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가 태어난 곳

by 박순우

싯다르타가 탄생한 곳, 룸비니. 그곳으로 가는 비행기는 서른 명쯤 탈 수 있는 작고 작은 경비행기였다. 기내까지 전해지는 엔진소리가 무척 요란했다. 승무원이 말을 걸어도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콜라 한 잔을 얻어먹는 사이 목적지에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내리니 사람들이 일일이 짐을 들어 날랐다. 컨베이어벨트가 아닌 매대에서 등짐을 찾고 룸비니 마을로 향했다.


부처가 태어났다고 믿기지 않을 만큼 정말 작고 작은 마을이었다. 석가탄신일에만 한시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듯했다. 유스호스텔로 등록된 한 곳만이 그 마을의 유일한 숙소였는데 의외로 자리가 없었다. 호스텔 직원은 건너편의 한 집을 가리키며 방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흙먼지 풀풀 날리는 길을 걸어 도착한 집에는 선명한 빨강과 보라가 섞인 사리를 입은 한 여인이 있었다.


여인에게 방이 있느냐고 물으니 여인은 대뜸 내게 오이를 건넸다. 방금 텃밭에서 딴 아주 싱싱한 오이였다. 여인은 오이를 물에 씻은 뒤 굵은 소금을 살짝 뿌려 내게 내밀었다. 나는 얼떨결에 그 오이를 받아 입으로 가져갔다. 한낮의 열기에 지쳐있던 터였다. 한입 베물자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싱싱한 오이는 정말 아삭했고 수분이 가득했다. 거기에 적절한 짠맛이 가해지니 세상 제일의 오이가 돼있었다. 내 생애 가장 맛있는 오이를 룸비니에서 맛볼 줄이야. 수돗가에서 홀연히 일어난 여인은 마당을 걸어 한 방을 내게 소개해주었다. 작은 등불과 간이침대가 하나 있고 허름한 욕실이 딸린 방이었다. 선택지가 없는 나는 그 방에 이틀간 묵기로 했다.


짐을 풀고 거리로 나왔다. 가게도 몇 개 없는 한산한 거리였다. 어린 아이들이 자신보다 몸집이 큰 염소들을 몰고 지나갔다. 자동차는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걸어다니거나 자전거를 이용했다. 백 년쯤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듯한 풍경이었다. 저녁이 되니 그 길에 시장이 섰다. 가게들은 정말 작고 작았다. 한 평도 되지 않는 공간에 사람이 앉아 있고 몇 개의 물건들이 놓여 있었다. 이렇게 작은 규모로도 장사를 할 수 있다는 게, 그럼에도 생기 넘치게 장을 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놀라웠다.


여행지의 모습은 제각각이지만, 그 속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일을 마친 뒤 식재료와 생필품을 사서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 식구들과 밥을 차려먹는 평범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어느 도시를 막론하고 존재한다. 그리고 여행지에서 마주한 그 보통의 일상은 늘 내 마음을 세차게 두드렸다. 삶은 저렇게 소소한 일상의 반복일 뿐이라고, 뜨고 지는 해처럼 반복적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끝내는 사람들이 지구 반대편에도 머물고 있다고. 여행은 어쩌면 그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기 위해 먼 거리를 돌고 도는 여정인지도 모르겠다.


거리를 떠돌다 숙소로 돌아와 방 불을 켰다. 전기가 들어온다고 말할 수도, 들어오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없는 희미한 불빛이 방안을 밝혔다. 알고보니 그 방은 모기들의 집단거주지였다. 방충망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어디선가 나타난 수백 마리의 모기들이 새카맣게 벽과 천장에 앉아있었다. 도저히 이대로는 잠을 청할 수 없을 것 같아 여인에게로 갔다. 모기가 너무 많아요. 여인은 말없이 나선형 모기향을 꺼내주었다. 모기향을 방안에 피워두었다. 방 안 가득 향내가 들어차자 모기들은 힘이 빠졌는지 가만히 벽에 붙어 있을뿐 내게 달려들지는 않았다. 그 많은 모기를 모두 살생한다는 건 불가능했기에 나는 그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문제는 새벽이었다. 모기향의 수명은 네댓시간쯤이었다. 새벽녘 모기향이 꺼지면 수백마리의 모기들은 다시 분연히 일어나 유일한 혈액공급원인 내게 달려들었다. 나는 잠결에 모기들이 내는 앵앵 소리에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갑작스런 공격에 당황했지만 이내 꺼진 모기향을 확인하고는 새 모기향에 불을 붙였다. 모기들은 잠시 후 다시 얌전하게 벽에 내려앉았다. 그러면 나도 다시 잠들 수 있었다.


다음날 향한 곳은 싯다르타가 태어난 곳이었다. 밋밋한 하얀 건물 하나가 서있었다. 건물로 들어서니 묵직한 돌 하나가 부처가 태어난 곳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세계 삼대 종교 중 하나인 불교가 이곳에서 태동했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게 허름하기에 더 마음이 놓였다. 부처가 태어난 곳이라며 화려하고 으리으리한 건물이 세워져 있었다면 더 실망스럽지 않았을까. 룸비니 마을만큼이나 소박한 부처의 탄생지였다.

탄생지 앞으로는 나라별 사찰이 지어져 있었다. 나는 서둘러 한국 사찰을 찾아갔다. 점심시간에 맞춰 가면 한국식 밥을 얻어먹을 수 있다고 들은 터였다. 오랜만에 따뜻한 밥에 묽고 담백한 된장국과 각종 나물을 먹을 수 있었다. 먹을만큼만 식판에 담은 뒤 남김 없이 밥을 긁어먹었다. 입도 속도 편안해지는 밥상은 참 오랜만이었다. 한국 사찰은 당시 공사 중이었다. 밥을 먹고 나오니 여기저기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다른 나라의 사찰들도 궁금했다. 중국, 일본, 한국을 비롯해 동남아시아 국가들까지. 그곳에는 각 나라별 사찰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부처의 탄생지를 떠받치듯 늘어선 건물들. 소박한 탄생지와는 너무나 상반된 모습이었다. 더 크고 더 화려하게 보이는 게 목적인 것처럼 경쟁적으로 서있는 사찰들을 보자니 마음이 무거웠다. 덥고 건조한 날씨가 그런 마음을 더 말라붙게 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걷고 또 걷다보니 어느새 마을로부터 상당히 떨어진 지점까지 와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쉴 틈없이 걸었더니 두 다리가 후들거렸다. 택시라도 있다면 당장 잡고 싶었다. 택시는 커녕 지나가는 사람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어쩌자고 이렇게 많이 걸었을까. 그때 기적처럼 인력거 한 대가 내 앞을 지나갔다. 나는 서둘러 인력거를 세웠다. 운전 중인 중년의 남성에게 마을까지 갈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남자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흥정도 없이 바로 뒷자리에 올라탔다. 호리호리한 남성은 힘껏 페달을 밟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종일 걸었던 길을 거꾸로 올라가며 마을로 향했다. 석가탄신일에 엄청난 인파가 몰려든 룸비니의 모습을 상상하며 그곳을 빠져나왔다. 어느새 노을이 지고 있었다. 마을에 도착해 인력거에서 내렸다. 얼마인지 물으니 터무니없이 적은 요금을 요구했다. 뒷자리에 있으면서 무게 때문에 계속 미안했던 터였다. 수고에 비해 너무나 적은 돈을 요구하는 그를 보면서 부처가 태어난 곳이라 그곳에 사는 평범한 사람마저 부처같은 걸까,하는 생각이 스쳤다.


돈을 건넨 뒤 실례지만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고 물었다. 그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전거에서 내려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머리에 쓰고 있던 모자를 벗으니 민머리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모자를 한 손으로 붙잡고 그가 당당히 섰다. 예상치 못한 행동이었다. 행색이 초라하다고 해서 행동까지 초라한 건 아니었다. 그 단정한 몸가짐에 덩달아 나까지 내 차림새를 돌아보게 되었다. 준비가 되었다는 그의 말에 나는 카메라를 들어 셔터를 눌렀다. 세상 가장 남루하지만 가장 품위있는 한 사람이 거기 서있었다.


모기 천국에서 두번째 밤을 보내고 나는 다시 무거운 가방을 등에 짊어졌다. 짐을 싸고 풀고 또 싸는 것, 그게 그 당시 나의 여행이었다. 체크아웃이랄 것도 없는 그곳을 나서며 나는 여인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여인은 헤어지던 날에도 이른 아침부터 분홍빛 깨끗한 사리를 곱게 차려입고 미소를 짓고 있었다. 룸비니는 세상 가장 남루한 도시였지만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결코 남루하지 않았다. 말수는 적지만 미소를 잃지 않았던, 늘 넉넉하고 여유로운 몸짓을 보여주던 룸비니의 사람들. 십 년이 넘게 흘렀지만 나는 여전히 그 얼굴들을 기억한다. 사람이 좋았던 곳은 여행지도 유독 오래 기억에 남는다. 이 기억은 언제까지 오롯할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여행자와 개들의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