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의 HR 커피챗 시리즈
[Edited by iid the HRer]
※ 내가 쓰는 글들은 개인적인 경험과 고민을 바탕으로 한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니, 편하게 봐주면 좋겠다.
✅ '비즈니스 미팅 / 커피챗 w iid' ( 신청 링크 )
나는 운이 좋게도(?) HRBP로서 요구되는 여러 역할들을 경험해본 것 같다. 회사마다 요구가 달랐고, 같은 회사 안에서도 성장 단계나 전략 방향, 대표의 리더십 스타일에 따라 역할이 달라졌다. 당연히 HRBP로서 모든 역할을 동시에 요구받기도 했다. 그래서 HRBP를 단순히 ‘역량’ 관점에서 설명하는 것은 늘 어딘가 모호하게 느껴졌다. 현장에서 체감한 건, HRBP는 하나의 기술이 아니라 ‘상황에 맞게 변하는 존재’라는 점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 역량을 세분화하기보다는, 각 역할이 특화되는 상황과 형태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HRBP는 단일한 직무가 아니다. 오히려 조직의 단계, 리더의 의사결정 방식, 그리고 시장의 불확실성에 따라 형태를 바꾸는 생명체에 가깝다. 현장에서 마주하는 HRBP는 이상적인 ‘전략 파트너’ 한 가지 모습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이는 불이 난 현장에서 위기를 봉합하고, 어떤 이는 리더의 말을 번역하며, 또 어떤 이는 변화의 중심에서 조직의 체질을 재설계한다. 이렇게 다양한 얼굴을 가지게 되는 이유는, HRBP가 ‘사람을 통해 조직을 연결하는 역할’이기 때문이다. 조직은 성장 단계에 따라 문제의 본질이 달라진다. 초기에는 사람이 부족하고, 성장기에는 속도가 앞서며, 안정기에는 정체가 생기고, 전환기에는 갈등이 폭발한다. 이때 HRBP의 역할은 그 변화를 감당하는 속도와 방향에 맞춰 끊임없이 재편된다.
리더의 스타일 또한 HRBP의 얼굴을 결정한다. 즉흥적으로 결단하는 리더 아래에서는 소방수형 HRBP가, 비전을 강하게 주도하는 리더 아래에서는 통역가형 HRBP가, 전략을 중시하는 리더 아래에서는 설계형 HRBP가 등장한다. HRBP는 ‘누가 리더인가’, ‘조직이 어디에 있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존재가 된다.
그래서 HRBP를 하나의 이상적인 모델로 정의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위험하다. 현장은 언제나 예측보다 복잡하고, HRBP는 그 복잡성을 흡수하며 유기적으로 진화한다. 그들은 시스템과 감정, 전략과 사람, 단기와 장기를 동시에 다루는 조직 내 유일한 이중언어 사용자다.결국 HRBP를 이해한다는 것은 조직이 문제를 해결하고 성장하는 방식을 이해하는 일이다.조직의 혼란이 커질수록, HRBP의 얼굴은 더욱 다층적으로 변한다.그리고 그 다양한 얼굴 속에는 조직의 단계, 리더의 의사결정 구조, HR의 성숙도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소방수형 HRBP는 혼란의 한가운데, 문제의 최전선에서 존재한다. 제도나 프로세스가 제대로 자리 잡히지 않은 초기 조직, 규정보다 속도가 앞서는 환경에서 문제는 늘 갑작스럽고 복잡하게 터진다. 누군가 퇴사하며 생긴 공백, 리더의 감정적 의사결정이 만든 불안, 법적 리스크와 노무 이슈, 그리고 급박한 채용까지, 이 모든 장면에서 가장 먼저 호출되는 사람이 바로 HRBP다.
이 유형의 핵심은 ‘분석’보다 ‘행동’이다. 원인을 깊게 따지기보다는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해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가"에 집중한다.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조직이 멈추지 않게 만드는 것, 그것이 이들의 존재 이유다. 갈등을 중재하고, 퇴사자 공백을 메우고, 위기 상황에서 법적 리스크를 봉합하며, 급히 채용을 진행한다. 하루하루가 위기관리이자 불 끄기의 연속이다. 성과 기준은 단순하다. ‘얼마나 빠르게 진화했는가.’ 문제를 커지기 전에 봉합하고, 이슈가 확산되기 전에 불씨를 끄는 속도 자체가 실력이다. 그러나 이 긴급 모드는 조직을 잠시 안정시킬 뿐, 근본 원인을 해결하지 못한다. 늘 불을 끄느라 ‘예방’을 위한 시간을 확보하지 못하고, 하루하루 위기 관리에 매달리다 보면 조직은 외형상 안정된 듯 보여도 내부적으로는 개선 없는 정체 상태에 머무르게 된다.
그래서 소방수형 HRBP의 한계는 명확하다. ‘늘 같은 불을 반복해서 끄게 된다’는 점이다. 실제로 스타트업 초기에는 이런 HRBP가 ‘없으면 안 되는 사람’으로 불린다. 하지만 조직이 성장할수록 이들은 점점 피로해지고, 긴급 대응 중심의 구조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진짜 유능한 소방수형 HRBP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위기 속에서 단서를 수집하고, 사건을 데이터화하며, 문제의 패턴을 분석한다. 그 과정을 통해 재발 방지 프로세스를 설계하고, 위기관리를 ‘개인의 판단’이 아닌 ‘시스템의 작동’으로 전환한다. 즉, 단기 대응을 넘어 ‘예방 가능한 위기 구조’를 설계하는 리스크 매니저로 진화해야 한다. 이 전환이 이루어지는 순간, 소방수형 HRBP는 더 이상 불을 끄는 사람이 아니라, 불이 나지 않도록 설계하는 사람이 된다. 위기를 수습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위기 자체를 관리 가능한 구조로 바꾸는 것—그것이 진짜 소방수형 HRBP의 완성이다.
통역가형 HRBP는 의사소통이 조직의 최대 리스크가 되는 시점에 등장한다. 경영진은 전략적 언어로 방향을 제시하지만, 현장은 그것을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다. 예를 들어 대표가 “우리 조직을 애자일하게 만들자”고 말하면, 경영진은 ‘유연한 실행과 빠른 피드백’을 뜻하지만 현장은 “지금도 바쁜데 자율만 늘고 책임은 더 커지는 것 아닌가”라고 받아들인다. 리더의 말은 전략이지만, 구성원에겐 위협으로 들린다. 이때 그 간극을 해석하는 사람이 바로 HRBP다.
통역가형 HRBP는 단순히 말을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의도를 번역하는 사람이다. 경영진의 전략을 현장이 이해할 수 있는 실행 언어로 풀어내고, 현장의 감정과 제약을 경영진이 수용할 수 있는 논리로 재구성한다. 즉, 한쪽의 메시지를 다른 쪽이 받아들일 수 있는 맥락으로 바꾸는 조율자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건 단순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아니라, 맥락을 읽는 감각이다. “왜 그들이 그렇게 말했는가”를 해석하지 못하면 HRBP는 결국 단순한 전달자에 머무르고 만다.경영진에게는 “왜 우리 말을 그대로 전하지 않느냐”는 불만이, 구성원에게는 “결국 위만 대변하네”라는 냉소가 동시에 쏟아진다. 이 두 언어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필요한 건 권위가 아니라 신뢰다.
현실적으로 통역가형 HRBP는 공식적인 결정권이 거의 없다. 하지만 신뢰는 권한보다 강한 힘으로 작동한다.작은 단어 하나, 회의의 논점 하나를 조정하는 것만으로도 조직 전체의 온도가 달라진다. 대표가 던진 추상적 언어를 현실적 실행 단위로 정제하고, 구성원의 불안을 전략적 프레임 안으로 끌어들이는 일. 그 섬세한 조율이 조직의 방향성을 지탱한다. 따라서 통역가형 HRBP의 핵심 역량은 ‘의도를 명료하게 바꾸는 힘’이다. 리더의 언어를 실행 가능한 메시지로, 구성원의 현실을 리더가 받아들일 수 있는 관점으로 바꾸는 능력. 그들이 존재할 때, 리더의 말은 오해 없이 실행으로 이어지고, 구성원의 저항은 참여로 전환된다.
성장기 스타트업에서 이 유형의 HRBP는 특히 중요하다. 대표의 말이 곧 규범이 되어버리는 단계에서, HRBP는 그 언어를 조직이 감당할 수 있는 현실적 기준으로 번역해야 한다. 동시에 구성원의 현실적 제약을 리더가 무시하지 않도록 설명하는 사람, 바로 의도를 다르게 해석하지 않게 만드는 설계자다. 결국 통역가형 HRBP는 단순한 소통 창구가 아니다. 그들은 언어의 경계를 잇는 다리이자, 감정과 전략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는 해석자이며, 조직의 의사결정 구조 안에서 ‘언어로 조직을 설계하는 사람’이다. 리더의 말이 제대로 전달되고, 구성원의 목소리가 왜곡되지 않을 때, 조직은 비로소 성장의 언어를 갖게 된다.
조직이 어느 정도 안정기에 들어서면 문제는 단순한 혼란이 아니라 복잡한 비효율로 바뀐다. 시스템은 존재하지만 실행력이 떨어지고, 각 사업부는 서로 다른 속도와 문화를 가지기 시작한다. 이 시점에 등장하는 HRBP가 바로 내부 컨설턴트형 HRBP다. 제도는 있지만 실제 작동하지 않고, 성과는 나지만 일관성이 없으며, 협업은 존재하지만 방향이 어긋나 있는 시기—이때 HRBP는 내부 진단가이자 구조적 해결사로 기능한다.
내부 컨설턴트형 HRBP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조직의 문제를 해석한다. KPI 구조를 재정비하고, 평가 제도를 현실에 맞게 보완하며, 사업 단위별 인력계획을 설계하고, 조직개편안을 구체적인 실행 로드맵으로 제시한다. 단순히 외부 컨설턴트처럼 분석과 제안을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조직의 맥락을 가장 잘 이해한 사람으로서 현실적인 실행 방안을 함께 설계하는 사람이다. 외부 전문가가 문제를 ‘보여주는’ 사람이라면, 내부 컨설턴트형 HRBP는 문제를 ‘함께 푸는’ 사람이다. 이 유형의 진짜 경쟁력은 ‘제안에서 실행까지의 거리’에 달려 있다. 리더와 HRBP 간 신뢰가 높을수록 제안은 실행으로 이어지고, 신뢰가 부족하면 아무리 훌륭한 전략도 보고서로만 남는다. 그래서 이 유형의 HRBP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분석 능력이 아니라 조직 내 정치적 감각과 실행 파트너십을 설계하는 능력이다. 리더와의 1:1 관계 속에서 “현장을 이해하는 HR”이라는 신뢰를 얻을 때 비로소 제안이 실질적 행동으로 전환된다.
또한 내부 컨설턴트형 HRBP는 정성적 감각만으로는 부족하다. HR Analytics 역량—데이터 분석, 조직문화 진단, 의사결정 시뮬레이션—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숫자와 감각을 결합해 논리를 구성할 때, HRBP는 단순한 의견 제시자가 아니라 ‘비즈니스 의사결정의 공동 설계자’로 자리 잡는다. 컨설팅 결과가 문서로 끝나지 않고 조직의 체계 안에서 작동하기 위해서는, 제도 개선안을 실제 프로세스·리소스·타임라인과 유기적으로 연결해야 한다. 결국 내부 컨설턴트형 HRBP는 진단 → 제안 → 실행의 고리를 끊김 없이 이어가는 사람이다.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좁히며, 제도의 논리와 현장의 현실을 연결하고, 데이터를 전략으로 바꾸는 실행형 컨설턴트. 조직이 안정기에 들어설수록 이런 HRBP의 존재는 더욱 중요해진다. 그들은 단순한 문제 해결자가 아니라, 조직이 다시 성장 궤도에 오를 수 있도록 구조를 리빌딩하는 엔진이다.
조직문화가 경직되었거나 리더십의 공백이 심화된 시점에는 현장 코치형 HRBP의 역할이 절실하다. 이들은 제도보다 사람을 다루는 전문가로, 리더 코칭, 구성원 인터뷰, 갈등 조정, 피드백 문화 정착, 성과관리 습관화 등 조직의 심리적 기반을 복원하는 사람이다. 단순히 갈등을 완화하거나 분위기를 좋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 사이의 신뢰 구조를 설계하고 감정의 흐름을 관리함으로써 조직의 에너지를 다시 순환시키는 역할을 맡는다.
이 HRBP가 중요한 이유는 조직의 관계 건강도는 성과보다 먼저 무너진다는 사실 때문이다. 단기적으로는 숫자가 유지되더라도 구성원 간 신뢰가 깨지면 어느 순간 급격히 붕괴한다. 그래서 현장 코치형 HRBP는 그 균열을 조용히 메우는 사람이다. 겉으로는 ‘감정 관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조직의 에너지 흐름을 설계하는 일에 가깝다. 관계의 균형을 바로잡고, 피드백과 신뢰가 작동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은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의 존속과 직결된 경영의 문제다.
그러나 이들의 성과는 수치로 표현되지 않는다. 리더십의 질, 피드백의 진정성, 팀 몰입도, 신뢰의 깊이 같은 것은 데이터로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단기 실적 중심의 경영진에게는 이 모든 노력이 ‘보이지 않는 활동’으로 치부되기 쉽다. 하지만 HRBP가 코칭과 피드백의 장을 닫는 순간, 조직은 자기 교정 능력을 잃는다. 결국 감정적 균열이 커지고, 그 결과는 인력 이탈과 성과 저하로 되돌아온다. 이때 현장 코치형 HRBP에게 필요한 것은 ‘신뢰의 가시화 기술’이다. 팀별 몰입도 조사, 피드백 참여율, 리더십 코칭 이행률 등 정성적 활동을 수치화해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이 일이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 유지비용의 문제”임을 증명할 수 있다. 수치로 보이지 않던 관계의 흐름을 드러내고, 감정의 영역을 경영의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 이들의 전략적 기술이다.
현장 코치형 HRBP의 완성형은 ‘피드백이 자연스러운 팀’을 만드는 것이다. 감정이 아닌 구조로 신뢰를 유지할 수 있는 팀, 심리적 안전감이 일상화된 팀, 즉 리더의 감정적 리더십이 시스템적 리더십으로 전환된 팀을 설계하는 것이 목표다. 그 결과로 리더는 감정이 아닌 구조로 팀을 이끌고, 구성원은 불안 대신 몰입으로 반응한다. 결국 현장 코치형 HRBP는 조직의 감정 에너지를 관리하는 리스크 매니저이자 보이지 않는 조직 리빌더다. 숫자보다 관계를 먼저 다루고, 감정보다 구조를 먼저 설계하며, 신뢰를 ‘보이지 않는 자산’이 아니라 ‘측정 가능한 경쟁력’으로 전환하는 사람. 조직이 흔들릴 때 가장 조용하지만, 그 조용한 복원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변화의 시작이다.
조직이 성장 곡선을 넘어 스케일업 단계에 진입하면, HR의 역할은 ‘사람을 더 뽑는 것’에서 ‘사람을 통해 전략을 구현하는 것’으로 바뀐다. 이 시점의 HRBP는 단순한 운영 관리자가 아니라 인재 구조와 비즈니스 전략을 통합 설계하는 전략가로 작동한다. 인력 수급, 리더십 파이프라인, 승계 계획, 비용·성과 구조 최적화 등 사람을 중심으로 한 비즈니스 구조를 설계하며, 조직의 장기 성장 전략을 인적 기반 위에서 완성해 간다.
전략 설계형 HRBP는 HR 제도 운영자의 범위를 넘어선다. “3년 뒤 이 비즈니스를 이끌 인재는 누구인가?” "우리의 인력 구조는 전략의 방향과 일치하는가?” 같은 질문에 답하며, CoE(전문 HR 기능)와 협업해 인재·조직·비용의 방향성을 동시에 설계한다. 이들은 인사 데이터를 통해 경영의 의사결정을 돕고, 인력 구조를 단순한 비용 항목이 아니라 전략적 투자 포트폴리오로 다룬다.
하지만 이들이 가장 빠지기 쉬운 함정은 바로 탁상 전략화다. 현장 모니터링 없이 만들어진 계획은 현실과 동떨어지고, 실행되지 않는다. 아무리 논리적으로 완벽한 전략도 실제로 작동하지 않으면 무의미하다. 따라서 전략 설계형 HRBP에게 필요한 것은 책상 위의 기획력이 아니라 현장에서 작동 가능한 실행감각이다. 전략을 세우되, 그것이 조직의 흐름 속에서 작동하는 구조로 연결되어야 한다. 진짜 전략 설계형 HRBP는 “인건비를 줄이자”가 아니라 “고성과자의 잔존율을 높이며 비용 효율을 개선하는 구조”를 설계한다. 인력 효율화란 사람을 줄이는 일이 아니라, 사람을 통해 생산성을 구조화하는 일이다. 단순히 숫자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비즈니스 목표와 사람의 성장을 동시에 견인하는 설계를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성과 대비 고정비 비율을 분석해 인센티브 구조를 재편하거나, 리더십 파이프라인을 조정해 인력 재배치의 효율을 높이는 식이다.
이 유형의 HRBP는 전략과 실행의 균형을 유지하는 사람이다. 계획을 만드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것이 실제 운영 구조와 리더십 체계 속에서 작동하도록 끝까지 끌고 간다. 결국 전략 설계형 HRBP의 핵심은 사람을 전략의 레버리지로 바꾸는 일이다. HR을 경영의 중심에 연결하고, 조직의 숫자를 ‘사람의 구조’로 다시 해석하며, 실행 가능한 전략으로 번역하는 것—그것이 바로 사람을 통한 비즈니스 전략가로서의 완성된 모습이다.
M&A, 구조조정, 글로벌 확장, 사업 철수 등 대규모 변화기에 조직의 생존을 걸고 등장하는 HRBP가 바로 변화 드라이버형이다. 이들은 단순히 변화를 따라가는 관리자가 아니라, 변화의 전체 시나리오를 설계하고 조직을 통째로 리빌딩하는 설계자다. 변화의 목적과 단계를 정의하고, 구성원의 불안을 완화하기 위한 커뮤니케이션 플랜을 세우며, 프로젝트 단위로 조직 재편을 추진한다. 변화는 늘 혼란을 동반하기 때문에, 이 유형의 HRBP는 동시에 엔진이자 완충 장치의 역할을 맡는다. 속도를 조절하면서도 불안을 흡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HRBP가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핵심 역량은 세 가지다. 첫째, 속도의 감각이다. 변화는 타이밍을 놓치면 의미가 없다. 너무 빠르면 저항이 생기고, 너무 느리면 에너지가 빠져나간다. 둘째, 신뢰다. 구성원이 HR의 말을 믿지 않으면 그 어떤 전략도 작동하지 않는다. 변화 과정에서 HRBP는 신뢰의 기준점이 되어야 한다. 셋째,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역량이다. 변화는 감정으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일정과 리소스로 관리해야 한다. 이 세 가지가 조화를 이루어야 조직은 혼란 속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는다.
변화 드라이버형 HRBP는 위기 커뮤니케이션의 전문가이기도 하다. 변화는 논리보다 감정에서 실패한다. 리더와 구성원의 감정선을 동시에 관리하면서, 혼란을 감정이 아닌 구조의 언어로 전환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조직 재편 시 ‘누가 남고 나가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구조가 전략에 맞는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때 HRBP는 감정의 폭발을 통제하는 관리자이자, 신뢰의 통로로 기능한다. 그러나 변화가 일단락되면, HRBP의 존재감은 종종 희미해진다. “이제 안정됐으니 운영 중심으로 돌아가자”는 흐름 속에서 역할이 사라지기 쉽다. 하지만 진짜 변화 드라이버형 HRBP는 변화를 마무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변화 이후를 설계하는 사람이다. 변화의 엔딩이 아니라 안착의 프롤로그까지 설계해야 한다. 재편된 조직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리더십 교육을 강화하고, 구조조정 이후 생산성 회복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새 체계가 정착될 수 있도록 온보딩과 내부 커뮤니케이션을 이어간다.
결국 변화 드라이버형 HRBP의 진정한 역할은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변화가 지속 가능한 구조로 남게 만드는 것’이다. 속도의 감각으로 움직이고, 신뢰로 버티며, 프로젝트 관리로 변화를 완성하는 사람. 그들은 단기적인 위기관리자가 아니라, 조직의 다음 단계까지 설계하는 변화의 건축가다. 변화의 혼란 속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게 하고, 변화 이후의 정착기까지 책임지는 사람—그것이 변화 드라이버형 HRBP의 완성된 모습이다.
HRBP의 여섯 가지 유형은 단순히 역할의 차이가 아니다. 그것은 조직과 사람이 함께 진화하는 하나의 순환 구조다. 조직의 초기에는 불을 끄고, 성장기에는 언어를 해석하며, 안정기에는 문제를 분석하고, 리더십 확장기에는 관계를 세우며, 스케일업기에는 전략을 설계하고, 전환기에는 변화를 완성한다. 이 여섯 단계를 잇는 선 위에서 HRBP는 조직의 ‘심장 리듬’을 조율한다. 즉, HRBP의 여정은 ‘역할의 전환’이 아니라 ‘시스템 감각의 확장’이다. 혼란 속에서는 질서를 만들고, 질서 속에서는 균형을 잡으며, 균형이 고착되면 다시 변화를 설계한다. 이 과정은 단절이 아니라 순환이다. HRBP는 제도와 사람, 데이터와 감정, 전략과 관계 사이를 오가며 조직의 유기적 균형을 유지한다.
궁극적으로 HRBP가 만들어야 하는 것은 문서나 제도가 아니다. 그들이 설계해야 하는 것은 사람이 움직이고, 조직이 스스로 작동하는 구조다. 그 구조는 리더의 신념, 구성원의 감정, 시장의 압력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생명체처럼 작동한다. HRBP의 본질은 바로 그 생명체의 호흡을 감지하고, 그 리듬을 설계하는 일에 있다. 따라서 HRBP의 성장은 소방수에서 구조 설계자로, 대응에서 예방으로, 실행에서 시스템으로 이어지는 진화의 여정이다. 현장의 감정과 경영의 계산을 동시에 이해하며, 즉흥과 전략 사이의 간극을 설계로 메우는 사람. 그들이 바로 HRBP다.
HRBP가 성숙한 조직일수록, 변화는 덜 요란하고 회복은 더 빠르다. 불안은 체계로 바뀌고, 체계는 문화가 된다. 결국 HRBP의 진정한 성취는 제도의 완성이 아니라, 사람과 시스템이 서로를 작동시키는 구조를 남기는 것이다. 그 구조 위에서 조직은 더 이상 불안정한 성장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때 비로소 HR은 ‘사람을 통해 조직이 움직이는 힘’으로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