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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d] 전능감(全能感)을 내려놓아야 대표는 완성된다

이드의 HR 커피챗 시리즈

by iid 이드

[Edited by iid the HRer]

※ 내가 쓰는 글들은 개인적인 경험과 고민을 바탕으로 한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니, 편하게 봐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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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전능감은 이렇게 태어난다


대표라는 자리는 애초부터 권력을 쥐고 시작하는 자리가 아니다. 창업 초기에 대표는 ‘사장’이라는 명함만 있을 뿐, 실질적인 힘은 없다. 매출도 없고, 투자도 없고, 조직도 없으며, 옆에 있는 사람조차 언제든 떠날 수 있다. 그때 대표를 버티게 하는 건 단 하나, 입과 몸이다. 말로 설득하고, 몸으로 버티며, 모든 결정을 홀로 짊어지는 것.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 상황이 바뀐다.설득력과 헌신력으로 버티던 힘이, 형식적 권력(Formal Power)으로 변한다. 의사결정권, 자원 배분권, 인사권, 보상권… 회사의 심장과 혈관이 전부 대표 손에 모인다. 이때부터 대표는 한 가지 착각에 빠진다. “이건 회사의 권력이 아니라, 내 권력이다.” 이 시점에서 대표는 ‘대표’라는 역할과 ‘나’라는 존재를 분리하지 못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회사에 대한 비판이나 이견은 곧 나에 대한 공격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위험한 등식이 성립한다. 대표 = 회사, 나의 판단 = 회사의 판단.


이게 바로 전능감의 탄생 순간이다. 단순한 오만이 아니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직접 책임지며 살아남아야 했던 경험이, 시간이 지나면서 권력 구조와 뒤엉켜 절대 권력감으로 변한 것이다. 그리고 한 번 이 감각이 자리를 잡으면, 권력을 내려놓는 순간 곧 리더십이 무너질 것 같은 두려움이 따라온다.이 두려움이 대표를 스스로 만든 전능감의 감옥 안에 가둔다.



대표가 전능감을 갖게 되는 건 어쩌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처음 회사를 세울 땐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져야 한다. 그 과정에서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감각은 생존 본능과 함께 자리 잡는다. 게다가 대표 역시 사람이다. 불안하고, 조직이 무너질까 두렵고, 나를 믿고 따라오는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 그래서 더 많이 개입하고, 더 오래 쥐고 있고 싶어진다. 전능감은 오만함이 아니라, 때로는 책임감의 또 다른 얼굴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 감각이 회사를 구하던 힘에서, 회사를 묶는 족쇄로 변하는 순간이다.




‘내가 제일 잘 안다’는 함정, 그리고 통제의 중독

대표의 전능감은 종종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어야 한다’는 부담과 맞닿아 있다. 매출, 마케팅, 채용, 기술, 투자자 관리, 법무… 심지어 사무실 전등 스위치 위치까지, 대표는 그 모든 영역에 일정 수준 이상의 이해를 갖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모든 걸 내가 제일 잘 안다’라는 확신으로 굳어지는 순간이다. 이때부터 대표의 판단은 경험과 직관이 아니라 ‘나만이 할 수 있는’이라는 신념 위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조직이 커질수록 대표가 모든 것을 가장 잘할 수 없게 된다. 그럼에도 ‘잘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면, 판단의 질은 떨어지고 의사결정의 속도만 남는다.


30년 동안 대기업·글로벌 회사를 거쳐 임원까지 오른 사람조차 모든 영역을 다 알 수 없다. 그들에게 “지금 회사를 0부터 만들어보라”고 하면, 현재의 글로벌 조직을 그대로 재현하기 어렵다. 그 이유는 합리성이 곧 전문화이기 때문이다. 창업 초기의 통찰력과 실행력은 창업가의 것이지만, 이후 전략 수립은 전혀 다른 좌뇌·우뇌의 영역에서 전문가가 맡아야 한다. 사람을 다루는 일, 자금을 관리하는 일, 브랜드를 성장시키는 일은 모두 성격이 다르고, 그 각각에 맞는 전문가가 필요하다.


이렇게 전 영역을 직접 챙기고자 하는 성향은, 초기 성공 경험이 만들어낸 ‘내 판단은 늘 옳다’는 확신에서 더욱 강화된다. 여기에 회사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인식이 강해질수록 회사 일에 대한 통제 욕구는 더 커진다. 이 모든 것이 전능감을 장기간 유지시키는 토대가 된다.



시스템도, 사람도, 법인도 ‘내 것’이라는 착각


① 많은 대표들이 처음에는 시스템화, “내가 없어도 돌아가는 회사”를 꿈꾼다.

회사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매출이 오르기 시작하면, 대표 스스로도 더 이상 모든 일을 직접 챙기기보다 체계와 제도로 조직을 운영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낀다. 그러나 막상 그 시점이 다가오면 이상하게도 체계화의 속도가 늦춰진다.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표면적으로는 “아직은 유연하게 가야 한다”거나 “규정 만들면 답답해진다”는 말을 하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깊은 심리적 이유가 숨어 있다.


✅ 첫째, 시스템은 대표의 통제력을 분산시킨다.

체계가 만들어지면 의사결정 권한은 규정과 절차에 따라 분배된다. 이는 곧 대표가 모든 사안에 ‘마지막 사인’을 하는 구조에서 멀어진다는 뜻이다. 대표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회사를 만든 장본인인데, 이제는 중요한 결정을 다른 사람이 내린다는 것이 불편하고 불안할 수 있다.


✅ 둘째, 시스템은 대표의 감각과 판단을 대체한다.

많은 대표들은 자신의 직관이 빠르고 정확하다고 믿는다. 실제로 창업 초기에는 그 직관이 회사를 살린 경우가 많다. 그런데 시스템이 들어서면 그 직관은 ‘절차의 한 단계’로만 취급된다. 의사결정이 자신의 감각이 아닌 문서, 회의, 규정 절차로 이루어지는 상황은 대표에게 답답하게 느껴진다.


✅ 셋째, 시스템은 대표 자신을 ‘평범한 구성원’으로 만든다.

절차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대표는 더 이상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전능감의 마력은 바로 이 지점에서 강하게 저항한다. 창업 초기부터 ‘나만이 할 수 있다’는 감각으로 회사를 키워온 대표에게, 제도 속 한 구성원이 되는 경험은 낯설고 심리적 거부감을 만든다.


이런 심리로 인해, 시스템화 시도를 무의식적으로 무력화시키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경력직 리더들이 주도해 의사결정 프로세스와 예산 승인 절차를 만들었지만, 대표는 중요한 계약과 프로젝트에서 여전히 “최종 사인은 내가”라는 원칙을 고수했다. 심지어 마케팅 캠페인 문구나 디자인 시안까지 직접 승인해야만 실행이 가능했다. 그 결과 시스템이 있어도 모든 업무가 대표 결재를 기다리게 되었고, 대표가 해외 출장이나 투자자 미팅으로 며칠 자리를 비우면 결재 대기 중인 업무가 줄줄이 멈췄다. 결국 이 회사는 시스템을 운영하는 데 실패했고, 대표가 모든 것을 직접 챙겨야 하는 초기 방식으로 회귀했다. 이 시점에서 대표의 체력과 시간은 이미 한계에 다다라 있었고, 몇 달 후 신규 프로젝트 론칭 일정이 대폭 지연됐다.


또 다른 경우에는, 리스크 검토와 예산 배분 절차를 제안한 팀장에게 대표가 “그건 큰 회사에서나 하는 일”이라며 거부한 사례가 있다. 그러나 이후 대규모 마케팅 캠페인이 실패하며 수억 원의 손실이 발생했고, 그 실패를 분석하고 개선하는 절차조차 없었다. 대표의 눈에는 절차와 검토가 성장 속도를 늦추는 적으로만 보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시스템화를 꺼리는 대표들 대부분은 권한이 제도 속에 묶이면서 영향력이 약해질 것이라는 불안을 느낀다. “내가 결정을 내려야 속도가 난다”는 생각이 굳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방식은 시간이 지날수록 역효과를 낳는다. 대표 자신이 병목이 되고, 결정은 늦어지며, 조직은 대표가 없으면 멈추는 구조로 고착된다.


② 통제 심리는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이 통제 심리는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서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법적으로 구성원은 회사와 계약을 맺은 독립된 권리의 주체다. 하지만 전능감에 빠진 대표는 구성원을 ‘함께 계약한 동등한 파트너’가 아니라, ‘내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그리고 이 시각은 특히 보상 판단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보상은 원래 규정과 시장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합리적 기준 위에서 결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전능감이 강한 대표일수록, 대표의 호불호와 직관이 그 합리적 기준을 압도한다. 객관적 데이터보다 ‘내 판단’이 더 정확하다고 믿기 때문에, 보상 결정이 개인적 감정과 관계에 깊이 얽히게 된다.


예를 들어 “저 사람은 나를 위해 고생했으니 올려줘야 해”라거나, “이번 프로젝트는 마음에 안 드니 스톡옵션에서 빼자” 같은 판단이 자연스럽게 내려진다. 이렇게 되면 구성원은 보상 체계를 ‘규정에 따라 움직이는 제도’가 아니라 ‘대표의 기분과 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대표는 구성원을 나에게 은혜를 받은 사람, 내가 먹여 살리는 사람, 내가 돈을 주는 사람으로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로 급여를 지급하는 주체는 ‘대표 개인’이 아니라 ‘회사’다. 이 사실을 간과하면, 구성원이 불만을 표하거나 단순히 퇴사하는 것과 같은 계약 종료 상황에서도 대표는 불필요하게 큰 배신감을 느낀다. 그저 계약이 끝났을 뿐인데, 대표의 감정 속에서는 ‘나를 저버린 일’로 해석되는 것이다.


이런 해석 구조는 조직 문화에 깊은 흔적을 남긴다. 한 스타트업 대표는 초기에 합류한 디자이너가 더 큰 회사로 이직하자, 주변에 “내가 이렇게 챙겨줬는데 배신했다”고 말했다. 그 말이 퍼지자 남아 있는 구성원들은 “나도 언젠가 배신자로 불릴 수 있겠구나”라는 불안을 느꼈다. 그 이후 이직 의사가 있어도 미리 알리지 않게 되었고, 회사는 인력 이탈을 예측하지 못한 채 연속적인 타격을 받았다.


이 현상의 위험성은 단순히 ‘대표가 서운해한다’는 차원을 넘어선다. 구성원들이 이직을 숨기게 되는 순간부터, 조직은 전략적으로 인력 공백을 대비할 시간을 잃는다. 퇴사 직전까지의 인수인계 품질은 떨어지고, 대체 인력 채용도 시기를 놓치게 된다. 남아 있는 구성원들도 ‘이직을 말하는 건 곧 대표와의 관계 파탄’이라는 학습을 하게 되어, 불필요한 비밀주의가 자리 잡는다. 결국 통제 중심의 관계 인식은 보상 체계 왜곡 → 관계 불신 → 정보 단절 → 조직 대응력 저하라는 연쇄 반응을 만든다. 전능감이 조직 신뢰를 잠식하는 가장 은밀하고 강력한 경로 중 하나다.


③ 더 깊은 착각은 법인에 대한 태도에서 나타난다.

법인은 대표의 소유물이 아니다. 대표는 법인의 ‘관리인’이며, 주주는 법인의 ‘소유자’일 뿐이다. 법인은 법적으로 독립된 권리와 의무의 주체이고, 세금, 계약, 고용, 자산 모두 법인 자체의 것이다. 법인은 하나의 별도 인격체로서 존재하며, 대표는 그 인격체를 대신해 의사결정을 내리고 책임을 지는 집행자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전능감에 빠진 대표는 종종 법인을 ‘내 통장, 내 인력, 내 건물’처럼 다룬다. 마치 회사의 자금은 자신의 자금이고, 회사의 인력은 자신의 사람이며, 회사의 사무실과 설비는 자신의 재산인 것처럼 인식한다. 이런 인식은 초창기 창업 시기에 대표 개인의 희생과 헌신이 회사와 거의 동일시되면서 생기기 쉽다. 그러나 그 경계가 모호해질수록, 대표는 회사의 자원과 법적 성격을 개인 재산처럼 취급하는 위험한 습관을 갖게 된다.


이런 관점은 특히 위기 상황에서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다. 회사가 어려워지면, 법인의 존속 가능성보다 대표 개인의 판단과 감정이 우선시되기 쉽다. 예를 들어, 법인의 이익을 위해 구조조정이 필요함에도, “내가 직접 뽑은 사람을 내가 자를 수 없다”는 감정적 판단으로 의사결정을 미루거나, 반대로 감정에 휩쓸려 특정 직원을 즉흥적으로 해고하는 식이다. 심지어 “내가 힘들게 키운 회사인데, 내 뜻대로 할 수 있어야지”라는 사고방식은 법인의 존립 목적과 정면으로 어긋난다. 법인의 목적은 창업자의 자아실현이나 감정적 만족이 아니라, 시장에서의 지속적 생존과 성장이다. 법인은 대표의 감정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대표 또한 법인을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장난감’처럼 다뤄서는 안 된다.


이런 오해가 심화되면, 회사의 자금을 개인 생활비처럼 쓰거나, 법인의 자산을 사적으로 활용하는 위험까지 이어질 수 있다. 비록 대표 본인은 “내가 이 회사를 만들었고, 여기까지 키웠으니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다”고 생각하더라도, 법적으로는 명백히 횡령, 배임에 해당할 수 있다. 이는 회사의 존속을 위협할 뿐 아니라, 대표 개인의 법적·사회적 신뢰를 무너뜨린다. 결국 대표의 진짜 역할은 법인을 ‘개인 소유물’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독립 객체’로 성장시키는 것이다. 법인의 주체성과 독립성을 인정하고, 회사 자원과 개인 자산, 회사 이익과 개인 감정을 엄격히 분리할 때 비로소 회사는 장기적으로 안정된 성장을 할 수 있다.


사람을 다룬다는 것의 진짜 의미

사람을 다룬다는 것은 내 전능감에 취해 “내 말에 따르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일시적으로는 가능할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조직을 고사시키는 방식이다. 리더가 사람을 움직이는 방식이 ‘권위와 압박’에만 의존하면, 구성원은 창의성과 주도성을 잃고 단순 지시 수행자로 전락한다. 진짜 사람을 다룬다는 건 회사가 성장하고 이익을 낼 수 있도록 관리·지원·운영하는 것이다. 즉, 사람을 성과 구조에 제대로 연결시켜 그 사람이 가진 역량이 회사의 목표를 향해 최대로 발휘되게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건 ‘누가 내 말을 잘 듣느냐’가 아니라, ‘누가 구조 안에서 스스로 움직이며 성과를 내느냐’다.


사람을 ‘복종’시키는 것은 쉽다. 직급·평가·보상이라는 도구로 압박하면 된다. 하지만 복종은 성과를 만들지 못한다. 복종은 단기적으로는 질서를 만들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리더가 부재하면 멈추는 조직을 만든다. 이런 조직은 대표가 한 발 물러나면 바로 동력이 꺼진다. 반대로 ‘성과를 만드는 구조에 연결’된 사람은 다르다. 그는 리더의 지시가 없어도 스스로 할 일을 찾고, 자신의 성과가 회사 전체 성과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이해한다. 이런 사람들은 리더의 부재가 곧 공백이 아니라, 새로운 판단과 실행의 기회가 된다.


대표는 초기에 모든 업무를 직접 챙겼다. “내가 빠지면 회사가 멈춘다”는 생각 때문에 팀장이 있어도 세부 실행까지 대표가 결정했다. 결과적으로 구성원들은 ‘대표의 결재 없이는 아무 일도 못하는’ 상태에 익숙해졌고, 대표가 투자 유치 때문에 2주간 자리를 비우자 서비스 출시가 한 달 지연됐다. 이후 대표는 업무 흐름을 팀 리더 책임 체계로 전환했고, 각 리더가 직접 의사결정한 프로젝트는 오히려 출시 속도가 빨라졌다. 반대로 한 글로벌 제조 대기업은 부문장 교체가 잦았음에도 실적이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이유는 명확했다. 이미 성과 관리·보고·승인 절차가 철저히 구조화돼 있었기 때문이다. 부문장이 누구든 동일한 방식으로 조직이 움직였고, 사람보다 시스템이 성과를 만드는 구조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 덕분에 리더의 부재나 교체가 조직 역량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


결국 핵심은 대표 개인의 영향력이 아니라 회사라는 시스템의 힘이다. 대표의 카리스마나 통제력이 아니라, 누가 와도 작동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진짜 사람을 다루는 일이다. 시스템이 사람을 움직이게 만들고, 그 안에서 리더는 사람을 ‘끌고 가는 존재’가 아니라 ‘앞서 길을 열어주는 존재’가 된다.



전능감의 후폭풍과 권력 균형 설계


① 전능감이 무너지는 순간

전능감은 창업 초기에 회사를 살린 힘이지만, 성장 단계에서는 오히려 조직을 옥죄는 덫이 된다. 문제는, 이 전능감이 무너지는 순간이 반드시 찾아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은 조용히, 그러나 치명적으로 온다.


✅ 첫 번째는 대표의 체력과 시간의 한계가 드러날 때다.

더 이상 모든 회의에 참석할 수 없고, 모든 의사결정을 직접 챙길 수 없다. 그때 대표는 불안과 공허감을 동시에 느낀다. ‘내가 손을 놓으면 회사가 무너질까?’라는 두려움이 커지면서, 오히려 더 사소한 영역까지 개입하게 된다. 하지만 그 결과는 역설적이다. 중요한 전략적 결정을 내려야 할 시간과 에너지를 잃는다.


✅ 두 번째는 대표의 판단이 틀렸을 때다.

초기에 모든 것을 직접 결정하던 습관이 남아, 중요한 사안을 독단적으로 판단하다가 실패하는 순간이 온다. 그리고 그 실패는 더 이상 ‘빠른 복구’로 해결되지 않는다. 시장의 속도와 이해관계자의 규모가 커졌기 때문이다. 이때 조직은 대표의 결정 오류를 곧바로 ‘시스템 부재’로 해석한다.


✅ 세 번째는 핵심 인재의 이탈이다.

대표가 전능감으로 모든 권한을 쥐고 있을 때, 유능한 인재일수록 성장의 한계를 느낀다.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건 더 이상 없다”는 생각과 함께 회사를 떠난다. 그리고 대표는 이를 또다시 ‘배신’으로 받아들이지만, 사실 이는 구조 설계의 실패다.


전능감이 무너진 후의 후폭풍은 조직에 두 가지 흔적을 남긴다. 하나는 대표가 모든 것을 쥐고 있었던 시간의 공백이다. 아무도 권한과 책임을 맡아본 적이 없기에, 대표가 물러서면 조직은 스스로 판단하는 방법을 모른다. 다른 하나는 조직의 불신이다. 한 사람의 판단에만 의존했던 구조에서 한 번의 실패가 곧 회사 전체의 실패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② 대표–조직 간 권력 균형 설계

전능감을 내려놓는 건 권력을 잃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재배분해 건강하게 순환시키는 것이다. 대표와 조직의 권력 균형이 맞춰져야만, 대표가 잠시 비워도 회사는 흔들리지 않는다. 이를 위해 세 가지 설계가 필요하다.


✅ 결정 권한의 수평화

대표가 독점하던 의사결정 권한을 직무·기능 단위로 분산한다. 이는 단순히 “이 일은 네가 해”라는 위임이 아니라, 각 기능별 의사결정 범위와 한계를 명확히 문서화하고, 그 권한을 행사할 때 대표의 재승인이 필요 없도록 설계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해야 팀과 리더들이 스스로 판단하고 실행하는 속도가 빨라진다. 또한 권한을 부여할 때는 의사결정의 목적·책임·결과 측정 기준까지 함께 명확히 해야 한다. 그래야 권한이 무책임하게 사용되거나, 실패를 두려워해 권한을 쓰지 않는 상황을 막을 수 있다. 대표가 전면에서 결정을 내려주던 구조에서 벗어나려면, 실패 시 대표가 함께 책임진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도 필수다.


✅ 권력의 ‘제도화’

사람에게 의존하던 권력을 시스템과 규정으로 옮기는 과정이다. 인사, 보상, 자원 배분, 프로젝트 승인 절차 같은 핵심 결정 영역을 프로세스에 내장하면, 대표가 매번 결정을 내려야 하는 ‘사건’이 대폭 줄어든다. 예를 들어, 인사평가는 평가 주기·기준·가중치가 시스템에 이미 설정돼 있어야 하며, 보상 또한 사전에 합의된 규정과 산식에 따라 자동 계산되도록 한다. 이렇게 되면 대표의 개입은 원칙 밖의 특수 상황에만 한정된다. 제도화의 핵심은 사람이 아니라 구조가 결정하게 만드는 것이다. 규정이 있더라도 대표가 비공식 경로로 이를 무력화하면 제도는 바로 붕괴한다. 따라서 대표 스스로 제도를 지키고, 필요 시 제도를 개선하는 방식으로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


✅ 권력의 피드백 구조

권력은 사용하면 필연적으로 왜곡된다. 시간이 지나면 대표와 경영진의 결정 방식이 변질되거나, 권한이 불필요하게 확대·축소될 수 있다. 이를 방지하려면 정기적으로 의사결정이 적절했는지 점검하는 내부 피드백 루프가 필요하다. 피드백 루프는 단순히 “잘했다·못했다”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결정 과정·기준·정보 활용 방식을 되돌아보는 과정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 프로젝트 승인 절차가 과도하게 길어져 실행 속도를 늦추고 있는지, 혹은 반대로 충분한 검토 없이 승인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는지를 주기적으로 살펴야 한다. 이 과정을 통해 대표와 경영진 모두 자신의 권한 사용 방식이 조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명확히 인식하고, 필요하다면 권한 배분과 절차를 조정한다. 결과적으로 이는 조직 전체의 권력 사용을 투명하게 만들고, 대표의 권력이 건강하게 순환되도록 유지하는 장치가 된다.


대표가 권력을 내려놓는 건 두려운 일이다. 하지만 이 구조가 잡히면, 대표의 권력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조직 전체를 움직이는 집단 지성의 힘으로 확장된다.


③ 성장 단계별 권력 균형 적용 전략 & 사례


✅ 초기 단계(1~10명) – 대표 중심 생존 구조

초기 단계에서는 모든 결정을 대표가 직접 내려도 무방하다. 시장 반응이 빠르고, 의사결정 속도가 곧 생존력이다.

그러나 이 시기에는 모든 정보와 판단이 대표 머릿속에만 쌓이기 때문에, 팀원은 단순 ‘실행 인력’에 머물고 의사결정 훈련이 되지 않는다.

8명 규모에서 대표가 고객 미팅부터 계약, 서비스 수정, 심지어 디자인 결정까지 모두 관여했다. 그러나 매출이 늘어난 뒤 대표가 일정상 고객 미팅에 참석하지 못하자, 남은 팀원은 고객 요구사항을 해석하고 결정할 권한이 없어 계약이 무산됐다.

이 시기부터라도 간단한 의사결정 기록과 역할 구분표를 만들고, 하루 30분이라도 ‘팀원 주도 의사결정 회의’를 진행해야 한다. 작은 권한이라도 위임받아 판단해본 경험이 이후 병목을 줄이는 핵심이 된다.


✅ 성장 단계(10~50명) – 권한 분산의 초석

성장 단계에 들어서면 기능별 리더를 세우고, 작은 범위라도 독자적인 의사결정 권한을 줘야 한다. 대표는 ‘최종 결재자’에서 ‘품질 보증자’ 역할로 전환해야 한다.

하지만 형식적으로만 권한을 주고, 실제 결정은 여전히 대표가 내리는 ‘위장 분산’이 되면 팀장은 권한이 없고 책임만 지는 상황이 된다.

팀장을 세웠지만 모든 제안이 “대표 결재” 단계에서 막혔다. 결국 팀장들은 스스로 판단하지 않고 ‘대표가 정해주는 답’을 기다리게 됐다. 속도는 더 느려졌고, 대표는 “왜 다 나한테 물어보냐”며 불만을 가졌다.

권한 분산의 핵심은 의사결정 범위 명확화다. 예를 들어 마케팅팀장은 월 500만 원 이하 캠페인 집행, 개발팀장은 기능 변경 범위 내 개선을 대표 승인 없이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 실패하더라도 대표가 책임을 함께 지겠다는 메시지가 필요하다.


✅ 확장 단계(50~200명) – 시스템에 의한 권력 순환

확장 단계에서는 인사·보상·프로젝트 승인 절차를 제도화해 대표 개입 없이도 회사가 돌아가도록 만들어야 한다. 중요한 결정에는 다중 검토 프로세스를 도입해 신뢰도를 높인다.

하지만 시스템이 있어도 대표가 ‘비공식 통로’를 통해 개입하면 절차를 건너뛰는 대표의 한마디가 모든 규정을 무력화한다.

인사평가와 보상 체계를 도입했지만, 연말에 대표가 “이번엔 내가 특별 보너스 줄게”라며 규정을 무시했다. 다음 해부터 팀장은 평가를 형식적으로만 하고, 구성원은 “결국 보상은 대표 마음”이라고 인식하게 됐다.

시스템 도입 후에는 대표 스스로 규정을 지키는 모범 사례를 보여야 한다. 규정에 없는 사항은 공식 프로세스에 반영하고, 대표의 개인 판단이 ‘시스템 개선’으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 안정·전환 단계(200명 이상) – 대표의 전략 집중

이 단계에서는 대표가 장기 전략, 투자, 인수합병, 조직 문화 등 미래 방향성에 집중해야 한다. 일상 운영은 경영진·이사회 중심으로 순환하며, 대표 개입은 예외 상황에 한정한다.

그러나 대표가 운영 개입을 내려놓지 못하면 경영진이 장기 전략보다 단기 보고와 대표 눈치 보기에 매몰된다.

대표가 여전히 세부 채용 면접에 참석했다. 그 결과 전략회의는 미뤄지고, 채용팀은 대표가 선호할 만한 후보자만 추천했다. 결국 회사는 시장 변화에 늦게 대응해 신규 사업 진입 시기를 놓쳤다.

전략과 운영은 물리적으로 분리해야 한다. 운영은 각 부문장이 주도하고, 대표는 분기별 사업 리뷰를 통해 방향만 점검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대표가 운영 회의 개입을 줄이는 만큼 장기 전략과 외부 네트워크 확장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있다.


각 성장 단계마다 전능감과 권력 구조의 위험 요소는 형태를 바꿔 나타난다. 초기에는 ‘대표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 구조’, 성장기에는 ‘위장된 권한 분산’, 확장기에는 ‘시스템 무력화’, 안정기에는 ‘대표 개입 중독’으로 변한다. 이를 의식적으로 설계하고 관리하지 않으면, 회사 규모와 상관없이 대표의 전능감이 조직 발목을 잡는 결과로 이어진다.



비전 중심의 디테일 리더십


“젠슨 황이나 스티브 잡스는 안 그랬다”고 반박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보여준 것은 전능감이나 권한 독점·통제가 아니었다. 겉으로 보기엔 모든 세부 사항을 직접 챙기고, 끝까지 보고받으며 지시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운영과 실행 권한을 전문가에게 위임하고, 핵심 비전과 완성도를 지키는 순간에만 집요하게 개입하는 방식이었다. 이 역시 전능감을 내려놓은 리더십의 한 형태다. 이들의 핵심은 ‘내가 제일 잘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이 만든 비전과 완성도 기준이 흐트러지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 집요함에서 출발한다. 이는 권한을 쥐고 유지하기 위한 통제가 아니라, 브랜드 정체성과 제품 완성도를 지키기 위한 창의적 통제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점이 있다. 모든 세부 개입이 창의적 통제는 아니다. 전능감에 빠진 리더들 중 상당수는 자신이 내리는 모든 결정과 개입을 ‘창의적 통제’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진짜 창의적 통제는 핵심 비전이 훼손될 위험이 있는 순간에만 선택적으로 개입하는 것이다. 나머지 운영과 실행은 전문가의 판단과 시스템에 맡긴다. 차이는 개입의 범위와 목적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전능감형 개입은 ‘모든 것을 내가 직접 확인하고 결정해야 한다’는 통제 욕구에서 출발한다. 반면 비전 중심 디테일 리더십은 비전을 지키는 데 직접적 영향을 주는 요소에만 관여하고, 그 외 영역에서는 개입을 최소화한다. 즉, 개입의 기준이 ‘내 권한 유지’가 아니라 ‘비전 수호’에 있다.


스티브 잡스는 신제품 발표 슬로건, 포장 박스의 재질·마감, 애플스토어 내부 배치까지 직접 관여했다. 젠슨 황 역시 엔비디아의 신제품 개발 방향과 주요 기능 구현 방식에 깊이 개입한다. 하지만 이들은 생산·재무·운영 전반을 통제하지 않았다. 핵심 비전과 완성도에 직결되는 부분에만 깊이 관여하고, 나머지는 전문가가 결정하도록 맡겼다. 이러한 리더십은 고도의 창의성과 브랜드 일관성이 요구되는 산업에서 특히 강력한 효과를 발휘한다. 비전이 명확할수록, 그리고 그 비전을 구현하기 위해 필요한 디테일이 정밀할수록, 대표의 직접 관여는 제품과 브랜드의 완성도를 한층 끌어올린다. 그러나 규모가 커질수록 속도와 확장성의 한계, 후계자 육성의 어려움이라는 리스크를 피하기 어렵다. 대표의 개입 범위가 넓어질수록 조직은 ‘대표 없이는 의사결정이 마무리되지 않는 구조’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


따라서 이 스타일이 성공하려면 세 가지 전제가 반드시 충족되어야 한다.

비전의 명확성 : 대표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추상적 그림이 아니라, 조직 전체가 공유하고 해석할 수 있는 형태여야 한다.

전문가에 대한 신뢰 : 핵심 비전을 해치지 않는 영역은 전문가의 판단을 존중하고, 대표가 모든 판단을 가로채지 않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결과 중심의 통제 : 과정에 대한 불필요한 간섭을 줄이고, 최종 산출물과 성과에서 비전이 구현되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이 조건이 갖춰질 때 비전 중심 디테일 리더십은 전능감과 달리 대표의 개입이 조직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해치는 대신, 오히려 이를 강화하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 반대로 이 전제가 약하면, ‘비전 수호’라는 명분 아래 사실상 전능감형 통제로 회귀하게 되고, 이는 결국 성장의 발목을 잡게 된다.




전능감을 내려놓아야 진짜 전능해진다


대표의 전능감은 죄가 아니다. 오히려 창업 초기에는 그것이 회사를 살린다. 하지만 회사가 커진 뒤에도 그 감각을 붙잡고 있으면, 그것은 더 이상 생존의 무기가 아니라 성장의 족쇄가 된다. 전능감에 갇힌 대표는 스스로 모든 것을 통제한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조직의 성장 한계를 스스로 설정하는 것이다. 전능감은 권력을 독점하게 만들고, 권력 독점은 결국 조직이 대표의 속도와 한계에 맞춰 작동하도록 고정시킨다. 그렇게 되면 대표가 지쳐 쓰러지거나 판단을 잘못하는 순간, 조직 전체가 함께 휘청인다.


진짜 전능한 대표는 모든 것을 스스로 하는 사람이 아니다.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구조’를 설계한 사람이다. 의사결정이 흘러가고, 권한이 분산되며, 사람과 시스템이 대표 없이도 회사를 움직이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 속에서 대표는 비로소 전장에서 한 걸음 물러서 전체 판을 바라보고, 필요한 곳에 힘을 정확히 투입할 수 있다. 전능감을 내려놓는 순간, 오히려 대표는 더 강해진다. 그때부터 대표의 힘은 ‘내 손 안에 다 있다’는 착각이 아니라, 조직 전체를 움직이는 집단 지성의 힘으로 확장된다. 그리고 그 힘이야말로 회사를 오래 살아남게 하는 진짜 전능함이다.


결국 전능감은 내려놓을 때 완성된다. 그 순간부터 대표는 더 이상 ‘혼자서 다 하는 사람’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이기는 판을 설계하는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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