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운에 대해

by 박순우

종교는 없지만 긴 여행을 떠나면서, 나는 수호신 같은 역할의 무언가를 몸에 지니고 싶었다. 때마침 오른손 검지에 끼려고 반지를 하나 샀는데 그 반지가 나를 지켜준다고 여겼다. 내가 본 모든 것을 그 반지가 함께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반지만 있었던 건 아니다. 긴 여행을 간다는 소식을 듣고 천주교를 믿는 한 친구가 내게 묵주팔찌를 선물했다. 가운데 십자가가 박힌 어여쁜 진주 팔찌였다. 평소라면 선물을 받아도 착용하지는 않았을텐데, 나는 그걸 반지와 함께 여행 내내 끼고 다녔다.


네팔에서는 팔찌를 하나 더 장만했다. 카트만두 서쪽 언덕에 있는 스와얌부나트 불교사원을 오르는 길이었다. 여행객들이 많은 길이어서인지 그곳에는 직접 만든 물건을 늘어놓고 판매하는 현지인들이 많았다. 그 중에 '지혜의 눈'이 그려진 나무조각을 색색의 실로 엮은 팔찌가 내 눈에 띄었다. '지혜의 눈'은 스와얌부나트 사원에 있는 불탑에 새겨진 것으로, '진리에 도달하는 것은 스스로 깨달음을 얻는 하나의 방법밖에 없다'는 불교적 의미를 지닌다. 나는 그날부터 팔목에 십자가와 지혜의 눈을 함께 달고 다녔다. 소심한 무신론자의 엉뚱한 종교대통합 같은 발상이랄까. 그때의 나는 그렇게라도 나를 지키고 싶었던 것 같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여행을 다니면서 내가 어떤 나라에 도착하면 머무는 기간동안 그 나라의 중요한 명절이 끼어있는 경우가 많았다. 중국에서는 중추절이, 그리스에서는 크리스마스가, 네팔에서는 다사인 축제가 열리는 기간이 포함돼 있었다. 일부러 그 기간에 방문한 게 아니냐고 의심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 의도하지 않았다는 게 중요한 이유는, 너무 큰 명절이라 오히려 여행객들이 여행하지 못하는 사태도 벌어진다는 점이다.


중국에서는 중추절 기간에 별 생각없이 버스터미널에 갔다가 한번도 본 적 없는 인파에 화들짝 놀라 다시 숙소로 돌아간 적이 있었다. 인구 14억 명 나라의 명절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하고는 여행이고 뭐고 그저 이 기간이 얼른 지나가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그리스에서는 크리스마스에 도통 장사하는 가게를 찾을 수가 없었다. 밥을 먹기도 쉽지 않았다. 심지어 파르테논 신전도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문을 닫았다.


네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네팔은 9월 말에서 10월 초 몬순이 끝난 시점에 수 일동안 성대한 축제를 연다. 앞서 언급한 다사인 축제가 그것. 내가 방문한 딱 그 시점이었다. 축제 기간이 되자 더르바르 광장으로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었다. 카트만두 중심에 있는 더르바르 광장은 살아있는 신인 쿠마리가 살고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이 축제 기간 동안 네팔인들은 수십 마리에 이르는 동물의 목을 잘라 사원 주변에 뿌린다. 직접 눈으로 보진 않았지만 말로만 들어도 소름이 끼쳤다. 혹시 적은 양의 피라도 보게 될까 두려워 나는 이 기간동안 일부러 사원을 피해 다녔다.


호기심에 들어선 곳에서는 쿠마리의 얼굴을 마주하고 말았다.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정되는 소녀신인 쿠마리는 걸어서도 안 되고, 울거나 웃어도 안 된다. 살아있는 신으로 추앙받지만 초경이 시작되면 가차없이 버려진다. 살아있는 여신으로 선정돼 어린 나이에 가족과 떨어져 사회와 동떨어진 삶을 사는 소녀. 아동학대와 인권침해 논란이 끊이지 않는데도 네팔은 쿠마리를 지속적으로 뽑아 사원에 들인다. 과거에는 초경을 시작해 쿠마리 지위가 박탈되면 가족에게도 버려지고 결혼도 하지 못했다. 최근에는 여러 논란 끝에 개선이 이뤄져 가족과 다시 삶을 지속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스런 일. 그날 마주쳤던 쿠마리의 날선 눈빛은 여행 내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여러 신을 믿는 힌두교는 늘 나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내 눈에 힌두교는 가장 원시적인 종교의 형태로 보인다. 힌두교는 네팔, 인도 뿐만 아니라 인도네시아 발리에 남아있다.(그러고보니 발리에 갔을 때도 명절이었다.)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사원에서도 힌두교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동남아시아 국가에는 사실 중국보다 인도의 영향이 훨씬 많이 남아있다. 언어도 종교도 문화도. 인도는 덥고 습한 땅이다. 아무리 오랜 역사가 있다 한들 기후로 인해 흔적이 보존되기 어렵다. 이집트를 여행하면서 인도와 이집트 중 어느 곳이 더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을까를 가늠하려 한 적이 있다. 인도는 특유의 음악을 갖고 있는데, 음악을 하는 분으로부터 아주 오랜 역사가 느껴지는 선율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때부터였을까. 인도의 진짜 역사가 궁금했던 게. 인도가 이집트처럼 건조한 땅이었다면 인도에는 훨씬 더 많은 인간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을까.


전자책 중에 그에 관한 책이 있어 네팔을 여행하면서 틈틈이 정독을 했다.(책 제목을 잊어버렸다. 흑)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를 읽은 것도 이 등지를 여행하면서였다. 나는 종교적인 인간이 될 수 없다는 말을 종종 하지만, 지난 여행을 돌아보면 모순되게도 나는 종교가 정말 궁금했다. 종교를 믿는 사람들 마음의 근원을 어떻게든 알아내고 싶기도 했다. 가장 원시적인 종교의 모습에서 종교의 태동을 느끼고 싶기도 했다. 종교를 빼놓고 인간의 역사를 말할 수 있을까. 인간이라는 나약한 존재가 지구라는 우주의 외로운 한 섬에서 터를 잡고 문명을 세우기까지 종교가 없었다면 과연 가능했을까. 이야기의 힘을 믿는 인간이라는 존재에게 종교는 숙명이 아닐까.


묵주팔찌도 지혜의 눈 팔찌도 이제는 내게 남아있지 않다. 긴 여행을 마친 뒤 팔찌는 많이 낡아버렸다. 버릴까 말까 한참 고민을 하다 서랍안에 한동안 처박아두었다. 그리고 제주에 오기 전 짐을 정리하면서, 팔찌도 정리를 했다. 이따금 인도에서 집단 성폭행 같은 사건이 벌어지면, 나의 지난 여행을 떠올린다. 그리고 운이 좋았던 나의 여행에 새삼 감사하게 된다. 여행을 다니면서 내게 사건 사고는 거의 없었다. 작은 물건을 잃어버린 적은 있지만, 심하게 앓은 적도 있지만, 그 외에 나쁜 일은 없었다.


위태로운 당나귀를 타고 움직인 적이 있는데 알고보니 지나온 길의 바로 옆이 수십 미터 깊이의 절벽이었다. 아슬아슬한 산길을 버스에 몸을 싣고 수 시간 동안 넘어간 적도 여러 번이다.(시간이 흘러 내가 탔던 버스가 산 밑으로 추락해 전원이 사망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도 있었다.)종교도 없으면서 종교 대통합의 팔찌들을 끼고 다녀서일까, 웬만하면 해가 지기 전에 꼬박꼬박 숙소로 들어갔기 때문일까. 이따금 인생의 모든 건 어쩌면 운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단지 운이 좋았던 걸까. 종교도 믿지 않는 나를 좋은 운으로 이끈 존재는 무엇일까. 오늘도 나는 지난 여행을 떠올리며 정답이 없는 물음 속을 헤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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