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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우 Apr 01. 2022

사월

잊지 않겠습니다

사월이다. 언제부턴가 사월이 되면 꽃을 기다리기보다 아무도 다치지 않는 달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사월은 아픈 달이다. 이 땅에서 유독 많은 사람이 아팠던 달이 사월이다.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아이가 사월을 하루 앞두고 4.3에 대해 배웠다고 한다. 학교 학생회가 진행하는 4.3 설명회를 듣고 관련 동영상을 시청한 것.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4.3의 잔혹함과 무자비함이 떠올랐다.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 아이에게 물었다.

4.3이 뭐래.

일제시대 끝나고 있었던 일인데 경찰이 말을 타고 있다가 그 말에 아이 하나가 다쳤대. 그래서 사람들이 안 된다고 했는데 정부가 그 사람들을 막 죽였대.

이야기 들으니까 기분이 어땠어.

슬펐어. 좀 많이 슬펐어.

제주의 아이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이렇게 잔인한 역사를 마주한다.


사월이 되면 제주 곳곳에는 4.3을 추모하는 문구가 꽃향기를 타고 나부낀다. 벚꽃과 유채꽃이 함께 피어나는 찬란함에 처연함이 스민다. 이따금 그 많은 피와 눈물은 모두 어디로 갔는지를 떠올린다. 수많은 이들의 가슴에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아있겠지. 이 땅에는 여전히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 외롭게 싸우는 사람들, 싸울 수밖에 없는 사람들.


세월호가 침몰하던 해, 아무리 노력해도 오지 않던 아이가 갑자기 우리 부부에게로 왔다. 그 아이는 올해 초등학생이 되어 4.3을 배웠다. 그 해 마당에 심은 로즈마리 한 줄기는 커다란 한 그루의 나무가 되었다. 엄마가 되기 전에 바라보던 세월호와 엄마가 되고난 뒤 바라보는 세월호는 많이, 아주 많이 달랐다. 타인의 아픔이 뼛속까지 느껴졌다. 마주하기가 어려웠다. 피하고만 싶었다. 그래서는 안 된다며 마음을 다잡고 다시 기사들을 읽어내려갔던 시간들. 기억해야만 한다고,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고 수없이 되뇐다. 내가 아픈 건 아픈 것도 아니기에.


사월은 시간이 좀 빠르게 흘렀으면 좋겠다. 별 탈 없이, 아무 일 없이 그저 지나가기를. 일 년을 기다린 꽃이 다 저버려도 좋으니 얼른 오월이 찾아오기를. 사월의 끝자락이 되면 바닷바람을 타고 아름다운 꽃향기가 섬을 찾아온다. 마치 섬을 위로하듯 하얀 귤꽃이 곳곳에서 피어난다. 제주는 사랑하는 사람과 꼭 오월에 가야 한다고, 귤꽃향에 취해 절로 사랑에 빠지는 오월이어야 한다고, 어느 소설이 말했다. 그런 귤꽃이 어서 피어나기를.


모두들 무사한 사월이기를.

잊지 않는 사월이기를.


덧. 동백꽃은 4.3사건의 상징입니다. 꽃말은 기다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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