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중을 가장한 오만에 대하여
10년 전에 처음 뵌 아빠친구가 계셨다.
그때의 아저씨는 멋들어진 양복차림에 짧게 자른 검은 머리를 단정하게 넘긴 평범한 샐러리맨의 모습이었다.
올봄,
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 10년 만에 다시 뵌 아저씨는 희끗희끗 자라난 긴 머리를 쓸어 넘기며 백발의 테리우스의 모습으로 나타나셨다.
시력이 안 좋아서
'저 사람은 이목구비가 저기에 달렸구나'
정도만 구분하고 살아가는 탓에 처음엔 알아보지 못했다.
아빠가 가까이 부르며
"그때 그 아저씨야"
하고 소개해주신 후에야 선명하게 보였고,
"아?! 스타일이 완전 바뀌셔서 못 알아봤어요! 더 멋져지셨네요!"
하니 아저씨는 얼떨떨한 듯 환하게 웃으며
"그래? 멋있어?"
하고는 되물으셨다.
진짜 멋있었기에
"네! 수염이랑 머리랑 완전 멋쟁이 신사 같아요!"
하고는 엄지척 해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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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늘,
아빠가 갑자기 친구 패션쇼에 놀러 가야 한다며 분주하길래 잘 다녀오라고 했다.
두 시간 동안 친구들한테 전화를 돌리더니 전부 퇴짜를 맞았다.
혼자 가긴 적적했는지
"딸 갈래?" 하길래
"아저씨랑 술 마실 건데 따라가서 뭐해" 하고는 거절했더니,
"아~ 술 안 마셔~ 얼굴만 보고 오는 거야" 하고는 뻔한 거짓말을 했다.
어차피 안 지켜질 말일 걸 알았지만,
요즘 들어 주량이 약해진 아빠가 연락두절돼서는
종점까지 갔다 오는 일이 빈번했기에
안전귀가도 시켜주고, 날도 좋은데 바람도 쐴 겸,
십 분 만에 호다닥 준비하고 따라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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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쇼가 끝나고,
아저씨네 식구들과 식사자리를 가졌다.
술이 조금 들어가시니 아저씨는 조금 들뜬 표정으로 모델일에 관한 이야기를 하나둘씩 꺼내기 시작했다.
내게는 그런 아저씨의 모습이
'나 잘했지? 나 멋있지?'
하고 칭찬을 바라는,
영락없이 천진한 소년의 모습처럼 보였다.
내 일도 아니었지만, 꿈을 좇는 아저씨의 모습이 아름다워 보여서 흐뭇한 미소로 흥미롭게 눈을 반짝이며 들어주니, 아저씨는 더 신이 나서는 아예 몸을 내쪽으로 틀고
나만 바라보며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러던 중,
아저씨의 큰 아들이 "너무 띄워주지 말라"며 찬물을 끼얹었다.
그 순간 아들을 바라보며 미묘하게 위축되는 아저씨의 표정을 보았고,
나는 다시 한번 아저씨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엥 띄워주는 거 아니에요. 진짜 멋있어요!"
라고 했다.
아저씨의 표정은 금세 순수한 어린아이처럼 환해지셨다.
어느새 아빠들만큼이나 취해버린 큰아들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더 말을 이어갔다.
신이 나서 분위기를 띄우려 하다 보니 말이 많아지는 스타일의 주사인 듯도 했지만,
그 선이 아슬아슬하여 불안했다.
아들은,
35년이 넘는 세월을 점잖게만 하고 다니던 아버지가
어느 날 갑자기 스타일도 완전히 변해버리고 모델 일을 한다고 하니 "왜 저러시나 어색하고 불편하고 이상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덧붙이길 "아버지의 인생을 존중한다"라고 하긴 했지만,
취한 탓인지 앞의 얘기를 계속 반복하는 바람에 아저씨의 표정은 점점 굳어가는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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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누군가를 머리로만 존중하는 것과 마음으로 존중하는 건 천지차이이고, 그것은 상대방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가장 가깝고 의지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내 모습을 거부하는 것이 얼마나 큰 상처이고 나를 작아지게 만드는 일인지 알기에,
악의가 없는 짧은 몇 마디었을지라도 그 순간 아저씨의 마음이 어떨지 느껴져서 마음이 정말 좋지 않았다.
어른들이 계신 자리이고, 남의 부자간의 이야기라 가만히 듣고만 있긴 했지만, 속으로는 꽤 불편하고 꽤 씁쓸하고 꽤 속상했다.
'35년을 억눌러온 마음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35년이나 흐른 뒤에야, 이제라도 도전하는 그 마음은 또 얼마나 조심스럽고 소중하고 설레고 애틋할 건데..',
'제일 가까운 가족 중에 아저씨를 있는 그대로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어야 좋을 텐데',
'35년 동안 점잖았다고 영영 점잖아야 하나? 어느 날은 이럴 수도, 어느 날은 또 저럴 수도 있는 건데, 왜 사람들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조차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여태껏 알아오던 모습이 아니면 그건 이상하고 잘못된 거라며 불편한 티를 내는 걸까.. 내가 뭐라 하든 그게 그 사람인 건 변하지 않는데, 남한테 피해 주는 거 아니고 멀어질 거 아니면 묵묵히 받아들여주면 좋을 텐데.'
불편해하는 감정 자체를 부정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그 태도에 대한 이야기이다.
처음엔 당연히 불편하겠지. 그런데 뭐든 처음이 어색하고 어렵지, 지내다 보면 자연스럽게 변한 그 모습조차 그 사람의 한 단면으로 자리하게 될 텐데, 왜 그 잠시를 못 참고 존중을 저버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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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말로만 존중을 담는 사람들을 정말 많이 만난다.
그리고 그들은 언제나 진심으로 자신들이 타인을 존중하고 있다고 믿는 것 같았다.
"그 옷 너랑 안 어울려", "그 머리 별론데", "왜 일을 그렇게 해?", "그런 걸 쓸데없이 왜 사", "그렇게 한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안 돼", "열심히 좀 해", "남들은 보통 이래", "남들은 안 그래", "네가 이상한 거야", "왜 꿈이 없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그럴 순 없어" 등등
전부 본인의 가치와 생각만이 정답이라는 오만한 확신을 남에게 씌우는 말들이다.
"그 옷이 어울리든 안 어울리든 너한테 잘 보이려고 입는 거 아니잖아. 내가 머리를 무지개 빛깔로 염색하든 별 모양으로 하고 다니든 말든 너한테 무지개 광선 쏘는 것도 아니고 뭔 상관이야. 니 방법이 너한테 맞듯 내 방법은 나한테 맞아. 너한테 쓸데없다고 나한테도 쓸데없지 않아. 내 열심을 왜 네가 판단해. 남들이 그렇게 살면 나도 그렇게 살아야 하니? 너는 그렇게 천편일률적으로 살기 위해 태어난 흔해 빠진 로봇이니? 사람은 뭐든 할 수 있고, 뭐든 될 수 있고, 굳이 뭐가 안될 수도 있고, 아무것도 안 한 채 간신히 숨만 쉬고 있는 나날들도 있는 거고, 언제든 이럴 수도, 저럴 수도, 그럴 수도 있는 거야."
나는 반골기질이 굉장히 강해서
'나만 맞고 넌 틀렸어. 그러니까 넌 나를 따라야 해' 라거나 타당한 이유 없이 타인의 삶에 제약을 거는 사람을 만나면 다 때려 부수고 뒤집어엎어버리고 싶다.
그렇게 따지면, 나도 세상에서 내가 제일 잘났고 내가 다 맞다. 심지어 난 사주에도 나밖에 없어서 엄청 무섭고 센 사주로 나온다.
살면서 들어온 경험에 의하면 남들이 조언이랍시고 해준 말 중에 모르고 있던 사실도 없고, 본인이 가진 지식을 뽐냈던 사람이 한 말 중에도 새롭게 안 사실도 거의 없을 지경이다.
그럼에도 이미 알고 있었다고 굳이 아는 체해서 무안을 주거나, 그걸 이제야 알았냐며 무시하거나, 스스로 돋보이기 위해 나서서 생색내는 등 말이나 행동으로 옮기는 일이 쉬이 없는 까닭은,
나만 잘나고 나만 맞다고 생각하진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자기 확신으로 가득 찬 삶을 살아왔을지라도
세상 모든 일에 관하여 나만이 정답이 아닐 수 있다는
1%의 가능성은 무조건 존재할 수밖에 없기에,
존중을 모르는 것 같은 그들마저 일말의 존중을 받을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얼마나 편협하고 오만해야 자기의 모든 불편함이 명백히 남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이라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걸까. 그런 사람들이 왜 그리 많은 걸까.
다들 남의 인생에 신경 끄고
본인 인생이나 잘 살았으면 좋겠다.
본인의 가치로 판단할 때 남의 인생이 보잘것없게 느껴진다면, 남의 가치로 볼 때 본인의 인생이 보잘것없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라도 하던가.
그러면 좀 겸손 해질 텐데.
그냥 그까이꺼 대충 열심히 살고,
아무렇게나 살다 뭐든 돼도 좋으니,
무해한 마음으로 순수하게만 살았으면 좋겠다.
그런 사람들만 행복했으면 좋겠다.
2022.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