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벳에서 네팔로 향하는 길
고산병을 느낀 건 포탈라궁에 들어서면서부터였다. 눈앞에 펼쳐진 가파른 오르막 계단에 몸이 먼저 긴장을 했다. 수많은 티벳탄과 관광객들에게 밀리고 밀려 간신히 빠져나온 조캉사원을 지나 포탈라궁에 도착한 터였다. 한 계단 한 계단을 오르는데 처음으로 몸이 무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 병세는 없었지만 다리에 모래주머니를 단 것처럼 몸이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고산병이었다. 그 정도인 게 다행스러웠다.
조캉사원과 포탈라궁, 화려한 건물과 온통 금으로 도배된 불상을 마주할 때마다 종교란 무엇인지를 지속적으로 물을 수밖에 없었다. 권위를 돈과 규모로 쌓으려는 사람들. 티벳의 독립을 지지하면서도 종교가 지배한 세계와 그 세계를 유지하기 위해 민생은 뒤로 하고 세운 허물들은 결코 동의를 하기가 어려웠다. 정치와 종교가 결합된 세계는 늘 궁금하지만 여전히 거부감이 든다. 내가 결코 종교적인 인간으로 살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겠지.
라싸의 시간을 뒤로 하고 향한 곳은 얌드록 호수였다. 티벳에는 호수가 많다. 히말라야에 쌓인 빙하가 녹으며 고인 물. 버스에서 내려 이 호수를 처음 바라본 순간 내 입에서는 절로 탄성이 흘러나왔다.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물빛의 느낌이 그곳에 있었다. 맑은 물빛에 비해 생명이라곤 없을 것만 같았던 비현실적인 호수. 장엄한 풍경 앞에 할 말을 잃고 넋을 놓은 채 오래오래 바라보았다.
달라이라마에 이어 서열 2위인 판첸라마가 다스리는 시가체를 지나 향한 곳은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였다. 베이스 캠프는 티벳에서 오르는 곳에 하나, 네팔에서 오르는 곳에 또 하나가 있는데 내가 방문한 곳은 티벳에서 오른 곳이었다. 해발 5100m의 땅. 건물이라기보다 천막에 가까운 곳에서 일박을 했다. 천막 한 가운데에는 야크 배설물을 말려 불을 때는 난로가 자리하고 있었다. 특유의 냄새가 올라왔는데 그 냄새를 견디기 힘들어하는 친구들이 제법 있었다. 새벽녘 결국 병원으로 실려간 친구도 있었다.
베이스 캠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쏟아지는 별도 티벳탄들 특유의 생활도 아니라 사실 오물 투성이의 화장실이었다. 일명 푸세식 화장실은 대체 언제 마지막으로 청소를 했는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엉망이었다. 발 디딜 틈조차 없이 여기저기 흩뿌려진 배설물들과 버려진 쓰레기들. 웬만해서는 음식이나 화장실을 잘 가리지 않는 나조차도 그곳에서는 볼일을 보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이었다. 곤혹스런 순간을 줄이려면 결국 먹는 것 자체를 줄일 수밖에 없었다.
베이스 캠프에서 가장 유명한 건 밤하늘. 한밤 중에 올려다 본 하늘에는 말로만 듣던 은하수가 펼쳐져 있었다. 그렇게 높은 곳에서 하늘을 바라보기는 처음이었다. 선명한 별자리들과 은은하게 빛나는 별의 물결이 그야말로 찬란했다. 그러나 낭만만을 말하기에는 화장실에서 끊임없이 악취가 풍겨져 나왔고, 한밤 중 5100m 고도에서 느끼는 추위는 상상을 초월했다. 감상을 위해 찰나의 시간만을 흘려보낸 뒤 다시 천막 안으로 기어 들어가 두꺼운 이불 수 개를 온 몸에 덮고 말린 야크 똥이 활활 타오르는 냄새를 맡아야 했다.
티벳에 있는 내내 나는 원인 모를 답답함을 느꼈다. 곳곳을 지키고 선 중국 공안 때문인 것도 같았고, 정치와 종교가 결합된 나라에서만 느껴지는 특유의 공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더 큰 원인은 다른 곳에 있었다. 바로 식물의 부재였다. 고도가 높은 땅에서 살 수 있는 식물은 많지 않았다. 키가 큰 나무는 거의 보기 힘들었고, 간혹 풀들이 눈에 띄었다. 비가 자주 내리지 않는 고원지대는 말 그대로 척박한 땅이었다. 농사를 짓는 땅도 보이지 않았다.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다 네팔 국경으로 향하면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내 답답함의 가장 큰 원인은 결국 자연에 있었다는 걸.
티벳 여행을 마치고 국경을 넘어 네팔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패키지를 함께 한 친구 중 몇 명도 나와 행선지가 같았다. 국경을 넘어 네팔로 갈 예정이었던 것. 함께 버스를 타고 티벳과 네팔의 국경이 있는 마을, 장무로 향했다. 고도가 낮아질수록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이 달라졌다. 듬성듬성 풀만 보이던 메마른 고원지대는 점점 나무가 우거진 숲과 계곡으로 변해갔다. 어디선가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생명의 소리였다. 숨을 들이마실수록 습기 가득한 산소가 내 몸 안에 들어차는 느낌이었다.
하룻밤을 장무에서 머무른 뒤 두 나라의 경계가 되는 다리를 걸어서 건넜다. 정확히 다리 절반까지만 늘어선 중국 공안들. 절반을 넘어서니 다리를 지키고 선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네팔 쪽 이미그레이션에 들어서 비자를 발급받고, 친구들과 SUV차량을 예약했다. 카트만두까지 가기 위한 거의 유일한 교통수단은 개개인이 운전하는 차량뿐. 적정한 가격에 차를 나눠타고 그렇게 계곡을 넘나들며 산을 내려갔다. 비포장 산길을 거칠게 질주하는 차량. 운전자 취향에 맞춘 인도풍의 음악이 흘렀다. 차창을 활짝 열자 건강한 습기를 머금은 풀내음 가득한 공기가 차 안으로 밀려들어왔다. 산속 중간중간 놓인 집들을 지나면 어김없이 흘러드는 커리의 향. 차는 심하게 덜컹거렸지만, 비로소 지구에 온 것만 같았다. 감시하는 이 아무도 없는 자유와 생명의 땅에 드디어 착륙한 느낌.
두 발로 걸어 국경을 넘어가는 걸 좋아한다. 경계이지만 경계가 아니기도 한, 같은 듯하지만 묘하게 다른 두 개의 세계가 만나는 명확한 지점들. 대륙에 속하지만 섬이나 다를 바 없는 한국 땅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경계를 넘어서는 순간. 나는 그 묘한 떨림과 긴장을 사랑한다. 여러 유럽 국가들의 경계와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경계를 넘은 적이 있지만, 내게 가장 인상깊었던 경계 하나를 꼽으라 한다면 단언코 티벳과 네팔의 경계를 꼽을 것이다. 정형과 비정형의 만남과 같은 그날의 부딪힘은 그렇게 내게 선명히 각인되었다. 그 순간의 공기와 온도, 습도, 냄새 그리고 뼛속까지 느껴지던 자유를 나는 죽는 날까지 결코 잊을 수 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