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의 HR 커피챗 시리즈
[Edited by iid the HRer]
※ 내가 쓰는 글들은 개인적인 경험과 고민을 바탕으로 한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니, 편하게 봐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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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R담당자들과 커피챗을 하다 보면 가장 자주 받는 질문이 있다. “대표님을 어떻게 설득해서 노무 사항을 지키게 할 수 있을까요?” 나는 늘 같은 대답으로 시작한다. “그건 불가능한 질문입니다.”
많은 HR 담당자들이 스스로 대단한 기획 역량이나 전략적 사고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회사 운영에서 반드시 맡게 되는 최소한의 기능은 누구에게나 있다. 바로 급여와 노무다. 급여는 근로계약과 직결되는 기초 기능이자 행정업무로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필수 영역이다. 그런데 의외로 HR의 가장 큰 스트레스는 노무에서 비롯된다. 흔히 노무라고 하면 대규모 노조와의 임단협이나 사회적 이슈를 떠올리지만, 실제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에서 다루는 것은 훨씬 작고 원초적인 문제들이다. 근태 관리, 휴가 운영, 기본 근로기준법 준수, 근로감독에서 자주 적발되는 체크리스트 같은 것들 말이다.
이 단순해 보이는 영역들이야말로 직원들의 근로조건과 직결된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대표들 역시 초기부터 직접 경험해온 영역이다. 전문적 지식은 부족할지 몰라도, 주변에서 들은 이야기나 시행착오를 통해 대강의 노무 감각을 익혀왔다. 그래서 대표들은 적어도 이 부분만큼은 자신이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HR 입장에서는 그만큼 더 혼란스럽다. ‘대표가 몰라서’라고만 보기 어려운데, 실제로는 오히려 ‘알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를 외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대표가 노무 사항을 지키지 않고 편하게 넘기려는 태도, HR에게는 바로 여기서부터 고통이 시작된다. 근태와 휴가 같은 단순한 제도들이 직원 신뢰와 직결되는데도, 대표의 눈에는 이것이 성과를 가로막는 불필요한 절차처럼 보인다. HR이 아무리 법적 리스크를 강조해도, 대표는 오히려 HR이 지나치게 까다롭게 군다고 느낀다. 결국 HR의 가장 큰 스트레스는, 최소한 지켜야 할 것조차 지켜지지 않는 현실에서 비롯된다.
현장에서 수많은 HR 담당자들과 커피챗을 나누며 이 문제를 반복해서 마주했다. 이야기의 결론은 언제나 같다. 대표가 단순히 몰라서가 아니라, 애초에 알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에 HR이 끝없이 고통을 떠안게 된다는 사실이다. 법과 제도의 문제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인간의 태도와 선택의 문제에서 출발한다. 이 글은 바로 그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HR이 다루는 노무는 단순히 제도나 규정의 차원이 아니라, “대표가 무엇을 외면하고 싶어 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노무는 법적으로 명확히 규정된 영역이다. 근로기준법이라는 큰 틀과 노동위원회, 그리고 근로감독관 같은 제도적 장치가 존재하고, 실제로 공무원이 주기적으로 개입하는 분야이기도 하다. 다른 법 영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생활 밀착형’ 규정이 많아, 일상적으로 조직 운영과 맞닿아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노무는 다른 영역과는 다른 특이성을 드러낸다. 단순한 행정 절차나 수치 계산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제도, 기록과 권력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늘 까다롭고 예외적인 상황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표들은 노무를 늘 “걸리지 않으면 괜찮은 것”으로 취급한다. 규정은 존재하지만, 현실에서는 적당히 회피하거나 무시해도 큰 문제가 없다고 여긴다. 마치 교통법규를 지키지 않고도 대부분은 무사히 운전할 수 있는 것처럼, 혹은 세금을 최소한으로만 신고하고도 당장 큰 문제가 드러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대표들의 인식 속에서 노무 역시 이런 ‘편법의 일상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노무 회피는 단순히 “규정을 지키기 싫다”는 문제가 아니다. 인간의 심리적 편향, 집단 속 문화적 학습, 불안정한 제도 환경이 얽히며 대표는 알면서도 회피를 선택한다. 본질적으로 까다롭고 불편한 영역이기에 일부러 외면하는 경향도 강하다. 그 결과 대표는 알고도 회피하는 선택을 하고, HR은 그 회피가 결국 구조적 리스크로 돌아올 수 있음을 알기에 불안을 느낀다.
세무나 회계 문제는 장부와 수치에서 발견되지만, 노무 문제는 언제나 사람을 통해 드러난다. 연차 사용, 초과근로, 계약 위반 같은 이슈는 결국 직원 개인의 목소리와 경험에서 시작된다. 숫자와 장부는 말이 없지만, 사람은 언제든 말할 수 있고, 그 말은 곧 갈등으로 이어진다. 대표들은 이런 상황을 “당사자와 잘 합의하면 된다”는 식으로 단순화한다. 직원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면 넘어갈 수 있고, 합의만 되면 괜찮다고 여긴다. 하지만 이 ‘합의’는 결코 대등하지 않다. 회사라는 조직의 권력 구조 속에서 직원은 침묵하거나 체념하고, 대표는 그 침묵을 동의로 착각한다. 이 지점에서 이미 합법과 불법의 경계는 흐려지고, “괜찮다”는 안일한 인식이 자리 잡는다.
게다가 기록 관리가 부실할수록 이 모호함은 커진다. 출퇴근 기록이 불완전하거나, 연차 사용 내역이 제대로 시스템에 남아 있지 않으면 결국 “사람 대 사람”의 주장 싸움으로 귀결된다. 이때 대표는 “서로 잘 얘기하면 되지 않느냐”는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HR은 이것이 언제든 노동위원회나 근로감독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알기에 불안을 느낀다.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은 곧 감정과 권력, 기록 부재가 얽혀 언제든 폭발할 수 있다는 뜻이다. 숫자와 장부처럼 통제 가능한 대상이 아니라, 언제든 예측 불가능한 감정이 터져 나올 수 있다는 불확실성 때문에 대표는 불편해한다. HR은 이 불확실성을 구조로 막으려 하지만, 대표는 정면 돌파보다는 회피를 선택한다.
노무 위반은 매번 적발되지 않는다. 근로감독은 무작위로, 몇 년에 한 번만 이뤄진다. 그래서 대표들은 이를 ‘확률 게임’처럼 받아들인다. “아직 단속 안 나왔다”는 말이 위안이 되고, “이번에도 넘어가겠지”라는 기대가 합리적 판단처럼 작동한다. 어떤 대표는 이를 경험칙처럼 일반화한다. “10년 동안 문제 없었는데, 굳이 지금부터 철저히 맞출 필요 있나?”라는 생각이다.
이 사고방식은 교통법규와 닮았다. 제한속도 70이면 대부분의 운전자는 77로 달린다. 정차 금지 구역도 “3분 정도면 괜찮다”는 식으로 회피한다. 세금 역시 합법과 불법 사이에서 최대한 절세를 추구한다. 대표들에게 노무란 바로 이런 영역이다. 규정은 존재하지만, 현실에서는 ‘걸리지 않으면 괜찮은 것’으로 작동한다. 여기에는 인간이 본능적으로 따르는 확률적 사고와 손실회피 편향이 동시에 작용한다. ‘걸릴 위험’보다 ‘당장 비용’이 더 크게 보이기 때문에, 법을 지키는 것보다 눈앞의 편의와 이익을 선택하는 것이다.
문제는 걸렸을 때조차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부당해고나 임금체불로 제소되어도, 법무법인을 선임해 버티면 된다고 믿는다. 몇 억의 과징금을 맞아도 “운이 나빴다”는 말로 끝낸다. 구조적 문제라기보다는 개인적 불운으로 치부한다. 이때 HR은 깊은 좌절을 느낀다. 법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생각하지만, 대표는 이를 통계적 위험으로만 계산한다. 다시 말해 “법은 규범”이 아니라 “운이 나쁘면 걸리는 일”로 치환되는 것이다. 그래서 대표는 법을 따르기보다 운을 믿고, HR은 그 간극 속에서 늘 불안을 떠안는다.
대표들이 서로 모이는 자리는 언제나 비슷한 말로 채워진다. “우리 회사도 연차는 사실상 눈치껏 쓰게 해.” “근로계약서는 그냥 기본 양식으로만 써도 문제없어.” “감독 나와도 대충 설명하면 넘어가더라.” 이런 말들이 무심하게 흘러나온다. 이 조언은 대표들에게 강력한 심리적 면죄부가 된다. 눈에 보이는 다른 회사들이 멀쩡하게 돌아가니, 나만 괜히 원칙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런 말들이 대부분 불완전하거나 왜곡된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겉보기에 멀쩡해 보이는 회사도 내부에는 노무 리스크가 산처럼 쌓여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속내는 드러나지 않는다.
여기에 개인 경험의 관성까지 더해진다. 많은 대표들이 과거 본인이 일했던 대기업이나 작은 사업장의 관행을 그대로 끌고 온다. “나도 예전에 이렇게 일했는데 아무 문제 없었다”는 경험은 새로운 제도를 받아들이지 않게 만드는 힘으로 작동한다. HR이 아무리 법적 리스크를 설명해도, 대표는 동료 대표의 말과 자신의 경험을 더 신뢰한다.
이것은 단순한 무지가 아니다. 잘못된 관행이 집단적 차원에서 정당화되는 문화적 학습이다. 서로의 이야기를 근거로 삼으며 회피가 합리화되고, 그 과정에서 HR의 목소리는 불필요하게 까다로운 소리로만 들린다. 집단적 착각은 개인의 책임 회피보다 훨씬 강력한 힘으로 작동하며, 대표들을 안일함의 늪으로 몰아넣는다.
대표들의 가장 깊은 본능은 “노무를 제대로 지키면 손해본다”는 감각이다. 직원이 연차를 다 쓰면 생산성이 떨어지고, 52시간제를 지키면 속도가 늦고, 해고를 절차대로 하면 비용이 늘어난다. 노무 준수는 곧 성과를 방해하는 규제로 인식된다.
대기업이 이를 지키는 이유도 “대기업이라 여유가 있어서”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정반대다. 대기업일수록 대규모 리스크에 노출될 수 있기에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 노무 위반은 과거까지 소급되어 전체 직원이 문제를 제기할 수 있고, 이는 단순한 벌금이 아니라 재앙으로 확산된다. 즉, 노무 준수는 비용이 아니라 보험이다. 그러나 대표의 눈에는 여전히 현재의 손해가 더 크게 보인다. 행동경제학에서 말하는 ‘손실회피 편향(loss aversion)’이 그대로 작동한다. 불확실한 미래의 위험보다 눈앞의 비용을 더 크게 느끼는 것이다.
또한 한국 기업 환경에서는 성과는 즉각적이고, 리스크는 지연적으로 나타난다. 당장의 매출과 성장은 눈에 보이지만, 노무 리스크는 몇 년 후 갑자기 폭발한다. 대표는 늘 지금의 성과를 택하고, HR은 장기적 리스크를 대비해야 한다. 이 불균형한 시각이 충돌할 때, HR은 “안전”을 외치고 대표는 “속도”를 외친다. 노무 준수를 둘러싼 갈등은 결국 이 두 언어의 충돌이다.
마지막으로, 제도적 환경 자체가 대표들을 회피로 몰아넣는다. 한국의 노동 정책은 정권과 사회 분위기에 따라 잦은 변화를 겪는다. 오늘 맞춘 제도가 내년이면 다시 바뀌고, 새로운 판례가 나오면 또 수정해야 한다. 대표 입장에서는 “지켜도 또 바뀌는데 지금부터 철저히 맞출 필요가 있나?”라는 회피 논리가 생긴다. 여기에 시장과 투자자의 압박이 더해진다. 스타트업 대표는 눈앞의 성과, 투자 유치, 제품 출시 일정에 더 몰입한다. 노동법이 요구하는 ‘지속가능한 근로환경’은 그 순간 우선순위에서 밀려난다. 노무 준수는 성장을 늦추는 방해물처럼 보인다.
더 나아가 대표들은 노무를 HR의 일로 떠넘긴다. “그건 네가 알아서 해.” 전략과 매출에는 직접 관여하지만, 노무는 행정 업무로 격하된다. 그러나 최종 책임은 결국 대표 자신에게 돌아온다. 그럼에도 그 순간까지는 애써 외면한다. 즉, 제도의 불안정성, 시장의 잔혹한 속도, 책임 전가의 심리가 맞물려 노무는 늘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대표가 회피를 선택하는 것은 합리적이라기보다, 살아남기 위해 눈앞만 보는 전략적 자기기만에 가깝다. 제도는 끊임없이 바뀌고, 환경은 끊임없이 속도를 요구한다. 대표의 회피는 바로 이 모순 속에서 생존하기 위한 나름의 선택이기도 하다.
대표의 노무 회피는 단순한 무지가 아니다. 사람을 다루는 불편함, 운에 기댄 확률적 사고, 집단적 착각, ‘준수는 손해’라는 심리, 그리고 불안정한 제도 환경이 얽힌 결과다. HR이 아무리 “법을 지켜야 한다”고 설득해도, 대표는 본능적으로 회피를 택한다. 문제는 이 회피가 곧 조직 전체의 리스크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단 한 번의 사건이 과거까지 소급되어 누적 폭탄처럼 터질 수 있다는 사실은, HR에게는 자명하지만 대표에게는 늘 먼 이야기로만 들린다.
따라서 HR의 역할은 대표를 바꾸는 데 있지 않다. 중요한 것은 대표가 회피하더라도 조직이 흔들리지 않도록 제도를 설계하는 일이다. 교통법규가 단속 카메라와 벌금이라는 장치로 현실화되듯, HR도 기록·자동화·외부 점검·신고 시스템 같은 장치를 마련해 “회피조차 흡수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제도는 일종의 안전망이며, 대표의 태도는 변수일 수 있지만 제도적 장치는 반드시 조직의 상수가 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HR은 노무를 단순한 비용 항목이 아니라 조직의 신뢰자산이자 장기적 성장 기반으로 전환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연차 소진이나 근로시간 준수가 손해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그것이 채용 경쟁력을 높이고, 내부 신뢰를 쌓으며, 투자자와 사회적 평판을 지켜낸다. “사람이 믿고 일할 수 있는 회사”라는 무형의 자산은 재무제표에 찍히지 않지만, 위기 때 조직을 버티게 하는 진짜 힘이다. 노무 준수는 보험이 아니라 기업의 체력을 기르는 근육에 가깝다.
최근 노랑봉투법, 가짜 3.3% 프리랜서, 근로시간 단축 논의, 산업재해 판결은 단순한 제도 변화가 아니다. 그것은 “회피의 시대가 끝나간다”는 신호다. 과거에는 걸리면 불운으로 여겨졌던 일이, 이제는 지키지 않으면 예외가 되는 국면으로 바뀌고 있다. 사회적 여론과 정책 환경은 더 빠르게 조직을 압박하고 있으며, 법의 해석도 점점 노동자 친화적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 흐름을 읽지 못하는 순간, 기업은 하루아침에 치명적인 리스크에 노출될 수 있다.
결국 HR의 역할은 단순히 리스크를 막는 데 그치지 않는다. 변화하는 제도와 환경 속에서 조직이 최소한의 안전망을 갖추도록 설계하는 것이 핵심이다. 대표가 회피하더라도 무너지지 않게 기록과 절차를 마련하고, 기본적인 신뢰가 쌓이도록 관리하는 것이다. 거창한 담론보다는, 실제로 돌아가는 장치와 운영 방식을 만들어내는 일이 더 중요하다. 그렇게 할 때 HR은 단순한 관리자가 아니라, 조직이 흔들리지 않도록 뒷받침하는 실무적 축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