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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락 맞아 죽을 수도 있는 시대

by 박순우

2022/08/09 얼룩소




생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릴 때 죽음의 원인이 벼락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아마 80억에 가까운 인간 중에 아주 극소수에 해당하지 않을까. 하지만 조만간 꽤 많은 사람들이 벼락에 맞아 죽을까봐 염려하는 시대가 올 듯하다. 아니 벌써 시작됐는지도 모르겠다.

지난 5일 오후 8시쯤 쿠바 수도 하바나에서 동쪽으로 100㎞ 떨어진 항구도시 마탄사스 석유 저장단지의 한 탱크에 벼락이 내리꽂혔다. 하필 석유 탱크에 벼락이 떨어지다니. 이 드라마 같은 일은 실제로 벌어져 2만5000㎥의 원유가 저장돼 있던 탱크는 대형 폭발을 일으켰고 불길은 다음 날 바로 옆 탱크로까지 옮겨붙었다. 불길은 좀 잡히는 듯하더니 다시 옆 탱크로 옮겨 붙어 8개의 탱크 가운데 3개가 불에 타 붕괴된 상황이다. 이로 인해 1명이 숨졌으며, 진화 작업을 벌이던 소방관 17명이 실종됐다. 121명이 다쳐 36명이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그중 5명은 위독한 상태라고 한다.


미국 워싱턴DC에서도 벼락으로 인한 인명 피해가 있었다. 지난 4일 오후 미국 백악관 인근 라파예트 공원에 벼락이 떨어져 3명이 숨지고 1명이 중태에 빠졌다. 공원을 걷다 벼락을 맞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다면 아마 산책하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이 역시 날벼락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벼락은 '공중에 있는 전기와 땅 위의 물체에 흐르는 전기와의 사이에서 방전으로 일어나는 현상'을 뜻한다. 벼락은 발생이 드문 일이기에, 비유적으로 ‘어떤 일이 매우 갑작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을 뜻하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하지만 기후 온난화 시대에 이 숨은 뜻은 바뀔지도 모르겠다. 기후변화가 벼락 발생 횟수를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기후 온난화로 대기 중에 열이 많아지면 그만큼 더 많은 습기가 공기로 유입된다. 이때 급격한 상승기류가 생길 수 있다. 이로 인해 대기에서 방전이 자주 일어날 수 있다고 한다. 2014년 사이언스 저널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온난화로 기온이 1도 오를 때마다 번개 횟수는 12% 늘어날 수 있다. 미국에서는 이번 세기 번개가 치는 횟수가 50% 증가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참으로 갑작스런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이처럼 기후 온난화로 인해 일어나는 기후 변화에는 폭염, 폭우 뿐만 아니라 잦은 번개와 낙뢰도 포함된다. 기온이 높아지면 산불이 발생할 위험도 증가하는데 낙뢰가 증가하는 것 역시 산불을 더 자주 발생시킬 수 있다. 산불로 울창한 숲이 파괴되면 기후 온난화는 더 급격히 진행된다.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처럼 기후 온난화는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현재 진행중인 지금 우리의 일이다.


지금 당장 중부지방에는 80년만인지, 100년만인지도 모를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져 곳곳이 침수되고 인명피해까지 발생한 상황이다. 반면 남부지방은 비가 좀 왔으면 싶을 만큼 폭염이 지속되고 있다. 우리나라만 이런 게 아니다. 지구에서 가장 뜨겁고 메마른 사막 계곡인 미국 데스밸리 공원에는 지난 5일 371mm에 달하는 폭우가 내렸다. 이 지역 1년치 강수량의 75%가 불과 두 시간만에 쏟아진 것이다. 비가 거의 오지 않는 지역인 라스베이거스에도 폭우가 쏟아져 유명 카지노가 침수됐고, 켄터키주 동부에서는 홍수로 인한 사망자가 37명까지 늘어난 상황이다.


이같은 기상이변은 식량 문제와도 직결된다.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달해도 날씨의 영향으로 작물 수확량은 크게 좌지우지 된다. 그리고 우리 인간에게 먹고 사는 건 여전히 가장 중요한 문제다.


유럽연합(EU)은 올해 밀 수확량이 지난해보다 470만t(톤) 감소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주요 밀 생산지역인 프랑스 남동부에는 지난 3-5월 극심한 가뭄이 닥쳤고 6월엔 폭우가 내렸다. 이탈리아도 40도에 가까운 이상 고온이 이어지면서 토마토 등 주요 작물 수확량이 감소하고 있다. 이탈리아 작물 생산량 역시 기존 추정치인 11% 이상 떨어질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인도는 올 봄 강우량이 평년보다 71% 감소했고, 50도에 육박하는 폭염이 찾아왔다. 인도 최대 곡창지대인 펀자브 지역의 밀 수확량은 15%나 감소했다. 인도 정부는 지난 5월부터 밀수출을 사실상 금지한 상태다. 우리나라에 내리고 있는 이 비도 그치면 식재료 가격은 또 얼마나 치솟게 될지 알 수가 없다.


날씨는 인간이 지구에 뿌리 내린 시점부터 인간에게 늘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인류가 농사를 시작한 1만 년 전 지구는 점점 따뜻해지고 있었다. 그 이전 수십만 년 동안 인간이 농사를 짓지 못해 안 지은 게 아니라 기후 탓에 지을 수 없었던 거라고 많은 과학자들은 말한다. 오랜 빙하기를 거치면서 농사를 지을 수 없었던 것이다.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각종 냉난방시설이 발전해 더위와 추위가 어느 정도 해결된다 하더라도 인간은 날씨의 영향을 여전히 많이 받는다. 당장 우리도 해가 반짝이는 아침이 구름 낀 우중충한 아침보다 몸을 일으키기 쉽지 않은가.


인간이 아무리 공고한 건물을 짓고 메가시티급 도시를 건설한다해도 지구는 돌고 해는 뜨고 진다. 대기는 태양으로부터 인간을 지켜주는 옷이기도 하지만, 언제든 재앙을 내릴 수도 있는 변화무쌍한 옷이기도 하다. 기후위기에 가장 고통받는 피해자가 상대적으로 가진 게 적은 사람이라는 점은 뼈아프다. 당장 서울 지역에 내린 폭우로 반지하에 살던 가족 세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들 가운데 발달장애인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지하에 사는 장애인 가족, 피해는 이처럼 가장 낮은 곳 가장 약한 곳에서 시작된다. 지구 온난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나라와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지역이 일치하지 않는 것 역시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세상은 언제나 불공평하다. 공평은 인간의 손에 의해서만 부분적으로 조금씩 실현 가능해질 뿐이다.


안토니오 쿠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달 18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페터스베르크 기후회담에 참석한 40여개국 장관들에게 영상 메시지로 이렇게 말했다.


"인류의 절반이 홍수와 가뭄, 극심한 폭풍, 산불의 위험 지대에 있다. 어떤 국가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화석 연료에 중독돼 있다. 아프리카와 남아시아, 중남미 국가에선 극단적인 기상 현상으로 사망할 가능성이 15배나 더 높다. 우리에겐 선택권이 있다. 집단 행동을 할 것인지, 집단 자살을 할 것인지, 그것은 우리의 손에 달렸다."


전세계 주요 에너지 회사들이 올해 1분기에 거둔 이익은 모두 합치면 1천억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한쪽에서는 가뭄과 산불, 폭우와 폭염 등 기상이변으로 피해를 입고 있는데 어딘가에선 여전히 문제를 나몰라라 하고 눈앞의 이익에만 몰두하고 있다. 인간의 괴물 같은 탐욕이 가난하고 취약한 사람들을 고통에 빠뜨리고 있다. 집단 자살이라는 거친 단어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위기상황이다.

이제 그만 올 때도 된 것 같은데 비는 여전히 쏟아지고 있다. 허공만 바라보며 하늘도 무심하다 한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우리는 이제 대체 무얼 해야 하는가. 머리를 맞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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