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의 HR 커피챗 시리즈
[Edited by iid the HRer]
※ 내가 쓰는 글들은 개인적인 경험과 고민을 바탕으로 한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니, 편하게 봐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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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조직문화 세미나에서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좋은 퇴사란 무엇일까요?”
좋은 퇴사는 없다. 퇴사는 그저 내가 동의했느냐, 하지 않았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자발적이냐 비자발적이냐, 집단적이냐 개인적이냐 정도의 구분만 있을 뿐, 퇴사 자체에 ‘좋음’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은 현실과 맞지 않는다.
사람들은 흔히 ‘좋은 퇴사’를 상상한다. 서로가 상처받지 않고, 마지막까지 납득하며, 깔끔하게 정리되는 장면 말이다. 언론 기사에서 이상적으로 포장된 퇴사 스토리나, HR 교과서 속에 담긴 원론적인 절차들을 떠올리며 그것이 현실에서도 가능하리라 믿는다. 그러나 실제 현장은 훨씬 복잡하다. 당사자와 회사가 가진 사정은 언제나 엇갈리고, 그 간극은 쉽게 메워지지 않는다. 누군가에겐 억울함으로 남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불편한 기억으로 각인된다. 이 과정에서 완벽하게 깔끔한 퇴사를 만들어내려는 시도는 오히려 더 큰 긴장과 갈등을 낳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답했다. “굳이 좋은 퇴사라는 게 있다면, 그것은 ‘나쁘지 않은 퇴사’ 정도다.” 완벽한 합의나 화려한 마무리를 기대하기보다는, 최소한 더 나쁘지 않은 상태에서 멈추는 것이 현실적이다. 그리고 그 조건은 단 두 가지뿐이다.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말하는 것, 그리고 설득하지 않고 전달에서 멈추는 것. 바로 이 두 가지가 퇴사의 마지막 장면에서 불필요한 상처를 줄이고, 남아 있는 관계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최소한의 길이라고 믿는다.
HR 갈등의 본질을 이해하려면 먼저 ‘납득’이라는 단어의 허구성을 봐야 한다. 사회는 법과 제도를 통해 질서를 유지한다. 그러나 법조차도 절대적이지 않다. 같은 판결문을 보고도 어떤 이는 정의라고 하고, 다른 이는 부당하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항소와 상고가 있는 것이다. 즉, 사회가 유지되는 힘은 완벽한 납득이 아니라 불완전하지만 합의된 질서다. 법과 제도는 모두가 마음으로 동의한다는 전제 위에 서 있지 않다. 오히려 모두가 불편하더라도 최소한 받아들일 수 있는 선을 만드는 장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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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R도 마찬가지다. 회사는 규정과 프로세스를 따랐다고 말하고, 구성원은 자신의 맥락과 사정을 근거로 반박한다. 어느 쪽도 완전히 틀리지 않다. 문제는 여기서 양쪽이 서로를 끝내 ‘설득’하려 들 때 갈등이 깊어진다는 점이다. 절차적 판단은 곧바로 자존심과 감정의 전쟁으로 바뀌고, 그 순간부터는 더 이상 규정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부정하는 싸움이 된다.
겉으로 보면 설득은 배려처럼 보인다. 회사가 왜 이런 판단을 내렸는지 설명하고, 상대가 이해하도록 돕는 과정처럼 보인다. 하지만 현실에서 사람의 마음은 설명만으로 쉽게 바뀌지 않는다. 납득은 언제나 상대방이 스스로 결정하는 몫이다. HR이 굳이 설득을 시작하는 순간, 설명은 압박으로 변질된다. 고개를 끄덕여도 그것은 진심의 동의가 아니라 체념일 수 있다. 그리고 그 체념은 시간이 지나 불신으로, 불신은 다시 갈등으로 되돌아온다.
그렇다면 회사와 HR은 왜 끝까지 설득을 시도할까. 여기에는 ‘동의’라는 단어에 대한 착각이 자리 잡고 있다.
HR의 규정들을 보면 종종 ‘당사자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문구가 나온다. 그런데 이 동의를 심리적 수용이나 개인적 합의로 확대 해석하는 순간 문제가 발생한다. 사실 이 동의는 사람 간의 마음의 합의가 아니다. 구조와 프로세스에 대한 인정일 뿐이다.
연봉계약서에 사인을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전적으로 납득하고 만족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것은 단순히 그 조건을 받아들였다는 절차적 동의다. 그러나 회사와 대표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단순히 제도적 승낙에 그치지 않고, 상대가 내적으로도 “회사가 옳았다”라고 수긍하길 바란다. 이 순간 동의는 절차적 수락이 아니라 내면적 굴복으로 변한다. 회사는 인사권의 정당성을 넘어, 구성원 스스로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회사의 결정을 내적 가치로 받아들이기를 요구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설득이 시작된다.
결국 HR이 설득에 빠지는 이유는 절차적 동의를 내적 동의로 확장하려는 무리한 욕망 때문이다. 제도가 요구하는 건 절차적 동의인데, 회사는 사람의 마음까지 바꾸려 한다. 그 착각이 설득을 낳고, 설득이 갈등을 만든다. 동의라는 단어에 대한 오해가 HR의 함정인 셈이다.
대표들이 자주 빠지는 함정이 있다. 갈등을 끝까지 밀고 가 자존심의 문제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내가 옳으니 네가 인정해야 한다”는 태도다. 하지만 이 지점은 ROI 관점에서 보면 최악이다. 설득에 몇 시간을 들여도 상대의 마음은 잘 바뀌지 않는다. 오히려 반발심만 커진다. 그 시간과 에너지는 회사의 전략과 영업, 미래 준비에 투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설득으로 남는 것은 직원의 체념, 관계의 훼손, 대표의 피로뿐이다. 이 과정은 경영적 ROI가 아니라 자존심 ROI다.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쓴 비용에 비해 얻는 결과는 초라하다. 오히려 조직 전체에는 보이지 않는 비용이 남는다.
설득의 ROI가 낮은 이유는 본질적으로 단순하다. 사람은 스스로 원하지 않는 이상 설득되지 않기 때문이다. 회사의 권한은 제도와 규정의 집행까지만 미친다. 그러나 그 권한을 넘어 타인의 내면을 바꾸려 드는 순간, 합리성은 무너지고 갈등 비용만 불어난다.
그리고 이 비용은 단순히 숫자가 아니다. 신뢰가 무너지고 관계는 단절된다. 남는 것은 “회사가 내 생각까지 바꾸려 했다”는 뿌리 깊은 상처다. 따라서 HR의 역할은 단순하다. 판단은 내리고, 그 결과를 명확하게 전달한다. 납득은 상대의 몫으로 남겨두어야 한다.
HR의 권한은 분명하다. 규정과 프로세스에 따라 판단하고, 그 결과를 책임 있게 전달하는 것.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전달은 단순히 말만 옮기는 메신저의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조직이 합의한 구조와 절차를 사회적 언어로 번역해내고, 혼란 속에서도 질서를 유지하게 만드는 질서의 전달이다. 많은 HR이 흔히 빠지는 함정은 결과를 부드럽게 포장하거나, 상대가 끝내 고개를 끄덕일 때까지 설득하려는 태도다. 하지만 설득은 상대의 내면을 바꾸려는 권력의 행사이고, 그 끝은 불신과 상처로 남는다. HR이 지켜야 할 태도는 포장도, 설득도 아닌, 왜곡 없는 결과를 명확하고 존중 있게 전달하는 것이다.
사람에 대한 존중이란, 단순히 상대가 회사를 인정하길 강요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진짜 존중은, 상대가 결과를 인정할 수는 있지만 마음속까지 납득하지 않을 자유 또한 존중하는 것에서 나온다. 그것이 구성원을 독립된 주체로 대하는 태도이며, HR이 감정의 전쟁터가 아닌 질서의 수호자로 서야 하는 이유다.
이 원리는 퇴사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평가를 전할 때도, 보상을 알릴 때도, 승진이나 배치를 결정할 때도 똑같이 작동한다. HR의 역할은 결과를 전달하는 것이지만, 그 전달이 단순한 통보가 아니라 구조와 기준에 따른 판단임을 명확히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게 전달될 때, 설득 대신 질서가 자리 잡는다.
‘좋은 퇴사’는 없다. 그러나 ‘나쁘지 않은 퇴사’는 가능하다. 평가도, 보상도, 제도 운영의 모든 장면도 마찬가지다. HR은 설득자가 아니다. HR은 질서 전달자다. 그리고 그 태도 하나가 조직의 마지막 장면과 새로운 시작의 장면을 동시에 바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