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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우 May 27. 2022

학부모가 된 뒤 바라보는 교육감 선거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사전투표가 시작됐다. 7개의 투표용지 중에는 교육감 선거도 포함돼 있다. 학부모가 된 뒤 처음 치르는 교육감 선거다. 이전에도 빠짐없이 지방선거에 참여해왔지만 이번에는 마음이 좀 더 무겁다. 대선과 연달아 치러져 관심도가 그만큼 떨어진 분위기 탓도 있지만, 아무래도 교육과 직접적으로 연계된 구성원이 되었기에 임하는 마음이 달라진 것. 나의 선택으로 내 아이가 받을 교육이 바뀐다고 생각하니 더욱 그렇다. 번호도 없고 소속 정당도 없는 교육감 선거. 유권자들은 무엇을 보고 판단해 선거에 임해야 할까.

교육감의 권한과 한계 


지방선거의 낮은 관심도에 비해 교육감은 상당히 많은 권한을 가진 인물이다. 국가의 교육행정 업무 중 상당 부분을 위임받는다. 아이들 복장과 머리길이부터 시작해 돌봄 시간, 급식의 형태, 시험의 방식, 학원 영업시간, 입시 방식까지. 권한을 들여다보면 이렇게 많은 걸 한 사람이 가져도 되나 싶을 정도다. 여기에 내국세의 20.79%에 달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받아 교육예산을 편성하기도 한다. 교원 인사권과 징계권 또한 갖고 있다.

그렇다고 교육감이 당선과 동시에 모든 걸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건 아니다. 법률상 권한과 실제 행사가 가능한 권한의 범위가 다르기 때문이다. 누가 대통령이고 시장•도지사인지에 따라, 국회와 지방의회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게 어느 당이냐에 따라 교육감이 내린 결정은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도 있다. 반면에 수월하게 추진할 수도 있다.

결국 지방선거는 복잡하고 난해한 선거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의 세부적인 삶을 지탱하는 사안들을 유기적으로 연계하는 사람들의 자리 다툼인 것. 그러니 복잡해서 관심을 두고 싶지 않다가도 다시 정신을 차려 공약집을 들여다 볼 수밖에 없다. 자칫 잘못 했다간 내 아이의 교육이, 나의 밥벌이가 영향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치를 피하려다 더 정치적이게 된 교육감 선거

교육감 선거에는 번호가 없다. 유권자들이 지지하는 후보의 이름을 외워 선거에 임해야 한다. 교육을 정치의 영역에서 떨어뜨리려는 시도 때문인데, 과연 얼마나 의미가 있는 조치인지는 모르겠다. 교육감 선거는 정당보다도 더 노골적으로 보수와 진보를 드러내 치르는 선거이기도 하다. 대놓고 보수 단일후보, 진보 단일후보라 홍보를 한다. 이런데도 정치와 거리를 둔다는 게, 정당 없이 혈혈단신 선거를 치르는 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정치를 피하려다 더 정치적인 판이 된 역설의 선거가 아닌가.

교육의 가장 큰 주체는 누구일까. 학생, 학부모, 그리고 교원이다. 학부모와 교원은 투표권을 갖고 있고 실제로 선거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투표권이 없다. 자신들이 받아야하는 교육에 대한 선택권이 없는 것. 주변에 아이가 없는 어른들도 투표권을 갖는데 하물며 직접 교육 수혜자인 아이들에게 투표권이 없는 건 과연 옳은 일일까. 막상 학부모가 되어 첫 교육감 선거를 치르자니, 누구를 위한 선거인가 곱씹게 된다.

투표권이 없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대선 후보 모의투표를 한 적이 있다. 그 결과는 실제 투표 결과와는 좀 달랐다. 아이들이 미성숙해서 이런 결과가 나온 걸까. 그렇다면 어른들은 성숙하게 공약을 제대로 들여다보며 투표에 임하는 것일까. 아이와 어른 중 누구의 선택이 더 옳다 그르다 판단할 수 있을까. 오히려 편견 없는 아이들이 더 공정한 시선으로 선거판을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직접 연관이 있는 교육감 선거의 경우 고등학생에게라도 투표권이 주어져야 하는 게 아닐까.

교육감 직선제 그 후

무상급식, 학생인권조례, 일제고사, 자사고 폐지 등. 2007년 교육감 직선제가 시행된 이후 우리 사회에 던져진 굵직한 이슈들이다. 선거 과정에서 부정과 비리로 얼룩진 경우도 많았지만, 직선제 실시 이후 이전에 없던 새로운 시도로 교육계에 한껏 진보된 흐름을 몰고 온 것도 사실이다. 이제는 너무나 당연하게 아이들이 누리는 무상급식도 한때는 엄청난 반대에 부딪혔던 뜨거운 감자였다. 학생인권조례 역시 마찬가지. 

나는 한때 공교육 불신자였다. 아이가 커갈수록 나의 불안은 커져만 갔다. 때가 되어 아이를 한국의 교육으로 밀어넣어야 하는 게 너무나 고욕이었다. 이 때문에 이민을 심각하게 고민한 적도 있다. 한국의 교육은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공교육을 어떻게 바꿔나가야 하나. 이런 왜곡된 교육 열풍 속에서 나는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나. 당시 읽었던 홍세화님의 <생각의 좌표>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교육이라기보다 차라리 집단 광란 상태라고 불러야 마땅한 그 도가니 속으로 자식을 보내면서 고민이 없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p78

 
이 대목을 읽자마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내 고민이 당연한 것이라는 다독임 때문이었다. 그리고 책을 덮은 뒤 괴로움의 원인은 사실 내 안에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되었다. 비정상적인 분위기라는 걸 알면서도 나의 아이가 능력을 인정받으며 자라기를 내심 바라왔던 것.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바르게 자라기만을 바란다면 내가 과연 그토록 괴로울까. 나름의 깨달음을 얻은 뒤로 폭풍 같은 내 마음은 비로소 안정을 찾았다.

허무하게도 아이를 막상 입학시킨 뒤 나는 이 모든 게 기우였다는 걸 실감했다. 선생님들은 예전처럼 권위적이지 않았고, 방과후와 돌봄은 꽤 촘촘하게 짜여져 있었다. 학교 교육은 서두르지 않으며 또래보다 배움이 좀 늦는 아이들에게도 배려가 가득했다.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자연을 사랑하며 기후위기에 대한 이해도도 높다. 얼마 전 다녀온 현장학습에서는 쓰레기 제로 운동을 펼쳤고 성공적으로 끝마쳤다. 운동회 역시 승패를 굳이 가르지 않고 모두를 승자로 만들어가는 모습에 감격했다. 다가오는 체력도전에서는 학년별로 서로 다른 코스 완주를 목표로 한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누가 먼저 완주하느냐가 아니다. 힘들어하는 친구를 다독이고, 남들보다 늦는 친구를 기다리며 다함께 완주하는 것이 목표다.

이런 현장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한국의 공교육이 여전히 불신의 대상인 이유는 무엇일까. 공교육을 아이들이 아닌 어른들의 입장에서 바라보기 때문이 아닐까. 내 아이만 잘 되면 된다는 부모들, 쉽게 인재를 선발하려는 대학과 기업, 덮어놓고 문제만 지적해온 동떨어진 어른들의 시선까지, 이런 복합적인 요인들이 오랜 시간 누적되면서 공교육을 싹 다 뜯어고쳐야만 하는 불신의 대상으로 치부한 게 아닐까.

진짜 학부모가 된 뒤에야 비로소 나는 교육감 직선제의 선한 영향력을 알게 됐다. 지난 세월 더 나은 교육을 위해 힘써온 사람들의 얼굴을 똑똑히 기억하게 되었다. 문제는 공교육 자체가 아닐지도 모른다. 공교육은 미래를 향해 가는데, 이에 발맞춰 사회와 인식을 개선하지 못하는 우리 어른들이 문제가 아닌가.

교육감 선거는, 지방선거는, 흥미가 떨어지는 그렇고 그런 사람들의 리그로 비춰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신중하게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해야 하는 건, 아이들이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분명 지방선거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변화가 없다고 욕만 하지 말고, 좀 더 자세히 지자체와 공교육을 들여다보려는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유권자가 관심을 가지는 만큼 신경을 쓰는 게 정치가 아니던가.

지방을 살리는 것도, 교육을 변화시키는 것도 우리의 투표에서부터 시작이다. 변화를 바라지만 말고, 무엇이 바뀌었는지를 들여다보고 어디로 향해가야 하는지를 들여다보자. 지방선거는 바로 그런 소중한 권리 행사의 장이다. 결코 대선의 들러리가 아니다. 다시 공약집을 펼친다. 당신과 내가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해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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