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타고 몇 시간을 달렸을까. 산과 계곡을 모두 지나고 평지로 들어서고도 한참을 더 달려서야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 도착했다. 도착하고도 나는 그곳이 한 나라의 수도라고 인지하지 못했다. 아스팔트길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흙먼지 가득한 길 위로 자전거와 오토바이, 자동차가 어지러이 뒤섞여 내달렸다. 운전자가 도착했다고 쐐기를 박듯 말한 뒤에야 이제는 정말 차에서 내릴 때가 되었다는 걸 실감했다.
티벳에서 함께 넘어온 친구들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가이드북과 각자 알아온 정보들을 취합해 서로 가까운 인근에 숙소를 잡았다. 숙소 주인은 밤 열한시가 되면 카트만두 전역에 전기공급이 끊긴다며 그 전에는 숙소로 돌아오라고 일렀다. 작은 욕실이 딸린 방은 그럭저럭 지낼만 했다. 그런데 물이 자주 끊겼다. 숙소 주인은 네팔에서는 흔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럴 때면 페트병에 물을 받아 샤워를 하곤 했다. 그렇게 적은 양의 물로도 샤워가 가능하다는 걸 그때 알게 됐다.
카트만두는 여행자의 도시였다. 마치 태국의 카오산로드처럼 세계 각지에서 히말라야 등반을 위해 온 다양한 여행객들이 그곳으로 몰려들었다. 나처럼 장기 여행자는 여행자의 도시에 들어서면 마음이 편해진다. 한국에서 나는 특별한 여행객이지만, 그곳에서는 그저 평범한 여행객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밀린 일들을 처리할 수 있었다. 떨어진 생필품이나 비상약을 사고, 한동안 먹지 못한 한국음식을 찾아 먹었다. 장기간 여행을 하다보면 한번씩 한국음식이 무척 당길 때가 있다. 이때 비싼 돈을 들여서라도 먹고나면 몸이 건강해지는 느낌이 든다. 몸보신한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러면 여행을 다시 이어갈 힘이 솟아났다.
카트만두에서 발견한 것 중 가장 반가운 건 헌책방이었다. 나는 론리플래닛이라는 여행 가이드북을 사랑한다. 책장 하나에 전세계 론리플래닛을 꽂아두고 그때그때 보고 싶은 나라를 선택해 아무 때나 꺼내보는 꿈을 가진 적이 있다. 한 공항에서 론리플래닛 전문 매장을 우연히 발견한 적이 있는데, 한참동안 그곳에 머물며 무척 행복해 한 적이 있다. 론리플래닛은 나라와 도시의 여행 정보만 알려주는 책이 아니다. 그 곳의 역사와 문화 등 다양한 이야기를 함께 들려준다. 사진은 많지 않지만, 한번 펼치면 계속 읽고 상상하게 돼 내게는 마법의 책과 같다.
여행을 계획할 때는 웬만하면 책을 통해 정보를 얻는다. 인터넷에도 정보가 많지만 아무리 찾아도 정보가 하나로 모이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어디까지 찾아야 다 찾은 건지도 감이 잘 오지 않는다. 하지만 책은 다르다. 처음과 끝이 어디인지를 명확히 알 수 있고, 머릿속에 나만의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아무리 낯선 곳으로의 여행도 이런 과정을 거치면 자신감이 붙는다. 그래서 늘 책으로 여행 정보를 얻었다. 하지만 지나온 국가의 가이드북은 그때의 내게는 큰 짐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한국까지 가져가고 싶지만, 짧은 여행이 아니다보니 계속 들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헌책방에 그런 책들을 팔았다. 그리고 앞으로 방문할 다른 도시의 가이드북을 구입했다. 수요가 있는 세계적인 여행자의 도시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전세계를 축약해 놓은 것만 같은 카트만두의 거리는 늘 나를 설레게 했다. 나는 이 길 저 길을 걷고 또 걸었다. 전세계 음식점이 즐비했는데 그 중에는 북한 음식점도 눈에 띄었다. 여행자들이 좋아하는 루프탑 펍도 많았다. 쿵쾅대는 음악이 흐르고 여행객들이 몸을 흔들면 나도 덩달아 기분이 들떴다. 문제는 이 모든 환상의 밤도 열한시만 되면 끝이 난다는 것. 암흑의 세상이 시작되면 가로등 불빛도 허락되지 않았다. 전력공급량이 적은 나라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아무리 신이 나도 열시만 되면 숙소로 향했다. 너무 아쉬웠던 어떤 밤에는 숙소 옥상에 촛불을 켜고 친구들과 맥주를 홀짝이며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네팔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고요한 낭만이었다.
카트만두에는 사실 이 고요하고 어두운 낭만 속을 질주하는 존재들이 따로 있다. 바로 개들이다. 낮에 카트만두를 돌아다니다보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자고 있는 개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뭐가 그리 피곤한지 잠만 쿨쿨 자는 녀석들. 마침내 전기 공급이 끊기고 모두가 잠드는 고요한 새벽이 되면, 잠만 자던 개들이 일어나 그 암흑 속을 달리기 시작한다. 여기저기서 멍멍 사납게 짖어대는 소리가 들리고, 싸움박질이 일어나기도 한다. 자다가 그 소리에 몸을 움츠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다시 해가 뜨고 아침이 밝으면 개들은 일제히 마법에 걸린듯 또 잠에 빠져 들었다. 나는 다시 그 길을 열심히 누빌 수 있었고. 낮에 그 개들이 돌아다니지 않는 건 정말 다행이었다. 낮에도 자유로이 돌아다녔다면 카트만두는 여행자의 도시가 되지 못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