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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한 다수가 세상을 바꿀지도

by 박순우

2022/08/17 얼룩소


마취도 없이 이빨이 뽑힌다.
발이 묶인 채 거꾸로 매달려 목이 잘린다.
태어나자마자 젖 한번 물어보지 못하고 죽는다.
전기충격기를 사용했지만 기절하지 않아 산 채로 해체된다.


주어를 빼고 써본 문장이다. 주어 자리에 사람을 넣고 다시 읽어보면 마치 스릴러나 공포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이번에는 주어 자리에 반려동물인 개나 고양이를 넣어본다. 미간을 찌푸리고 혀를 차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얼마나 잔인한 인간이면 사랑스런 개나 고양이를 저렇게 다루느냐며 동물학대죄로 당장 신고할지도 모르겠다.

결론부터 말해보자. 저런 일을 저질러 누군가 이를 알고 신고를 한다 해도 아무도 잡혀가지 않는다. 심지어 합법이다. 대체 어떤 나라에 그런 법이 있느냐고 삿대질이나 쌍욕을 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주어를 듣는다면 모두들 입을 다물게 될 것이다. 우리가 늘 식탁에서 마주하는 동물들이 바로 그 주어이기 때문이다. 이제 주어를 넣어 문장을 다시 써보자.

새끼 돼지는 마취도 없이 이빨이 뽑힌다.
닭은 발이 묶인 채 거꾸로 매달려 목이 잘린다.
수송아지는 태어나자마자 젖 한번 물어보지 못하고 죽는다.
소는 전기충격기를 사용했지만 기절하지 않아 산 채로 해체된다.


하루에 도축되는 가축의 수는 닭이 283만7377, 오리가 13만5015, 돼지는 5만364, 소는 2559마리에 이른다. 일 년이 아니다. 하루다. 전세계적으로는 인구수의 약 10배에 이르는 700억 마리의 동물이 매년 도살되고 있다. 인간의 입으로 들어가기 위해.


개체수만 보면 가축들은 인간에게 선택 당해 어마어마한 종의 번영을 누리고 있는 것만 같다. 하지만 이들의 수명은 지극히 짧다. 인간은 다 자란 가축들에게 더 이상 먹이를 주지 않는다. 몸집이 다 크면 이들의 삶은 끝이 난다. 자연수명은 선택받은 극소수의 가축만이 누릴 수 있다. 이들의 현재는 행운일까, 불행일까.


고기는 맛있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 고기를 먹는다. 당장 치맥을 끊기 어렵고 삼겹살을 포기할 수가 없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비건을 '지향'하지만, 완전한 비건으로 살지는 못하고 있다. 채식을 주로 하다가도 어느 순간 체력이 떨어지면 제일 먼저 찾게 되는 건 고기류다. 그럼에도 나는 스스로를 '비건 지향'이라고 말한다. 동물 가죽이나 털로 만든 가공품을 사지 않고, 고기류를 자주 먹지 않으려 노력한다. 우유, 치즈 등 유제품의 소비를 점차 줄여가고 있다.


누군가는 나를 보고 무늬만 비건 지향이라며 비판할지도 모른다. 고기, 생선, 유제품 등을 다 먹는데 대체 무슨 낯짝으로 비건을 운운하냐며 따져 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의문이 든다. 그 어떤 동물성 제품도 섭취하지 않고 완벽하게 비건을 실천하는 이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비건에도 단계가 있다. 완벽하진 않아도 각자에게 맞는 방식으로 채식을 하는 이들이 있다. 누군가는 붉은 고기만 먹지 않고, 누군가는 생선도 먹지 않는다. 누군가는 우유는 먹지만 달걀은 먹지 않을 수도 있다. 이들의 노력은 물거품인 걸까.


채식의 단계, 출처 interbiz


소수의 완벽한 비건이 사는 사회와 다수의 소심한 비건 지향이 사는 사회가 있다고 가정하자. 어떤 사회의 탄소 배출량이 더 빨리 감소할까. 어떤 사회의 공장형 축산업이 더 빨리 쇠퇴할까. 완벽하지 않다면 비건이라는 단어조차 쓰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모 아니면 도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이들에게 개와 걸과 윷은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선택지인 것일까.


나는 아직 가끔 육고기도 먹는 플렉시테리언이지만, 죽기 전까지 완벽한 비건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나는 분명 비건 지향이다. 고기를 가끔 먹으면서도 나는 태어나 풀밭 한번 밟아보지 못하고 죽어간 동물들을 떠올린다. 의식적으로 지금 이순간에도 어딘가에서는 괴성을 내지르며 목이 잘려나가는 동물들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려 한다. 원치 않는 임신을 하고 기계처럼 젖을 짜며 태어나자마자 쓸모 없는 존재라며 죽어나가는 생명들을 생각한다. 이런 내 생각이 내 삶을 결국 비건으로 향하게 할 것이라 믿는다.


당장 완벽한 비건은 어렵더라도, 우리 모두는 당장 비건 지향을 실천할 수는 있다. 완벽하지 않아도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우리는 기후 위기를 늦출 수 있다. 아직도 비건이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당신도 나처럼 비건 지향부터 돼보는 건 어떨까. 소심한 선택이 세상을 바꿀지도 모르니 말이다. 참, 근육빵빵 고릴라도 사실 비건이다. 성격은 소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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