 내려놓고 나로 설 준비를 한다.


친구를 비롯해 다시 출발선에 서있는 많은 엄마들을 응원한다. 우리에겐 양질의 일자리는 아닐지라도 그럼에도 또 세상 속에서 우리의 자리를 찾아가고픈 욕망이 있다. 적은 돈이라도 내 능력으로 다시 벌어보고 싶은 소망이 있다. 내가 글을 놓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글을 쓰면서 못내 반반이에게 미안하다. 녀석은 부쩍 잠이 많아졌다. 임신을 하면 고양이도 우리처럼 잠이 많아진다. 반반아 다음 생에는 꼭 인간으로 태어나. 그때는 엄마로 살지 않아도 돼. 너로 살아. 꼭 그랬으면 좋겠어. 그것도 충분한 삶이야.



윤기 흐르던 시절의 반반이. 건강해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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