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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진짜 흙으로 돌아가는 법

by 박순우

2022/08/22 얼룩소




인간의 장례방식 중 하나인 매장은 인간이 죽어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매장한 시신이 실제 흙이 되려면 얼만큼의 시간이 필요할까. 땅의 상태에 따라 달라지는데 습한 경우 박테리아 활동이 활발해 한 달 내 분해되기도 하지만, 건조한 땅의 경우 수 년 동안 미라 상태로 있기도 하다.


최근 가장 많이 선택하는 방식은 화장이다. 매장에 비해 비용이 저렴하고 절차도 간소하다. 하지만 화장하는 과정에서 많은 에너지를 사용해야 하고 탄소 배출량도 상당하다. 매장과 화장의 의미는 ‘자연으로 돌아가자’이지만 실제로는 별로 환경 친화적이지 않은 방법인 것이다.


인간 퇴비 장례법


인간이 죽어서 진짜 흙이 되는 방법을 연구한 미국의 장례회사가 있다. 시신을 거름으로 만드는 이른바 ‘인간 퇴비 장례법’이다. 토양학자인 린 카펜터보그스 미국 워싱턴대 교수는 시신 6구를 기증받아 시신이 퇴비로 바뀌는 과정을 약 4년 간 연구해 발표했다.


연구진은 먼저 밀폐된 공간에서 시신을 흙과 목재와 함께 섞었다. 그런 다음 탄소와 질소 비중을 30 대 1로 맞췄다. 이는 미생물이 원활하게 활동하는 토양과 유사한 환경이다. 시신은 수분과 단백질, 질소 함량이 높고 상대적으로 탄소가 부족하기 때문에 탄소를 추가하는 것이다. 미생물의 활동이 활발해지면 시신은 토양과 함께 분해되기 시작한다.


연구진은 이 과정에서 온도가 일정 기간 55℃까지 도달한다는 점을 알아냈다. 이런 높은 온도 덕분에 시신 안에 있던 질병을 일으키는 대부분의 유기체나 의약품들이 파괴됐다. 때문에 질병으로 사망한 사람도 퇴비장을 치를 수 있다. 하지만 전염성이 높은 에볼라 바이러스나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 등으로 사망한 사람 등은 퇴비장 서비스에서 제외된다고 한다.


이 방식을 이용하면 4주 정도면 인간은 진짜 흙이 된다. 이때 사용하는 에너지는 화장의 8분의 1 정도에 그친다. 시신 1구당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화장에 비해 1t가량 줄어든다. 시신이 퇴비로 변하면 유가족들은 이를 받아 수목 아래에 묻거나 기부할 수 있다. 묘지로 이동할 필요도 없고 관도 필요하지 않아 그야말로 진짜 친환경적인 장례가 가능하다.


퇴비장이 가능한 곳


미국의 워싱턴주 의회는 퇴비 장례를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지난해부터 워싱턴주에서는 세계 최초로 ‘인간 퇴비 장례’를 치를 수 있다. 기후 위기로 환경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퇴비장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남북전쟁 당시 전사한 병사의 시신을 방부처리하던 방식이 여전히 장례 문화로 남아 땅을 오염시키는 주범이 되었다. 묘지 주변 토양이 황폐해지고 유해 물질이 검출되기도 한다. 퇴비장이 많은 주에서 허용되면 이런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종교계의 반발


장례 방식은 종교에 따르는 경우가 많은데 당장 종교계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워싱턴주의 천주교계는 ‘인간을 존중하지 않는 행위’라는 편지를 주 상원에 보내는 등 강하게 반발했다. 죽은 인간의 존엄성도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시신을 일부러 썩게 하는 건 존엄성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인간의 존엄성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인류 최초의 건축물은 무덤이다. 장례는 인간이 가장 먼저 치른 의식 행위였다. 그만큼 죽음은 문명을 건설하기 이전부터 인류에게 특별한 의미였다. 빈부에 상관 없이 모든 살아있는 것은 언젠가 죽는다. 세상에서 가장 공평한 단 한 가지가 죽음인지도 모르겠다.


신앙은 죽음을 다루기 위해 태동했다고 볼 수도 있다. 죽음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인간에게는 신앙이 필요했을 것이다. 신앙에 따른 장례는 시신을 잘 처리하고, 죽음을 이해하며, 상실의 아픔을 이기기 위한 중요한 절차였을 것이다. 이 같은 이유로 장례는 시대나 종교에 따라 형식도 절차도 의미도 변해왔다.


인간 퇴비 장례는 누군가에게는 진짜 흙으로 돌아갈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일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장례 방식일지도 모른다. 새로운 것을 흡수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그 새로움이 오랜 세월 정착된 문화에 대한 것이라면 문제는 더욱 난해해진다.


그럼에도 전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기후위기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바뀌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공동 대응을 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최근 들어 기후위기를 극복하고자 음식, 습관 등 생활방식을 바꾸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장례를 종교에 따른 엄숙한 행사로 볼 수도 있지만,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생활방식이라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것 역시 바꿀 수 있는 게 아닐까.


죽은 인간이 진짜 흙으로 돌아가는 장례가 인간의 존엄성을 정말 훼손할까. 존엄성을 인간에게만 한정할 때 다른 동물을 포함한 자연의 존엄함은 무시될 수 있다. 인간이 자연의 일부라는 걸 받아들이고 그에 맞게 생활방식을 바꿔나갈 때 오히려 인간의 존엄성이 실현된다고 말 할 수 있지 않을까. 지구온도 1.5℃ 상승을 막을 수 있는 시간은 이제 고작 8년 남았다. 우리는 어디까지 바꿔야 할까.




참고한 기사와 책

https://www.bbc.com/news/science-environment-51389084.amp

<장례의 역사> 박태호 저, 서해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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