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의 HR 커피챗 시리즈
[Edited by iid the HRer]
※ 내가 쓰는 글들은 개인적인 경험과 고민을 바탕으로 한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니, 편하게 봐주면 좋겠다.
✅ '비즈니스 미팅 / 커피챗 w iid' ( 신청 링크 )
꼰대란 지식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지식은 많은데 관점이 멈춰 있는 사람, 그리고 질문을 멈춘 사람이 꼰대에 가깝다. 변화하는 시대 흐름 속에서도 자기 기준만을 절대적 정답이라 생각하고, 새로운 제안이나 방식 앞에서 먼저 “이건 왜 이래?”라는 반사적 거부감을 드러낸다. 지식 자체는 여전히 유효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지식을 바라보는 시선이 고정되어 있고, 세상의 변화를 해석하려는 시도가 멈춰 있다면 이미 위험 신호가 켜진 것이다.
이 위험신호는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단순히 ‘성격이 까다롭다’는 차원이 아니라, 세대 간 소통의 단절과 조직 발전의 지연이라는 더 큰 결과로 이어진다. 한 조직에서 다양한 세대가 함께 일한다는 건, 서로 다른 관점과 경험이 만나 시너지를 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꼰대적 태도는 이런 교차점을 가로막는다. 마치 좁은 병목 구간에서 모든 차량이 한 줄로만 서야 하는 것처럼, 조직의 속도를 느리고 불편하게 만든다. 게다가 꼰대의 문제는 단순히 ‘연령’이나 ‘경력 연차’의 문제가 아니다. 젊은 세대라고 해서 안전지대에 있는 것도 아니다. 요즘의 꼰대는 나이가 많지 않아도 존재한다. 자기 분야에서 일정한 성과를 낸 뒤, 그 방식만이 옳다고 굳게 믿고 고집하는 순간, 나이와 상관없이 젊은 꼰대가 된다. 즉, 꼰대란 ‘과거의 성공 방정식’이 유일한 기준이 된 사람을 뜻한다.
그리고 조직에서 이런 사람이 늘어날수록, 새로운 시도는 ‘위험한 일’로 규정되고, 익숙한 방식만이 안전하다는 인식이 퍼진다. 아이러니하게도 조직은 변화를 외친다면서도, 그 변화가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토양을 스스로 말라가게 만드는 셈이다. 그렇다면 지금 시대의 꼰대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며, 우리는 이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이제 꼰대의 자화상부터 차근차근 살펴보자.
요즘의 꼰대는 예전처럼 단순히 나이와 직급으로만 구분되지 않는다. 외형상 젊고 세련돼 보이더라도, 사고방식이 굳어 있고 새로운 관점에 대한 배타성이 높으면 이미 ‘꼰대’의 길로 접어든 것이다. 그 대표적인 유형이 내로남불형이다.
내로남불형 꼰대는 나이 많은 꼰대를 향해서는 “그런 건 꼰대예요”라고 지적하면서도, 정작 본인은 또래 세대나 어린 세대를 향해 “요즘 애들은 왜 이래?”라는 말을 태연히 한다. 문제는 스스로는 여전히 ‘젊고 유연하다’고 믿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본인 안의 모순을 알아채지 못한다. 결국 늙은 꼰대를 비판하면서도, 다른 세대를 평가하고 폄하하는 젊은 꼰대라는 이중 구조 속에 빠져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꼰대일까? 이를 점검하려면 두 가지 관점에서 스스로를 관찰해보아야 한다.
첫째, 내가 잘 안다고 생각하는 분야에서의 반응을 살펴본다. 예를 들어, 내가 익숙한 분야의 글이나 칼럼—브런치, 링크드인 같은 플랫폼에서 본 콘텐츠—을 접했을 때, ‘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라는 열린 반응이 나오는가? 아니면 ‘이건 아니지, 틀렸는데?’라는 부정적인 평가가 먼저 튀어나오는가? 후자의 경우, 이미 내 기준이 절대값이 되어 있다는 뜻이고, 이는 꼰대 신호일 수 있다.
둘째, 잘 모르는 분야의 콘텐츠를 접했을 때의 태도를 관찰한다.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호기심을 가지고 탐색하려 하는가? 아니면 익숙한 프레임 안에 억지로 끼워 맞추어 해석하려 드는가? 후자의 경우, 새로운 지식을 자기 세계에 흡수하려 하기보다, 기존 필터에 맞추어 재단하는 태도다. 바로 이런 ‘모르는 것에 대해 내 해석 필터로만 판단하려는 태도’가 꼰대의 전형적인 작동 방식이다.
이 자기 점검법은 단순히 ‘내가 꼰대인지 아닌지’의 판단 도구를 넘어, 세대 간 관계나 조직 내 협업에서 어떤 위험을 만들 수 있는지도 알려준다. 왜냐하면 이런 사고 패턴은 결국 타인의 새로운 시도를 가로막고, 대화의 문을 닫는 습관이 되기 때문이다.
꼰대는 대부분 후천적 형성물이다. 그러나 태생적 기질과 성장 환경에 따라 선천성 꼰대가 존재하기도 한다.
선천성 꼰대는 지식이나 경험이 부족할 때 나타난다. 낯선 것에 대한 불안이 강하고, 이를 ‘거부감’으로 표현한다. 세상에 대한 이해의 폭이 좁고, 자기 세계 밖의 것에 쉽게 위협을 느낀다. 이 위협감은 ‘나와 다르다 → 낯설다 → 불편하다 → 틀렸다’라는 인식 흐름을 거쳐 배타적 태도로 드러난다.
반면, 후천성 꼰대는 성취 이후에 생겨난다. 특히 두 가지 전형이 있다. 성공 경험 고착형: 어떤 방식으로든 성과를 낸 경험이 고착되어, 이후의 판단 기준이 더 이상 업데이트되지 않는 경우다. “내가 이렇게 해서 성공했는데”라는 문장이 무의식적으로 모든 판단의 기본값이 된다. 이들은 과거의 성공 방정식을 ‘검증된 절대 진리’로 착각한다. 경험 위계 절대화형: 삶을 살아오며 쌓은 경험과 지위를 절대화하는 경우다. 나이, 출신, 학력, 연봉, 보유 자산 등 특정 기준을 중심으로 사람을 평가하며, 이를 자신만의 ‘옳은 틀’로 확신한다. 이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은 쉽게 무시하거나 평가절하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 두 유형 모두 과거의 기준이 현재를 지배한다는 공통점을 가진다는 것이다. 즉, 현재 상황과 맥락에 따라 관점을 재조정하기보다, 과거의 성공 패턴이나 위계 구조를 현재에도 그대로 들이민다.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꼰대도 변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변할 수 있다. 그러나 스스로 변하기는 매우 어렵다. 사람이 변하는 가장 강력한 계기는 ‘외부 피드백’보다 고립의 체감에서 온다. 회의에서 자신의 발언이 더 이상 주목받지 않고, 대화의 주도권이 사라지고, 사람들이 피하거나 회의 시간조차 줄이는 상황. 이런 고립이 쌓일 때 비로소 “혹시 내 방식에 문제가 있는 걸까?”라는 의문이 생긴다.
주변에서 “이제 좀 바뀌셔야 합니다”라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여전히 영향력이 있다고 믿고 중심에 서 있다고 느끼는 동안은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심지어 ‘나를 이해 못하는 사람들이 문제’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진짜 변화는 관계가 멀어지고, 자신이 더 이상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감각적으로 깨닫는 순간 시작된다. 그때서야 비로소 과거의 방식이 통하지 않는 현실을 인정하고, 새로운 시도를 받아들일 준비가 된다.
꼰대가 조직에 반드시 해악만 미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오랜 시간 동안 축적된 관행과 맥락, 문서화되지 않은 암묵지(暗默知)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구성원이다. 특히 내부 프로세스가 미비하거나, 매뉴얼이 없고, 경험 전승 체계가 취약한 회사라면 이들의 존재는 일종의 ‘살아있는 데이터베이스’ 역할을 한다.
현장에서는 시스템이나 문서가 부재한 경우가 흔하다. 이런 환경에서 꼰대의 경험은 자연스럽게 구술 매뉴얼로 작동한다. 그들의 기억 속에는 수많은 사례가 저장되어 있다.
과거 어떤 시도가 성공했는지
어떤 방식이 실패로 끝났는지
어떤 변수에서 위험이 발생했는지
이러한 경험은 위기 상황에서 빠른 판단을 돕고, 시행착오를 줄이며, 조직의 안정성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특히 신규 사업이나 프로젝트에서 “예전에 이런 상황이 있었지”라는 말 한마디가 불필요한 위험을 피하게 해 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 장점이 판단과 의사결정의 절대 기준으로 굳어질 때 문제가 발생한다. 지식과 경험은 자산이지만, 그것이 유연성을 잃는 순간 조직은 발전보다 ‘유지’, 진화보다 ‘보존’을 택하게 된다. 과거의 성공 방식이 새로운 시도를 가로막는 방패가 되는 것이다.
경험이 많은 꼰대일수록 변화 저항은 심해진다. 이는 단순히 고집이나 성격 문제만은 아니다. 위험 관리의 관점에서도 설명할 수 있다. 본인들이 직접 겪었던 실패와 성공의 사례가 머릿속에 있기 때문에, 새로운 방식은 검증되지 않은 불필요한 위험으로 보인다. 그 결과, ‘안 해본 방식’보다 ‘이미 검증된 방식’을 훨씬 더 선호하게 된다.
한 제조기업의 20년 경력 베테랑 임원은 과거 영업 전략만을 고집했다. “이 방식이 우리를 여기까지 키운 방법”이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결과 신시장 진출이 1년 이상 지연됐고, 그 공백을 경쟁사가 빠르게 차지했다. 결국 그 경험과 지식은 안전장치가 아니라 성장의 발목이 되고 말았다.
꼰대의 존재는 단순한 개인 성향 문제를 넘어 조직문화의 작동 방식에도 깊게 스며든다.
✅발언 위축과 아이디어 감소
꼰대식 발언을 반복해서 접한 신입이나 젊은 직원들은 자연스럽게 “말해봤자 안 변한다”는 인식을 갖게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회의에서 의견 개진이 줄고, 혁신 제안이나 문제 제기가 드물어진다. 이는 조직의 활력과 변화 가능성을 떨어뜨린다.
✅경험의 위계가 지배하는 문화
꼰대가 중심에 있는 조직에서는 아이디어의 내용보다 ‘누가 말했는가’가 더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이 구조에서는 창의적인 제안이 채택되기 어렵고, 실행 단계에서도 기존 권위자의 동의 없이는 추진이 불가능해진다. 결국 새로운 시도는 구조적으로 억제된다.
✅비공식 권력 형성
공식 직위와 별개로,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한 비공식 영향력이 형성된다. 이 영향력은 공식 보고 체계보다 더 강하게 작동할 때가 있으며, 심할 경우 조직의 공식 의사결정 라인을 무력화시키기도 한다.
즉, 꼰대는 조직의 과거를 보존하는 강력한 아카이브이자, 동시에 미래 변화를 가로막는 잠재적 장벽이 될 수 있다. 그들의 긍정적 역할을 살리면서 부정적 영향을 제어하는 것이 조직 운영의 핵심 과제가 된다
꼰대와 MZ, 어느 한쪽 방식만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전제하는 순간, 공존은 불가능해진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길이 누군가에겐 최선일 수 있지만, 동시에 다른 누군가에겐 불편하고 낯설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이 인정이야말로 세대 공존의 첫 단추다.
조직에서 세대 차이는 단순한 ‘연령 차이’가 아니라, 환경·교육·기술·문화적 배경의 차이가 한데 얽혀 만들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한 세대의 사고방식이 다른 세대에게는 쉽게 이해되지 않거나, 심지어 비합리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문제는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내가 살아온 방식이 정답”이라는 전제를 깔고 상대를 바라보면, 그 순간부터 대화의 문은 닫히고 방어만 남게 된다.
특히 꼰대 입장에서는 말을 줄이고 질문을 늘리는 연습이 필요하다. ‘정답을 주는 사람’에서 ‘함께 기준을 만드는 사람’으로 역할을 전환해야 한다. 단순히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단언 대신, “네 생각은 어떤데?”, “이 방법이 왜 필요하다고 생각해?” 같은 물음을 던지는 순간, 협업의 문이 열린다. 질문은 단순히 대화를 여는 수단이 아니라, 상대가 스스로 사고하고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장치다.
반대로 MZ 세대는 시간의 가치를 가볍게 보지 않아야 한다. 꼰대가 가진 수십 년의 시간 속에는 무수한 실험과 실패,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걸러진 검증의 결과가 담겨 있다. 이건 단순히 오래됐다는 이유로 버려야 할 낡은 방식이 아니라, 위험을 거르고 살아남은 생존의 지식이다. 이를 존중하지 않는 순간, 대화의 토대는 무너지고, 세대 간 협업은 시작조차 할 수 없다.
세대 간 협업은 설득으로 시작되지 않는다. 특히 MZ가 꼰대 리더와 함께 일할 때는 말로 설득하려는 시도보다 작은 실행을 통한 신뢰 쌓기가 훨씬 효과적이다. 말로 아무리 좋은 계획과 비전을 설명해도, 그것이 실제 결과로 이어지지 않으면 기존 방식에 익숙한 꼰대 세대는 “그래도 예전 방식이 낫다”는 결론을 내리기 쉽다.
따라서 MZ는 일단 작게라도 실행하고, 그 실행이 실제 성과로 이어지는 사례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테면 새로운 툴 도입을 제안할 때, 전사적 도입을 요구하는 대신 한 팀·한 프로젝트 단위로 시범 적용해본 뒤, 업무 속도·오류 감소·성과 개선 등의 데이터를 수집해 제시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감정 논쟁 대신 팩트 기반의 대화를 가능하게 한다.
데이터는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꼰대 세대는 새로운 방식에 대한 불신이 크지만, 숫자와 결과로 보여주면 그 거부감이 완화된다. “괜히 새로운 방식을 시도했네”가 아니라, “이 방식도 통할 수 있겠구나”라는 경험으로 인식이 바뀌는 것이다. 특히 숫자와 사례가 반복적으로 쌓이면, 기존 방식을 고수하던 사람도 점차 변화를 받아들이게 된다.
결국 신뢰를 만드는 실행이란, ‘작은 성과 → 데이터 제시 → 점진적 확산’의 구조다. 여기서 중요한 건 한 번의 설득이 아니라 여러 번의 작은 승리다. 말이 아니라 보여주는 것, 감정이 아니라 증명하는 것이 세대 간 신뢰를 만드는 핵심 메커니즘이다.
세대 간 갈등을 줄이기 위해선 감정의 자유를 강조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마음껏 말해보라'는 말은 오히려 불안감을 키울 수 있다. 오히려 필요한 건, 말하더라도 어디까지 말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공감된 구조와 가이드다.
✅ 피드백을 위한 최소한의 구조는 필요하다.
조직 내 피드백이 갈등으로 이어지는 이유는 대부분, "그건 그냥 내 생각이었어"라는 말로 끝나는 무형의 충돌 때문이다. 피드백이 자유로울수록 각자의 언어와 해석이 격하게 부딪치게 된다. 그래서 행동 중심, 개선 제안 포함, 구체 사례 제시 등 간단한 가이드라인만 있어도 감정의 상처보다 건설적인 상호작용이 가능해진다. 자유는 어느 정도의 틀 위에서 작동할 때 안전하다.
✅ 서로 다른 관점을 공유할 수 있는 ‘평가 없는 이야기 장’이 필요하다.
세대 간 이해는 결국 서로의 다름을 드러낼 수 있는 경험 공유에서 출발한다. 이를 위해선, 서로의 이야기를 가볍게 던지고 편하게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는 장이 먼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어릴 때 생일파티는 어땠는지”, “첫 고백은 어떤 방식이었는지”처럼 세대 차이가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소소한 주제는 ‘그땐 그랬구나’라는 리듬을 만들고, ‘틀렸다’가 아닌 ‘달랐다’는 언어를 흐르게 한다. 단, 판단과 해석이 섞이기 쉬운 주제는 조심해야 한다. “요즘 애들은 끈기가 없어”, “그땐 다 밤새 일했어” 같은 주제는 쉽게 비난과 방어의 구조로 빠져버릴 수 있다. 공감보다 ‘누가 맞느냐’로 흘러가는 순간, 장은 깨지고 대화는 닫힌다. 그래서 이 대화는 가벼워야 하고, 느슨해야 하며, 비교가 아닌 관찰의 태도로 유지되어야 한다. 비평 없는 이야기, 판단 없는 경험 교환. 그런 자리를 조직이 의도적으로 만들어줄 때, 비로소 사람들은 서로 다른 기준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꼰대가 사라진 조직은 잠시 자유롭고 유연해질 수 있다. 기존의 기준이 사라지고 모든 의견이 평등하게 놓이면 실험과 시도가 활발해지고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한 저항도 줄어든다. 처음에는 이러한 변화가 신선하고 역동적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동시에 조직은 오랜 시간 축적해온 시행착오의 결과를 한순간에 잃을 위험에 처한다. 과거에 이미 겪어보고 버려진 방식이나 실패했던 길을 다시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단순히 낡은 방식을 되살린다는 문제가 아니라, 이미 치른 비용과 시간을 또다시 지불해야 하는 문제다.
세상에는 수많은 가치가 존재하며, 세대별로 각기 다른 환경과 맥락 속에서 진화해왔다. 최신 방식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어떤 가치는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유효하고, 구식처럼 보여도 특정 상황에서는 가장 안전하고 검증된 선택이 된다. 그래서 ‘구버전의 질서’가 혼란을 조절하고 균형을 잡는 안전판이 되기도 한다. 최근 읽었던 전지적 독자 시점 속 세계를 떠올려보면 이해가 쉽다. 수많은 멀티버스와 세계선이 존재하며, 각각의 세계는 서로 다른 가치와 결과를 만들어낸다. 그 차이가 반드시 실패를 의미하진 않는다. 각 세계선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고, 그 경험들이 모여 역사를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빠른 길이 있으면 느린 길도, 혁신이 있으면 보수적 선택도 필요하다. 이 모든 가치와 선택이 조직의 ‘멀티버스’를 이루며 미래를 형성한다.
그래서 변화만이 선이라고 믿기 쉽지만, 실제로는 서로 다른 가치들이 각자의 속도와 방식으로 공존할 때 조직은 가장 안정적이고 유연하게 작동한다. 빠른 세대는 혁신의 가속기를, 느린 세대는 리스크의 제동기를 쥔다. 이 둘이 부딪히지 않고 맞물려 돌아갈 때 조직은 단기 성과와 장기 지속 가능성을 함께 잡을 수 있다.
꼰대는 이런 다층적 기준의 일부다. 불편하고 답답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 존재는 다른 세대의 속도를 조율하고 변화를 붙잡아 주는 보이지 않는 균형추다. 그래서 조직의 성장은 한쪽을 밀어내는 데서 나오지 않는다. 서로 다른 가치가 각자의 리듬으로 살아 숨 쉬며, 그 차이가 맞물려 돌아갈 때 비로소 조직은 앞으로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