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의 HR 커피챗 시리즈
※ 나의 글들은 경험과 고민을 바탕으로 쓴 개인적인 의견이니, 편하게 봐주면 좋겠다. (상담/미팅 문의 )
VC가 스타트업을 키우는 방법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그냥 돈만 꽂아주고 끝이 아니라, 미국 VC들처럼 전담 HR 팀을 붙여서 핵심인재를 직접 헤드헌팅해주거나, 법무·재무·마케팅 전문가들을 네트워크로 연결해주거나, 아예 CXO급 어드바이저를 상주시키기도 한다. Y Combinator처럼 집중 육성 프로그램을 돌리거나, a16z처럼 자체 운영팀과 마케팅팀까지 갖춘 대규모 포트폴리오 지원 조직을 벤치마킹하기도 했다.
한국 VC들도 몇 년 전까진 꽤 진지하게 이런 걸 시도했었다.
퓨처플레이는 강점 분석 전문 회사인 테니지먼트를 인수하고, 포트폴리오사 대상 교육 프로그램도 시도하며 추가 수익모델까지 염두에 뒀다.
알토스벤처스는 아마 가장 공격적이었을 거다. 내부에 HR 담당자를 두고 포폴사가 찾는 핵심인력을 직접 소싱해줬고, HR·재무·PR 같은 기능별 네트워크도 열심히 연결해줬다. 심지어 포폴사에서 물러난 임원들을 자문으로 고용해 다른 포폴사를 돕게 하는 구조까지 만들었다.
베이스인베스트먼트는 토스 공동창업자 출신을 그로스파트너로 영입 후 최근 공동대표로 임명했다. 그로스 조직 규모를 더 확대하며 포폴사의 채용부터 조직문화까지 실무적으로 지원한다.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는 아예 본부급의 별도 조직을 신설해서 HR·재무·법무·PR을 통합 지원하였다.
데이원컴퍼니가 사실 패스트트랙아시아의 포트폴리오사 교육에서 시작했다는 건 업계에선 유명한 이야기고, 패스트벤처스도 리크루터 채용 공고를 냈었다.
근데 문제는, 요즘 이런 조직들이 하나둘 사라지거나 대폭 축소되고 있다는 거다. 분명 처음엔 니즈도 있고 효과도 검증됐으니까 시작했을 텐데, 생각보다 훨씬 빨리 조용해졌다. 왜일까?
일단 미국이랑 한국은 시장 자체가 다르다. 미국은 아직도 서치펌 비즈니스가 엄청나게 크고 영향력도 세다. 링크드인 같은 플랫폼으로 이력서가 쏟아져 들어오긴 하지만, 땅도 넓고 회사도 많다 보니 여전히 정보의 비대칭이 크다. VC 자체가 갖고 있는 독자적인 인재 DB와 네트워킹 파워는 여전히 차별화 포인트가 된다.
한국은? 한두 다리만 건너면 다 아는 사이다. 요즘은 50대까지도 SNS 하고 웹에 프로필 올리는 시대라, 굳이 VC가 중간에서 연결해주지 않아도 대부분 알아서 찾는다. 그나마 포폴사들이 요청하는 건 C레벨급 인력뿐이다. 근데 문제는 VC도 이런 사람 구하기 진짜 힘들다. 이 정도 급은 시장에 풀 자체가 좁으며 스타트업들의 눈이 너무 높아졌다.
더 골치 아픈 건, 이 좁은 풀 안에서 포폴사들 간 이해갈등이 생긴다는 거다. 바라는 조건을 만족하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인데, 그 사람이 다른 포폴사를 거쳐갔거나 비즈니스 영역과 겹치는 경우가 태반이다. A 포폴사 CFO를 하다가 B 포폴사로 가면, A는 자기네 재무 구조를 다 아는 사람이 경쟁사로 가는 거 아니냐며 예민해진다. 결국 VC가 자기 포폴사끼리 제살 깎아먹기 하는 꼴이 될 수도 있다.
미국 VC들은 보통 투자하면서 지분뿐 아니라 이사회 의석도 챙긴다. 그리고 미국 스타트업은 실제로 이사회 중심으로 돌아간다. 주요 의사결정이 이사회를 거치고, VC와 창업자는 필연적으로 끈끈한 관계를 유지해야만 한다. 이사회 미팅이 한 달에 한 번씩 있고, 거기서 재무 상황부터 조직 이슈, 제품 로드맵까지 다 논의한다. 그러다 보니 VC는 회사 속사정을 꽤 디테일하게 알게 되고, 진짜 필요한 지원이 뭔지도 파악할 수 있다.
한국은 분위기가 좀 다르다. 이사회가 있긴 한데, 실제 힘은 안건 승인 정도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회사 측 인사 위주로 이사를 선임할 수 있어서, VC 이사의 목소리가 생각보다 약하다. 이사회는 분기에 한 번, 어떨 땐 반기에 한 번 열리는데, 그마저도 형식적인 보고 위주다.
그리고 투자 받기 전까진 창업자들이 굉장히 협조적이다가, 입금되고 나면 태도가 180도 바뀌는 경우도 있다. 이게 회사 잘못이라기보단 한국 사람들 특유의 일단 받고 보자는 심리에 내 회사는 내가 알아서 한다는 독립심이 강한 편이다. 미국에선 VC는 파트너라는 인식이 강한데, 한국에선 VC는 돈 준 사람에 가깝다.
그리고 사실 가장 큰 문제는 포폴사들이 진짜로 원하지 않는다는 거다. 재무 실적이야 정기 보고로 어쩔 수 없이 공유하지만, 진짜 실질적인 지원을 받으려면 훨씬 디테일한, 일상적인, 민감한 정보까지 다 까발려야 한다. 대표들 입장에선 자기 회사의 치부가 드러나는 게 싫다. 우리 회사에 이런 문제가 있다고 털어놓기가 쉽지 않다. 특히 자기 경영에 대해 비판받거나 간섭받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
그래서 VC가 좋은 분을 소개해줄까 제안해도 대부분 애둘러 거절하거나, 괜찮다며 자기들이 알아서 하겠다고 한다. 심지어 VC를 통해 추천받은 시니어급 인재가 입사하면, 일부 창업자들은 그 사람을 투자사 스파이라고 경계하기도 한다. 차라리 자기가 직접 뽑은 인하우스 HR을 더 신뢰한다.
여담으로, 창업자나 경영진 출신 고문·어드바이저들도 언제든 필요하면 연락 달라고 해줘도 실제론 거의 안 쓴다. 진짜로 연락할 땐? 투자자 소개나 네트워크 연결이 필요할 때뿐이다.
최근 한국 VC들 자체가 자금난을 겪으면서 상황이 더 나빠졌다. 내부 심사역들도 정리되는 마당에 ROI가 명확하지 않은 지원 조직은 당연히 가장 먼저 칼을 맞는다. 어떤 VC는 아예 기존 채용 지원 역할을 심사역들한테 떠넘기기도 한다.
포트폴리오 지원 조직을 운영하려면 전문 인력을 상근으로 고용해야 하는데, 이게 생각보다 비용이 크다. HR 전문가, 재무 전문가, PR 전문가를 각각 뽑아서 유지하려면 억 단위 연봉이 들어가는데, 정작 포폴사들이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으면 투입 대비 효과가 안 나온다. 일부 VC는 이걸 유료화하려고 시도했지만, 포폴사 입장에선 투자도 받았는데 또 돈 내고 써야 하냐는 반발도 있었다.
VC 내부에서도 미묘한 갈등이 있다. 심사역들은 우린 투자 전문가지 컨설턴트가 아니라는 정체성이 강한데, 포폴 지원 조직은 사실상 컨설팅에 가깝다. 두 조직 간 협업이 매끄럽지 않으면 결국 따로 놀게 되고, 효율은 떨어진다.그리고 이 조직들이 실제로 포폴사 성장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정량화하기가 정말 어렵다. 자기들이 소개한 CFO 덕분에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고 해도, 그게 정말 그 CFO 덕분인지 증명이 안 된다. 성과가 애매하니 조직 존속 명분도 약해진다.
VC 하나가 관리하는 포폴사가 수십 개에서 백여 개가 넘는 경우도 있다. 지원 조직 인력이 아무리 많아도 이 모든 회사를 제대로 케어하기엔 한계가 있다. 결국 일부 주요 포폴사 위주로만 지원하게 되고, 나머지는 소외감을 느낀다.
사실 이 조직에서 일하는 사람들 입장이 제일 애매하다. 포폴사 내부 사정을 다 알지 못한 채 채용 추천을 하면 본인 레퍼런스가 악화된다. VC에서 소개해준 사람인데 별로더라는 평가가 쌓이면 나중엔 아무도 추천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포폴사 내부 정보를 깊게 파악하려 하면, 창업자들이 왜 이렇게 캐묻냐며 경계한다.
베스트 케이스는 좋은 포폴사로 이직하는 건데, 최근엔 그런 경우도 많이 줄었다. 극단적인 경우는 더 안타깝다. VC에서는 포폴사 지원 실적을 보고하라며 성과를 요구하는데, 포폴사에선 굳이 도움이 안 필요하다고 하니 혼자 기획서만 쓰다가 실적 없이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 양쪽 어디에도 제대로 기여하지 못한 채 커리어만 공백이 생긴다. 이러다 보니 포폴 지원 조직에 들어온 사람들이 1~2년 만에 떠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자리를 다시 채우기도 쉽지 않다.
불경기와 투자 악화로 스타트업 시니어들이 많이 잡마켓으로 나왔다. 근데 이 사람들, 경력도 화려하고 실력도 좋지만 연봉은 무겁다. 그러다 보니 정규직으론 채용이 잘 안 된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프리랜서 자문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좋은 회사 출신은 시니어가 아니더라도 컨설팅·자문 회사를 세우고 네트워크 바탕으로 활동하는 경우도 늘었다.
VC 입장에선 이쪽이 훨씬 편하다. 상근 인력 뽑아서 고정비 부담하는 것보다, 필요할 때만 프로젝트 단위로 쓰면 비용 부담도 적고, 성과 안 나와도 책임 넘기기도 쉽다. 그리고 여러 전문가 풀을 갖춰놓으면, 포폴사 특성에 맞춰 선택지를 줄 수도 있으니 더 유연하다.
결국 지금 남아있는 지원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된다. 첫 번째는 극히 최소한의 지원이다. 정기 IR 자료 취합하고, 1년에 한두 번 포폴사 CEO 모임 열어서 네트워킹 기회 주고, 가끔 투자자나 파트너사 소개해주는 정도. 진짜 밀착 지원이 필요한 회사에는 심사역이 개인적으로 시간 내서 도와주는 식이다.
두 번째는 외부 전문가 네트워크 구축이다. 법무법인, 회계법인, PR 에이전시, 그리고 프리랜서 시니어 전문가들 리스트를 만들어서 여기 연락하면 포폴사라고 하면 할인해주거나, 추천했다고 하면 상담해줄 거라는 정도로 정리해둔다. 직접 하는 게 아니라 연결만 해주는 거다.
그리고 일부는 아예 솔직하게 인정했다. 자기들은 투자 전문가이고, 돈 넣고 방향 조언하고 네트워크 연결해주는 게 역할이며, 경영은 창업자들이 더 잘한다고. 이렇게 선을 긋고, 대신 투자 판단과 후속 투자 유치에만 집중하는 쪽으로 갔다.
그렇다고 포트폴리오 지원 조직이 완전히 의미 없다는 건 아니다. 여전히 일부 VC는 제한적이나마 유지하고 있고, 특히 초기 단계 스타트업에겐 여전히 도움이 된다. 씨드나 시리즈 A 단계에선 창업자들이 아직 모든 걸 다 알지 못하고, 실수도 많이 하고, 도움이 절실하다.
특히 비수도권이나 특정 산업 전문 VC들은 여전히 밀착 지원이 통한다. 포폴사 숫자가 적고, 산업이 특화돼 있으면 깊이 있는 지원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바이오 전문 VC는 임상 전략이나 FDA 승인 프로세스 같은 걸 직접 도와줄 수 있고, 이건 일반 컨설팅 회사가 대체하기 어렵다.
문제는 규모의 경제다. 포폴사가 10여 개 정도면 지원 조직이 의미 있게 작동할 수 있는데, 50개, 100개가 되면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진다. 그래서 요즘 일부 VC는 소수의 회사에 집중 투자하는 전략으로 돌아서고 있다.실제로 Founder Collective는 의도적으로 작은 펀드 규모($95M)를 유지하며 seed-stage에만 집중한다. Homebrew도 많은 회사에 작게 베팅하기보다는 소수의 회사에 깊게 관여하는 전략을 취한다.
한국에서도 이런 시도가 조금씩 보인다. 몇몇 신생 VC들은 1년에 소수의 회사만 투자하는 대신, 파트너가 직접 붙어서 매주 미팅하고 필요한 건 다 도와준다는 컨셉으로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런 전략이 통하려면 당연히 투자 성공률이 높아야 하지만, 어차피 VC 비즈니스 자체가 1~2개 대박으로 먹고사는 구조니까 나쁘지 않은 접근일 수도 있다.
VC가 직접 지원하는 게 아니라, 포폴사끼리 서로 돕게 만드는 거다. 어차피 같은 고민을 겪는 사람들끼리 얘기하는 게 VC 조언보다 훨씬 실질적일 수 있다. Y Combinator의 성공 비결 중 하나도 바로 이 동문 네트워크다. 9,000명이 넘는 YC 동문들이 Bookface라는 내부 플랫폼을 통해 서로 연결돼 있어서, 이런 문제를 겪는 사람이 있냐고 물으면 금방 답변이 달린다.
한국 VC들도 이런 걸 시도하지만, 규모나 문화적 차이 때문에 쉽지 않아 보인다. 한국 창업자들은 자기 회사 문제를 다른 창업자들한테 공개적으로 얘기하는 걸 꺼리는 경향이 있다. 미국처럼 실패를 경험 삼아 공유하는 문화가 아직은 약한 편이다.
누군가가 그랬다. PE(Private Equity)에서 직접 투자해서 경영하는 건 물 붓고 직접 키우는 거고, VC에서 투자하는 건 물 떠넣고 비는 거라고. 그래서 한국 VC들도 그냥 물 떠넣고 비는 것 이상을 하겠다며 열심히 지원 조직을 만들었다. 투자 유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차별화 포인트가 필요했고, 포폴사 지원은 그럴싸한 무기처럼 보였다.
근데 현실은 생각보다 냉정했다. 포폴사는 생각보다 독립적이고 싶어 했고, 한국 시장은 생각보다 좁았고, VC 자체도 여유가 없어졌다. 지원 조직을 만드는 건 쉬웠지만, 그걸 의미 있게 굴리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 결국 많은 VC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물 떠넣고, 가끔 전화해서 안부 묻고, 필요하면 네트워크 몇 개 연결해주고.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최선이라는 걸, 시행착오 끝에 깨닫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애초에 VC의 본질이 거기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게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화려한 지원 조직이 없어도,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꼭 필요한 순간에 제대로 도와주는 것도 나름의 가치가 있다. 한국 특유의 빠른 속도가 이번엔 좋은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 유행처럼 번졌던 지원 조직의 비효율을 빠르게 깨닫고, 다시 본질로 돌아가는 중이다. 마침 시대의 흐름도 맞아떨어졌다. 불경기로 시장에 풀린 시니어 전문가들, 프리랜서 생태계의 성숙, 네트워크 플랫폼의 발달까지. 유연한 전문 조직을 활용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진 거다.
아직은 과도기다. 폐쇄적으로 전문성보다는 인적 네트워크 중심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점점 더 오픈 이노베이션 형태로 확장되지 않을까 싶다. 미국처럼 거대한 지원 조직을 갖추는 대신, 더 유연하고 효율적이며 창업자의 자율성도 존중하는 방식으로.