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하는 자아'와 '경험하는 자아'
나에게는 '관찰하는 나'와 '경험하는 나'가 있다.
며칠 전 이와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친구가 진지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근데 그게 좋은 게 아닐 수도 있어. 그러다가 인간성이 사라질 수 있거든. 진짜 조심해야 해."
흥미로웠다.
친구의 이야기가 새로워서가 아니라,
그런 생각을 하고 함께 나눌 수 있는 존재가 내 곁에 있다는 사실과,
'내가 그런 걸로 인간성을 잃을 수도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걸까?'라는 신선한 의문이.
나는 대답했다.
"응, 무슨 말인지 이해해. 나도 동의해.
그런데 걱정 안 해도 돼.
내가 무심하고 감정을 못 느끼는 사람이라 두 개의 나를 갖고 있는 건 아니니까.
오히려 나는 인간성의 상실과는 극단적인 대척점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바닥까지 들어갈 정도로 너무 깊고 넓게 느껴서 그런 태도를 가질 수 있는 거야.
그건 삶의 과정에서 내가 무의식적으로 터득한 필수불가결한 '생존본능'이자,
평생 의식적으로 균형을 맞추고 살아야 하기도 하는,
그저 다루기 피곤하고 까다로운 '삶의 방식'인 거지."
하나의 나는 한 발짝 떨어져 고요히 나를 내려다보고,
또 하나의 나는 소용돌이의 중심에서 기꺼이 피 흘리며 서 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