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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d] 오퍼 권한은 힘이 아니다. 기준이 힘이다

이드의 HR 커피챗 시리즈

by iid 이드

[Edited by iid the HRer]

※ 내가 쓰는 글들은 개인적인 경험과 고민을 바탕으로 한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니, 편하게 봐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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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퍼 권한은 힘의 문제가 아니라 ‘회사 성향’이 드러나는 창구다

여러 회사를 다니며 다양한 HR 문화를 경험했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조직 분위기를 갈라놓는 주제가 하나 있었다. 바로 채용에서의 오퍼 권한이다. 어떤 회사에서는 오퍼가 대표의 마지막 결재 도장 같은 상징적 의미를 갖고, 또 어떤 회사에서는 HR이 실무적으로 자연스럽게 챙기는 일상의 한 부분이었다. 신기한 것은 이를 “절대 넘길 수 없는 결정권”처럼 다루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그냥 프로세스의 한 단계”로 여기는 사람도 있다는 점이다.


나는 사실 오퍼 권한 자체를 크게 중요하게 보지 않는다. 어느 회사에서는 HR이 오퍼를 가져가고, 또 어떤 회사에서는 대표가 직접 챙기는 구조였다. 결국 이 영역은 대표의 스타일·철학·의사결정 문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정해지는 것이지, 좋고 나쁨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래서 오퍼 구조를 마주할 때도 “이 회사는 이렇게 일하는구나” 정도로 이해하며 넘어가는 편이다.


문제는 이 권한을 지나치게 무겁게 여기기 시작할 때 생긴다. 실무자들은 괜한 압박을 받고, 조직은 ‘누가 힘을 가지는가’의 문제로 필요 없는 긴장을 만든다. 하지만 실상은 단순하다. 오퍼 권한은 권력이 아니라 회사가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 보여주는 하나의 습관이다. 그 회사가 어떤 방식으로 오퍼를 내는지는 결국 그 회사가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대로 드러내는 창구일 뿐이다.




방식은 달라도 결국 챙겨야 하는 건 동일한 두 가지다


① 회사마다 달랐던 오퍼 풍경들

내 경험을 돌아보면 오퍼의 방식은 정말 다양했다. “이렇게까지 다를 수 있나?” 싶은 극단적인 케이스들도 있었다.

어떤 회사에서는 내가 시장 수준 + 내부 밴드를 고려해 직접 오퍼안을 만들고 대표와 싱크하는 구조였다. HR에게 상당한 권한이 주어지는 방식이었다.

또 어떤 회사에서는 사전에 합의된 규칙에 맞춰 분석 자료를 만들어 상신하고, 대표 승인 후 오퍼가 나가는 철저한 절차 중심 구조였다. 문서와 프로세스가 중심이었다.

어떤 회사에서는 스톡옵션까지 HR이 사전에 배분받은 바운더리 안에서 전체 인건비를 고려해 직접 설계하는 구조였다. 유연하지만 동시에 무게도 큰 방식이다.

어떤 회사에서는 인터뷰 자리에서 C레벨이 바로 오퍼를 제안하는 경우도 많았다. 속도는 빠르지만 기준이 얼마나 일관되는지는 별개의 문제였다.

그리고 정말로, 대표의 기분과 그날의 상황에 따라 기존 가이드라인 없이 오퍼가 달라지는 조직도 있었다. ‘오늘 회사 분위기 좋으면 후하게, 아니면 보수적으로’ 같은 형태였다.


겉으로 보면 회사마다 방식이 완전히 다르지만, 실제로 현장에서 느낀 차이는 크게 세 가지였다. 속도, 일관성, 그리고 그로 인해 조직이 느끼는 신뢰도. 결국 오퍼 방식이 다르더라도 이 세 가지를 어떻게 잡느냐가 조직 전체의 분위기를 결정했다.


② 중요한 건 권한이 아니라 ‘전사 기준’이다

오퍼 권한이 누구에게 있든 중요하지 않은 이유는 명확하다. HR이 하든, 대표가 하든, 혹은 팀장이 현장에서 바로 제안하든, 그 방식은 외형일 뿐이고 실제로 조직을 지탱하는 힘은 “기준이 존재하느냐”에 달려 있다. 오퍼를 어떤 톤으로 어떤 타이밍에 제안하느냐보다, 그 오퍼가 어떤 철학과 기준 위에서 만들어졌는지가 훨씬 본질적이다.


기준이란 단순히 금액 상·하한을 정해두는 문제가 아니다. 어떤 레벨의 사람을 어떤 포지션에서 어떤 책임으로 받아들일지,그 포지션이 조직 내에서 어떤 무게를 갖는지,기존 구성원들과 어떤 상대 구조를 만들지,해당 직무의 시장가와 조직 전략이 어떻게 결합되는지이 모든 요소가 얽혀 하나의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이 구조가 서 있어야 오퍼는 하나의 문서가 아니라 회사가 처음 건네는 약속이 된다.


그래서 HR이 오퍼 권한을 가지지 않아도 괜찮다. 많은 회사들이 그렇게 운영한다. 하지만 그렇다면 대표와 경영진은 최소 두 가지를 인지해야 한다.

전체 인건비 관점: 한 사람의 연봉이 아니라 회사 비용 구조 전체에서 어떤 의미인지 보는 감각

내부 형평성 관점: 기존 직원과의 균형·레벨 밴드 간 간격·직무 간 불균형 여부를 고려하는 태도


이 두 가지가 없으면 조직은 빠르게 흔들린다. 그다음부터는 오퍼 주체와 상관없이 예외가 기준을 대신하는 조직이 된다. 시장가보다 높게 들어오는 케이스, 내부보다 낮게 들어오는 케이스, 감정적으로 옵션을 더 주는 케이스, 협상력에 의해 과하게 받아가는 케이스… 반복될수록 조직 안에서는 하나의 신호가 만들어진다.

“오퍼는 규칙이 아니라 협상력 싸움이다.”

그때부터 조직은 원칙이 아니라 타이밍과 감정으로 움직인다. 내부에서는 “누구는 많이 받아왔다더라”, “우리 팀만 적게 받는 것 같다”, “말 잘하면 더 받을 수 있다던데?” 같은 말이 공개적으로 오가기 시작한다. 기준이 사라지는 순간 HR이 감당해야 할 리스크는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로 계속 쌓인다.


③ 스타트업에서 오퍼 기준을 만들 때 반드시 포함해야 할 최소 규칙

스타트업은 성장 속도와 상황 변화가 빠르기 때문에, 초기에 복잡한 보상 제도를 만드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그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아무리 바빠도 흔들리지 않을 최소 규칙 몇 가지다. 이 규칙은 회사가 커져도 유지되고, 대표의 결정 스타일이 바뀌어도 무너지지 않는 가장 중요한 기본틀이다.


첫 번째로, 직무별 레벨 체계를 최소한으로라도 정의해야 한다. 역할의 범위와 책임이 명확해야 왜 특정 후보자를 특정 레벨로 넣었는지 설명할 수 있고, 내부 구성원과 비교할 수 있는 기준이 만들어진다. 두 번째로, 각 레벨의 급여 범위(상·하한)를 반드시 설정해야 한다. 이는 HR의 권한을 위한 것이 아니라, 대표의 직관적 오퍼가 내부 직원의 밴드를 지나치게 건드리지 않도록 막는 안전장치다.


스톡옵션 부여 원칙도 필수다. 옵션이 성과 기반인지 역할 기반인지, 레벨 중심인지 판단 기준이 있어야 하고, 예외를 허용하더라도 왜 벗어났는지 남길 수 있어야 한다. 또한 회사가 시장가 대비 어느 위치를 목표로 하는지—100%를 맞출 것인지, 70~80%에서 옵션으로 보완할 것인지, 혹은 시장가 이상을 적극적으로 제시할 것인지—회사 철학을 명확히 해야 한다. 이는 금액 문제가 아니라 성장 전략의 문제다. 같은 레벨 내에서 어느 정도의 편차를 허용할지도 미리 정해 둬야 한다. 예를 들어 동일 레벨 내 10~15% 차이는 허용하지만 그 이상은 예외 승인을 받는 식의 기준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모든 규칙의 핵심은 결국 예외 관리다. 스타트업은 예외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그러나 예외가 기준을 대체하는 것을 막는 절차는 반드시 필요하다. 예를 들어 “밴드 상한을 초과한 오퍼는 HR–대표 2인 합의 뒤 진행한다” 같은 최소한의 룰만 있어도 뒤에 벌어질 혼란을 절반 이상 줄일 수 있다. 이런 최소 규칙들이 있어야 오퍼권이 누구에게 있든 관계없이 조직은 일정한 균형을 유지하고, 구성원은 회사의 보상 구조를 신뢰할 수 있다.


④ HR이 오퍼 권한을 가질 때의 현실적 장단점

HR이 오퍼 권한을 직접 가지는 구조는 여러모로 효율적이다. 가장 큰 장점은 속도다. 후보자가 조건 조정을 요청할 때 HR이 즉시 판단하고 답을 줄 수 있어 협상 과정이 깔끔해진다. 왕복 커뮤니케이션이 줄고, 대표의 의도가 HR을 거치며 왜곡되는 일도 훨씬 적어진다. 오퍼는 작은 단어 하나로도 의미가 확 달라지는데, HR이 직접 권한을 가졌을 때 그 톤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다.


무엇보다 빠른 오퍼는 “우리가 당신을 진심으로 원한다”는 강력한 신호다. 좋은 후보일수록 여러 회사의 제안을 동시에 받고 있기 때문에 속도는 경쟁력이다.


하지만 이 구조가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다. HR이 권한을 가진다는 것은 곧 책임까지 함께 감당한다는 뜻이다. 이후 그 후보자가 낮은 평가를 받거나 기존 직원보다 많은 처우를 받는 상황이 생기면 모든 질문은 HR에게 향한다.

“왜 이렇게 많이 줬어?”
“레벨 판단 잘못한 거 아니야?”
“기존 직원과의 형평성 고려한 거 맞아?”


특히 스타트업처럼 인력 수요 변화가 빠른 환경에서는 HR이 사실상 전체 인건비의 ‘수문장’ 역할을 하게 되며, 채용·보상·조직 균형이라는 세 요소를 동시에 감당해야 한다. 요약하면, 속도는 얻지만 그 무게도 함께 감당하는 구조다.


⑤ 대표/경영진이 오퍼 권한을 가질 때의 현실적 장단점

대표나 경영진이 오퍼 권한을 갖는 방식은 외형적으로 매우 강력하고 명확하다. 최종 의사결정권자가 직접 제안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후보자에게 신뢰감을 줄 수 있고, 초기 스타트업처럼 대표의 말=회사 방향일 때는 이 방식이 채용 성사율을 높이기도 한다. 내부적으로도 대표가 서명한 오퍼는 정당성이 확실해 HR이 뒷단에서 생기는 부담이 줄어드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이 구조가 기준 없이 돌아가기 시작하면 위험성이 크게 드러난다. 대표가 마음에 든 후보자에게 내부 밴드를 넘는 처우를 제시하거나, 특정 상황 때문에 누군가는 지나치게 낮은 금액을 받는 일이 반복되면 내부 직원들은 곧바로 비교한다.

“왜 저 사람만 예외야?”
“나는 더 오래 일했는데 왜 더 적어?”
“결국 말 잘하면 더 받는 구조 아닌가?”


보상은 감정과 신뢰에 직결된 영역이라 단 하나의 예외로도 균열이 빠르게 퍼진다. 더 큰 문제는 대표 중심의 오퍼 구조에서는 권한과 책임이 균형 있게 남지 않는다는 점이다. 성공하면 대표의 판단이고, 실패하면 HR의 기준 관리 미흡이 되어버리는 구조다. 그래서 기준 없는 권한은 조직 신뢰를 가장 빠르게 무너뜨리는 방식이 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오퍼권이 어디 있느냐가 아니라, 그 권한이 기준 위에서 일관되게 작동하느냐다.


⑥ 대표가 오퍼권을 고집할 때 HR이 가져야 할 대응 전략

대표가 오퍼권을 직접 행사하려는 조직은 초기에 특히 많다. 속도감 있게 움직이고 싶고, 본인이 직접 후보자를 설득해야 효과가 더 좋다고 믿기도 한다. HR이 해야 할 일은 대표의 방식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그 방식이 조직 전체를 흔들지 않도록 보이지 않는 틀을 깔아주는 일이다. 즉, 대표가 빠른 의사결정으로 얻는 장점을 유지하되, 그 과정에서 내부 형평이나 인건비 구조가 무너지지 않도록 최소한의 레일을 만들어 두는 것이다.


이 틀은 억지 설득이나 대립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HR은 대표에게 “오퍼권 자체가 문제”라는 식의 접근이 아니라, “오퍼 이후 내부 직원들의 보상 구조와 조직 균형에 어떤 파장이 생기는지”를 보여줘야 한다. 특정 후보자의 레벨·연봉·옵션이 내부 밴드를 어떻게 건드리는지, 예외가 반복될 때 어떤 조정 비용이 뒤에 발생하는지 실무적 사례로 보여주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대표는 권한을 포기하려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권한을 행사할 때의 비용 구조는 대부분 알고 싶어 한다.


그래서 HR이 현실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분명하다. 대표가 직접 오퍼하되 금액 범위와 스톡옵션 한도는 HR이 먼저 설정해두고, 대표는 그 범위 안에서만 결정하도록 한다. 또한 어떤 직군은 대표가 직접 오퍼할 때 효과가 크고, 어떤 직군은 HR이 오퍼할 때 형평성이 유지된다는 점을 명확하게 안내한다. 오퍼 시 동석하거나, 최소한 HR이 작성한 스크립트를 기반으로 대표가 말하도록 하여 톤과 메시지를 통일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후 대표 결정으로 인해 내부 형평 리스크가 보이면 조정 비용을 수치로 바로 공유해 균형을 유지한다. 결국 이 전략의 목적은 대표의 장점인 속도와 HR의 본질인 구조를 충돌시키지 않으면서 두 방식을 공존 가능한 형태로 만드는 것이다.


※ 오퍼 실패 사례 — 조직을 흔드는 6가지 패턴

✅ 내부 밴드를 무너뜨린 ‘대표 직감 오퍼’

한 후보자가 인터뷰에서 대표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대표는 “이 사람 꼭 데려오자”며 기존 직원보다 15% 높은 연봉과 스톡옵션을 즉석에서 약속했다. 문제는 그 팀의 기존 시니어는 그보다 낮은 연봉을 받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HR이 급히 구조를 재정비하려 했지만 이미 ‘대표가 약속했다’는 말 한마디가 선례가 되어버렸고, 기존 직원들은 자연스럽게 비교를 시작했다. “도대체 기준이 뭐지?”,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오히려 손해 아닌가?” 같은 말이 팀 안에서 돌기 시작했다. 결국 오퍼의 감정적 결정 하나가 팀 전체의 신뢰 구조를 흔드는 결과로 이어졌다.


✅시장가 착오로 생긴 ‘과도한 언더밴딩’

빠르게 뽑아야 하는 포지션이라 급하게 오퍼를 만들었다. 당시 HR이 참고한 시장 데이터는 1년 전 자료였고, 실제 시장가는 이미 20% 이상 올라 있었다. 그 사실을 모르고 시장가보다 낮은 금액을 제시하자 후보자는 바로 경쟁사 오퍼를 받았고 비교 후 정중히 거절했다. 회사는 “왜 이렇게 낮게 줬지?”라고 내부적으로 문제를 제기했지만, 정작 더 큰 문제는 이후 그 포지션의 채용이 두 달 이상 지연되며 팀 전체의 프로젝트 일정까지 밀렸다는 점이었다. 언더밴딩은 단순히 돈 문제가 아니라 속도 손실·조직 실행력 붕괴와 직결되는 실패다.


✅옵션을 과하게 약속한 ‘선의의 폭주’

초기 스타트업에서 대표가 “우리는 옵션으로 진정성 보여줘야 한다”고 말하며 거의 모든 시니어 후보자에게 옵션을 넉넉하게 약속했다. 문제는 그 약속이 누적되면서 전체 옵션 풀의 70% 가까이가 사전에 소진된 상태가 되었다는 것. 정작 내부에서 꼭 붙잡아야 할 핵심 인재를 위한 리텐션 옵션이 부족했고, 대표는 뒤늦게 “이걸 왜 이렇게 많이 줬지?”라고 당황했다. 결국 옵션 재분배를 위해 기존 직원들에게 설명해야 했고, “초기 합류자 특혜 논란”이 일어나며 조직 내부 신뢰가 크게 흔들렸다.


✅HR-대표 커뮤니케이션 오류로 생긴 ‘두 개의 오퍼’

한 후보자의 오퍼 금액을 두고 HR과 대표가 해석을 다르게 하고 있었다. HR은 “4,800만원까지 가능”이라 이해했고, 대표는 “4,800까지 갈 수 있다면 5,000에 줘도 되겠네”라고 생각했다. 결국 HR은 4,800으로 제안했고, 대표는 후보자와 별도 커피챗 자리에서 5,000을 언급해버렸다. 후보자는 곧바로 혼란에 빠졌고, 회사의 일관성에 의문을 가졌다. 회사는 “조직이 하나의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는 인상을 주었고, 결국 후보자는 “이런 방식이면 내부 의사결정이 더 혼란스럽겠구나”라는 판단으로 최종 합류를 거절했다. 내부 정합성 부족은 연봉보다 더 치명적이었다.


✅ 급한 채용 때문에 ‘임시방편 오퍼’가 기준이 된 사례

서비스 런칭을 앞두고 급하게 프론트 개발자를 뽑아야 했다. 대표는 “지금은 상황이 급하니까 일단 높은 금액으로 주고 데려오자”고 결정했고 HR도 어쩔 수 없이 따랐다. 문제는 그 오퍼가 내부 개발자의 밴드를 한 번에 10% 이상 올려버린 셈이 됐다는 것이다. 이후 들어올 지원자들은 당연히 그 금액을 기준으로 협상했고, 기존 직원들도 조정 요구를 시작했다. 급한 상황에서 만든 임시방편 오퍼 하나가 팀 전체 연봉 구조를 바꿔버린 셈이었다. 실제로 많은 회사가 이렇게 단 한 번의 예외로 수년간 인건비 부담을 지게 된다.


✅ 지나치게 HR 중심으로 만든 ‘과정 완벽주의’ 오퍼

HR이 너무 ‘제도적으로 완벽한 오퍼’를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을 받은 나머지, 모든 케이스별 가이드·상한·하한·내부 편차·시장 벤치마킹 데이터를 모두 포함해 지나치게 딱딱한 오퍼 프로세스를 만들었다. 이로 인해 속도는 크게 느려지고 대표와 실무 리더들은 “이러면 채용 타이밍 다 놓친다”고 불만을 가지게 되었다. 결국 HR은 기준을 지키려 했지만, 속도·상황·실제 협상이라는 스타트업의 현실을 놓쳤기 때문에 오퍼 과정이 조직의 발목을 잡는 형태가 되었다. 기준이 중요한 건 맞지만, 기준이 현실을 압도하기 시작하면 그것도 실패가 된다.




오퍼 권한의 본질은 ‘누가 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원칙 위에서 하느냐’다

오퍼 권한은 겉으로 보기엔 HR과 대표 사이의 힘의 균형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 본질은 전혀 다른 곳에 있다. 회사가 사람과 맺는 첫 관계를 어떤 태도로 시작하느냐, 그리고 그 관계를 어떤 기준으로 유지하려 하느냐의 문제다. 그래서 권한의 위치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오퍼가 기준·원칙·일관성 위에서 운영되는지, 그리고 그 기준이 실제로 지켜지고 누적되는지다. 한 번의 오퍼는 순간이지만, 그 오퍼가 만들어내는 조직의 기억과 관계의 패턴은 오래 남는다.


기준 없는 오퍼는 빠르고 유연해 보일 수 있다. 단기적으로는 “좋은 의도”, “결단력”, “과감함”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예외가 쌓이고 비교가 쌓이며, 그때마다 내부 직원의 감정은 조용히 흔들린다. “왜 나는 저렇게 받지 못했지?”, “이 회사는 기준이 있긴 한 걸까?”, “나도 이직할 때만큼은 챙겨야겠다” 같은 생각이 쌓이기 시작하면 이미 신뢰 기반은 약해진 상태다. 작은 예외가 큰 불균형의 씨앗이 되고, 처음에는 감탄을 불렀던 대표의 ‘빠른 오퍼’도 시간이 지나면 조직 전체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반대로 명확한 기준이 있는 오퍼는 누가 제안하든 안정적이다. 대표가 하든, HR이 하든, 팀장이 하든 구성원들은 그 기준이 자신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된다. 사람들은 금액을 기억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 금액이 어떤 납득 가능한 구조에서 결정되었는지를 더 오래 기억한다. 회사의 성숙도는 보상액의 크기에서 나오지 않는다. 결정 방식의 일관성과 해석 가능한 기준에서 나온다.


그래서 결론은 명확하다. 오퍼는 돈의 문제가 아니라 회사가 사람과 관계를 맺는 방식에 대한 선언이다. 그 선언이 원칙과 일관성 위에 서 있을 때 조직은 비로소 단단해진다. 그리고 이 원칙이 조직 내에서 반복되기 시작할 때, 구성원들은 회사가 어떤 선택을 하든 “그래도 이 회사는 기준이 있다”는 신뢰를 갖게 된다. 이 신뢰가 결국 채용 성공률을 높이고, 이탈률을 낮추고, 조직의 에너지 흐름을 안정시키는 보이지 않는 힘이 된다. 즉, 오퍼 권한은 권력이 아니다. 조직의 첫 신뢰를 만드는 방식이다. 그리고 신뢰는 숫자보다 오래 남고, 어떤 회사인지 설명하는 가장 직관적인 언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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