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이 되기 전에, 나는 죽었다
나에게 있어서 '노력'이라 함은
꾸역꾸역 죽자 사자 버텨가며 얻어내는 것들을 의미한다.
하지만, 내가 그동안 이뤄온 것 중에 그러한 것들은 없었다.(물론, 알게 모르게 있었지만 순간순간 헤쳐 나오느라 인식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대부분이 내 재능에 기반한 일이었고,
재능이 썩 없더라도 최소한 흥미와 호기심에 기반한 일들이었다.
항상 그 과정 자체를 즐겼기 때문인지
아무리 해도 내 안에선 그것들이 진정한 '노력'이라고
정의되지 않았다.
그것들은 그저 '도전'과 '경험'에 그칠 뿐이었다.
그 당시 나의 상황에서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것들을
쉼 없이 경험하고 도전해 오면서
스물 후반이 되자,
이만하면 세상 경험도 어느 정도
다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 살아도 될 것 같은데..?'
싶은 생각마저.
삶이 우울하고 힘들어서 죽고 싶다는 생각과는 다르다.
더 이상 세상살이가 설레거나 기대가 되지 않고,
무엇을 보고 듣고 먹든 다 그저 그런 자극일 뿐인.
부질없음, 진부함, 무료함 따위의 감정과 생각들.
이런 얘기를 하면 아주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절대 들어서선 안 되는 길에 들어선 것마냥,
"헉 어떡해?! 당장 거기서 빠져나와!"
하는 반응들이 대부분인데
흠,,,
그런 반응들마저도 감흥이 없다.
'그렇게 호들갑 떨 일인 건가?'
"저 안 죽어요, 그냥 그런 생각이 드는 것뿐이에요.
그리고, 죽으면 뭐 어때요. 어차피 다 죽는 존재인데.
미련 없이 잘 놀다 갑니다. 하면 그만인 거죠."
그리고 난, 이런 현상이
내가 어떤 수렁에 빠졌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빠져나올 수 있는 종류의 것이었다면
진작 빠져나왔지 않을까.
'호기심 많고 설레어하고 반짝반짝하던 제 모습'은
세상 누구보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걸요?
그렇다면,
이건 나를 잠식하는 늪이 아니라,
단지 삶의 과정 중에서 언제고 찾아왔을
'깨달음'의 일종이지 않을까?
인간이라면 언젠가 겪게 될 자연의 섭리 같은 것 말이지.
남들은 40대, 혹은 50대, 60대가 되어서야
느낄 법한 감정들이
내겐 조금 더 이르게 찾아온 것일 뿐이라고 생각했고
그리고 그건 내게 '죽음'과도 유사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아,
난 한 번 죽은 거구나.
다시 한번 삶을 시작할지, 영영 죽어있을지
선택의 기로에 놓여졌다.
나라는 인간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난 이미 인생의 한 막을 마무리한 것만 같은데,
앞으로의 삶이 덤이라면
어떻게 살아야 남은 삶을 즐기며 내 가치를 잘 활용하다
갈 수 있을까?
그 답은 이미 수면 위로 떠올라
가만히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고요했지만, 다시 한번 심장이 '쿵–' 울릴 만큼
묵직한 파장이었다.
그래.
더 이상 자극이 없다면
가장 작고 본질적인 것들에 집중하자.
단 한순간이라도 더 진심을 나누고
단 1도라도 더 따뜻해지는 일에
도움이 될만한 사람으로 살다 가자.
시시각각 변화하는 다양한 자극들을 추구하기에
여념이 없던 지난 삶에서도
언제나 내 곁을 떠나지 않던 유일한 것들이 아닌가.
많은 시간 동안 작은 세상에 갇혀 있는
어리고 작은 존재에 불과했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에 한계가 있었지만,
이제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 보자.
더 이상 그 작은 세상에서 이루고 싶은 것이 없어진 지금이야말로, 때가 온 거야.
가보지 않았던 세상을 향해,
또 다른 세상에서 아직 못 다 이뤄 본 것들을 향해,
죽자 사자 '노력'이란 걸 해보자.
어쩌면 조금은 다시 설레이고 있는지도 모르니.
그렇게 서른이 되었다.
새 삶을 시작한 기분인 것만은 분명했다.
다만, 정말 죽었다 살아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부질없음, 진부함, 무료함 따위의 것들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난 잔잔하고 고요하다.
달라진 것은,
더 이상 나를 들뜨게 만드는 자극들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것.
사실, 이런 상태를 맞이하게 되었을 때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나의 10대'
아, 나는 다시 돌아왔구나.
마젤란이 세계의 대륙을 탐험하듯
나라는 세상에서 한 번의 긴 여행을 끝마치고
돌아온 거구나.
비록 경이로운 유레카의 순간들은 지나갔지만,
이제는 발견한 것들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느긋하게 향유하며
내 세상을 지속적으로 풍족하게 가꾸는 일들이
남아있구나.
그저 넓기만 하던 땅에
수많은 자원들이 생긴 거야.
씨를 뿌리고 꽃을 피운 뒤에
열매를 수확하고 나누는 일만이 기다리고 있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이치 아니겠어.
그렇게, 나누고 살다가,
언젠가는 비옥한 땅의 거름이 되어야겠다.
아, 어쩌면 눈물 나도록 아름다운 인생이 될 것도 같아!
우리 엄마아빠도 참,
이름 한 번 잘 지으셨네.
저, 아름답게 잘 살다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