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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돌은 꼭 따라야하는 전통일까

by 박순우

2022/08/28 얼룩소



한국 전통의 난방 방식, 온돌


온돌은 열기가 방바닥을 지나가도록 해 방 전체를 데우는 한국 전통의 난방 방식이다. 온돌은 무려 기원전 4세기부터 한반도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구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의 유적에서 이미 온돌의 원형으로 추정되는 형태가 발견되었다. 고구려와 백제를 거쳐 고려 시대에 이르러서는 현재 알려진 온돌 구조가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

한옥의 아궁이에 불을 떼면 그 열기는 방바닥에 깔린 구들장 밑을 지나가게 된다. 온돌은 음식을 하기 위해 지핀 불의 열기를 방의 난방에도 사용하는 것으로, 최소한의 자원으로 요리와 난방 두 가지를 할 수 있는 효율적인 방식이다. 온돌은 보일러 시스템을 만나 온수 파이프로 바닥을 데우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열기가 온수로 바뀌었지만, 바닥을 따뜻하게 해 방 전체를 덥히는 방식은 여전히 그대로다.

난방 방식은 그대로지만 생활 모습은 크게 바뀌었다. 서양식 입식 문화가 유입됐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인들에게도 온돌은 여전히 효율적인 최선의 방식일까.


이중 난방 장치가 필요해


오늘날 한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집안 풍경을 살펴보자.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식탁에서 밥을 먹으며 침대에 누워 잠을 잔다. 여전히 온돌이라는 바닥 난방을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바닥 생활을 하지 않는다. 바닥 생활은 관절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나이가 들수록 무릎, 허리 등에 무리가 간다. 그렇다보니 소파, 식탁, 침대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다시 방바닥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수십 년 전만 해도 한국인들의 주 생활 공간은 방바닥이었다. 온돌 때문에 TV를 보든, 음식을 하든, 밥을 먹든, 다림질을 하든 무조건 바닥에서 했다. 문갑이라 불리우는 가구의 손잡이가 바닥과 가까운 것도 앉아서 하는 생활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따뜻한 바닥 덕분에 한겨울에도 집안에서는 맨발로 다닐 수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바닥이 뜨끈해야 잠도 잘 오고 몸도 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서양식 입식 문화의 산물인 침대에서 자기 시작했다. 하지만 온돌의 맛을 아는 사람들은 뜨끈하지 않은 침대를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바닥 난방을 하는 동시에 침대에 전기장판이나 온수매트를 깔기 시작했다. 이중 난방을 하는 것이다. 생활은 입식으로 바뀌었지만, 궁둥이가 뜨끈해야 비로소 진짜 따뜻하다고 느끼는 감각은 바뀌지 않았다.

에너지 절약을 위해 바닥에서 자면 좋겠지만 그러면 무릎과 허리가 아프니 사람들은 침대에도 온돌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보조 난방기구를 사용한다. 우리에게는 어느덧 익숙해진 생활방식이지만, 이를 외국인의 눈으로 본다면 어떨까. 전통을 지키는 훌륭한 생활방식이라고 여길까, 아니면 전통을 지키려다 에너지만 잔뜩 쓰는 비효율적인 방식이라고 느낄까.

온돌은 여전히 효율적일까


오늘날 온돌은 보일러에서 데워진 물이 온수 파이프를 타고 방바닥을 가로지르는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온돌을 깔려면 콘크리트 구조 바닥 위에 파이프를 깐 뒤 다시 한번 비슷한 두께의 바닥을 더 깔아야 한다. 이렇게 되면 건축자재도 그만큼 많이 들고 건물도 무거워진다. 파이프에 문제가 생겨 교체라도 하려면 바닥 전체를 뜯어내는 대공사를 치러야 한다.

이처럼 부분을 고쳐 쓰는 것이 어려우니 아예 건물을 헐고 다시 짓는 쪽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건물의 개보수 주기는 보통 20-30년이다. 건물을 30년마다 부수고 새로 짓는 건 과연 바람직한 일일까. 건축은 자원을 고갈시키기만 하는 무척 소모적인 일이다. 우리나라 건축 산업의 재활용 비율은 1%도 되지 않는다. 건물을 헐면 건물을 구성하던 모든 부분은 쓰레기가 된다.

온돌을 고집하면 바닥으로 쓸 수 있는 재료도 몇 가지로 한정될 수밖에 없다. 열과 물을 동시에 견딜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 한국 대부분 집의 바닥은 화학 방수 처리가 된 강화마루나 석유화학 계열의 장판류로 깔려 있다. 맨발로 바닥을 밟고 다니는 습관과 바닥은 꼭 따뜻해야 한다는 인식 때문에 다양한 친환경 재료를 쓸 수 없는 것이다.


다양한 시도가 불가능한 아파트


아파트는 편리하지만 획일적이다. 일층부터 꼭대기층까지 대부분 똑같은 구조로 되어 있다. 새로운 난방 방식을 시도해보고 싶어도, 획기적인 구조 변경을 하고 싶어도 아파트에 산다면 불가능하다. 거실은 대부분 한쪽에는 소파가 반대쪽에는 커다란 TV가 차지하고 있다. 안방은 집에서 가장 큰 크기의 방이지만, 커다란 침대 때문에 다른 활동은 거의 불가능하고 잠만 자야 한다.

개인 주택은 집주인과 건축가의 의지에 따라 새롭고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지만, 아파트는 다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선호할만한 보편적인 구조를 따르기 때문에 진화한 방식이나 형태를 기대하기가 무척 어렵다. 거실에 TV를 치우고 가족이 마주 앉을 수 있는 커다란 테이블을 놓거나, 안방 침대를 작은방으로 옮기고 안방은 좀 더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미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는 있다. 하지만 여전히 새로운 난방 방식을 도입하는 등 기존의 틀을 깨는 시도를 하기는 쉽지 않다. 아파트이기 때문이다.

전통을 지키는 건 의미가 있는 일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시대에 맞지 않는 고집이 될 수도 있다. 많은 것들이 숨가쁘게 바뀌고 있지만 유독 아파트를 중심으로 한 주거 문화는 변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인구가 많은 수도권도 그렇지만 인구가 비교적 적은 지방도 요즘은 대부분 아파트를 선호한다. 아파트의 편리함에 너무 취한 나머지 건축의 진화가 더뎌지는 건 아닐까. 아파트가 보편화되지 않았다해도 온돌이 여전히 우리 건축에서 기본값으로 남아있었을까. 온돌은 여전히 꼭 따라야하는 전통인 것일까.



참고한 글들

한국민속대백과사전
보이지 않는 도시, 임우진 저, (주)을유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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