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의 HR 커피챗 시리즈
[Edited by iid the HRer]
※ 내가 쓰는 글들은 개인적인 경험과 고민을 바탕으로 한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니, 편하게 봐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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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에서 HR을 설계한다는 건 종종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질서를 부여하는 일이다. 채용은 늘 급하고, 평가 기준은 매번 바뀌며, 보상은 정해졌어도 예외가 더 많다. 그리고 그 모든 혼란의 중심엔 언제나 사람, 그중에서도 ‘대표’가 있다.
엑셀로 만든 연봉 테이블보다 “얘는 오래 함께했잖아”라는 말 한 마디가 더 강력하고, 정교하게 설계한 평가 제도보다 “나는 그 친구가 좀 더 책임감 있어 보여”라는 느낌이 더 현실적인 기준이 된다. 우리는 제도를 설계하지만, 조직은 감정으로 움직인다.이 비합리성은 스타트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이 모여 있는 모든 조직은 ‘제도가 작동하지 않는 이유’를 안고 있다. 다만 스타트업은 그 비합리성이 훨씬 더 적나라하게 드러날 뿐이다.
빠른 속도, 불확실한 방향, 제한된 리소스, 그리고 무엇보다 ‘대표의 직관’에 의해 좌우되는 수많은 의사결정. 그 결과, HR 담당자는 이렇게 자문하게 된다. “이 정도 상황에서도 기준을 세울 수 있을까?” “제도는 만들었지만, 작동하지 않을 땐 어떻게 해야 하지?”
스타트업 HR을 오래 하다 보면, HR을 기반으로 창업 아이템을 고민하는 예비 창업자들의 인터뷰 요청을 받곤 한다. 그들은 종종 비슷한 질문을 던진다.
“HR 쪽에서 사업화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요?”
“AI로 채용이나 평가를 바꿔보는 건 어떨까요?”
“결국 HR도 데이터 싸움 아닌가요?”
나는 늘 조심스럽지만 확신 있게 답한다.
“HR을 비즈니스 모델로 삼는 건, 진심으로 말립니다.”
많은 이들이 의아해한다. HR을 오래 해온 사람이 왜 가능성을 말리는지 반문한다. 하지만 나는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이 말을 반복한다. 기회가 없어서가 아니다. 기회로 보이는 것들이, 실제로는 구조적으로 작동하지 어렵기 때문이다.
HR의 본질은 언제나 “사람을 판단하는 일”에 있다. 그 판단은 단순히 채용 결정이나 평가 점수를 매기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이력서를 넘기고, 인터뷰를 세팅하고, 구성원의 성과를 정리하며, 회고를 진행하는 그 모든 과정 속에 작고 끊임없는 판단의 순간들이 숨어 있다. 그리고 그 판단은 지금도, 앞으로도 쉽게 객관화되지 않는다. 누가 봐도 스펙과 결과가 뛰어난 A 후보자가, “느낌이 좀 애매하네요”라는 이유 하나로 탈락하는 일.
이 장면은 단발적 실수가 아니라, 수없이 많은 조직에서 반복되고 있는 현실이다. 채용 회의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말은 늘 비슷하다. “B가 우리 팀에 더 잘 어울릴 것 같아요.” 그 어떤 지표보다 ‘어울릴 것 같다’는 감각이 결정을 좌우한다. 그리고 이 말은 수치로는 설명되지 않지만, 조직 안에서는 종종 타당한 판단으로 받아들여진다.
왜일까?
우리는 의사결정을 논리와 근거로 설명하길 원하지만, 사람은 결국 감정, 관계, 맥락 속에서 판단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논리보다 감정, 수치보다 분위기, 이성보다 맥락. 우리는 수많은 기술을 도입하고 데이터를 분석하지만, 결정의 마지막 문을 여는 건 언제나 사람의 주관적 판단이다. 그리고 그 판단은 늘 복잡하고, 애매하고, 명확하지 않은 감정의 지형 위에서 일어난다.
예를 들어 보자.
누군가는 팀 분위기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조용히 제외되고,
누군가는 학습 속도가 느릴 것 같다는 막연한 인상으로 탈락하며,
반대로, ‘성격이 좋아 보이고 말이 잘 통한다’는 이유로 기회를 얻는다.
이건 편견이라기보다는, 인간이 ‘함께 일할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할 때 본능적으로 작동하는 관계 감각의 반영이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HR은 늘 제도와 현실 사이의 간극을 감당해야 한다.
요즘은 다양한 기술이 등장하고 있다. AI 기반 역량 진단, 성향 분석, 업무 성향 테스트, 인터뷰 어조 분석 등… 사람의 판단을 ‘덜 주관적’으로 만들기 위한 시도는 꾸준히 이어진다. 자소서의 문장 구조를 점수화하고, 대화 패턴을 분석해 조직 적합도를 보여주는 툴들도 널리 쓰이고 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이 수치들은 뒷전으로 밀린다. 기계가 추천한 A보다, 말이 잘 통하고 눈빛이 편한 B가 선택된다. 그리고 그 선택은 “감정적인 결정”이 아니라,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관계를 고른 것”이라고 설명된다. 이 말 속에 HR 판단의 현실이 그대로 담겨 있다. 사람은 언제나, 자신이 책임질 수 있는 리스크와 관계를 선택한다.
이러한 판단 구조는 단순한 편견이나 실수의 문제가 아니다. 이건 인간의 본질을 전제로 한 구조적 현실이다. 행동경제학과 조직심리학에서도 이를 설명하는 개념이 있다. 바로 제한된 합리성(Bounded Rationality)이다. 인간은 모든 정보를 다 알 수 없고, 그 정보를 완벽하게 처리할 시간과 인지 자원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불완전한 정보, 제한된 시간, 불명확한 정답 속에서 결정을 내린다. 그 순간 작동하는 것은 이성적인 분석이 아니라, 직감, 관계에 대한 신뢰, 분위기, 그리고 그 선택을 책임질 수 있느냐는 감각이다.
HR은 수많은 기술과 도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 기술이 최종 선택까지 책임질 수는 없다. 최종 판단과 결과에 대한 책임은 결국 사람에게 귀속된다. 그래서 HR은 본질적으로 ‘판단의 영역’에 머무를 수밖에 없고, 그 판단은 늘 사람의 감정, 경험, 관계성 위에서 작동한다.
HR을 비즈니스 모델로 삼겠다는 아이디어는 매력적이지만 막상 현실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돈이 되지 않는 구조임을 실감하게 된다. 그 핵심은 간단하다. HR은 기업 입장에서 돈을 쓰기 애매한 영역이다. 마케팅, 영업, 고객 서비스는 수치로 효과를 설명할 수 있지만 HR은 ‘조직문화 정착률’, ‘만족도’, ‘공정성’ 같은 정성적 지표가 중심이다. 그리고 그 지표들은 손익에 직결된다는 명확한 근거를 만들기 어렵다. 그래서 많은 기업은 HR 문제를 툴로 해결하기보다는 “담당자가 좀 더 잘하면 되지 않겠냐”는 방식으로 접근한다. HR툴이 개입해도 가치를 입증하기 어렵고, 결국 사람 중심의 운영이 계속된다.
HR SaaS 툴 중 사업화에 성공한 분야는 분명 있다. 단, 툴이 사람의 리소스를 줄여주는 구조여야 한다.
여기서 핵심은 툴이 반복을 줄이고, 명확한 비용 절감을 만든다는 점이다. 그때 기업은 비로소 “툴을 써야 하는 이유”를 갖게 된다.
하지만 판단의 영역은 여전히 벽이 높다. 툴과 기술이 아무리 진화해도, HR의 중심에는 여전히 ‘사람의 판단’이라는 벽이 놓여 있다. 이 벽은 단순히 기술의 한계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진 고유한 작동 원리이자, 조직 안에서 작동하는 감정적 구조의 총합이다. HR 영역 중에서도 특히 사람의 감각과 주관이 핵심이 되는 영역은, 시스템이 개입한다고 해서 쉽게 자동화되거나 효율화되지 않는다. 이른바 ‘의사결정형 HR’ 영역이다. 채용 최종 판단, 인재 선발, 승진 여부 결정, 문화 적합성 검토 등…모두가 수치와 규칙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문제다.
AI가 모든 데이터 지표상 A를 추천해도, 현장의 리더는 결국 “느낌이 더 좋은 B”를 선택한다.
성과 지표에서 앞선 구성원이 승진 후보였지만, 조직에 더 잘 스며들 것 같은 사람이 선택된다.
조직문화 진단 결과에서 가장 높은 적합도를 보인 사람이, “말이 안 통할 것 같아서” 탈락된다.
이런 결정들은 시스템 입장에서는 예외로 보이지만, 조직 입장에서는 지극히 자연스럽고, 때로는 전략적인 판단이다. 왜냐하면 조직 안의 인간은 수치보다 관계와 감정의 리스크를 더 크게 체감하기 때문이다.
툴이 도입되어도 책임은 전가되지 않는다. 실패했을 때, 누구도 AI의 선택을 비난하지 않는다. “그래도 그 판단은 네가 한 거잖아.” 결국, 책임은 사람에게 돌아간다. 이 구조 속에서 기업은 선택한다. 반복은 시스템에 맡기되, 판단은 사람에게 남긴다. 이 단순한 공식이, HR의 자동화 한계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많은 이들이 말한다. “AI가 HR을 완전히 바꿀 것이다.” 면접자의 표정을 분석하고, 언어 습관을 읽어내며, 대화 내용을 기반으로 성향을 예측하는 기술이 등장하고 있다. 이미 수많은 스타트업들이 이런 기술을 중심으로 HR SaaS 사업을 기획하고, 투자자도 이에 반응한다. 하지만 우리는 자주 본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반복되는 실망의 패턴. 왜냐하면 HR의 본질은 ‘판단을 대체하는 기술’이 아니라, ‘판단이 이루어지는 맥락과 환경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에 있기 때문이다.
즉, HR은 언제나 사람이 덜 흔들리도록, 더 명료하게 판단할 수 있는 구조를 설계하는 일이다. 기술은 프로세스를 줄이고, 데이터는 더 풍부해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을 더 잘 ‘이해’하게 된 건 아니다. 예컨대, 게놈지도가 완성되었다고 해서 인간의 성격과 행동, 감정과 책임까지 예측할 수는 없다. 우리는 누가 유전적으로 질병에 취약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있지만, 그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여전히 모른다. HR도 마찬가지다.
데이터가 많아질수록 가능성은 커지지만, 선택의 순간은 여전히 감각과 맥락, 그리고 책임질 수 있는 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이것이 기술이 대체할 수 없는 이유다.
기술로 HR을 바꾸겠다는 시도는 이미 여러 조직에서 반복되어 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비슷한 패턴의 실패도 반복된다. 예를 들어, 한 중견 IT기업은 AI 기반 평가 시스템을 도입했다. 지원자의 인터뷰 영상을 분석해 말투, 눈동자, 시선 처리, 언어 사용을 정량화했다. ‘조직 적합도 점수’가 제공되었고, 평가표는 보기 좋게 시각화되었다. 도입 초기에는 모두가 감탄했다. 면접관도, 팀장도, 대표도 “이제는 우리도 정량 기반으로 채용한다”고 기대에 찼다. 하지만 몇 분기 지나지 않아 문제는 수면 위로 떠올랐다.
적합도 점수가 가장 높았던 인재가 실제로는 성과를 내지 못했고,
점수가 낮아 탈락시킨 후보가 다른 회사에서는 핵심 인재가 되었으며,
면접관들은 자신의 직관과 AI 점수가 다를 때 혼란을 느꼈다.
결국 이 기업은 그 시스템을 '참고 자료'로 격하하고, 다시 리더의 판단, 실무자의 감각 중심으로 돌아갔다. 이건 하나의 실패가 아니다. HR AI 도입의 본질적 한계를 보여주는 사례다. 기술은 정량화에 능하지만, 신뢰와 책임은 정량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다시 질문하게 된다.
“HR은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하는가?”
“HR은 정말 시스템 설계자일까? 감정의 중재자일까? 그냥 관리자일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HR은 감정과 기준 사이의 틈을 읽는 사람이다. 기준이란, 조직이 기대하는 방향과 성과다. 감정이란, 구성원이 실제로 느끼고 반응하는 방식이다. 이 두 세계는 늘 약간의 어긋남을 안고 있다. HR은 그 틈을 포착하고, 맥락을 정리하고, 간극을 메우는 역할을 한다. 때로는 제도를 만들고, 때로는 리더를 설득하고, 때로는 애매한 침묵을 구조로 번역한다. 그것이 바로 조직이라는 유기체의 리듬을 조율하는 사람, HR이다.
이쯤에서 문득, 오래전 이야기 하나가 떠오른다. 삼성그룹의 창업자 이병철 회장이 면접 자리에 관상가를 동석시켰다는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사람들은 이를 ‘미신’이라고 쉽게 치부하지만, 그 행위는 오히려 “사람을 판단하는 일이 과학의 영역에만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데이터를 정리하고, 모든 성과를 수치화해도, 사람이라는 존재는 결국 감정과 신뢰, 책임감 속에서 판단된다는 것.
AI는 표정을 읽고 어조를 분석할 수는 있지만, “이 사람과 10년을 함께 갈 수 있을까”라는 감각까지는 측정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HR은 언제나 ‘계산 불가능한 리스크’와 ‘정량화할 수 없는 신뢰’를 감당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감정을 없앨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은 잘못된 출발이다. 대신 우리는 이렇게 물어야 한다. “어떻게 해야 감정과 구조를 함께 움직일 수 있을까?” 그 관점에서 HR이 다루는 수많은 비합리성을 다시 들여다보자. 사람을 다루는 모든 구조의 이면에는 이론보다 맥락, 기술보다 관계, 수치보다 직관이 놓여 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HR을 다시 읽기 위해, 경영학 이론 네 가지를 도구로 꺼내든다.
사람은 모든 정보를 알지 못하고, 설령 안다 해도 그것을 다 고려할 시간과 에너지가 없다.
그래서 항상 불완전한 조건 속에서 결정을 내리며, 그때 작동하는 건 이성보다는 맥락과 감정이다.
✅ HR이 판단을 수치로 바꿀 수 없는 이유
조직은 항상 명확한 질서로 움직이지 않는다.
의사결정은 일관성보다 흐름과 우연성에 따라 이뤄지고, 그 안에서 HR은 판단의 경로를 포착해야 한다.
✅ 절차보다 관계를 설계하는 HR의 현실
인간은 논리보다 프레임에 민감하고, 확실한 손해를 더 크게 느낀다.
감정, 프레이밍, 손실회피 심리는 HR의 설계와 실행에 반복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 평가, 피드백, 보상에서 ‘심리적 저항’이 생기는 이유
보상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신뢰와 교환, 인정이라는 사회적 심리 구조 속에서 작동한다.
✅ 같은 연봉도 ‘기분 좋게’ 받는 사람이 있고, ‘기분 나쁘게’ 받는 사람이 생기는 이유
이 네 가지 이론은 단지 학술적 개념이 아니다. HR이 마주하는 모순과 혼란을 해석하는 언어이자, 조직 안에서 반복되는 인간적 현실을 이해하는 실마리다. 이어서 다음 편에서는 이 네 가지 렌즈를 통해 실제 조직 내 HR 판단 구조를 해석하고, 제도 설계와 인간 감정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연결할 수 있는지를 구체적인 사례로 풀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