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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d] 채용 오퍼는 왜 숫자가 아닌 설명이어야하는가

이드의 HR 커피챗 시리즈

by iid 이드

[Edited by iid the HRer]

※ 내가 쓰는 글들은 개인적인 경험과 고민을 바탕으로 한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니, 편하게 봐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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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연봉 구조와 오퍼의 현실

한국에서 ‘연봉 5천만 원’이라는 말은 회사마다 전혀 다른 의미다. 어디서는 기본급 3천만 원에 각종 수당을 더한 숫자이고, 어디서는 성과급을 포함한 총액이며, 또 다른 곳에서는 명절 상여와 연말 인센티브까지 합산된 금액일 수 있다. 그렇기에 채용 과정에서 오퍼는 단순한 “연봉 협상”이 아니다. 오퍼는 조직이 지원자를 어떤 기준으로 바라보고, 어떤 구조 속에서 함께하려 하는지를 드러내는 순간이다. 지원자에게는 자신이 어떤 기준과 기대 위에서 평가받는지를 체감하는 첫 경험이고, 조직에게는 우리의 철학과 보상 구조를 설명할 수 있는 드문 기회다.


문제는 한국의 연봉 구조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데 있다. 겉으로는 모두 “연봉 총액”이라는 단어로 대화하지만, 실제로는 회사마다 전혀 다른 보상 체계를 갖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총보상 구조는 기본급·수당·성과급·상여 등을 중심으로 하며, 스톡옵션이나 사이닝보너스처럼 특별하거나 일회성 성격의 보상은 논외로 본다.)


기본급 + 수당 구조: 한 제조업 회사는 기본급을 낮추고 각종 수당으로 보상을 보완했다. 연봉 5천만 원이라 소개했지만 실제 기본급은 3천만 원에 불과했다. 새 회사로 옮길 때 후보자는 기본급만 옮겨 잡히는 바람에 오히려 연봉이 줄었다고 느꼈다.

성과급 중심 구조: 삼성전자 출신 한 후보자는 “연봉이 9천만 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기본급이 5천만 원, 반기별 성과급이 많게는 4천만 원이었다. 스타트업으로 이직하면서 성과급을 뺀 기본급만 기준이 되자 오퍼가 낮게 느껴졌고, 협상 과정에서 갈등이 발생했다. 게다가 삼성전자처럼 성과급 비중이 큰 회사는 사업부별로 지급률 차이가 워낙 커서, 같은 직급이어도 어느 사업부 출신이냐에 따라 총보상이 수천만 원씩 달라진다. 성과급을 평균으로 환산할지, 그룹 평균 지급률을 적용할지에 따라 숫자가 크게 달라지면서 불만이 생긴다.

상여·인센티브 구조: 전통적인 대기업에서는 명절 상여금이나 연말 성과급이 별도로 지급된다. 이를 합산하지 않고 기본급만 전달하면, 새로운 회사에서는 시장 수준보다 낮은 대우라고 오해할 수 있다. 더구나 임단협(임금·단체 협상)이 강하게 작동하는 회사의 경우, 성과와 무관하게 매해 협상 결과에 따라 총보상이 좌우되기도 한다. 즉 개인 성과와 무관한 집단적 협상력이 보상 구조를 결정하는 셈이다.


결국 한국의 연봉은 단일 수치로는 비교할 수 없으며, 반드시 총보상 구조(Total Compensation)라는 관점에서 해석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여전히 “전 직장에서 얼마 받았는지”라는 질문이 협상의 기준이 된다. 이 때문에 오퍼는 쉽게 흔들리고, 협상은 감정적 공방으로 흘러가며, 조직의 정합성마저 무너지곤 한다.




① 오퍼 설계의 3대 축, 그리고 왜 어려운가

전략적 오퍼 설계는 단순히 시장 평균을 맞추는 일이 아니다. 내부 구조, 외부 시장, 그리고 특정 시점의 전략적 필요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이 세 가지를 오퍼 설계의 축으로 정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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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내부 정합성은 기본이다. 같은 팀, 같은 레벨에서 비슷한 책임을 지고 있는데 보상 격차가 크게 벌어진다면 조직 신뢰가 무너진다. 구성원들은 “협상을 잘한 사람이 더 받는다”라는 인식을 갖게 되고, 이는 곧 조직문화 전반을 흔들 수 있다.

둘째, 시장 경쟁력은 채용 성패와 직결된다. 동일한 직무라도 업계와 성장 단계에 따라 보상 수준이 크게 달라진다. 특히 특정 구간에서는 후보자들이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오퍼가 잇따라 거절당하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높게 제시해 내부 균형을 해치는 상황이 생긴다. 결국 시장 데이터를 주기적으로 모니터링하고 반영해야만 유효한 기준이 된다.

셋째, 전략적 중요성은 조직의 특정 시점에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요소다. 글로벌 진출, 신사업 확장, 핵심 기술 확보와 같은 전환기에는 특정 역할에 프리미엄을 붙일 수밖에 없다. 다만 이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면 내부에서는 형평성 논란으로 번지기 쉽다. 따라서 ‘왜 이 시점에 이 역할이 중요한지’를 투명하게 제시해야 한다.


왜 실제 현장에서는 잘 작동하지 않을까?

우선 내부 정합성의 함정이 있다. 회사 내부 기준으로는 충분히 타당해 보이더라도, 외부 시장과 괴리가 커지면 채용 경쟁에서 뒤처지기 쉽다. 내부 직원들의 납득은 얻을 수 있지만, 외부 후보자에게는 매력적이지 않은 보상 구조로 비칠 수 있다는 뜻이다.

시장 경쟁력 역시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어렵다. 시장은 짧은 시간에도 급격히 변한다. 특히 IT·개발자 영역처럼 불과 반년 만에 평균 연봉이 천만 원 이상 오르는 경우, 오늘 세운 기준은 내일이면 이미 무력화되기 일쑤다.

전략적 중요성 또한 본질적으로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이 역할이 지금 꼭 필요하다”라는 경영진의 판단이 근거 없이 밀어붙여질 경우, 내부에서는 형평성 논란이 증폭된다.

데이터 측정과 설명의 한계도 크다. 한국에서는 신뢰할 만한 시장 보상 데이터를 꾸준히 수집하고 분석하기가 쉽지 않다. 글로벌처럼 장기간 축적된 레퍼런스가 아니라, 각종 채용 플랫폼에서 공개되는 단편적 수치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 “업계 평균”이나 “상위 몇 % 수준”이라는 설명 자체가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는 협상장에서도 기준이 쉽게 흔들린다.

여기에 더해 시장 논리를 깨뜨리는 예외적 이벤트가 수시로 등장한다. 토스가 개발자 연봉을 일괄적으로 1.5배 상향했을 때나, 인공지능 스타트업들이 대규모 투자금을 기반으로 파격적인 보상을 제시했을 때처럼, 특정 기업의 과감한 시도가 한순간에 기존 시장 질서를 뒤엎어 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예외는 경제 논리로 설명하기 어렵고, 합리적으로 구조를 설계하려는 다른 기업들의 기준을 오히려 무력화시킨다.


결국 내부 정합성·시장 경쟁력·전략적 중요성이라는 세 축은 오퍼 설계의 기본 원리이지만, 한국의 빠른 시장 변동성, 부족한 데이터 기반, 그리고 예외적 보상 이벤트가 겹치면서 실제 현장에서는 일관되게 유지되기 매우 어렵다.



② 기본급 레벨링 밴드, 그리고 그 한계

연봉은 단순히 연차가 아니라 책임과 역할을 기준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조직은 반드시 기본급 밴드를 갖추고, 이를 레벨(Level) 단위로 구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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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핀테크 기업은 초창기에 밴드 없이 채용을 진행했다. 그 결과 동일한 4년 차 개발자임에도 한 명은 5천만 원, 다른 한 명은 6천8백만 원을 받고 있었다. 몇 달 뒤 서로의 연봉을 알게 되자 신뢰가 급격히 무너졌고, 결국 인력 이탈로 이어졌다. 회사는 뒤늦게 밴드를 도입했지만, 이미 벌어진 갈등을 회복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이처럼 밴드는 단순한 숫자 표가 아니라, “우리 조직의 보상 구조가 어떤 균형 위에 서 있는가”를 보여주는 장치다. 그러나 이것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무엇보다 레벨 정의 자체가 명확해야 한다. 주니어와 미드의 차이, 시니어와 리더의 구분이 불분명하다면 밴드는 사실상 무의미해진다.


또한 업종에 따라 밴드가 작동하는 방식에도 큰 차이가 있다. 제조업이나 금융권의 경우 인력 구조와 직무 정의가 비교적 안정적으로 자리 잡혀 있어 밴드가 일관되게 운영된다. 직무별 숙련도와 책임 구분이 명확하기 때문에 연차나 역할에 따른 보상 수준이 크게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반면 스타트업과 IT 업계는 상황이 사뭇 다르다. 한국에서는 해당 업계의 역사가 길지 않고, 전체 노동시장 내 인력 비중도 크지 않다. 이 때문에 주니어나 미드 수준의 인력조차 시니어 대우를 받는 경우가 많으며, 특히 초기 스타트업 붐 시기에는 인재 쟁탈전이 과열되면서 일부 직군의 연봉이 아웃라이어처럼 치솟기도 했다. 이러한 특수 상황은 밴드의 기준을 쉽게 무너뜨리고, 같은 연차라 하더라도 회사나 타이밍에 따라 처우 격차가 과도하게 벌어지는 문제를 낳는다. 결국 밴드는 한 번 만들어놓는 고정된 틀이 아니다. 업종의 특수성과 시장의 흐름을 지속적으로 반영하며, 끊임없이 조정·보완해야만 의미 있는 장치로 기능한다. 그렇지 않으면 밴드는 금세 무너지고, 보상 체계는 다시 개인의 협상력과 상황 논리에 휘둘리게 된다.


밴드가 무너졌을 때의 파장

밴드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내부 신뢰의 최소 장치이기 때문에, 한 번 무너지면 조직 전체가 흔들린다. 동일한 레벨인데도 보상이 다르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결국 협상력 차이”라는 인식이 퍼지고, 이는 평가·성과 제도의 정당성까지 흔들린다. 특정 시점에 높은 금액으로 들어온 인력이 기준이 되어 이후 채용에서 밴드 상단이 끌어올려지는 악순환도 생긴다. 인력이 적은 스타트업에서는 이러한 연봉 차이가 곧바로 체감되기 때문에 불만이 빠르게 커지고, 이는 퇴사로 이어지며 남은 사람들의 사기까지 꺾는다. 외부적으로도 밴드가 시장 현실과 어긋나면 “이 회사는 시장을 모른다”는 신호로 비춰져 채용 경쟁력이 약화된다.


문제는 밴드 자체보다도 그것을 존중하려는 경영진의 태도에 있다. 현실에서는 대표가 순간적인 필요나 개인적 판단에 따라 밴드를 무시하는 경우가 흔하다. 특정 인재를 반드시 데려와야 한다는 집착으로 밴드 상단을 훌쩍 넘어서는 제안을 하거나, 당장 개발자 한 명이 급하다는 이유로 시장보다 훨씬 높은 연봉을 제시하는 식이다. 단기적으로는 불안을 해소하는 땜질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조직이 세운 기준 자체를 무력화시킨다. 실제로 초기 스타트업에서는 CTO 자리를 비워둘 수 없다는 이유로 밴드보다 2천만 원 이상 높은 금액을 제안하는 사례가 자주 발생한다. 채용은 성사되지만 기존 구성원들은 곧바로 그 사실을 알게 되고, “결국 원칙보다 대표의 판단이 우선한다”는 신호를 받게 된다.


이런 순간부터 보상 체계에 대한 신뢰는 빠르게 무너진다. 구성원들은 “대표 마음에 들면 언제든 기준은 깨질 수 있다”라는 학습을 하게 되고, 보상은 더 이상 제도나 구조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와 영향력’의 문제로 전락한다. 이는 조직문화의 신뢰 기반을 허물어뜨리는 가장 빠른 길이다. 밴드는 완전한 해결책은 아니지만 최소한의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밴드의 설계가 아니라, 그것을 경영진 스스로 얼마나 지켜내려는가에 달려 있다.



③ 협상 테이블의 두 얼굴


오늘날 협상 테이블에는 크게 두 가지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하나는 겉으로는 시장 논리를 따르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직했으니 무조건 인상”이라는 과거식 관행에 가깝고, 다른 하나는 여전히 남아 있는 “일단 질러보자”식 흥정 문화다. 이 두 문화는 서로 다른 듯 보이지만, 공통적으로 협상을 구조적 기준이나 포지션 가치가 아닌 감정과 관행에 기대게 만든다.


시장 연봉 중심적 사고

요즘 협상은 흔히 “시장 수준에 맞게 해달라”는 말로 시작된다. 그러나 실제 협상 테이블에 올라오는 요구를 뜯어보면, 진짜 시장 논리나 해당 포지션의 적정 가치와는 거리가 있는 경우가 많다. 후보자들은 자신이 맡을 역할이 회사 전략에서 어떤 비중을 차지하는지, 혹은 동종 업계 동일 포지션과 비교했을 때 어느 정도 수준인지보다, 단순히 “이직했으니 당연히 인상돼야 한다”는 관점에서 접근한다.


이는 사실 시장 중심적 사고라기보다, 과거 한국 기업의 연차·호봉 중심 보상 체계의 잔재에 더 가깝다. “연차가 늘면 자동으로 인상된다”, “이직하면 최소 몇 %는 올라야 한다” 같은 고정관념이 협상의 출발점이 된다. 결국 협상은 역할의 전략적 가치나 회사 내 포지션의 중요성을 논하는 자리가 아니라, 단순히 과거 관행적 기대치를 충족시키느냐 마느냐의 문제로 축소된다.


이런 방식은 회사와 후보자 모두에게 손해다. 회사는 시장과 역할에 맞춘 설명 대신, 단순 금액 비교에서 방어적으로 몰리게 되고, 후보자는 스스로의 가치를 포지션 기준이 아닌 “호봉식 기준”으로 규정해 버린다. 결과적으로 협상은 시장 논리에 기반한 생산적인 대화가 아니라, 무조건 인상을 전제로 한 요구와 방어로 흘러가며, 작은 차이도 감정적 갈등으로 증폭된다.


‘일단 질러보자’ 문화

또 다른 특징은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는 ‘일단 질러보자’식 접근이다. 후보자는 실제 원하는 금액보다 훨씬 높게 불러두고, 회사는 실제로 줄 수 있는 수준보다 낮게 제시한다. 이렇게 시작된 협상은 단기적으로는 양측이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신뢰를 크게 손상시킨다.


특히 최근 몇 년간 경기 침체와 채용 한파 속에서 협상의 주도권 구도 자체가 달라진 점이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든다. 과거에는 인재 확보가 급한 회사가 ‘을’의 위치에서 양보를 강요받았다면, 지금은 오히려 후보자들이 “어차피 회사가 갑의 위치에 있다”는 불리한 조건에서 협상을 시작한다. 이런 인식 속에서 후보자들은 더 과감하게 “질러”보며 기회를 확보하려 하고, 회사는 “지금 상황에선 굳이 양보할 필요가 없다”는 태도로 방어적인 금액을 고수한다.


결국 협상은 서로의 실제 기대치나 포지션 가치를 맞추는 과정이 아니라, 누가 주도권을 쥐고 상대를 더 양보하게 만드느냐의 힘겨루기로 변질된다. 이런 구조 속에서는 금액보다 감정이 앞서고, 협상 테이블이 흥정처럼 흐르며 긴장과 불신만 키워진다. 심지어 합의에 도달하더라도, “내가 손해 봤다”, “상대가 억지를 부렸다”는 감정이 남아 이후 관계에도 부정적 영향을 준다.



④ 연봉 협상, 가장 자주 충돌하는 지점들


협상은 언제나 감정적으로 흐르기 쉽다. 같은 숫자라도 받아들이는 사람의 상황, 기대, 자존심에 따라 전혀 다르게 해석되기 때문이다. 특히 연봉 협상은 단순한 금전 거래가 아니라, “나의 가치가 이 조직에서 어떻게 평가되는가”라는 문제와 직결되기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과거에는 후보자들이 단순히 “전 직장보다 높은가 낮은가”만 따졌고, 회사 역시 “옵션을 많이 줄게”라는 식으로 대응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 협상은 훨씬 다차원적으로 변했다. 이제 지원자들은 단순 금액을 넘어, 시장 데이터, 현금 보상, 리뷰 주기, 근무 조건, 성과급 구조, 동종 업계 정보까지 촘촘히 따지고 묻는다.

즉, 협상은 더 이상 단순한 연봉 흥정이 아니라 숫자와 맥락, 그리고 감정이 동시에 얽히는 복잡한 게임이 되었다.


✅ 보상 책정 기준

후보자들이 가장 먼저 궁금해하는 것은 “이 연봉은 어떤 기준으로 산정된 것인가?”다. 단순히 “전 직장보다 높게 드린다”는 말은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 후보자들은 회사가 어떤 기준을 가지고 보상을 책정했는지 알고 싶어한다. 예를 들어 레벨(Level) 체계, 내부 밴드, 직무별 책임 범위와 기대 성과 같은 요소가 명확히 설명되어야 한다. 만약 회사가 이를 설명하지 못하면, 후보자는 “결국 대표 마음대로 정해지는 금액”으로 느끼게 되고, 협상은 곧바로 감정적 공방으로 흐른다. 더 나아가, 명확한 기준이 없다고 판단되면 후보자들은 협상 과정에서 훨씬 강하게 감정적으로 요구하게 된다. 심지어 입사 후에도 보상 문제는 계속 이어져, 대표나 경영진에게 직접적으로 재협상을 요구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 현금 vs. 옵션

스톡옵션은 한때 가장 강력한 협상 카드였지만, 지금은 매력이 많이 줄었다. “미래의 불확실한 보상”보다 “지금 통장에 찍히는 현금”이 훨씬 중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결혼, 육아, 대출 상환 등 당장의 현금 흐름이 중요한 후보자일수록 현금을 절대적으로 선호한다. 예전에는 단순히 “옵션을 주겠다”는 말만으로도 설득력이 있었지만, 이제는 다르다. 후보자들은 옵션의 실제 가치와 현금화 가능성까지 따진다. 단순 부여(grant) 조건뿐 아니라 행사가격, 행사 시점, 회사의 매입 보장 여부를 꼼꼼히 확인한다. “상장 후 얼마의 가치가 될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조건과 권리까지 계약 단계에서 요구한다. 일부 후보자는 아예 옵션 대신, 옵션을 현금화할 수 있는 보장성 계약을 요구하기도 한다. 즉, 옵션은 더 이상 미래에 대한 상징적인 약속이 아니라, 현금화 조건이 명시된 금융상품처럼 다뤄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준비 없이 옵션을 협상 카드로 꺼내면 오히려 불신만 키울 수 있다.


✅ 총보상(TC, Total Compensation) 관점

연봉 협상은 이제 단순 기본급 협상이 아니다. 후보자들은 총보상 패키지 전체를 기준으로 회사를 평가한다.
즉, 기본급 외에도 성과급, 복리후생, 주거·식대 보조, 보험, 교육비, 휴가 제도까지 모두 합산해서 본다. 심지어 “실수령 기준으로 얼마냐”를 직접적으로 묻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회사가 총보상 구조를 체계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면, 후보자는 불신을 가지게 되고, 결국 단순히 “연봉 총액이 낮다”는 인식으로 흘러버린다. 반대로 총보상을 잘 정리해 보여주면, 같은 금액이라도 후보자가 체감하는 만족도는 훨씬 올라간다.


✅ 조기 리뷰(빠른 연봉 인상)

최근 협상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은 “조기 연봉 리뷰” 요구다. 많은 후보자들은 “초봉이 다소 낮더라도, 6개월 후 재협상 기회가 있느냐?”를 묻는다. 이는 불확실한 옵션 대신, 단기적으로 보상이 개선될 수 있다는 약속을 통해 리스크를 줄이고 싶어하는 태도다. 문제는 회사가 이를 섣불리 약속해놓고 지키지 못하는 경우다. 이때 후보자의 실망은 훨씬 더 커지고, “처음부터 신뢰할 수 없는 회사였다”는 낙인이 남는다. 따라서 이 약속은 신중하게, 실제 실행 가능성을 따져본 뒤 제시해야 한다.


✅ 근무 형태와 워라밸

협상에서 점점 더 중요해지는 포인트는 “어떤 방식으로 일할 수 있는가”다. 완전 원격 가능 여부, 주 4.5일제, 유연 출퇴근 제도 같은 워라밸 요소가 실제 협상 카드로 부상했다. 어떤 후보자에게는 금액 인상보다 이러한 조건이 더 큰 결정 요인이 되기도 한다. 특히 IT 업계처럼 원격 근무 경험이 보편화된 영역에서는, “원격 불가”라는 단어 하나만으로 지원자가 빠져나가는 일이 흔하다. 회사 입장에서는 단순 복리후생이 아니라, 채용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가 된 셈이다.


✅ 성과급 구조의 투명성

성과급은 더 이상 “있다”라는 말만으로는 협상 카드가 되지 못한다. 후보자들은 반드시 평가 주기, 산정 기준, 최근 지급률까지 묻는다. 특히 대기업 출신 후보자들은 실제 지급률을 꼼꼼히 따져보고, 지급률이 낮으면 성과급은 사실상 무의미한 제도로 간주한다. 예를 들어 “성과급이 연봉의 30% 수준”이라고 설명하더라도, 최근 3년간 지급률이 50% 미만이었다면 협상 카드로서의 힘은 전혀 발휘되지 않는다. 오히려 “말뿐인 제도”라는 부정적 인상만 남길 수 있다.


✅ 정보 공유 확산

과거에는 연봉 정보가 회사 내부에만 갇혀 있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블라인드, 원티드톡, 각종 커뮤니티를 통해 연봉·옵션 정보가 빠르게 공유된다. 그 결과, 특정 회사의 연봉 수준은 사실상 공개된 시장 데이터처럼 활용된다. 이런 환경에서는 회사가 내부 논리에 따라 낮은 오퍼를 제시하면, 후보자들은 즉시 비교하고 “시장보다 낮다”는 결론을 내린다. 한 번 이런 낙인이 찍히면 채용 경쟁력이 크게 떨어지고, 이후 협상에서도 계속 불리하게 작용한다.


✅ 겸업·경업 관련 요구

최근에는 일부 후보자들이 겸업(사이드 프로젝트 허용)이나 경업 제한 조건 완화를 협상 테이블에 올리는 경우도 있다. 스타트업 인재 풀에서 흔히 나타나는 요구로, 본업 외에도 개인 프로젝트·강의·투자 활동을 병행하고 싶어 한다. 개발자나 디자이너처럼 프리랜서 경험이 있는 인재일수록 “겸업 금지 조항이 없는가”를 민감하게 확인한다. 특히 경업 금지 조항에 대한 거부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 왜냐하면 이직/취업 자체가 어려운 시장 환경 속에서 후보자들은 “앞으로 다른 선택지를 제한받고 싶지 않다”는 불안을 강하게 갖는다. 또 많은 회사들이 경업 범위를 지나치게 광범위하게 설정하는 경우가 많다. “동종 업계”라는 기준을 회사 편의대로 확장해버리면, 사실상 대부분의 이직 기회가 막히는 셈이다. 회사가 이를 무심히 강제할 경우, 신뢰는 크게 흔들린다.



⑤ 오퍼 제시의 전략적 관점


오퍼는 단순히 숫자를 제시하는 자리가 아니다. 이는 곧 조직이 후보자에게 보내는 첫 메시지이자 관계의 출발점이다. 따라서 오퍼는 일관된 구조와 논리를 바탕으로 설계되어야 하며, 그 자체가 후보자의 신뢰와 합류 결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금액을 높이거나 낮추는 문제가 아니라, 왜 이 금액이 합리적인지, 어떤 맥락 속에서 결정되었는지를 납득시키는 과정이 핵심이다.


✅ 근거화된 설명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이 금액이 어떻게 산출되었는가”를 설명할 수 있는 근거다. 단순히 “적정 수준”이라는 표현만으로는 설득력을 가질 수 없다. 내부적으로는 레벨 체계, 직무별 기대 성과, 조직 내 비교 가능한 포지션을 기준으로 설명해야 한다. 같은 연차라도 책임 범위나 영향력에 따라 금액이 달라지는 이유를 투명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 외부적으로는 산업과 회사의 성장 단계에 맞는 시장 기준을 참고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다만 수치를 기계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단계에서 이 역할을 위해 어느 정도 범위가 합리적이다”라는 설명 가능한 기준선을 제시해야 한다. 결국 핵심은 일관성과 납득 가능성이다. 금액 자체가 크든 작든, 근거가 보이지 않으면 후보자는 불신을 갖게 된다. 반대로 설득력 있는 근거는 상대적으로 낮은 오퍼라도 수용 가능하게 만든다.


✅ 맥락 전달

연봉 총액만 던지는 것은 협상에서 가장 흔히 발생하는 실수다. 후보자는 금액 자체보다 그 금액이 담고 있는 의미와 맥락을 원한다. 금액이 어떤 역할과 책임을 전제하는지, 해당 레벨에서 기대되는 성과는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전달해야 한다. 단기적 기대뿐 아니라 성장 경로도 함께 설명하면, 후보자는 단순한 현재 가치가 아니라 미래 가능성까지 고려하게 된다. 예컨대 “6개월 후 성과 검토 시 빠른 연봉 조정이 가능하다”는 메시지는 금액 이상의 신뢰를 준다. 맥락 없는 금액은 단순 비교 대상에 불과하지만, 맥락이 담긴 금액은 회사와 후보자가 공유하는 약속이 된다. 이는 곧 후보자의 불확실성을 줄이고, 조직 합류를 결정짓는 데 중요한 요소로 작동한다.


✅ 관계의 출발점

오퍼는 단순 계약 조건이 아니라, 후보자가 조직 문화를 처음 경험하는 순간이다. 따라서 오퍼 과정은 후보자에게 “이 회사가 나를 어떤 기준으로 바라보고 있는가”를 드러내는 장치가 된다. 근거와 맥락이 투명하게 제시된 오퍼는 곧바로 신뢰를 형성한다. 이는 입사 결정뿐 아니라 이후 조직 생활에서도 긍정적인 첫인상을 남긴다. 반대로 “대표가 정했다”, “대충 시장 수준” 같은 근거 없는 설명은 불안을 키우고, 입사 이후에도 보상 문제로 불필요한 갈등이 반복될 가능성을 만든다. 결국 오퍼는 숫자가 아니라 관계의 톤을 정하는 출발점이다. 이 과정을 소홀히 하면 협상에서 이겼더라도, 합류 후 신뢰를 잃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오퍼는 금액이 아니라 맥락이다


채용 오퍼를 단순한 협상으로만 바라보면 감정에 휘둘리고 기준은 쉽게 흔들린다. 그러나 오퍼는 금액의 크기가 아니라 구조와 맥락의 문제다. 한국의 연봉 체계는 기본급, 성과급, 수당, 상여가 뒤섞여 있어 단순 비교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오퍼는 내부 정합성, 시장 경쟁력, 역할의 전략적 중요성이라는 세 축 위에서 설계되어야 한다.


기본급 밴드는 혼란을 줄이는 장치이고, 협상 과정에서 자주 등장하는 질문과 충돌 지점에 대한 준비된 대응은 신뢰를 만든다. 여기에 더해 중요한 것은, 오퍼가 단순히 “합의된 조건”이 아니라 관계의 출발점이라는 점이다. 후보자는 오퍼를 통해 이 회사가 자신을 어떤 기준으로 바라보고, 앞으로 어떤 성장과 역할을 기대하는지를 직관적으로 느낀다. 결국 금액 자체보다 “이 회사는 명확한 기준과 원칙을 갖고 있다”는 인상이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좋은 오퍼는 단순히 “누구에게 얼마를 준다”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곧 조직이 사람을 어떤 철학으로 바라보며, 어떤 구조 속에서 함께하려는지를 보여주는 행위다. 이 과정에서 보상은 단순히 금전적 교환이 아니라, 성과를 인정하는 언어이자 신뢰를 시작하는 신호가 된다. 따라서 오퍼는 설득의 자리가 아니다. 협상을 이기기 위한 숫자의 싸움이 아니라, 설명 가능한 구조를 보여주는 과정이다. 오퍼를 이렇게 설계하고 전달할 수 있을 때, 금액의 높고 낮음을 넘어 후보자는 신뢰를 느끼고, 조직은 합류 이후까지 이어질 건강한 관계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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