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벳으로 가는 길

by 박순우

칭짱열차를 선택한 건 차마고도가 공사중이었기 때문이었다. 다큐 차마고도를 너무 인상깊게 봤던지라 꼭 걸어서 그 길을 밟고 싶었는데 현실은 예상대로 흘러가는 법이 없었다. 중국의 다른 여행지와 다르게 비행기를 선택하지 않고 기차를 택한 건 칭짱열차가 나름 고급열차였기 때문이었다. 중국을 여행한다고 하면 으레 듣게 되는 말이 야간기차를 타면 장기를 빼간다는 너무나 공포스런 이야기들이었다. 그에 비해 칭짱열차는 고급열차에 속했고 값도 꽤 나갔으며 안락했다. 비행기를 타고 갑자기 고도가 높은 곳에 도착하는 것보다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고도를 높여가는 열차를 타고 가는 게 몸에 무리가 덜 간다는 이야기도 들은 터였다. 두 개의 벙커침대가 놓인 칸에 짐을 풀고 꼬박 36시간을 달렸다.


자다 일어나다를 반복했다. 밀폐된 기차라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은지 잠이 잘 왔다. 잠이 안 오면 창밖으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기차는 하루 반 나절에 걸쳐 서서히 고도를 높여갔다. 창밖에는 끝없는 초원이 펼쳐져 있었다. 간혹 풀을 뜯어먹는 야크가 보였다. 사람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초원이 지겨울 무렵부터는 일년 내내 녹지 않는다는 동토가 시작됐다. 언 땅. 여백이 가득한 지구 위를 마냥 달리고 또 달렸다. 지구인 것도 같고 지구가 아닌 것도 같은 풍경 속을 내달리면서 이 열차도 그리고 그 열차에 몸을 실은 나조차도 현실로 느껴지지 않았다.


몽롱함에 빠져 하루쯤 흘려보낸 뒤 가방을 열어보니 질소 포장된 물건들이 죄다 빵빵하게 부풀어 있었다. 같은 칸에 탑승한 중국 여인이 이따금 말을 걸어왔다. 딸 덕분에 티벳 여행을 가게돼 무척 즐겁다는 말을 반복했다. 티벳의 독립을 바라는 사람들과 그런 티벳을 중국의 여행지쯤으로 인식하는 평범한 중국인의 인식 사이에서 머리가 아파왔다.


티벳 라싸에 도착해 열차에서 내렸다. 커다란 배낭을 등에 짊어지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꼭 필요한 짐만을 넣었는데도 배낭의 무게는 10kg이 넘었다. 캐리어를 선택하지 않은 건 이동의 편리함 때문이었다. 등에 가방을 멜 때마다 내가 지녀야 할 삶의 무게에 대해 생각했다. 짐이 비교적 적은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도 자연스레 하게 됐다. 짐이 많다는 건 가진 게 많다는 건, 결국 두 발을 무겁게 한다.


티벳은 히말라야 산맥 중간에 놓인 해발고도 3,650m의 땅이다. 백두산 천지보다도 더 높은 곳에 있다는 게 실감나지 않았다. 태양과 더 가까운 땅이어서인지 유독 햇살이 따갑게 느껴졌다. 내 앞에 걸어가던 사람이 갑자기 픽 쓰러졌다. 사람들이 몰려왔다. 티벳에서는 고도 때문에 갑자기 쓰러지는 사람들이 많다더니 도착하자마자 그런 광경을 눈앞에서 맞닥뜨렸다.


그 당시 티벳은 자유여행이 불가능했다. 여러 나라 사람들이 모인 패키지 상품을 끊었다. 약속장소로 가니 온 나라 사람들이 다 모여 있었다. 프랑스 커플, 스웨덴인, 일본계 캐나다인, 스위스 커플, 한국에 사는 미국인, 말레이시아인, 중국인 등. 간단하게 인사를 나눴다. 자기 나라에서 곧바로 건너온 사람들도 있었지만 나처럼 장기간 여행 중인 사람들이 많았다.


한국에서 나 같은 여행을 떠나려면 인생을 던져야 하는데, 그들은 그렇지 않았다. 일 년에 한 달쯤 휴가를 보내는 게 당연한 사람들. 나는 이 여행을 하겠다고 가진 돈과 쌓아온 커리어와 적령기의 결혼 따위를 다 걸어야 했는데, 그들은 그럴 필요가 애초에 없었다.


티벳은 예상보다 훨씬 정돈되어 있었다. 다만 그 정돈됨은 중국의 영향이었고 어딜 가나 무장한 공안들이 서 있어 분위기는 살벌했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쪽에는 티벳인들이, 반대편에는 티벳으로 이주해온 중국인들이 살고 있었다. 같은 땅에 살지만 생활반경이 절대 겹치지 않는 갈라진 모습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패키지 친구들과는 같은 숙소에 머물렀다. 밤새 몇 명이 고산병으로 구토를 하거나 두통을 호소했다. 그중 한둘은 결국 병원으로 향했다. 이른 아침 조캉사원으로 가기 위해 함께 길을 나섰다. 얼굴들이 모두 지난 밤과 달라져 있었다. 밤새 낯선 고도와 싸우느라 얼굴이 반쪽이었다. 나는 희한하게도 아무렇지 않았다. 머리가 아프지도 구토가 나오지도 않았다. 딱히 체력이 달린다는 느낌도 없었다. 여행을 하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현지인들의 마음의 성지와도 같은 조캉사원은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로 붐볐다. 사원 앞에는 자리를 깔고 연신 절을 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하루 아침에 중세시대로 건너온 느낌이었다. 종교가 어쩌면 세상의 전부인 사람들. 나는 무신론자지만, 인간이 왜 종교를 믿을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깊이 공감한다. 그럼에도 모든 삶이 종교화되어 있는 현장을 마주하면 낯선 감정이 밀려오는 걸 막을 수 없다. 그리고 드는 생각, 인간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




바람처럼 떠돈 시간으로부터 십 년이 더 지났다. 기억이 가물가물해진다. 여전히 어떤 장면들은 어제 일처럼 또렷하게 머릿속에서 재생되지만, 이따금 이 기억마저 사라질까 두렵다. 그래서 여행기를 조금씩 써야지 하고 있었는데 문득 빗소리를 듣다 시작한다. 시간순도 아니고 사건순도 아니다. 그저 기억나는 단편들을 시간날 때마다 적으려는 것.


한동안 활자중독증이 너무 심했다. 나를 살게 하는 기억들을 끄집어내면서 휴식기를 가져볼까 한다.


두서없는 여행기가 될 것 같다. 별 내용이 없을 수도 있다. 여행 정보를 바란다면 굳이 읽지 않는 게 나을지도.


그렇게 불현듯 시작한다. 십년이 지나 쓰는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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