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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취중잡담

채용은 막히고, 퇴사는 늘고, 프리랜서는 많아졌다

취중잡담(醉中雜談) - 술김에 적는 솔직한 이야기들

by iid 이드

※ ‘취중잡담(醉中雜談) - 술김에 적는 솔직한 이야기들’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지인들이 익명으로 참여해, 술자리에서나 나눌 법한 솔직한 생각과 이야기를 가볍지만 진지한 시선으로 풀어내는 프로젝트입니다.



프리랜서 마케터로 전국을 돌아다니다 보면, 도시마다 공기가 다르고, 회사마다 표정이 다르다. 어떤 곳은 사람을 못 구해 허덕였고, 어떤 곳은 직원들 얼굴에 피로가 그대로 묻어 있었다. 프리랜서라 그런지 자연스럽게 ‘손님’처럼 받아들이는 회사도 있었던 반면, 오래된 친구처럼 편하게 말 걸어주는 대표도 있었다. 똑같은 ‘노동’인데 지역마다, 회사마다,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온도가 너무 달라서, 이게 하나의 나라가 맞나 싶은 순간도 있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이렇게 지역과 회사가 제각각인데도 사람들이 하는 고민은 놀라울 만큼 비슷하다는 점이었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 뭘 준비해야 할지 모르는 답답함, 버틸지 떠날지에 대한 갈림길, 회사는 사람을 못 구한다면서 정작 사람들은 회사를 선택하지 못하는 현실. 전국을 돌아다니며 들은 수많은 목소리가 하나의 풍경처럼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풍경은 지금 내가 살아가는 시대의 단면이었다.


대기업 패션회사 K에 다니는 동년배 지인이 술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10년차 이상, 40대는 이번에 희망퇴직 대상이라고. 지금 나가야 그나마 위로금이라도 받고 나갈 수 있다는 공지가 올라왔다고 한다. 일단 자기는 일단 버틸건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니 부업을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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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S전자회사에 다니는 친구는 매주 월요일마다 인사팀 메일 받고 다른 부서로 옮겨지는 사람들을 본다고 한다. 얼마 전에는 15년 넘게 생산 부서에 있던 선배가 마케팅팀으로 보내졌다고 한다. 마흔 넘어서 처음 마케팅 하는 사람, 그리고 그들을 막내 아닌 막내로 받은 동료들의 기분을 생각하니 아득해진다.


국내 대표 반도체 대기업에 다니는 대학교 선배는 만날 때마다 이 식당은 얼마 벌지, 저 호프집은 얼마 벌지 계산 하는게 습관이 되었다. 올해도 역대급 성과급을 받았지만, 얼마나 버틸지 모르겠어서 계속 식당 창업을 알아보고 있는데, 몇 년을 돌아다니며 찾아봐도 흑자 나는 벤치마킹 모델을 못 찾아서, 요즘은 다른 사업을 고민 중이라고 했다.


대기업 금융사에 다니다 대기업 제조사 P로 이직한 같은 과 동기는 얼마 전 행정사 시험에 합격했다. 회사는 언제 짤릴 지 모르니, 전문직처럼 할 수 있는 자격증을 알아보다 회사 다니며 준비할 수 있는 걸로 몇 년간 준비해서 성공했다고 한다. 그리고 당연히, 회사에는 비밀이었다.


대기업 유통업 본사에서 근무하는 친구는 열심히 일하다 암을 발견했다. 초기라 다행히 치료가 가능했는데, 자기가 회복하는 동안 주변 동료들이 병을 얻거나 쓰러지는 일을 많이 봤고, 이제 회사 일을 열심히 못 하겠다고 한다. 그 친구가 우겨서 오랜만에 친구들이 모이게 되었는데, 살아있을 때 한 번이라도 얼굴 더 보고 싶다고 했다. 알고보니 지난 주에 동료 본인 상을 두 곳이나 다녀 왔던 터였다.


그러다 최근 몇 년간 빠르게 성장한 가구 회사 대표님을 만났는데, 이 분은 채용이 어렵다고 했다. 관리자급 마케터를 구하고 싶은데, 채용 플랫폼을 통하면 애매한 지원자만 넘쳐나서 나에게 지인 추천을 부탁하셨다.


지방에서 대대로 건축자재업을 하는 지인은 결이 다른 구인난을 호소했다. 지방에는 좋은 젊은이들이 다 서울로 올라가버려서, 뽑을 사람 자체가 없다고 한다. 일 좀 한다 치면 금방 서울로 가고, 영 별로인 사람만 남아서 인재풀의 수준이 점차 낮아진다고 투덜거렸다. 하긴, 그래서 내가 프리랜서 마케터로 부산이나 대구 업체에 미팅 갔을 때 그렇게들 좋아 하셨구나 싶었다.


그래서 요즘은 외국인도 많이 쓰는데, 이미 일 잘하는 외국인들은 다른데서 관리직으로 넘어가거나, 자기가 직접 인력사업를 하는 수준이라고 한다. 특히 몽골 분들이 그렇게 일을 잘 하신다고.


아무튼, 아까 이야기 한 가구 회사 대표님의 부탁도 있다 보니, 최근에 쉬고 있거나 프리랜서로 지내는 마케터 지인들에게 연락을 돌려보았다. 추천인 만큼 아무나 연결해 줄 순 없다보니, 같이 일하며 괜찮았던 지인들만 골라 네 명에게 이야기를 꺼내봤다. 동시에 여러 명이 관심 있다고 하면 난처해 질 수 있으니 한 명씩 물어 봤지만,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두 시간도 안되어 네 명 모두 거절했으니. 알고 보니 다들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나 둘 하고 있거나, 자기 사업을 준비 중이었다. 그렇다보니 파트타임이나 계약직이면 고려할텐데, 풀타임으로 일하는 정직원은 부담스럽다고 했다.


2년 전만 해도 마케터가 프리랜서로 먹고 살 수 있냐고 나를 걱정해주고, 일거리도 소개해 주던 지인들이었는데, 어느덧 이미 다들 자연스럽게 긱워커가 되어 있었다. 뭐 나도 하는건데, 그들이 못 할 이유가 없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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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나에게 2025년은 인원 줄이는 회사와 채용 못하는 회사, 그리고 취업 안하는 인재들이 공존하는 시간이다.


그런데 전국을 다니며 이 풍경을 계속 마주하다 보면, 나는 이걸 단순히 ‘관찰’만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자꾸 깨닫게 된다. 프리랜서로서의 자유로움과 유연함이 좋지만, 동시에 이 거대한 변화 안에서 나도 어느 순간 갑자기 밀려날 수 있는 또 하나의 당사자다. 회사를 떠난 사람들, 남아 있는 사람들, 프리랜서를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모두 남 얘기가 아니게 들리는 것도 그래서다.


회사도 불안하고, 개인도 불안하고, AI는 점점 더 빨라지고, 일은 점점 더 개인화된다. 나도 지금은 프로젝트를 선택하는 입장이지만, 언제 이 선택권을 잃게 될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이 시대가 아이러니하다. 불안한 건 모두인데, 그 불안이 모두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내년에는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는 회사도, 사람도, AI도,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나도 함께 서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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